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도는 두 번하지 않습니다!

지난 6월 25일 오전 카타리나 섬으로 회사 직원들과 함께 낚시하러 갔다가 강한 파도에 휩쓸려 타고 있던 작은 배가 뒤집어져 함께 타고 있던 7명중 현장에서 3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사망자 중에는 필자와 오랫동안 교제를 이어온 고 박영준 집사님(사장)이 있었습니다.

고인의 94세 되시는 어머니 권사님이 우리 교회 교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자녀 중 어머니를 특별히 사랑하시는 큰 아들은 어머니를 모시고 한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러한 관계로 고인의 가족과 인연을 맺어오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교회에 특별 행사가 있을 때에는 교회 행사에 참석한 적도 몇 번 있었습니다.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에는 카톡으로 “가까운 시일에 가족을 데리고 어머니 교회에 한번 가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았습니다. 20여 년 동안 교제를 이어오면서 약속을 중히 여기시는 분으로 한 번도 실없는 말을 한 적이 없으셨기에 예배로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배가 장례식장에서 고인을 하나님께로 보내는 교회묘지에서의 고별 예배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고인의 사고 소식을 들은 것은 사고 다음 날인 주일 오전 8시였습니다. 교회에 한 번도 빠진 일이 없으신 어머니 권사님이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예배에 참석치 못하셨습니다. 그 날 오후 5시에 무거운 마음으로 권사님 댁을 방문했습니다.

어머니 권사님과 며느리 권사님을 어떻게 무슨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권사님 댁을 향하는 내내 답답하고 가슴 아픔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필자를 맞이하기 위하여 누워있던 어머니 권사님이 방에서 나오시는데 그 얼굴이 이전에 보지 못하던 얼굴이었습니다. 몸은 가누기 힘든 정도로 가까스로 서 계셨습니다.

그런 권사님을 부둥켜안고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권사님의 집에는 사고 소식을 듣고 고인의 친지와 유족들이 많이 와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며느리 권사님의 곡소리가 모인 모두를 슬프게 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렇게 슬픈 여인의 울음소리는 처음 들어보았습니다.

컥컥하는 숨이 넘어가는 듯 하는 고통 소리와 함께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며느리 권사님의 울음소리는 한 동안 그치지 않았습니다. 고인이 섬기던 교회의 교인들도 와 있기에 기도하자는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어머니 권사님에게 인사를 하고 나오려 하자 며느리 권사님이 필자에게 다가와 남편의 마지막 가는 고별예배에 축도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장례식은 금요일 오후 Rose Hills Memorial Park의 Sky Chapel에서 거행되었습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고서 수많은 조객들과 많은 조화들을 보면서 고인의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착석한 장례식 중 그렇게 많은 조화는 처음이었습니다. 고별예배의 집례는 고인이 출석하던 교회의 담임목사님이 하셨습니다. 예배의 모든 순서가 끝나고 마지막 찬송을 하는 시간입니다. 찬송이 끝나면 필자가 축도를 하므로 예배를 마치게 됩니다. 찬송이 거의 끝나갈 무렵 필자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축도를 하기 위하여 강단 앞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강단 앞에는 집례좌와 둘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찬송이 끝나면 곧 바로 축도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집례하시는 목사님과 찬송을 하면서 서로 목례도 나누었습니다. 집례하시는 목사님은 매 순서마다 맡으신 분들을 소개하면서 순서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찬송이 끝나면 PK교회 000목사님이 축도하시겠습니다”라는 소개를 할 줄 알았는데 말이 없는 겁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집례하시는 목사님이 축도를 하고 계신 겁니다. 축도를 마치고 나서야 집례하신 목사님이 실수한 것을 아시고 제게 말하시길 죄송합니다라고 하시면서 강단을 빗겨서시며 000목사님이 축도하시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이어지는 경건하고 위로 받는 예배를 마무리 하는 순간에 강단에 선 저는 잠시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집례 자가 축도를 해 버렸는데 내가 다시 축도를 한다면 앞에 한 축도는 무엇이고 내가 하는 축도는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인데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축도를 다시 하길 기다리는 모든 조객들 앞에서 이런 말로 예배를 마무리 했던 것입니다.

“고별예배는 마쳤습니다. 축도는 두 번하지 않습니다. 금요일 오후 시간에 원근각처에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셔서 유가족을 위로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031

“이런 인사가 어디에 있습니까?”

10여 년 전부터 담당 의사로부터 건강에 대한 경고를 들어왔기에 그 때부터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유산소 운동을 통하여 땀 흘리는 운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필자가 하는 운동은 테니스장에서 족구를 하는 것입니다. 낮에는 남가주의 태양 빛이 너무 강렬하기 때문에 밤 8시부터 2시간 여 동안 일주일에 두 세 차례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속해 있는 족구 동호인으로 참여하고 있는 분들은 10여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교회 교인들로 시작한 것이 발전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 년에 전부터 젊은 목사님들이 단체로 우리 모임에 참여하고 있으십니다. 운동을 위해서 모였다가도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기가 바쁘기 때문에 서로 통 성명을 할 기회도 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어느 분이 목사님이라는 것만 알 정도로 만나면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지난 2월 7일 일요일 밤 8시 모임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 시간이면 10명의 회원들이 모이는데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을 해서 의자에서 앉자 있을 때였습니다.

그 때 목사님 그룹의 회원들이 구장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 중 한 젊은 목사님이 제가 앉아 있는 긴 의자 앞으로 다가오더니 “목사님께 세배 드리겠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말할 때가지만 해도 다음 날이 구정이기에 말로서 구정 인사를 하는 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말로만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시멘트 운동장에 낮은 자세를 취하고 엎드려서 큰절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뜻밖이고 예상치 못한 일이라 놀라서 저도 엉겁결에 땅 바닥에 엎드려서 맞절을 하고서 “이런 인사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런 공개된 그리고 운동장에서 어떻게 엎드리어 절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적어도 세배를 주고받을 정도이면 당사자 간에 충분한 교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서로가 잘 아는 사이가 아니면 세배를 주고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모두가 보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같은 목사님으로서 다른 목사에게 세배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목사이지만 나도 다른 선배 목사님에게 세배를 드려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함께 시멘트 바닥에 엎드려서 손을 맞잡고 서로의 힘을 의지하여 일어섰습니다. 이를 지켜본 주변의 목사님들은 박수를 쳤지만 지금도 왜 내가 그런 세배를 받아야 했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 목사님의 이름도 모르고 섬기시는 교회 이름도 모릅니다. 다만 그 목사님에게 무안한 존경을 보내면서 그 목사님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무슨 연유로 세배를 하게 되었는지? 나 말고도 함께 하시는 동료 목사님들 중에 나이 드신 목사님도 계셨는데 왜 그 분에게는 그런 세배를 드리지 아니하고 유독 나에게만 세배를 한 것인지? 나에 대해서 무엇을 어디에서 어떻게 들으셨기에 세배를 하게 되었는지? 한번은 만나서 함께 식사를 대접하며 꼭 물어보고 싶습니다. 세배를 받고나서도 여운이 가시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분명하게 생각이 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보통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그 목사님이 나보다 훌륭하신 목사님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배를 받은 나보다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낮은 자세로 세배하신 목사님의 인품이 한없이 높아 보였던 것입니다. 나도 하지 못하는 그런 일을 하신 겁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목사님에게 받은 세배는 이번이 두 번째 이었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서 부 교역자로 10여간 크게 수고 하셨던 P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20여 년 전에 이곳을 떠나 부모님이 계신 뉴욕으로 이주 하시어 그곳에서 교회를 개척하시다가 다시 LA 오셨습니다.

이곳으로 오셨다는 말을 전해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당시 월요일마다 7명의 목사님들이 기도회를 정기적으로 마치고 나면 타운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그 때 식당에서 7명의 목사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데 뉴욕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 P 목사님이 식당 안으로 들어오시다가 제가 있는 것을 본 것입니다.

P 목사님은 식당 안에 들어서자마자 그 자리에서 제가 앉은 식탁을 향하여 큰 절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놀라서 자리에서 급하게 일어나 목사님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고 그 때 한 말은 “이런 인사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 때도 P 목사님이 예사로운 목사님이 아니시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003

어느 노 장로님의 가슴 아픈 사연

같은 교회를 섬기지는 않지만 십여 년 동안 필자와 함께 어느 기독교 단체를 섬겨오면서 꾸준하게 교제를 이어가고 있는 장로님이 계십니다. 특별히 필자가 교제를 나누는 기독인 중 귀하게 여기고 몇 안 되는 존경하는 장로님 중 한분이십니다. 이민을 오기 전 한국에서는 교육계에 평생을 몸담아 오셨습니다.

그런데 년 초부터 매주 월요일에 모임을 갖는 정기모임에 참석을 하지 못하시는 겁니다. 지금까지 10여 년 동안 변함없이 그 시간 그 장소에 늘 계셨던 장로님과 권사님이셨습니다. 우리의 모임이 계속된 어려움에서도 지금까지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장로님과 권사님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간간히 모임에 나타나기도 하셨습니다만 지난 2-3개월 전부터는 전혀 참석치 못하고 계십니다. 이유는 부인 권사님의 병 때문이었습니다. 권사님은 치매를 앓고 계십니다. 처음에는 심하지 아니했으나 시간이 가면서 급격하게 발전하여 지금은 가족도 남편도 알아보지를 못하시는 겁니다.

부인의 예기치 못한 질병으로 행복하던 가정의 평안이 한 순간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예기치 못한 충격적인 일로 장로님의 여유롭던 삶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평생 동안 부인의 사랑을 받아오시던 장로님이 이제는 부인을 아기처럼 돌보며 어머니의 심정으로 섬겨야만 하시는 겁니다.

더욱 기막힌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갈수록 더 깊은 수렁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습니다. 매일 매 순간 반복되는 고통과 아픔에서 피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권사님이 앓고 있는 치매가 환자 본인만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모두를 힘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자녀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만 그러나 그것은 잠시일 뿐입니다. 부인 권사님을 위해서 마음 뿐 아니라 온 몸으로 희생을 해야 하는 것이 장로님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식사를 준비하는 일, 집안의 청소, 몸을 닦고 머리를 손질하는 것까지도, 심지어 부인이 입는 옷 양발까지도 장로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밖으로 나갈 때는 잠시도 홀로 둘 수가 없습니다. 방향감각을 잃어 가던 길을 돌아올 수가 없습니다. 그 일로 장로님의 삶은 없어졌습니다. 그 좋아하시던 골프장에도 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수일 전 만난 장로님은 필자에게 여러 가지 많은 일 가운데서 가장 힘들고 아프게 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아픔을 호소하고 계셨습니다.

목사님! 어쩌면 좋습니까? 이제는 날 알아보지도 못합니다. 더 기막힌 것은 수일 전부터 부인이 강력하게 반복해서 요구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남편 000장로님을 빨리 자기 앞으로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내가 평생을 살았는데 어떻게 나를 버리고 도망을 갈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당신의 남편이라고 아무리 강조해서 말을 해도 아니라는 겁니다. 당신은 내 남편이 나와 함께 살라고 보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 없이 갑자기 곁을 떠난 남편을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한번은 만나서 직접 나를 버리고 떠나간 이유를 들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무슨 말로 이해를 시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장로님이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부인의 질병으로 예기치 못한 많은 어려운 중에도 기억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픔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부탁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기도해 주시는 거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기도해 주신 것 감사하지만 더 기도 부탁을 드립니다.

돌아서시는 장로님의 뒷모습이 얼마나 힘없어 보이시며 슬퍼 보이셨는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장로님의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만나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반가운 인사를 하시며 맞아 주시던 예전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장로님을 보내는 나의 마음도 편치가 않았습니다.

왜 우리는 이런 아픔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누구보다도 교회와 주님을 사랑했으며 그토록 충성하시던 장로님 권사님이셨는데! 그러다가 주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계시록 2장10절의 말씀입니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란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우리가 사단의 공격으로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 견고케 하시기 위함이며 이를 통하여 생명의 면류관을 하나님 나라에서 받게 하심입니다. 장로님 이 말씀으로 인내하시고 승리하세요!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3960

어느 타인종의 특별한 장례식 체험기

지난 5월 21일 토요일에 어느 특별한 장례식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고인의 아버지 되는 분이 아들 장례식의 축도를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고인은 22살의 나이로 지난 5월 4일 집 근처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과속으로 달려오는 차와 충돌하여 현장에서 세상을 떠난 멕시코계 미국인 이었습니다.

고인과 가족을 아는 것은 필자가 섬기는 교회당을 함께 사용하는 스페니시 교회가 있습니다. 1993년 9월 1일부터 스페니시 교회가 우리교회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니까, 벌써 23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처음 스페니시 교회 교인들이 예배당 사용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을 했을 때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 때만해도 그런 경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결심을 갖게 된 것은 우리 교회도 교회를 개척하고 나서 예배 처소가 없어서 큰 어려움을 당하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 이었습니다. 교회를 시작했을 때 예배 처소를 구하지 못해서 다저스 야구장이 있는 엘리시안공원에서 두 달 동안 야외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K 장로님과 저는 매일같이 예배처소를 구하기 위해서 두 달 동안 발품을 팔았습니다. 그래서 구한 예배처소는 흑인교회당이었습니다. 예배처소를 구하는 것은 지금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 때도 그랬습니다. 흑인 교회당에서 예배드릴 수 있는 시간을 허락 받은 것은 주일 새벽과 그리고 낮 예배는 오후 1시 반이었습니다.

그 때가 되어야 흑인교회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기 때문이었습니다. 다행히 흑인 교회는 새벽예배나 저녁 예배가 없었기에 우리는 주일 새벽과 수요일 그리고 금요기도회와 주일 밤 예배까지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를 5년 여 동안 셋방살이 교회를 하다가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지금의 교회당을 30여 년 전에 허락 받은 것입니다.

그러한 연유로 일부의 염려와 걱정도 있었지만 스페니쉬 교회를 받아 드리기로 한 것입니다. 한 지붕아래 두 교회가 지금까지 연합하여 섬겨오고 있습니다. 감사한 것은 스페니시 교회 교인들이 교회를 너무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 건물에 이상이 발견 되면 우리가 생각하기도 전에 미리 알아서 수리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당 안의 청소와 정돈은 그 분들이 지금까지도 도맡아 해오고 있습니다. 예배 처소를 사용하는 건물이 근 90년 가까이 된 건물이기에 이곳저곳 수리해 야 할 부분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그 모든 문제 해결의 앞에는 멕시칸 교회의 교인인 Jorge Cali 가 있었습니다.

때로는 며칠 밤을 새어가면서 교회 일을 한 때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만 아니라 스페니시 교회 교인들이 자원하여 함께 일을 했습니다. 그에게는 두 아들도 있었는데 당시 고등학교에 다니는 지금은 고인이 된 아들도 아버지를 도와 교회에서 밤을 새어가며 먼지를 뒤집어쓰고 땀 흘려 일을 하곤 했습니다.

언젠가 Cali에게 이름의 뜻을 물은 적이 있습니다. California에서 태어 나 이름을 Cali로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게 된 동기는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20살 되던 해 로스앤젤레스에서 대낮 큰 길에서 길을 건너다 달려오는 차에 치어 10여 미터 밖으로 던짐을 당하여 전신마비로 수년 동안 고생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되어 믿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일이라면 온 마음과 정성으로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22살의 아들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뉴스를 통하여 사고 소식을 접하고 위로 전화를 했습니다. 그 때 아들 장례식에 축도를 해 달라고 요청을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스페니시 교회 성도들의 장례식을 참석하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우리와 다른 것은 저들의 장례식에 소요되는 시간은 3시간이었습니다. 장례식 예배가 그렇게 긴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도 장례식 집례를 많이 했지만 길어도 40분을 넘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장지로 옮겨가서 하관식을 하기 때문입니다. 저들의 장례식이 우리와 다른 것이 있습니다.

설교를 마치고 나면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 중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은 다 앞으로 나와서 고인과 유가족에게 하고 싶은 위로의 말을 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쁜 시간 속에 살아가는 우리와는 거리감을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갑작스런 사고로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서 큰 슬픔을 믿음으로 극복한 가족에게 주님의 위로가 함께 하길 기도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3916

응답 포기한 40여 년 만에 받은 기도응답

가정의 달인 지난 5 월 12일 밤에 고국으로부터 긴급한 전화를 받았다. 9 남매 중 막내인 여동생의 다급한 전화였다. 오빠! 지금 곧 둘째 형부에게 전화를 해서 기도를 해 주셔야 겠어요? 지금 곧 세상을 떠나실 것 같은데 목사님을 불러 오라고 해서 목사님을 모시고 가는 중인데 시간이 30여분이나 걸린다는 것이었다.

둘째 매형은 평생 동안 건강하게 살아오신 분이셨다. 70 중반의 나이 이심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열심히 운동을 하셨는지 강철 같은 체력을 유지하고 있어 주위 사람들에게 늘 부러움을 받는 분이셨다. 그런 분이 1 년 여 전에 말기 암 선고를 받고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계셨던 것이다.

수주 전부터는 식사도 못하시며 앉고 서는 것도 자유롭지 못할 뿐 아니라 병원에서도 치료를 포기하고 집에서 임종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수일 전 위로차 고국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 셋째 매형 장로님이 이때가 아니면 다시 전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반대 할 것을 알고서도 예수 믿고 천국에 가야 할 것을 권한 것이다.

둘째 매형님은 매사에 실수가 없는 분이셨다. 형제들 간에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늘 앞장서서 힘든 일을 도맡아 해결해 오셨던 분으로 가족을 사랑으로 돌보며 열심히 사신 분이셨다. 그러나 교회와는 담을 쌓고 살아오신 것이다. 그렇게 좋으신 분이시지만 예수를 철저하게 부정하시며 교회를 멀리하며 사셨던 것이다.

기독교에 대한 매형의 뿌리 깊은 불신앙을 알기에 가족 중 누구도 면전에서 예수를 믿으라고 권하지 못한 것이다. 필자도 지난 30여 년 동안 매형과 그 가족의 구원을 위하여 새벽에 기도 제단에 엎드릴 때마다 기도해 오다가 언제부터인가 그 기도를 중단하게 된 것은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어도 둘째 매형님은 믿을 수 없는 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처남인 필자가 목사인 것은 인정하며 고국을 방문할 때마다 늘 좋은 것으로 섬겨주길 기뻐하셨다. 6-7년 전에 형제들이 단체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둘째 매형과 누님도 동행 했었다. 그 때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석을 하셨다. 그 때 형제들은 말하길 교회당 앞까지는 와도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을 했었다.

그런데 누가 권하지 아니했음에도 예배에 참석을 한 것이었다. 그것이 세상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교회를 참석하게 된 것이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 가족들이 모인 마지막 위로 자리에서 셋째 매형이 이대로 가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말을 했을 때도 누구하나 그 말을 받으리라고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 기적인가? 웬 은혜인가? 임종 직전에 목사님을 불러 달라고 청한 것이다. 세상에 많은 기적이 있지만 정말로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곧 바로 누님께 전화를 드렸다. 매형을 바꾸라고 했더니 전화를 받을 형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전화기에 대고 큰 소리로 말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누님에게 부탁을 드렸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기도를 매형님이 따라하게 하라고 한 것이다. 기도하는 대로 따라하겠느냐고 했더니 그러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예수님! 나는 죄인입니다.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나의 영혼을 받아주세요” 길게 따라할 수 없어서 단어 하나씩을 끊어서 따라하게 했다.

예수님! 나는! 죄인입니다!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나의 영혼을! 받아 주세요! 전하는 말을 누님이 매형님을 향하여 큰 소리로 복창을 하라 할 때 작은 소리지만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앉지도 못하고 누운 상태에서 주님을 영접하는 회개 기도를 마친 후 다시 전화로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기도를 마치니 누님이 이런 말을 하셨다.

그 동안 기도해 준 것을 알았다는 것이었다. 그 기도의 응답이 오늘의 이런 역사를 이루었다고 하시면서 이제 누님도 교회에 나가시겠다고 약속을 하신 것이다. 수일 후 매형은 세상을 떠나셨다. 장성한 세 아들은 아직 교회를 받아 드릴 마음의 준비가 되지 못한 상태였기에 기독교식 장례를 강하게 반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들들이 마음을 바꾸게 된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그 토록 고통스러워하시던 평소의 모습이 아닌 지금까지 보아오지 못했던 평안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가신 것을 목격하고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기독교식 장례식을 하기로 한 것이다. 필자도 포기한 매형의 영혼을 구원해 주신 주님께 큰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3869

어느 유명 암 전문 의사의 암 투병기

로스앤젤레스의 유명한 대형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암 전문의가 있었습니다. 그 병원에서 일하는 암 전문 의사는 두 분이십니다. 한분은 한국인이시고 다른 한분은 필리핀계 미국인 의사입니다. 필자가 두 분을 아는 것은 가족이 지난 십 수 년 동안 그 병원 암 병동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분은 같은 진료실을 사용하고 계셨습니다. 두 분 다 많은 환자들로 진료실은 항상 분주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3년여 전에 환자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입니다. 필리핀계 암 전문 의사가 암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다른 의사도 아니고 암 환자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의사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로는 의학에 지식이 없는 보통 사람만 암에 걸리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반 의사도 아니고 암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치료하는 의사가 암에 걸린 것입니다. 소문이 소문으로 그치고 만 것이 아닙니다. 소문을 듣고 오래지 않아서 그 의사는 정말로 환자가 되어 더 이상 환자를 돌보지 아니하고 병원을 떠나게 되셨습니다.

필자도 그 소식을 듣고서 의사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의사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분의 병에 대해서 크게 걱정하지 아니한 것은 당연히 병을 극복하리라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간간히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고국인 필리핀을 여행 중이라는 것이며, 치료를 위해서 같은 병원, 같은 병실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 한국인 의사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고 그 힘든 키모테라피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소식이 오래 가지 않아서 환우들에게 들려졌습니다. 누구보다도 암에 대해서 잘 알뿐 아니라 치료 방법을 알고 있으며 새로 개발된 치료약을 아는 의사이기에 당연히 암과 싸워 이기고 건강한 몸으로 회복되어 이전처럼 환자들을 위해서 크게 봉사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의사가 자신의 몸을 고치지 못하고 병든 지 수년 만에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자신이 치료하던 환자들도 아직 살아서 암과 투병을 하고 있는데 정작 의사인 본인은 자기 몸 안에 있는 암과 싸워 이기지 못한 것입니다. 다른 환자들처럼 오래 투병 생활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들으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인간은 연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식이 우리의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부르시면 병든 자만 가는 것이 아니라 의사도 가야하고 건강한 사람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주님의 부르심을 거역하거나 피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길 다른 사람은 다 죽어도 정작 본인은 죽지 않을 것처럼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호흡하며 살고 있는 것이 나의 수고나 노력의 댓가가 아닙니다.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요 축복인 것입니다. 이러한 생명의 법칙을 아는 사도바울은 로마서 14장 7-8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오늘도 우리가 사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주님이 주신 은혜로 주님의 영광을 들어내기 위해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는 것 뿐 아니라 죽음도 나의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이 죽음으로 향하여 달려가고 있지만 이것도 우리가 원하거나 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섭리하시고 주장하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죽음을 예비해야 합니까? 요한계시록 14장 13절에 기록된 말씀처럼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도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더라 하시더라” 죽음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복된 죽음이 있는가하면 저주의 죽음이 있습니다. 예수 안의 죽음은 구원 받는 복된 죽임이지만 예수 없는 죽음은 영원한 저주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3834

강단에서 신발을 벗고 설교하는 이유

얼마 전 교회에서 함께 사역하시는 P 목사님이 오후 예배시 강단에서 필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설교하실 때 왜 신발을 벗으시고 설교하시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누구도 그런 질문을 내게 한 적이 없었습니다. 질문을 받고 생각해 보니 설교할 때 신발을 벗고 설교한지가 햇수로는 25-26년 이상 되었습니다.

필자가 설교시 신발을 벗은 것을 장로님들과 동역자만이 아는 것은 설교하기 위하여 강단에 설 때 교인들은 나의 발을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낮 예배는 위 강단에서 설교를 하고 오후 예배나, 수요예배, 그리고 금요 기도회 때에는 아래 강단에서 설교를 하는데 교인들과 거리가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나무로 만들어진 강단이 앞을 가려 나의 발을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질문을 받고서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배 때 마다 신발을 벗고 설교하는 것에 대하여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신발을 벗고 설교를 시작한 것은 1989년 성지를 여행하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이집트에서 시작하여 출애굽 여정을 따라 시내산 정상을 오르고 나서 산 아래 호렙산에 있는 모세의 우물과 그 옆에 있는 떨기나무를 방문했었습니다. 처음 성지를 방문 했을 때만해도 떨기나무 잎을 손으로 만져 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잎 10여개를 따 가지고 와 교회 앞에 공개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15년 전에 두 번째 성지를 방문했을 때는 그 떨기나무에 가까이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닭장을 치듯 사람의 손이 닿을 수 없도록 떨기나무에 울타리를 둘렀던 것입니다. 첫 번 여행 때 안내자는 떨기나무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 했습니다. 지구상에서 이 나무가 존재하는 곳은 그곳뿐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떨기나무만을 남겨두신 이유는 이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모세의 만남을 기념케 하시기 위함일 것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실 때에 그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모세가 어찌하여 떨기나무가 타지 아니하는가 하고 이상히 여길 때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광야 40년의 도피 생활 중 지칠 대로 지쳐 있었던 모세를 부르신 것입니다. 이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존귀하게 쓰임 받는 종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지를 여행할 때마다 받는 은혜와 감동이 너무나 많습니다. 함께 여행하는 일행 중에는 이 비싼 돈 들여서 이 고생을 하러 왔는가라고 원망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지여행은 관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확인하는 여행입니다. 주님의 사역의 현장을 방문하는 것은 정말로 감동의 연속이며 큰 은혜가 아닐 수 없는 것은 성지 여행을 통하여 기독교가 역사적인 종교임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지를 처음 다녀와서 강단에 설 때마다 광야에서 모세를 부르셨던 하나님의 음성이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 부터인가 설교할 때에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신발을 벗으라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그렇지 지금 내가 선 곳도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구별된 곳이니 나도 신발을 벗고서 설교를 하자고 생각하고서 시작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신발을 신고 설교할 때보다 마음이 편하여 지는 것입니다. 떨기나무에서 모세를 부르셨던 하나님이 연상 되면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며 하감하고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신전의식이라고 할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는 생각이 이르자 설교할 때 단어하나도 속된 말이나 천한 말을 사용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설교를 준비할 때도 이런 감동이 늘 있어왔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신발을 벗고 설교한지가 25-26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강단을 맡기신 지는 36년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동안 강단에 설 때마다 이런 나의 설교 습관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3780

평생처음 선물 받은 Chivas Regal 12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같은 지역에 사시기 때문에 만나면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는 동내 어른이 계십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인사차 선물을 주시는데 붉은색 사각형 상자 안에 담기어진 양주를 필자에게 선물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이 “목사님! 피곤하실 때에 한 잔씩 잡수세요! 피곤이 풀리실 겁니다”라고 하시면서 허리 굽혀 정중하게 인사를 하시는 겁니다.

선물을 받으면서 “나는 술을 하지 않습니다. 술을 먹지 못합니다. 한 번도 이런 것을 마셔보지 못했습니다. 아시는 대로 나는 목사입니다. 그러니 이 선물을 사양하겠습니다”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80 중반이 넘으신 동네 할머님이 필자를 생각하고서 나름대로 정성스러운 선물을 한 것이기에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주시는 대로 받아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선물을 받아 보았지만 이런 선물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선물을 받을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술과 담배를 파는 장사들이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망하지 않을뿐더러 술과 마약 그리고 도박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소유하고 번창하는 것을 보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 같은 사람들 때문에 그런 영업이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60여 생애를 살아오면서 담배와 술 그리고 도박에 사용된 돈이 1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도박을 하지 않는 이유는 믿었던 교인 중 여러 명이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가정이 파탄 나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도박을 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교회의 중직 자가 도박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도박이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인생을 처절하게 망가지게 하는 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몰락해가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만류도 해 보고 권면도 해 보고 도박의 늪에서 구해내기 위하여 저들과 싸워 보기도 했지만 모두가 소용이 없었습니다.

쇠귀에 경 읽기 이었습니다. 그렇게 좋았던 믿음도 신앙도 한 순간에 헌신짝처럼 벗어 던져 버리는 것을 보면서 얻은 결론은 이러했습니다. 세상에는 술을 안 먹는 사람보다는 먹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고 담배도 안 피우는 사람보다는 피우는 사람이 더 많으며 도박을 하는 사람도 안하는 사람보다 더 많으며 마약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면서 왜 나는 저 사람들과 다른 것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나는 술을 먹지 못하는가? 그 많은 술 선전과 거리에 늘어선 술집 광고를 보면서도 유혹을 받지 않았던 것일까? 왜 나는 도박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일까? 왜 나는 담배를 피우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제가 믿었던 교우 중에 몇 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Y 장로님, L 권사님, B 집사님, K 집사님, Y 집사님! 위의 분들은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서 한 때 참으로 귀하신 분들이었습니다.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크게 받으셨던 분들이셨습니다. 세상에서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성공하셨던 분들이었습니다. 교회의 충성된 제직이었습니다. 그런데 도박으로 받은바 은혜와 축복을 사단에게 탈취 당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많은 재산을 다 탕진했습니다. 마지막에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토록 교회를 사랑했고 충성했었던 모든 공력이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다시 교회 나타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저들의 황폐된 가정 그리고 후손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픔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떠나 세상 쾌락의 죄악에 묻혀 산 결과가 이렇게 무서운 것임을 보면서 죄의 결과는 세상에서만 아니라 우리의 구원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술과 도박 마약의 유혹에서 벗어난 것은 오직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와 축복의 결과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3747

둥지에 알을 품은 비둘기를 보셨나요?

남가주에 엘니뇨현상으로 집중 폭우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연일 뉴스를 통하여 발표되고 있기에 하루라도 빨리 지붕공사를 하기 위하여 지난 수개월 동안 업자를 수소문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유인즉 예배처소로 사용하는 건물의 전체 지붕을 새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인 공사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최근에 지붕 공사를 한 것은 10여 년 전이기에 전체적인 공사가 필요치 아니했고 다만 누수 되는 부분을 공사하길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업체에서 교회 일에 선뜻 나서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주변에서 소개 받은 25년 경력의 전문 루핑회사 사장님이 교회를 방문한 것입니다.

남가주의 루핑업계는 지금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일손이 모자랄 정도로 분주합니다. 그로인하여 우리가 원하는 때에 공사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만 금번에 공사를 하신 분은 교회 지붕 상태를 점검하고 나서 폭우를 대비해 신속하게 공사를 하기 위하여 다른 일정을 조종해 가면서 지난 12월 31일과 1월 2일에 걸쳐서 공사를 했습니다.

일을 하시면서 2015년의 마지막 날 일을 교회 일로 마무리하고 2016년의 시작을 교회일로 시작하게 되어 기쁘다고 하셨습니다. 그 인품과 말에 감동이 되어 예사로운 분 같지 않다는 생각에 혹시 교회 장로님이 아니시냐고 물었더니 집사라고 말을 하셨습니다.

지붕공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지붕 한 편 구석진 그늘에서 비둘기 둥지가 발견된 것입니다. 제비집 보다 조금 큰 것으로 나뭇가지로 엮어진 둥지였습니다. 그 안에는 평생처음 보는 백색의 아름다운 비둘기 알이 있었습니다. 어미 비둘기가 알을 품고 있다가 갑작스런 인기척에 놀라 달아난 것입니다.

일하는 인부들이 그 상황을 현장에서 함께 일하던 사장에게 보고했고 사장은 이를 확인한 후 일을 중단시키고 필자에게 다가와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오늘은 일을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비둘기가 둥지를 틀고 있기에 그 상태로 일을 진행하면 둥지에 있는 비둘기 알이 죽어버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붕 공사에 사용되는 재료가 고무로 된 재질이어서 그것을 강한 불로 열을 가한 후 덮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두 시간만 더 하면 일이 마무리 되는데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니 그런 말을 듣는 저로서는 황당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일 후부터 남가주에 큰 폭우가 온다는 예보가 있기에 하루라도 빨리 공사를 마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10여일이 지나면 비둘기가 부화하여 날아갈 것이기 때문에 2주일 후에 다시 와서 미진한 부분의 공사를 마무리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일하는 사람이 사장까지 4 명이었습니다. 한 두 시간이면 마무리 할 수 있는 일을 비둘기 알 때문에 중단하고 2주후에 다시 오면 루핑회사로서도 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장님은 그런 결정을 한 것입니다.

나는 그 결정을 보고 받고서 작은 생명 하나에게까지 세심한 관심과 사랑을 베푸는 것에 대하여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만일 일하는 분들이 둥지의 비둘기 알을 발견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것을 발견했다면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것을 발로 걷어 차 버렸거나 아니면 빗자루로 쓸어 담아 쓰레기통에 버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서 수치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그 동안 비둘기로 인한 어려움을 당해 왔었습니다. 교회당 지붕은 비둘기들의 집합장소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생겨나는 쓰레기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더운 여름철에는 열려진 교회당 2층 창문을 통하여 숨어든 비둘기로 인하여 소란을 피운 일도 몇 차례 있었습니다.

하찮은 작은 생명까지도 함부로 대하지 아니하고 깊은 배려를 베푸시는 루핑회사 사장님께 머리가 숙어지는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시간적 물질적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시는 K 사장님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3712

동일한 지역에서 사역하는 동명이인 목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모님 명복을 기도합니다. 천국에서 영면하소서! 위로의 말씀드립니다] 지난 12월 26일 토요일 이른 아침에 필자가 받은 카톡의 내용이었습니다. 카톡을 보낸 분은 평소 가깝게 지내는 선배 목사님이셨습니다. 카톡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서 이렇게 답신을 보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뜻밖의 내용을 받고서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잘못 배달된 줄 알고서 [제가 아는 어느 분이 돌아가셨나요?]라고 답신을 보내자 상대방에서 “뭐요” 하면서 놀란 문자가 뜨더니 한 참을 지나고 나서 새로운 내용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로스앤젤레스 한인 타운에서 목회하시는 동명이인 한믿음교회 이상기 목사님의 사모님이 소천 하셨다는 것을 잘못 알고 전했다고 하신 겁니다. 신문에 난 부고를 보고서 필자의 부인이 세상을 떠난 줄 알고 다급한 마음에 카톡으로 위로의 말을 보낸 것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선배 목사님 부부는 집 사람을 위해서 늘 기도해 주셨습니다.

한 달 전에는 식당으로 우리 내외를 불러내어 귀한 대접을 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부고를 통하여 소천소식을 접하고 놀라셨던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잠시 후 고등학교 선배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신문에 난 부고를 보고 전화를 하셨다고 하면서 교회이름도 다르고 돌아가신 분의 나이가 집 사람보다 10살이 아래인데 하면서 확인차 전화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이 이민 교회의 이름이 수시로 바뀌는 교회도 있기에 필자가 섬기는 평강교회의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전화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날 아침 우리 부부는 이상기 목사님 사모님의 소천 소식을 접하고서 한바탕 웃어야 했습니다. 죽는 꿈만 꾸어도 오래 산다고 하던데 꿈이 아닌 현실에서 이런 인사를 받았으니 당신은 아마도 오래 살 것 같다고 한 것입니다. 한믿음교회을 섬기는 이상기 목사님과는 교제가 없었지만 지면을 통하여 목사님과 자녀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진심으로 드립니다.

이상기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는 또 있습니다. 15-6 년 전으로 기억이 됩니다. 새로 교회를 설립하면서 한믿음교회 담임목사로 소개되신 분이 이상기 목사님이라고 언론에 집중적으로 광고가 된 것입니다. 그 일이 있고나서 사방으로부터 전화가 필자에게 빗발쳤던 것입니다. 20여 년 동안 섬기던 평강교회는 어떻게 하고 왜 또 다른 교회로 옮기였냐는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한번은 교회의 집사님 중 한분이 수년 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신문에 우리교회의 이름으로 공고를 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해주십시오!” 하면서 강하게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집사님의 청을 웃음으로 받아 넘기고 말았습니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신문에 낸 광고의 효과가 오래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의 이상기 목사님과 다른 교회의 이상기 목사님은 같은 분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주길 원했던 것은 동일한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아무리 강조해도 상대방이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동일지역에서 같은 이름의 목사님이기에 생겨나는 웃지 못 할 일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동명이인이 종종 있습니다. 이민 초창기에 나성한인교회를 설립하셨던 김의환 목사님과 같은 이름이 있었습니다. 김의환 장로님이십니다. 김의환 장로님이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셨습니다. 동명이인의 이름 때문에 생겨날 해프닝을 예방하기 위해서 김의환 목사님(장로님이셨다가 목사가 되신)은 이름을 바꾸셨습니다. 그 이름이 김사무엘 목사였습니다. 김사무엘 목사님은 지난 해 소천하시기까지 남가주목사회 회장과 남가주교회협의회 회장을 역임하셨습니다. 그러나 더 재미있는 것은 또 다른 이름의 김사무엘 목사님이 나타나신 겁니다.

우리에게 이름이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인격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듬어지고 가꾸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이름이 빛나길 원하십니다. 2016년의 아침을 맞으면서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나의 삶이되기를 다짐해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3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