갚을 수 없는 더 큰 감동 큰 은혜의 연속!

필자에게 분에 넘치는 큰 보약을 선물하신 한의원 원장님께 1 달 여 만에 보약을 정성스럽게 때를 맞추어 잘 먹고 힘을 얻고 나서 감사 인사차 한의원을 방문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필자의 인사를 받으신 원장님이 특산삼녹용대보탕을 또 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에 부담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일로 더 큰 마음의 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치 혹을 떼러 갔다가 더 큰 혹을 얻은 것 같은 무거움이었습니다. 그리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몇 번이나 사양했지만 통할리가 없었습니다. 그러시면서 이 보약은 정말로 귀한 것이니 반드시 드셔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미국에도 산삼이 많이 있지만 필자에게 주신 특산삼녹용대보탕에 들어간 산삼은 미국에서 구입한 산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국의 명산에서 이름난 심마니가 어렵게 채취한 귀한 것을 서울에 계신 부모님이 이곳에 사는 자녀의 건강을 위해서 비싼 값에 구입하여 보내온 진귀한 산삼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일반 사람은 쉽게 접하지도 구하지도 못하는 명품 산삼 중 진귀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한의원에서 환자들을 상대로 돈을 벌기 위해서 만들어진 보약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 중 한 분이 건강으로 힘들어 하는 자녀를 위하여 한국의 부모님이 보내오신 것으로 만든 보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약의 값을 돈으로 정할 수 없는 정말로 귀한 보약이라고 하셨습니다. 판매용이 아니라 원장님의 가족을 위하여 정성으로 만드신 보약중 보약이라는 말을 듣고 내가 먹은 보약이 정말로 귀한 것임을 다시 알 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한번이 아니고 다시 또 큰 사랑의 선물을 받다니!

분에 넘치는 선물을 받고 감사하면서도 내가 무엇인데 나도 나를 위하여 해주지 못하는 이런 큰 사랑을 받다니 그 큰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는 한의원 원장님을 향한 감동이 너무 크게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필자에게 큰 사랑을 베푸신 원장님은 한국에서 검사로 재직하셨고 이후 대학에서 법학교수로 재직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콜로라도에 있는 미 공군 사관학교 교환교수로 사랑하는 두 아들과 함께 미국에 오셨습니다. 콜로라도에서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큰 아들이 프린스톤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의대를 나와서 마취의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둘째 아들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예일 대학에 입학한 자랑스러운 인물이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교환교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여생이 보장되지만 어린 두 아들의 장래를 위하여 이곳에서 한의학에 입문하시어 자신의 진로를 새로 정하신 후 지금은 한의대학의 박사원 교수로서 한의학 박사학위를 4 개나 획득하시고 후학들 뿐 아니라 많은 난치병 환자들의 고통과 회복을 위해서 크게 역사하고 계십니다.

요즘 사람다운 사람을 보기가 어렵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닮은 의료인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말도 듣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이 아주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는 정말로 옥석과 같이 빛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윤택하고 행복하여 지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너희는 세상에 소금과 빛이라는 말씀의 주인공들이 나의 주변에 가까이 계시기 때문에 세상을 살아갈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좋은 것이고 살만 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섬김의 본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삶을 닮아 가시는 청아제 한의원 원장님과 그의 가족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드립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629

고 박원순 서울 시장의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서!

지난 목요일 오전 뉴스를 듣다가 박원순 서울 시장의 사망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람이기에 죽는 것이 당연한 것은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각 사람이 죽는 모습은 같지 않습니다. 사고로 죽는 사람도 있고 병으로 죽는 사람도 있으며 하늘이 준 천수를 누리며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박 시장의 죽음이 충격인 것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상황이 힘들고 어려웠으면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인생은 죽음으로 세상에서의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입니다.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다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경우 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사업에 실패했거나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그런데 박원순 시장은 실패한 사람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성공한 정치인 중 한 분이었습니다. 한번하기도 어려운 서울 시장을 3번이나 연임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차기 유력한 대선 주자중 한 분으로 한국인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이목을 받고 계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큰 충격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 시대, 큰 지도자 중 하나에게서 일어났습니까? 무슨 죄를 얼마나 중하고 크게 지었기에 그랬을까요?

그 분이 지은 죄에 대해서 알기를 원치 않습니다. 다만 이번 사태를 보면서 우리에게 교훈이 되는 것은 아무리 크고 높은 권력을 가져도 자신이 지은 죄는 숨길 수 없으며 막지 못하며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수단과 방법을 시도했지만 해결하지 못한 것입니다.

박 시장의 극단적 선택을 보면서 필자가 안쓰럽게 여기는 것은 죽을 용기가 있을 정도라면 왜 자신의 지은 죄에 대해서 당사자와 국민들 앞에서 솔직하게 고백하고 죄의 값을 받으며 용서를 구했으면 좋지 않았을까하는 부분입니다.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박 시장을 따랐던 수많은 사람들이 절망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했는데 박 시장이 지금까지 살아온 아름다웠던 이름을 남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일순간에 빛나던 이름이 날아갔기 때문입니다. 본인만 아니라 유가족들과 박 시장을 섬겨왔던 수많은 분들에게 씻을 수 없는 마음의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이번 일을 보면서 예수를 만나지 못하고 사는 인생이 얼마나 헛된가를 보게 됩니다. 세상에서 크게 성공하고 뛰어난 이름을 가져도 구원의 주를 만나지 못하면 성공한 것 같으나 실패한 인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귀한 것은 세상이라는 징검다리를 통하여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롬 14장 7-9절에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죽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아침에 우리가 예수 안에서 호흡하며 감사로 기도하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 귀하고 복된 것임을 느껴봅니다. 주님! 오늘도 주와 동행케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sub_read.html?uid=26622&section=section3&section2=

갚을 길 없는 큰 사랑의 선물

교인은 아니지만 10여년이 넘게 교제를 이어오는 분이 계십니다. Los Angeles 한인 타운에서 소문난 한의원을 개업하시는 원장님이십니다. 필자가 지난 달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을 때 인편으로 보약을 보내오셨습니다. 보약의 이름은 평소 접하지 못한 생소한 이름의 “특산삼녹용대보탕”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이름의 보약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를 위하여 돈을 주고 보약을 사본일이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 없으리라고 생각을 하는 것은 받은 보약의 값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변 지인들에게 특산삼녹용대보탕의 값이 얼마나 되냐고 물어보아도 답하는 분들이 없었습니다.

쉽게 접할 수 있는 보약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느 분의 말에 의하면 그 보약은 일정한 값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의 진귀한 품종의 산삼과 녹용인가에 따라서 값이 오르고 내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데서나 그런 보약을 구입해서는 아니 된다고 하셨습니다.

서로를 잘 아는 한의원에서 특별한 경우의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런 진귀한 보약을 사 먹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필자도 돈을 주고서 그런 보약을 구입해야 한다면 사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도 날 위하여 하지 못하는 진귀한 보약을 한의원 원장님께서 최고의 품종으로 최고의 정성을 담아 선물하신 겁니다.

그것을 받아들고 한 동안 몸 둘 바를 몰라 했습니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 귀한 선물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원장님을 위하여 드린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내가 바라지도 아니했고 바랄 수도 없는 데 감당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은혜와 사랑을 무엇으로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

생각이 정리 되었습니다. 보약을 정성으로 선물하신 원장님께 대한 보답은 이 보약을 잘 먹고 하루 속히 건강을 회복하여 그 분 앞에 나아가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즉시 기도하면서 보약을 먹을 때 주의 할 사항에 대한 사용서의 설명대로 기도하면서 보약을 먹기 시작한 것입니다.

처음 먹어본 보약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특산삼녹용대보탕이기 때문일까? 수술 후 10여일 만에 1 차 수술을 담당한 위장내과 의사를 만났을 때 수술 후 2 주일부터 특별히 조심하며 주의해야 하는 것은 수술 후유증으로 복수가 찰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럴 경우 즉시 위장내과 의사인 자신에게 연락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연락이 되지 아니할 때는 수술한 병원 응급실로 지체하지 말고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배에 물이차면 호흡이 곤란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담당 의사에게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 때를 대비하여 적절한 약을 처방해 주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런 약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가 어디에 있습니까? 의사 선생님이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닙니까? 이에 대한 대답으로 의사도 그 일에 대하여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경과를 지켜보는 것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주변 가족이나 다른 분들에게는 말하지 아니하면서도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위험한 증세가 나타나지 아니하고 지나가 이제는 정상적인 생활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많은 분들의 기도의 힘에 이어서 이번에 귀한 선물 받은 특산삼녹용대보탕의 위력 때문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를 향하신 주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전문 의료인들뿐 아니라 타운에서 크게 존경받으시는 소문난 한의원 원장님의 세심한 손길을 통하여 나약해진 몸의 기운을 빠르게 회복케 하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크게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청아제 한의원 원장 장 박사님께 진심으로 존경하며 크게 감사드립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618

코로라 19시대의 목회 일기

모두를 놀라게 한 코로라 19로 교회가 예배를 중단한지 4개월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예배는 중단이 되지 않고 계속되었지만 정부 지침에 따라 이전 같은 정상적인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10명 이내로 예배 참석자들의 수를 제한하므로 그 범위 안에서 소수의 교인들만 모여서 예배를 드려오고 있습니다.

매 주일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교인들을 위해선 유튜브 방송설교 촬영 팀들이 예배 영상을 녹화하여 영상으로 송출해 가정에서 예배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영상 예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에 대하여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시대에 이런 일을 경험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출석해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시는 교우님들 중에는 헌금을 정성으로 준비해서 인편으로 보내오시는 교우님들이 계십니다. 매 주일 헌금을 보내오시는 분도 계시고, 한 달에 한번 씩 헌금을 모았다가 보내오시는 분들도 있으십니다. 그런데 오늘 어느 권사님으로부터 4 개월 치의 십일조 헌금을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 중에 전화가 없는 유일하신 권사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권사님과 통화를 하려면 함께 사는 딸이 일터에서 돌아와 집에 있는 동안에 딸의 전화를 통하여 어머니의 근황을 묻고 어머니와 전화가 가능한지 여부를 물은 다음에 곁에 계실 때만 통화가 가능해 전화 심방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필자가 지난 한 달 동안 병상에 있을 동안에 누구보다도 필자를 위하여 마음 졸이시며 기도하신다는 말을 전해 듣고 권사님 댁을 방문했습니다. 방문하기 전 딸을 통하여 심방 허락을 받고 사전에 말한 것이 있습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은 잠시로 기도한 후 물 한 잔도 준비하지 말라고 했으며 악수도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심방 기도를 마치고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그 동안 하나님께 바치지 못했던 4 개월분의 십일조 헌금 봉투를 건네 주셨습니다. 그것을 받아들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것을 들고 돌아오는 길에 헌금 봉투 안에는 얼마의 돈이 들어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헌금 봉투를 열어보려고 했더니 봉합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포기를 하고 교회로 가져와 필자의 책상 옆에 두었는데 다시 생각이 났습니다. 권사님이 그 동안 모아서 바친 헌금의 액수가 얼마나 될까? 열어 보고서 다시 봉합을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불 같은 성령의 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네가 그것을 알아서 무엇하려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네가 알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네가 알 필요가 없는 주님만이 아셔야 하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음성을 듣는 순간!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네! 주님 맞습니다. 주님의 것을 내가 알 필요가 없지요!

주님! 잘못했습니다. 잠시 종이 본분을 망각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지금까지 교회를 섬겨오면서 이런 성령의 음성을 들어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정성으로 준비하여 하나님께 드려지는 헌금을 주님이 얼마나 귀히 여기시고 축복하심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기뻐 받으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받으십니다. 우리의 찬양을 받으십니다. 우리의 희생과 감사를 받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것을 받으심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타인이 아니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며, 구원자시며,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죄악에서 선택하시어 자녀 삼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감사하며 생명이 허락되는 마지막까지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sub_read.html?uid=26606&section=section3&section2=

이제부터 쓸개 빠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11일 만에 퇴원을 해서 2주일 집에 머무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와 많은 기도 동역자님들의 도우심으로 빠르게 건강을 회복하고 오늘부터 일상의 삶으로 돌아왔습니다. 25일 만에 자동차 운전을 하고서 교회로 향하는 길이 전과 다르지 아니한데 전에 느끼지 못하던 여러 가지 감회가 밀려왔습니다.

살아오면서 내가 사는 것이 나의 건강 때문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건강이 나의 것이며 당연한 것처럼 생각을 해 오다가 이번 병상을 통하여 건강이 나의 소유가 아니며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 동안 큰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살아온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14장 7절 이하에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주를 위한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병의 근원이 밝혀지고 나서 치료에 대한 계획이 전해 졌습니다. 담도 관과 담낭주머니(쓸개)에 돌이 있어서 그것이 움직일 때마다 상처를 내 염증을 일으켜 몸에 고열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치료의 방법으로는 위장내과 의사가 담도 관에 있는 돌을 1 차로 제거한 후 이어서 외과 의사가 담낭 제거 수술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치료 계획을 듣고 나서 제일 먼저 생각이 떠 오른 것은 “아! 이제부터 나도 쓸개 빠진 놈이 되는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 한국 간호사 분이 오셨기에 질문을 드렸습니다. “왜 담낭 제거한 사람을 쓸게 빠진 사람이라 하지 않고 놈이라고 말을 하죠?” 간호사님은 손으로 입을 가리시면서 미소를 지으며 “글쎄요?” 라고 답을 피하셨습니다. 그 때부터 “아! 나도 이제부터 쓸개 없는 사람이 되는데 그렇다면 나도 어쩔 수 없이 쓸개 빠진 놈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서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쓸개 빠진 사람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여러 사람에게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목사님! 나도 쓸개 빠진 사람입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여러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들의 말에 의하면 요즘 주변에 쓸개 빠진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쓸개 빠진 놈이라는 말을 함부로 했다간 크게 망신을 당할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의학적으로는 담낭을 제거해도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은 없다는 것입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어쩌면 암 일수도 있겠다는 두려움과 공포에서 피하게 하시고 다시 감사하며 사는 삶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감사하고 또 감사 드려야 할 터인데 부족한 종을 사랑하셔서 최선의 방법으로 치료의 길을 열어주시고 회복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새 사명의 삶을 주신 주님을 향하여 이전보다 더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을 살아 드릴 것을 약속드렸습니다.

2020년 6 월 24일

정오에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594

코로나19 시대의 병원입원 투병기(2)

병원에 입원한지 3일째 되는 날 MRI 촬영 결과를 듣고서 두 번째로 하나님께 큰 감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결과를 듣기 전 까지는 여러 가지 생각이 끊이지 아니하고 이어지면서 어쩌면 수많은 종류의 암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암에서 자유롭기를 원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만에 하나 암으로 진단이 나와도 내가 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부정할 수도 없고 거부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주님을 향하여 감사해야 할 터인데 암이 아니고 몸에 돌이 박혀 있는 것이라는 말에 감사를 하게 되는 것은 수술로 치료가 되지만 암이면 치료 과정이 너무도 힘들고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수술 일정이 잡히면서 수요일과 목요일 두 차례에 걸쳐서 수술을 집도할 위장내과 의사와 외과 의사가 병실을 방문하시어 수술하는 과정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때 1 차 시술을 담당하는 위장 내과 의사님께 질문했습니다. 입원하기 2년 전부터 위장 내과진료소를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 곳에선 이 같은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몸에 돌을 지니고 사는 사람의 80퍼센트는 아무런 증상을 느끼지 못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 20퍼센트의 환자만이 통증을 호소하게 되어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목요일에 병원직원이 병실을 방문해서 수술 동의서류를 준비해 가지고 와사 싸인을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서류에는 1차와 2차 수술로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 3차 수술도 할 수 있다는 내용의 서류에 싸인을 해야 한다고 해서 싸인을 했지만 처음 듣는 말이라 궁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잠시 후 2차 수술 의사가 방문 하셨기에 3차 수술에 대하여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말을 하셨습니다. 담낭(쓸게) 제거하는 환자의 경우 95퍼센트는 복강경을 통하여 배에 서너 군데 작은 구멍을 뚫고 시술 기구를 삽입하여 제거를 하는데 그 중 5퍼센트의 환자는 개복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경우는 3차 수술 까지는 가지 아니할 것 같다고 말하면서 그에 대한 걱정과 염려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수술실에서 시술을 하다가 간단하게 복강경을 통하여 담당을 쉽게 제거하려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즉시 배를 열고 3차 수술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수술실에 들어가서 마취에서 깨어난 것은 22시간이 지나서였습니다. 눈을 떠보니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는데 몸이 너무 불편하고 힘이 들었습니다. 특별히 힘들게 했던 것은 입 안에 Intubation을 삽입하여 Ventilator를 이용하여 인공호흡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게 했습니다.

의식에서 깨어나고도 입에서 intubation을 제거하기 까지는 3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습니다. 그 순간마다 호흡하는 것이 매우 힘들고 고통 스러웠습니다. 마음 같아선 손으로 뽑아내고 싶었지만 이미 손이 묵인 상태라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가는데 하루 반이 지난 후 였습니다.

그 때부터 통증을 느끼지 시작했습니다. 그중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다가 목에 상처를 당한 것이 헛기침으로 이어지면서 그럴 때마다 수술 부위에 통증이 배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안 할머니 중 90평생을 마취의사로 살아오신 할머니가 방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따듯한 소금물로 2-3 분 간격으로 가글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전문 의료인 마취의사의 권유였기에 즉시 시행하여 하루 반 만에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이번 병원 입원을 경험하면서 세 번째로 하나님께 감사드린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도 나를 위하여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나의 연약한 육체를 위하여 수많은 우수한 전문 인력들을 오래전부터 완벽하게 훈련케하시고 좋은 기구와 여러 중류의 약들을 준비하시고 곳곳에 병원을 세우시어 우리가 당할 어려움에서 필요할 때마다 회복케 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죽음의 위기에서 생명을 지켜준 Hollywood Presbyterian Hospital 임직원 여러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2020년 6월 11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576

코로나19 시대의 병원입원 투병기(1)

필자는 지난 5월 31일부터 Los Angeles 한인타운에 위치한 헐리웃장로병원(Hollywood Presbyterian Hospital)에 입원하여 11일 만인 지난 6월 10일 오후에 퇴원 했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늘 생각은 해왔었지만 내 몸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이번 병상 경험을 통하여 분명하게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나의 몸이지만 아픈 나의 몸을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자기 몸의 주인이 자신이라면 세상에 아플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주인이 자신의 몸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기에 언제 어디에서 어떤 일이 다가올지 모르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병원에 입원하기 4-5일 전부터 고열이 나기 시작하면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타이레놀을 반복해서 복용하면서 열과 통증을 달래보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응급실에 갈까 말까에 대하여 여러 번 망설였습니다. 이유는 주일예배 때문이었습니다. 갑자기 다른 분에게 설교를 부탁하는 것이 부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일 예배를 지나고 나면 월요일에 담당 의사를 찾아가 상담을 받으려고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런데 주일 아침에는 더 견디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간호사로 근무하는 집사님에게 설교하기 위하여 강단에 오르기 한 시간 전 카톡으로 몸의 상태를 설명 드리고 내일까지 기다려도 문제가 없을지에 대하여 문의 드렸습니다.

카톡을 보내자마자 곧바로 간호사 집사님의 답장이 왔습니다.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곧바로 응급실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마치자마자 응급실로 향한 것입니다. 응급실에 도착하고서 놀란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환자들을 모시고 드나들던 응급실이 이전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뀐 것입니다.

그 중 하나는 환자 외에는 가족 누구도 응급실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응급실만이 아니라 일반 병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로인하여 병원에 입원해 있는 11일 동안 가족 중 누구도 병실을 방문할 수가 없었습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검사를 마친 후 곧 바로 병실로 올라갔습니다.

그 밤에 응급실에서 여러 가지 검사 중 Covid19 test를 했습니다. 내가 원해서 한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입원하는 환자에게 의무적으로 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 날 검사 결과 Negative로 나왔습니다. 입에서 하나님을 향한 첫 번째 감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사실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계속되는 고열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코로나19에 대한 일반 상식은 인지하고 있었기에 그 부문에 대해선 크게 염려하지는 않았습니다. 코로나 19 환자의 경우 기침과 설사를 하는데 반하여 나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코로나 검사를 정상으로 받은 다음날도 두 번째 코로나 검사를 했습니다. 다음 날 역시 정상으로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필자에 대한 치료가 공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화요일에는 MRI를 촬영했습니다. 10여 년 전 고속도로(Freeway)에서 다중충돌 교통사고가 났을 때 MRI를 촬영했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기억으로는 3-4분 정도 한 것으로 알았는데 이번 촬영은 달랐습니다. 팔에 방사선 동위원소 주사를 놓은 후 복부 촬영시간만 어림잡아 30분 이상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부터 이상한 여러 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방사선동위원소 주사를 맞고 촬영을 하는 것은 암 환자들이 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기 때문입니다. 필자의 형님이 10여 년 전에 담도 암으로 고생 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내가 암에 걸렸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음 날 MRI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몸에 고열이 나는 것은 몸 안에 돌이 있어서 그것이 움직이면서 상처를 내 염증을 반복적으로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돌이 있는 곳은 담도 관과 담낭주머니(쓸개)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제거하기 위해선 두 번의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1차로 위장내과 의사가 위를 통하여 담도 관에 있는 돌을 제거한 후 이어서 외과의사가 담낭 제거 수술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선 먼저 심장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심장이 약하면 수술실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곧 바로 심장 검사를 받은 다음날 수술해도 좋다는 심장의사의 설명이 있은 후 수술 일자가 금요일로 잡혔습니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2020년 6 월 10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567

오늘은 교회 마당에서 살구를 따는 날

가정의 달 5월의 네 번째 주일은 메모리얼데이 연휴가 있는 주일입니다. 코로나19로 예배가 중단된 지 10번째 주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그 기간에도 주일 예배 촬영을 위하여 영상 팀들이 참석하여 유튜브 TV녹화와 페이스 북으로 설교를 송출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인원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일 년 전 지금의 교회당으로 예배처소를 이전하고서 성전 이전을 기념하면서 20여 구루의 과실 수를 사다가 성전 둘레에 심었었습니다. 그 중 두 구루의 살구나무가 일 년 만에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보기에 좋고 아름다운 색으로 탐스럽게 익어 수확을 위해 두 분의 권사님이 교회에 오셨습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늘 가져오던 점심 식사는 생략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성도의 교제도 중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배에 참석한 소수의 인원이 마당으로 나아가 살구를 땄습니다. 지금이 살구를 추수하는 시기입니다. 한두 주일 더 기다릴 수도 있지만 다람쥐의 출현으로 앞당기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살구만 아니라 매실과 체리 그리고 블루베리도 수확의 계절입니다. 교회 화단에 같은 시기에 두 구루씩 체리와 블루베리도 심었지만 이들은 열매를 맺지 않았습니다. 꽃이 피긴 했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열매를 맺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살구는 우리가 기대하지 아니했는데도 많은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지난 해 과실 수를 심으면서 수년은 지나야 열매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 했었는데 그런 기대와 다르게 빠른 시간에 수확의 기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봄이 되면서 나뭇잎이 하나 둘 솟아 오른 것도 신기했습니다. 그러더니 예쁜 꽃을 피울 때는 너무 보기에 좋아서 보는 우리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솜씨가 얼마나 놀라운 지 같은 땅에 심기어졌음에도 나무의 종류에 따라 모양도 다르고 꽃의 모양과 색깔도 다르며 향도 달랐습니다. 물론 열매의 종류도 다릅니다. 오늘 수확한 것은 살구만이 아니었습니다. 고추가 너무 실하게 달려 두 분 권사님이 큰 웃음으로 행복해 하시며 기뻐하셨습니다.

오늘은 살구와 고추를 수확했지만 가을이면 대추와 감 그리고 사과와 레몬 오렌지를 수확하게 될 것입니다. 감나무는 4구루가 열매를 키워가고 있으며 2구루의 대추도 부지런히 열매를 키우고 있고, 3구루의 사과와 그리고 여름을 목표로 3구루의 복숭아나무가 열심히 열매를 키워가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의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리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는 교회 뜰에 심긴 여러 종류의 나무와 채소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추수의 감격과 기쁨을 느끼며 일상의 삶을 통하여 행복해 하는 것은 지난 해 심는 수고를 했기 때문입니다. 심지 아니 했으면 거둘 것만 없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기쁨과 감동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항하여 심는 수고를 아끼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심어도 아무거나 심어선 아니 됩니다. 죄를 심으면 죄의 열매가 맺히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심은 대로 거둔다고 하셨습니다.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심어야 할 것에 대하여 썩어질 것을 심을 것이 아니라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의 열매를 얻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귀한 것은 영생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얻을 영생은 세상에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받는 영광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귀한 것은 우리를 천국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시 116편 5-6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는 말씀의 복을 흘려버리지 마시고내가, 우리가 심고,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시는 주인공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sub_read.html?uid=26551&section=section3&section2=

코로나바이러스 시대의 장례식 집례기

지난 수요일에 어느 장례식을 집례 했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성도님이 일주일 전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소천하신지 일주일 만에 장례식을 가지게 된 것은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장례일정을 잡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의 숫자가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통 2 주일에서 길게는 20일 이상 기다려야만 장례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장례식의 주인이신 고인은 오랫동안 어려운 병으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힘든 투병 생활을 해 오셨기에 본인만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요즘의 장례식은 이전과 다르게 예식을 집례 하게 됩니다. 전과 같으면 많은 조객들이 참석하여 여러 가지 색깔의 향내 나는 조화 속에 가시는 고인이 길을 아름답게 해 드렸을 터인데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참석하는 조객의 숫자도 적지만 그 흔하던 조화도 요즘 장례식장에서는 쉽게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시에서 명하는 강력한 행정명령으로 장례식에 참석하는 숫자를 10 명 미만으로 제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족 중에도 이 숫자의 제한을 받아 다 참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교인들도 이 명령 때문에 필자를 제외하곤 한 사람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주변의 이웃들이 고인의 소천 소식을 듣고도 많은 유가족의 친지들이 가시는 길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슬픔 당한 유가족들의 마음만 아픈 것이 아니라 평소 고인과 유가족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온 친지들이 마지막 가시는 길에 동참하지 못함으로 안쓰러워하며 미안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중에도 이번 장례식 예배가 그 어느 때보다도 다행스럽고 유가족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것은 예배의 특별함 때문이었습니다. 고인의 남편은 지역사회에서 존경 받으시는 원로 목사님이시며 아들도 목사님 이셨기 때문입니다. 딸은 피아노를 전공한 전문 음악인이며 사위는 색소폰 연주가 이십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이런 상황에서의 장례식은 그렇지 않아도 힘들 수밖에 없는데 오늘의 장례식예배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쓸쓸할 수밖에 없는 장례식 예배가 가족들의 참여로 그 어느 장례식보다 아름다운 예배가 될 수 있었기에 필자도 예배를 통하여 은혜를 받았을 뿐 아니라 고인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집례와 위로의 말씀은 필자가 전했지만 기도는 아들 목사님이 담당하셨고, 고인의 약력보고도 아들 목사님이 하셨으며, 조사는 손자가 했고, 조가는 섹스폰 연주가인 사위가 맡았으며, 오르간 반주는 딸이 했고 예배 말미인 축도는 남편 목사님이 맡으셨습니다. 참석한 가족 모두가 순서를 맡은 것입니다.

장례식 전 날 유가족이 카톡으로 필자에게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장례식 날 드레스코드는 검은 정장과 검은 색 넥타이를 안 하기로 가족회의서 결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인이 생전에 밝은 색을 좋아하셔서 평상시 입은 깨끗한 복장을 입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자도 가족의 결정에 따랐습니다.

장의사에서 장례예식을 마친 후 곧 바로 장지로 자동차로 30분을 이동해서 하관식을 거행했습니다. 경치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Hollywood Forest Lawn 공원묘지의 드넓은 자연에서 베풀어진 하관식이 특별했던 것은 축도 전 예식을 마치는 노래로 찬송가가 아닌 “아 목동이여[Oh, Danny Boy]”를 합창할 때였습니다.

지금까지 한 교회를 40년 동안 섬겨오면서 수많은 장례식을 집례하면서 늘 마음의 무거운 짐을 받아 왔었는데 이번 장례식에선 그런 부담을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이 노래가 슬프던 모두의 마음을 가사를 통하여 위로 받게 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목동들의 피리소리들은         산골짝마다 울려 나오고

여름은 가고 꽃은 떨어지니        너도 가고 또 나도 가야지

저 목장에는 여름철은 가고        산골짝마다 눈이 덮여도

나 항상 여기 살리라                    아 목동아 아 목동아 내 사랑아

 

그 고운 꽃은 떨어져서 죽고       나 또한 죽어 땅에 묻히면

나 자는 곳을 돌아보아 주며      거룩하다고 불러 주어요

네 고운 목소리를 들으면           내 묻힌 무덤 따뜻하리라

너 항상 나를 사랑하여 주면      네가 돌아올 때까지 내가 잘 자리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sub_read.html?uid=26533

목사님 냄새가 나는데! 목사님 아니신가요?

필자가 10여 년 동안 사용해 오던 약국을 금년 초부터 건강 보험 회사를 바꾸면서 약국도 바꾸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사용해 오던 약국을 바꾸게 된 것은 필자의 담당 의사가 사용하는 진료소와 같은 건물 내에 있는 약국이기에 약을 얻기 위하여 먼 곳을 오고가는 불편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수년전부터 지금의 약국으로 바꿔야 겠다는 생각을 해오면서도 쉽게 결단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미루어 오게 된 것은 십여 년간 쌓아온 인간관계를 끊는 것이 쉽지 않아서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동안 필자를 도와온 약사님이 너무 존경스럽고 만날 때마다 사랑과 정성으로 늘 섬겨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주 중에 금년 들어 세 번째 새 약국을 방문했습니다. 3 개월에 한번 담당 의사를 만나면 3 개월 치 약 처방을 받기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2-3개월에 한 번씩 약국을 방문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번 새로 옮긴 약국은 이전 다니던 약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컷습니다. 약사도 4분이나 계셨습니다.

일하는 종업원의 숫자까지 합하면 직원이 10명 가까이 되는 약국이기에 항상 대기실에는 10여명의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타운에서 환자가 많기로 손꼽히는 약국입니다. 먼저 다니던 약국은 규모가 작기에 방문 때마다 약사님과 대면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약국에 직원의 숫자가 많아서 창구에서 약사님과 대면하는 일이 적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세 번째 방문 시 약국의 대표 약사님이 중년의 여성분이셨는데 필자에게 다가와 이런 말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방문할 때 목사인 것 같아보였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이시죠? 목사님의 냄새가 나십니다.

그 말을 듣고 당황하게 된 것은 필자가 병원에 가는 날은 정장을 하지 않습니다. 되도록 편하게 입고 갑니다. 그래서 평소에 입지 아니하던 의복, 다시 말해서 목사 같지 않는 복장으로 변장 아닌 변장을 하고서 외출을 하는데 그런 나의 모습이 상대방에게 들키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나의 신분을 말하기도 전에 알아준 약사님에게 신뢰와 함께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필자를 향하여 약사님이 말하는 목사의 냄새는 과연 무엇일까? 좋은 의미의 냄새도 있을 것이고 나쁜 의미의 냄새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어느 권사님이 겪으셨던 일이 생각이 됩니다.

주변의 소개로 목사님이라고 해서 조금도 의심하지 아니하고 믿고 일을 맡기셨는데 일이 잘 처리 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 일로 마음에 상처를 당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차라리 일반 사람이라면 욕이라도 하고 화라도 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하면서 그런 목사님도 있느냐고 필자에게 화를 내신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필자도 화가 나서 그분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화를 내시면서도 그 분의 이름을 말해주지는 않았습니다. 금방이라도 실망케 한 분의 이름을 말해 줄 것 같았는데 끝까지 숨기는 모습을 보면서 그래 이것이 진짜 믿음 있는 권사님의 진정한 모습이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화가 났지만 그 일로 당신만 당하고 마는 것으로 그쳐야지 주님의 이름까지 더럽힘 당할까 염려하는 모습이 귀하게 보인 것입니다. 나의 모습 어디에서 목사의 냄새가 나게 한 것일까? 말하는 행동일까? 앉고 일어섬일까? 걷는 모습일까? 얼굴 표정? 어느 곳도 내가 목사라는 것을 알리려고 하지 않았는데!

약사님은 어떻게 나에게서 목사의 냄새가 난다고 하는 것일까? 고전 10장 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신 말씀처럼 구원 받은 사람으로서 입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의 삶을 통하여 주님의 이름이 증거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빛 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