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 속에 빠르게 다가온 코로나바이러스19

중국 우환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19가 먼 대륙 미국 땅까지 이렇게 빠른 속도로 전파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한국에서 전해오는 뉴스를 보고 들으면서도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생각하고 크게 염려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사는 우리도 코로나바이러스19에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어린이전도협회 미주지회가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계획한 제26회 후원의 밤 행사를 한인 타운 중심에 있는 Oxford Palace Hotel에서 이틀 후인 3월 14일 저녁 6시에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행사 2일을 남기고 급하게 후원의 밤 행사를 취소하기로 결정을 한 것입니다.

필자는 그 모임 예배순서에 축도를 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일 년에 한번 가지는 후원의 밤 행사를 통하여 년 중 필요한 예산을 모금하는 큰 행사였습니다. 행사를 주관하는 어린이전도협회 미주지회는 이번 후원의 밤 행사 취소로 인하여 그동안 행사를 위하여 홍보하고 준비에 사용한 예산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행사를 급하게 취소함으로 금전적으로 엄청난 부담을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행사 이틀을 앞두고 급하게 취소를 결정한 것은 그 동안 여러 번의 회의를 통하여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결론이 모아졌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각오하고 이러한 결정을 해 주신 어린이전도회 미주지회를 이끌어 가시는 모든 분들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으로 어린이전도협회를 크게 축복하시길 기도합니다.

이 소식을 접하고 나서 30분도 되지 않았는데 또 다른 소식이 필자에게 전해졌습니다. 필자가 소속한 노회의 공문이 급하게 전자 우편과 카톡으로 공지가 된 것입니다. 3월 24일에 개최되는 제93회 봄 정기노회가 Los Angeles에서 개최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타주와 다른 나라에서 사역하시는 목사님이 노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미국행 비행기 표를 오래전부터 구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캘리포니아 주 정부가 이번 코로나바이러스19인해 모임을 자제해달라는 매뉴얼에 따라서 부득이하게 노회 일정을 중단하게 된 것입니다.

필자가 목사 안수를 받은 본 노회를 40년 동안 섬겨오면서 이런 일은 처음 경험하는 것입니다. 누구도 상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모임이 취소된 것은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오래된 친구 목사님 한 분이 3월 16일 점심을 오렌지카운티에 있는 식당에서 대접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한 동안 만나지 못한 오랜 지인이기에 10여 명이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일은 한 달 전부터 계획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틀 전 카톡으로 우리와는 상의도 없이 이번 사태가 지나기까지 일방적으로 모임을 취소하시겠다고 통보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서운하지가 않았습니다. 서로를 위한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모두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하여 들려지는 소식이 우리를 계속해서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많은 사람이 염려하는 것처럼 예배가 중단되는 사태로까지 발전하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이 되고 있습니다. 이미 주변의 몇 교회에서는 온라인예배를 시작한 교회도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다행스럽게 여기는 것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하여 신천지 이단의 정체가 만 천하에 공개적으로 들어났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자생한 이단 신천지는 사실 그동안 너무 비대해져서 한국교회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그로인하여 모든 교회가 저들의 파상적 공격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저들의 세력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더 이상 많은 사람이 사단의 속임에 넘어가지 않게 된 것입니다.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391

친구의 권유로 자살직전에서 다시 사는 고난의 삶

지난 달 친구 목사님 교회 예배에 참석했다가 설교자로 초청 받은 S 목사님의 간증을 통하여 들은 내용입니다. S 목사님은 한 때 잘 나가는 엘리트 목사님이셨습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실력과 자랑스러운 학문의 배경을 소유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역을 감당하실 때에 늘 자신 감에 차 있으셨습니다.

큰 꿈을 품고 주의 종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사역의 길이 생각처럼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목회는 실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S 목사님이 절망의 늪에 빠지게 된 것은 사랑하는 아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하나 뿐인 아들에게 일어나리라곤 예상치 못했습니다.

그런데 한참 성장하던 청소년 시절에 장래가 기대되던 하나뿐인 아들이 심각한 우울증에 빠진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자신의 삶만 망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인생, 가족 모두의 삶과 특히 아버지 목사님의 목회 사역 그리고 가정을 혼돈의 구덩이에 빠지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되리라고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점점 더 깊어만 갔습니다.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지만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결국 우울증으로 인해 방탕한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수렁으로 들어가는 아들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S 목사님은 두 손을 들기 시작했습니다. 힘으로도 아니 되고 주위의 도움으로도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부르짖어 기도해도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나타나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버리셨는가? 하나님도 아들의 문제를 도우실 수가 없으신건가?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수년 동안 반복되는 아들의 심각한 문제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삶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목사로서 이런 나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고 사람들에게도 덕을 끼치지 못하게 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임한 고난은 끝이 보이지 아니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댈 언덕도 없고 내일에 대한 희망도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 아픔을 언제까지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러고도 자신이 부름 받은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생을 스스로 끝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결국 긴 어둠의 터널에서 헤어나는 길은 죽음 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힘이들면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되었을까요? 그러한 자신의 결정을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고하고 작별의 인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신앙의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 때 친구가 그에게 이렇게 권면을 했답니다.

이대로 너의 생을 끝내면 너무 억을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네가 오늘의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남들이 할 수 없는 높은 학문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 오랜 시간 어렵게 공부한 것이 너무 허무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주변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었던 너의 삶이 아깝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소중한 친구의 권면을 받고 자살직전에서 다시 살기를 결심하고 16년의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아직도 아들의 문제로 어려움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는 주님을 향하여 고난 중에도 감사의 기도를 할 수 있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끝이 없어 보이던 아들의 문제도 희망이 보이길 시작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계속적인 큰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것은 고난을 통하여 주시는 특별한 은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전에는 목사이면서도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이 부끄러워 숨기고 싶었지만 지금은 불러 주시는 교회 강단에 서서 고난을 통하여 주시는 은혜를 간증할 수 있다고 고백하셨습니다.

S 목사님! 귀한 간증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대로 모든 고난은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을 통하여 받은 은혜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시고 속한 시일에 목사님이 다시 이전 영광을 회복하시어 목회에 대성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365

여호와의 집에 심겨 늙어도 결실하며 빛이 청청한 노 권사님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시 92편 13-14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어느 노 권사님이 생각 되었습니다. 그 권사님은 105세의 김순녀 권사님이십니다. 친구 목사님의 교회를 25년 째 섬기고 계십니다.

이 분이 특별한 이유는 지난 25년 동안 친구 목사님의 교회에 출석하시면서 한 번도 주일 예배를 빠지지 아니하셨습니다. 98세 까지는 매일 새벽 기도를 하셨고, 신구약성경 전체를 필사하셨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성경을 매일 써오고 계십니다. 김순녀 권사님이 특별하신 이유가 또 있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헌금을 최고의 정성으로 바치시는 겁니다. 권사님이 매 주일 바치는 헌금은 다섯 가지입니다. 십일조와 선교헌금, 감사헌금, 주일헌금, 건축헌금입니다. 누가 강요해서 바치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원해서 감사함으로 바치시는 겁니다. 그 연세에도 불구하시고 교회 밴에 남의 도움 없이 오르고 내리십니다.

더 놀라운 것은 82세 되는 딸 권사님과 함께 지난 15년 동안 교회를 위해서 특별하게 하시는 것이 있으십니다. 빈 물병이나 빈 캔을 수거하기 위해 매일 여러 곳을 바쁘게 다니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판매한 대금으로 매월 200불을 건축헌금으로 바치고 있습니다.

빈 병이나 캔을 모아서 월 200불을 받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알 겁니다. 젊은 사람도 월 200불의 리싸이클을 모으기가 쉽지 않습니다. 수년 전에 산 새 차는 그 일로 헌차가 된지 오래입니다. 리싸이클을 하기 위해선 매일 모아오는 빈 병이나 빈 캔을 그냥 팔수가 없습니다. 그 중에는 더럽혀진 것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00세가 넘으신 어머니 권사님과 딸은 수거된 빈 병과 캔을 구별하여 손질 하는 일로 매일을 보내고 계신 겁니다.

기도와 성경 필사하는 것을 마치고 나면 남은 시간은 자기를 위하여 쉬거나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빈 병이나 캔을 모으기 위해 밖으로 나아가 냄새나는 쓰레기통을 뒤지며 미친 듯이 여러 곳을 다니길 반복해서 해오고 계십니다.

정말로 귀하고 이 시대 보기 힘든 충성스러운 종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를 지켜보고 은혜와 감동을 받은 교인들이 100세 생일부터 생신 상을 차려 드리고 있습니다. 수년 전에 친구 목사님이 한 말이 생각이 납니다. 김 권사님이 오래 사셔야 하는데 나이가 너무 많으셔서 걱정이라고 하셨습니다.

권사님이 여러모로 교회의 본이 되고 있다고 하시며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이민 교회에 한 분의 성도가 귀하고 힘이 되지만 그 중에 권사님이 바치시는 헌금이 작은 교회에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 권사님과 딸 권사님이 매월 바치는 헌금이 교회 운영에 큰 힘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도 하셨습니다. 105세 되신 권사님이 그렇게 건강하시고 아직도 정정하신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잠시도 쉬지 아니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시며 손발을 부지런히 움직이시어 앉으나 서나 주님을 생각하고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님께 드리길 힘쓰며 사시는 것을 귀하게 보시고 축복하시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105세 권사님의 건강이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그 연세의 어르신들이 병원신세를 지거나 거동이 불편하여 제한된 공간에서 자신의 기억을 잃어가며 부르심의 날 만을 기다리고 살아가는데 반하여 105세 김순녀 권사님은 오늘도 찬송하고 기도하시며 성경을 필사하시므로 정신 건강만 아니라 마음의 건강 육체의 건강 영혼의 건강을 풍성하게 누리고 계신 겁니다.

김순녀 권사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삶의 방향과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람마다 건강하길 원하지만 나의 건강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여호와의 집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는 복을 위해 살겠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341

오늘도 성전 수리하시는 목사님이 부럽습니다!

친구 목사님이 보내온 카톡의 내용입니다. 4주 째 교회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있는 것을 아는 친구 목사가 공사 현장을 감독하기 위해서 애쓰는 필자를 위로하는 뜻에서 보내온 카톡의 내용 중 말미에 “목사님이 부럽습니다”라는 말이 뇌리에 반복해서 울림이 되어 하루 동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친구 목사님도 이미 많은 복을 받으셨습니다. 특별히 가정의 복을 받으셨습니다. 시 128편에 기록된 말씀처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가정의 복을 받으셨습니다. 자손의 복을 받으셨습니다. 교회의 복도 받으셨습니다. 36년 째 개척하신 이민교회를 섬겨오고 계십니다.

어떤 면에서 나보다 더 많은 복을 받으시어 도리어 친구 목사님을 부러워해야 할 정도인데 그 말을 받고서 받은 복을 세어보게 되었습니다. 친구 목사님이 부럽다고 하신 것은 목회자로서 교회를 섬기는 동안 주님이 허락하신 성전을 수리하는 것이 부럽다는 말이었습니다. 친구목사님이 섬기시는 교회도 공사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1년 여 전부터 지붕공사를 위해서 건축헌금을 모으고 있습니다.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지붕공사를 마쳐야 하는데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왜 나는 나를 알지 못했을까요? 나를 가까이서 잘 아는 목사님도 부러워하는 복을 받았다고 하시는데 왜 나는 그것을 감사하지 못했을까요?

나의 나 됨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가 아니었습니까? 하나님을 모르던 때에 친히 나의 곁으로 찾아 주시어 구원의 주되심을 믿게 하시고 나의 지나 온 삶을 전적으로 디자인 하셔서 내가 꿈꾸지도 상상하지도 못한 축복과 영광의 길로 이끄시어 오늘의 이 자리까지 오게 하신 것이 주님의 인도하심이셨습니다.

20살 전에 죽을 수밖에 없는 어려운 병에서 회복 시켜 주신 건만도 감사할 일인데 육체의 구원만 아니라 영혼의 구원을 허락하셨습니다. 이에 더하여 주님의 일하는 일군으로 불러주시고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주님의 몸 되신 교회를 맡겨주셨습니다. 주위를 살펴보니 주변에 많은 실력 있는 사명자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랑할 것 없는 너무나 부족하고 우둔하며 미련하여 미말에 처한 종에게 감당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으로 축복하셔서 지난 40년 동안 한 교회를 섬기도록 허락하실 뿐 아니라 페이먼트 없는 교회 건물을 10개월 전에 선물로 주시고 지금은 아름답게 성전을 수리할 수 있도록 좋은 일군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나 됨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지금 내가 누리는 모든 복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내가 잘나서 나의 수고로 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으로 말미암았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크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금년보다 내년이 더 크게 하실 겁니다.

세상에서 잠시 누리는 것보다 다음 세상에서 누릴 은혜와 축복이 넘쳐날 것을 믿습니다. 특별히 받은 복 중 진심으로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게 하셨습니다. 성경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게 하셨습니다. 주님에 대한 모든 것을 의심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세상에 육체의 몸을 가지고 동정녀의 몸으로 오신 것을 믿어지게 하셨습니다. 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주님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으심을 믿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승천과 재림을 믿게 하셨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믿어지게 하셨습니다.

내가 받은 복 중에 가장 귀한 것은 물질의 복이 아닙니다. 믿음의 복입니다. 금보다 귀한 이 믿음을 주신 주님을 영원토록 찬양하며 세세토록 감사할 것입니다. 땅 위에서 나의 호흡이 다하는 날 까지 주님이 가신 길을 감사하며 따라 가겠습니다. 아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2020년 2 월 1 일 토요일 새벽에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335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편 1 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깊이 새길 수 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노회 안에 샘물교회를 21년 전에 개척하여 시무하고 계시는 K 목사님이 1년 전에 간암 진단을 받으시고 치료 중 병원으로부터 간 이식을 받아야 한다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충격은 K 목사님과 가족만이 아닙니다. 평소 목사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던 주변의 사람들도 놀라게 했습니다. 간을 이식해야 한다는 것은 치료가 되지 않는 상태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약이나 다른 방법으로는 더 이상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날로부터 필자도 기도해 오고 있습니다.

한번은 나의 간 담당 의사에게 상담을 해 보았습니다. 친구 목사님이 간 이식을 하라는데 어느 정도로 가능한 일이며 얼마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묻는 질문에 대하여 이렇게 답을 주셨습니다. 환자의 상태마다 다르기 때문에 직접 진단하고 확인해 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제게 묻기를 환자의 보험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좋은 보험이냐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재정적인 상태는 어떤가에 대해서도 질문 하셨습니다. 이유인 즉 캘리포니아에선 간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의 수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정적인 뒷받침이 되고 좋은 보험을 가지고 있다면 플로리다 주로 가서 치료 받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K 목사님의 간 이식 수술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고 생각 했는데, 2 월 12일 USC MEDICAL SCHOOL에서 수술 일자가 잡혔다는 것입니다. K 목사님이 간 이식 수술을 할 수 있는 것은 한국에 있는 3살 아래 남동생이 형을 위해서 간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2월 2일 수술을 위해 미국에 도착한 동생 장로부부를 2월 3일 한인 타운의 식당으로 형 목사님 부부와 함께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형제라도 자신의 신체 일부를 떼어내어 죽어가는 형을 살린다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그런 위대한 결정을 해준 동생 부부를 만나고 싶어서 였습니다.

식당에서 만나기 전 당일 이른 아침에 수술을 담당하는 의사와 만나서 상담을 받았습니다. 간 이식을 위하여 소요되는 시간은 최소 12시간에서 14시간 이라고 했습니다. 수술에 동원되는 마취의사만 해도 3분이 교대로 투입이 될 정도로 말 그대로 대 수술입니다. 수술에 투입되는 전문의도 여섯 분이나 됩니다.

K 목사님의 간 이식을 준비하기 위해서 여섯 분의 의사들이 수술 일자를 조정하는 데만 6개월이 걸려야 했습니다. 수술이 얼마나 어려운 수술이면 간을 제공하는 동생에게 병원 실무자가 형을 위해서 간을 제공하므로 인해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하여 동의한다는 싸인을 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죽기를 각오할 정도로 형을 위해서 자기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형제들이 다 이런 결정을 하지 못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질로는 얼마든지 도울 수 있다지만 자기 생명을 끊어서 형제에게 준다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촌각에 달려 있는 형 목사님을 위해서 한국의 직장에 2달 동안 장기 휴가를 내고 달려온 동생 장로님 부부가 그래서 더욱 존경스러워 보이는 것입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누가 보실 때에 이 형제들의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답다는 말일까요? 주님이 보시기에 선하고 아름답다는 말이며 우리가 보기에 선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 두 형제들을 축복하시길 원합니다. 이식 받으시는 목사님이나 자신의 간을 형에게 제공하는 동생 모두가 속히 병상에서 일어나 일상으로 돌아와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 영광을 돌리게 하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318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일꾼들을 보면서 생각하는 것

필자가 섬기는 교회가 리모델링을 위해서 3주 전부터 4명의 인부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공사가 진행 되는 동안 필자도 공사 현장을 지키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교회에 일하기 위하여 출근하는 시간에 맞추어 교회 나오고 저들이 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 교회에 남아 있다가 집으로 갑니다.

매일 반복되는 작업 현장을 지켜보면서 건축 일에 종사하는 분들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들은 오전 8시에 일하기 위해서 10분에서 20분 전에 교회에 도착을 합니다. 8시에 일을 시작하면 잠시도 쉬지 아니하고 점심때까지 열심히 일을 합니다. 식사 시간은 20분을 넘기지 않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누가 말하기도 전에 스스로 알아서 자기 할 일을 합니다. 그렇게 시작되는 일은 오후 4시 10분전까지 계속됩니다. 8시에 시작해서 오후 4시에 마치게 되는 겁니다. 지난 3주일 동안 이 같은 원칙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서 왜 건축업자가 이 사람들을 고용했는지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맡은 일에 대하여 철저한 시간과 책임을 완수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누가 보던지 아니 보던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아니하고 자신들에게 맡겨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여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작은 감동을 받습니다. 저들이 하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쉼 없이 반복해서 손과 발을 움직여야만 하는 말 그대로 노동이기 때문입니다. 건강하지 아니하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일하는 사람이 좋은 직장이나, 상사를 만나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업을 경영하는 사람도 좋은 일군을 만나는 것도 축복입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일군이고 어떤 주인이 좋은 주인입니까? 좋은 주인은 일하는 일군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주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일에 필요한 물자를 필요한 때에 제공해야 합니다. 좋은 일군은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터를 제공해 주어도 맡은 자가 충성하지 아니하면 주인이 만족해 할 수 없습니다. 열심히 일하지 아니하는 일군을 좋아할 주인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 공사를 맡은 건축업자와 일군들은 서로를 신뢰하며 좋은 관계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곁에서 이 둘의 관계를 지켜보면서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일하는 사람에게 좋은 주인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를 안전하고 좋은 곳으로 인도하시는 사랑의 주님에게 나의 모습, 우리의 모습이 어떻게 비쳐지고 있을까에 대하여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일을 하는 업자와 일군들이 자신들의 삶을 통하여 필자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는 것처럼 우리도 맡은 일에 기쁨으로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지,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며 소금과 빛으로 그리스도의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는 삶을 살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은 멀리 가서 큰 일 하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 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지만 작은 일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마 25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탈란트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니라” 누가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하셨습니까? 주님이 맡기신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착한 종이 되길 원하십니다.

어떤 종이 착한 종입니까? 주님이 맡기신 작은 일에 충성하는 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마다 큰일 하길 원하지만 작은 일로 인정받지 못하면 큰일을 맡을 수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 부름 받은 종으로서 맡은 일에 충성하여 착한 종으로 인정받아 주인의 즐거움에 동참하는 주인공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304

교회 화장실 청소를 수십 년 째 하시는 담임 목사님

친구 목사님 가운데 한 교회를 36년 째 개척해서 지금까지 섬기고 계신 P 목사님이 동일한 지역에 함께 살아가고 계십니다. 종종 만나서 목회 정보도 나누고 교회를 섬기면서 당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함께 의논하는 목사님이십니다. 목사님과 친구로 지내기는 벌써 40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동갑내기 목사입니다. 오랜 시간 교제해 온 친구이기에 서로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우리가 어느 정도로 친한 사이인가 하면 둘 중 먼저 주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면 남은 사람이 먼저 가는 친구의 장례식을 책임지기로 약속을 한 사이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운동을 마치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놀라운 사실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친구 목사님이 섬기시는 교회의 화장실 청소를 지금까지 전담해 오고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P 목사님이 섬기시는 교회의 화장실은 3개입니다. 필자도 여러 번 P 목사님의 교회를 방문했지만 그럴 때마다 교회 화장실이 마치 호텔 화장실처럼 깨끗하다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경험한 교회 화장실중 가장 청결하고 아름다운 화장실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교인들의 작품인줄 알았지 담임목사님이 손수 하시는 줄 몰랐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교회 안에는 사역하시는 목사님이 2-3분이나 계셨고, 전도사님을 비롯해 믿음 좋은 권사님들이 많기로 소문난 교회였기에 담임 목사님이 화장실 청소를 수십 년째 해 오셨다는 것을 생각지 못한 것입니다. 교인들이 다른 청소는 다 하면서도 화장실 청소를 하지 아니한 것은 언제나 깨끗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곳은 청소를 하면서도 화장실은 청소를 할 필요가 없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교인들이 수십 년 동안 담임목사님이 화장실 청소를 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은 그런 내용을 한 번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P 목사님은 자신의 집 화장실은 교회 화장실처럼 정성 들여서 청소를 하지 못하신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교회 화장실은 최고의 정성으로 봉사하신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친구 목사님을 다시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 그 고백을 듣지 않았으면 알 수 없었던 아름다운 비밀이었습니다. P 목사님이 그 말을 하시게 된 이유는 필자의 교회 권사님 중 지금은 소천 하셨지만 90이 넘으시기까지 30년 가까이 교회 화장실 청소를 해 오신 권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말이었습니다.

30년 동안 우리 교회 화장실 청소를 전담해 오신 S 권사님은 주님의 나라에 가시기 전 병원에서 여러 달 입원해 계시는 동안을 제외하곤 죽도록 그 일에 충성하셨습니다. 교회 여러 가지 많은 봉사 중 가장 어려운 것을 말하려면 화장실 청소 일 것입니다. 말년에는 허리가 아프시어 고통을 당하실 때도 중단하지 않으셨습니다.

서울 종로에 있는 종교감리교회를 담임하셨던 목사님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교회 안에서 살아 오셨습니다. 그 옛날 대학 시절에 소프트볼 선수 생활을 하셨던 권사님은 그 인연으로 야구를 평생토록 좋아 하셨습니다. 권사님은 한 번도 남의 험담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미소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수십 년 동안 화장실 청소를 해 오시면서 청소에 사용되는 도구와 재료들을 교회에 청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여자 화장실만 청소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 화장실까지 하셨습니다. 화장실 청소를 위해서 언제나 일찍 교회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교회 내 남자 화장실을 출입하시는 권사님이란 Nick Name을 가지셨습니다.

나의 자랑 “남자 화장실을 출입하시는 권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신 친구 P 목사님은 그 자리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나도 우리 교회 화장실 청소를 하는데요”라고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친구 목회자지만 그 말을 들으면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너무 귀한 동역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상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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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째 이어지는 성탄에 드리는 어느 특별헌금

30여 년 가까이 매년 성탄이 되면 500불의 헌금을 우편으로 보내오시는 분이 계십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수표에는 이름과 주소 그리고 전화번호가 인쇄되어 있는 데 그 분의 수표에는 이름은 있지만 주소와 전화번화가 없습니다. 그래서 헌금을 받아도 보낸 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분이 필자가 섬기는 교회와 인연을 맺은 것은 어머니 권사님 때문입니다. 그 분의 어머니는 우리 교회를 통하여 세례를 받으시고 집사와 권사 임직을 받으셨습니다. 그 분이 특별한 것은 어머니 생전에는 교회를 출석하셨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한 번도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출석을 하실 때에도 교인들과 교제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필자하고도 악수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축도를 마치면 곧 바로 누구와도 인사하지 아니하고 속히 교회당을 떠나시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그 분이 어머니와 함께 앉으시는 자리는 늘 같은 자리로 맨 뒤 자석이었습니다.

교회에 출석을 하지 않으면서도 매년 성탄이면 헌금을 보내오셨는데 필자가 섬기던 교회가 33 년 동안 사용하던 건물을 매각하고 8 개월 전에 새 장소로 이사를 하고 나서 교회가 이사한 사실을 알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성탄이 되어도 그 분의 헌금을 받지 못하리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수일 전 새로 이전한 교회 주소로 헌금을 보내온 것입니다. 이 분이 특별한 것은 40여 년 전 부자들이 사는 베벌리힐스에 저택을 구입하셨습니다. 당시에 들려지는 소문으로는 비벌리힐스에 한인이 거주하는 집이 한두 채 밖에 없을 때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 권사님에게 아들 집을 구경 시켜 달라고 몇 번 부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분의 집을 가보지 못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자랑하고 싶어서라도 이웃을 초청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그 분이 타고 다니는 차는 오래된 고물 자동차입니다. 한 번도 새 차나 명품차를 타시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만날 때마다 늘 같은 옷을 입고 다니십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장례식 때만 넥타이 맨 것을 보았지 그 외에는 수십 년 동안 양복 입은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15-6년 전에 우연히 맥도널드 식당을 방문했다가 그곳에서 홀로 조촐한 아침 식사하는 것을 목격하고서 함께 자리 했었습니다. 그 때 그 분에게 평소 긍굼해 하던 것을 용기 내어 물어보았습니다.

사장님은 사업에 크게 성공하시어 큰 부자로 알고 있는데 어찌하여 늘 허름한 옷에 헌차만 타고 다니십니까? 그 물음에 그 분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을 하시었습니다. “목사님! 저에게 이 옷과 똑 같은 옷이 10벌 있습니다. 늘 같은 옷을 입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일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기인과 같은 그 분의 행동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부자이지만 부자가 아닌 것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보이게 하려고 변장을 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사업상 항상 몸에 큰돈을 지니고 다니셔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주변에는 비록 소유한 것이 넉넉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을 과시하기 위하여 명품으로 치장을 하며 분에 넘치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정 반대의 삶을 살고 계시는 겁니다. 모든 사람이 소망하는 부와 성공을 이루었음에도 그것을 과시하거나 자랑하지 아니하고 조용하게 살아가시는 모습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2019년 성탄을 보내면서 그 분의 섬김과 삶을 생각하면서 큰 부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노력의 결과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교회 출석을 하지 않으면서도 그 은혜를 잊지 아니하고 수십 년 째 성탄 헌금으로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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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와 기쁨이 된 어느 특별한 식사 초대

지난 12월 11일 필자가 소속해 있는 노회 서기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동일한 지역에서 사역하고 있는 어느 교회가 노회원들을 점심식사 자리에 초대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일주일 동안 그 모임에 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에 대해여 생각을 거듭하다가 초대에 응하기로 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반복해서 하게 된 것은 연말을 앞두고 바쁜 시간에 밥 한 끼 먹기 위해 모임을 가지는 것이 부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초대 받은 노회원 가운데는 3시간을 운전을 해서 참석하신 분도 계셨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특별한 모임을 통하여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큰 위로와 기쁨의 선물을 크게 받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모임에 참석한 회원은 부부 동반해 40여 명이나 되었습니다. 필자가 충격을 받은 것은 우리를 위하여 너무 큰 잔치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의 정성과 사랑으로 우리를 초청하리라고 생각지 못했습니다. 음식은 어느 소문난 식당에서도 맛 볼 수 없는 진귀한 것으로 다양하게 준비해 주셨습니다. 최고의 사랑과 정성으로 우리를 섬겨주셨습니다.

식사하는 동안에는 식탁 앞에서 최고의 기량을 지니신 성악가와 악기 연주자들이 은혜로운 곡을 연속적으로 공연해 주시어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감동을 받게 하였습니다. 마치 왕의 식탁에 초대 받은 느낌이 이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습니다. 더욱이 감동이 되었던 것은 우리를 초청한 교회를 담임하시는 C 목사님이 우리와 함께 식탁에 앉지 아니하시고 봉사하시는 장로님들과 교우님들과 함께 음식을 나르시고 커피를 공급하시며 우리가 식사를 마치기까지 서서 수고하심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몇 번이고 함께 식탁에 앉으실 것을 권했지만 끝까지 사양하셨습니다. 감동은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여러 가지 많은 종류의 선물 보따리를 정성으로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 중 감동을 더한 것은 담임 목사님이 손 글씨로 예쁘게 써 내려간 감사의 인사 카드는 너무 멋있었습니다. 우리는 초청하는 교회와 목사님에게 아무것도 드리지 못하고 준비하지 못해서 너무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 놀란 것은 카드 속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연말에 목사님의 가족이 즐거운 식사를 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과 함께 300불의 현찰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필자도 이런 섬김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수십 명에게 그런 사랑의 선물을 베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교회가 예산이 넉넉하기 때문에 잔치를 베푼 것 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담임 목사님의 희생과 섬김의 결단이 아니면 그런 아름다운 잔치를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잔치에 참석해서 곁에 자리하신 선배 목사님께 그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노회에 40년 동안 몸담아 있는 동안 이런 모임과 잔치는 처음입니다 살다보니 이런 모임도 만나게 되는군요”

그렇습니다. 성탄은 예수님을 본 받아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는 절기입니다. 작은 희생은 상대방에게 작은 기쁨을 주지만 우리의 큰 희생과 사랑은 이웃에게 큰 기쁨과 위로를 받게 합니다.

주님의 나심과 십자가에 죽으심이 온 인류에게 희망과 구원의 기쁨이 되었듯이 우리도 이웃을 위하여 섬김과 희생을 통하여 맛을 내는 소금이 되는 성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C 목사님!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섬기시는 교회에 큰 부흥으로 이전보다 더 크게 주의 영광을 들어내는 교회되시길 축복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241

설교자를 위하여 강단에 물을 바치셨던 K 권사님을 생각하며…

지난 달 심한 독감으로 두서너 주간 고생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렇게 심한 감기로 어려움 당해보기는 처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변 어르신들의 말씀이 나이가 더해 갈수록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하시던 말씀이 기억이 됩니다. 언제나 건강이 나와 함께 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병원 의사의 처방으로도 쉽게 낮지 않아 항생제 처방을 세 번이나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도 기침이 멈추지 아니하자 폐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되어 폐 X-Ray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다행히 폐에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설교하기 위하여 강단에 설 때마다 그리워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35년 동안 설교자를 위하여 강단에 정성으로 준비해 차를 올리시던 권사님의 사랑과 섬김의 손길입니다. 물론 지금도 설교시마다 강단에 설교자를 위한 찻잔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물과 K 권사님이 올리시던 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의 물은 늘 같은 찻잔에 같은 종류의 물입니다.

그러나 K 권사님이 바치시던 물은 잔부터가 다릅니다. 매 주일 같은 잔이 올라오는 법이 없습니다. 강단에 올리는 차의 내용에 따라 찻잔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름에는 시원한 얼음덩어리가 찻잔 속에 함께 올라옵니다. 겨울에는 뚜껑이 있는 찻잔이 올라와 설교하는 동안 따뜻한 차 안의 온기가 식지 않게 합니다.

K 권사님이 강대상에 올리시던 물이 지난 달 더욱 그립게 느껴지는 것은 권사님이 바치시는 물은 그냥 물이 아닙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귀 동냥을 하시어 이름 있고 몸에 좋다는 차를 발품 팔아 구입해서 정성으로 강단에 바치시는 겁니다. 한 번도 같은 내용의 물을 연속적으로 올리지 않으셨습니다.

권사님은 이를 위하여 매일 기도하셨습니다. 특별히 다음에는 어떤 차로 설교자를 도울까에 대하여 기도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건강 상태를 늘 세심하게 살피시곤 기도를 하시는 겁니다. 권사님이 그렇게 매의 눈으로 관찰하시고 기도하시는 것은 직업에서 얻은 관찰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사님은 평생을 약사로 사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차가 어떤 때 좋은 것이라는 것을 잘 아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35년 동안 강단을 지켜오면서 공 예배시마다 강단에 올리신 차의 종류는 너무 다향 했습니다. 아마도 그렇게 많은 종류의 차를 마셔본 설교자도 많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주일 낮 예배, 주일 오후예배, 수요예배, 금요기도회시마다 강단에 물을 올리십니다. 어느 날 권사님이 바치신 찻잔의 수를 세어 보았습니다. 한 주일에 기본적으로 4 번을 바치십니다. 그러면 1년이면 208잔이고 십년이면 2,080잔이며 35년 간 그 일을 해 오셨으니까? 7,280잔이 계산되었습니다.

그 외에 교회 내 여러 가지 다른 행사까지 합하면 필자가 권사님에게 대접받은 찻잔의 수는 7,500잔은 족히 되고도 남을 것입니다. 이를 계수하다가 주님의 말씀이 어느 날 기억이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42절에서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누구에게 이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 것일까요?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K 권사님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교회 안에 그런 일꾼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런 정성과 사랑 그리고 기도로 봉사하신 수고를 주님도 아시기에 하늘에서 크고 아름다운 상으로 예비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난 달 몸살을 심하게 앓으면서 권사님의 섬김을 생각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은 90이 되신 고령의 몸이시기에 수년 전부터 강단에 물을 바치시는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하시고 계십니다.

지금도 K 권사님이 건강하셔서 예전처럼 기도와 사랑으로 준비하신 물이 강단에 올라왔다면 기침 감기로 그렇게 큰 고생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권사님 감사합니다. 더욱 건강하세요! 주님이 권사님을 위해서 천국에서 예비하신 상급이 얼마나 아름답고 빛나는 것일지 기대하게 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