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은 나의 엄마를 아시나요?”

얼마 전 고 최순일 박사의 장례식을 준비하면서 장례식 전에 고인의 아들과 두 번의 만남을 가졌었습니다. 어려서 본 후 20여 년 만에 처음 만난 것입니다. 장례 절차를 의논하던 중 고인의 외아들인 33살의 Alex가 갑자기 뜻밖의 질문을 필자에게 이렇게 했습니다. “목사님은 나의 엄마를 아시나요?”

고인을 필자가 처음 만났을 때 부인의 존재는 없었습니다. 교회에 올 때도 항상 아버지와 아들만 왔었던 것입니다. 이혼을 했는지 사별을 했는지 궁금했지만 본인들이 말하지 않는 가정 사에 대해서 아무리 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라도 부인의 존재와 아이 엄마에 대해선 물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엄마의 존재를 묻는 아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지구상에 홀로 남아 있다는 생각과 오랫동안 엄마를 그리워하며 살아온 지나온 삶이 아픔으로 그를 더 슬프게 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어머니의 존재를 몰라도 이 목사는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엄한 아버지의 불같은 성격 때문에 감히 엄마의 존재에 대해서 아버지에게 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필자는 같은 질문을 아들에게 했습니다. 너는 너의 엄마에 대해서 얼마나 기억을 하고 있느냐고 했더니 자신도 엄마에 대해서 아무런 기억이 없다는 것입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헤어져서 엄마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수일 후 장례식 날 예식을 마치고 조객들과 고인과의 작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유가족이 외아들 혼자여서 너무 쓸쓸해 보여 순서를 맡았던 목사님들이 아들 옆에 나란히 서서 조객들과 인사를 하고 있을 때 한 나이 드신 여자 분이 Alex를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며 “내가 너희 엄마 친구다. 네가 태어날 때 내가 거기 있었다”라면서 울음을 보였습니다.

그 말을 바로 곁에서 듣던 나는 귀를 의심해야 했습니다. 즉시 그 분을 옆으로 모시고 엄마의 존재를 물었습니다. Alex 엄마가 살아 있습니까?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너무 뜻밖이었습니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안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엄마를 만나게 해주어야겠습니다. 그러자 친구 분이 차분하게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Alex 엄마가 만나려 할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천륜인 엄마와 아들이 왜 만나지 못합니까? 그러면서 나의 명함을 주면서 제게 전화를 꼭 해 달라고 부탁을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로부터 이틀 후 엄마의 친구 분의 남편 되시는 분이 필자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Alex 엄마의 이름과 성씨 그리고 일하는 직장의 회사와 전화번호를 알려준 것입니다. 본인들이 Alex 엄마에게 전화를 하는 것보다는 목사인 내가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곧바로 전화를 했습니다. 고인의 사망 소식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내가 네 엄마 친구’라는 말을 듣고서 Alex가 크게 흐느껴 울었던 내용을 전하면서 아들과 만나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마음에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엄마와 아들이 만나는데 무슨 준비가 필요합니까? 이산가족도 만나는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들의 소식을 전해주면 기뻐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순간 Alex 엄마도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평생 힘들게 살아 오셨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들의 근황에 대해서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결혼은 했습니까? 직업은 무엇입니까? 사는 곳은 어디입니까?

그러면서도 아들의 전화번호를 달라는 말은 없었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속히 만나보지 않으시겠습니까? 했더니 마음이 정리가 되면 필자에게 전화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둘은 이런 약속을 했습니다. 아직은 Alex에게 엄마의 존재를 이야기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무엇 때문에 어떤 사정이 있기에 그런 것인지!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언제쯤이나 마음을 정리하고 아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인지? 그럴 날이 오기는 할 것인지?

그토록 그리워하던 엄마가 살아서 같은 지역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기뻐할 터인데 하는 생각에 오늘도 전화를 기다렸지만 벨은 울리지 않았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3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