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 어느 간호장교의 눈물의 편지

얼마 전 40여 년 동안 인연을 이어온 87세 고령의 6.25 참전 간호장교이셨던 분으로부터 가슴이 저린 여러 장의 두툼한 편지를 받았다.

편지의 내용은 와이오밍 주에서 홀로 사시는 한국의 육군 소령 출신의 L 여사님이 자신의 장례식을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아직은 건강하셔서 누구의 도움 없이도 살아갈 수 있지만 가까운 시일에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있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었다. L 여사님은 평생을 전문 의료인으로 살아오셨던 분이시다. 필자가 여사님과 인연을 가지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43년 전이었다.

남가주의 아름다운 항구 도시인 Long Beach에서 살던 어느 날 오후에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백발의 할머니 한 분이 고운 한복을 입으시고 흰색의 고무신을 신으신 채 머리에 무거운 보자기를 이고 걸어가시는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한 눈에 보아도 한국 할머니였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이민자가 많지 않았을 때였다. 공식적인 집계로 LA 카운티에 한국인이 3-4천명이 살았던 때였던 것이다. 더구나 LA에서 멀리 떨어진 Long Beach 시에선 길을 가다가 교포를 만나기가 어려운 시절이었다. 가던 길을 돌아서 할머니에게 간 것은 머리에 올린 물건이 너무 무거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할머니는 버스도 타실 줄 모르는 분이셨다. 물론 영어도 한 마디도 하시지 못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무거운 짐을 가지고 계속 걸어야 하셨던 것이었다.

70년 대 초 혼자 사시는 딸의 초청으로 이민을 오셨다. 집에만 계시기엔 너무 답답하셔서 가끔 홀로 있을 때는 길을 따라 걸으셨던 것이다. 그 날도 갔던 길을 되돌아 큰 길을 따라 같은 방향으로 걸으면 집이 나온다는 것만을 아시고 앞을 향하여 걷고 계셨던 것이었다. 머리에 이고 가는 것은 평소 오가면서 눈여겨 보아오던 넓은 공터에 무성하게 돋아난 봄나물을 뜯어가지고 가시는 길이었던 것이다. 만났던 곳에서 집까지 가려면 4-50분은 더운 날씨에 땀을 흘리며 걸어야 하는 길이었기에 차를 타고 가시는 동안 고맙다는 말을 반복해서 여러 번 말씀하셨다.

집에 도착하자 할머니는 나를 그대로 보내지 않으셨다. 집 안으로 끌고 들어가 정성스런 식사를 대접하셨던 것이다. 그때 먹었던 닭 미역국은 평생의 기억에 남을 정도로 특별한 맛이었다. 그 후로 할머니의 가족과 필자는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할머니 댁을 고향의 어머니 집처럼 드나들었다. 할머니는 특별한 음식을 만드는 날이면 부르시는 것이었다.

그 인연이 발전하여 할머니 가족과 지금까지도 인연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속담에 되로 주고 말로 받는 다는 말이 있지만 나는 모래알 하나를 드리고 할머니와 그분의 딸 L 여사님으로부터 지금까지 받아온 사랑과 축복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던 것이다.

자신의 장례식을 말과 글로만 부탁한 것이 아니었다. 필자가 L 여사님의 부음 소식을 들으면 무엇을 어디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세세하게 준비를 해 놓으신 것이다. 장례식을 위해서 누구에게 무엇을 부탁하고 누구에게 무엇을 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깨알 같은 글씨로 남기신 것이다. 평소와 같이 자신의 사후 문제에 대해서 생각의 생각을 하고서 한 치의 실수가 없이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문서로 해 놓으신 것이다. 자신이 어느 순간에 운명을 하게 되면 제일 먼저 갈 곳은 와이오밍의 어느 장의사이며 그곳에서 친지들과 가족들이 모이면 장례식을 필자가 인도한 후 시신은 곧 바로 화장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화장이 완료되면 필자가 고인의 유골을 한국으로 모시고 가서 국립묘지에 안장을 할 수 있도록 절차와 처리에 대해서 완벽하게 준비해 놓으신 것이다. 받은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데 눈물이 흘러내렸다. 평생을 조국 대한민국과 남을 위해서 희생하시며 사셨던 분이셨다. 국가를 위해서 청춘을 바친 것을 늘 자랑스럽게 여기셨던 분이셨다.

이민자로 이 땅에 사시는 동안에도 자신의 행복보다는 이웃의 행복을 위하여 섬김의 본을 보이셨던 분이셨다. 십 수 년 전 필자의 집을 방문하셨을 때 L 여사님이 사용하는 화장품을 보고서 놀란 일이 있었다. 여인으로서 기초적인 화장품도 가방 속에 지니고 다니시지 않으셨기 때문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양발은 구멍 뚫린 것을 서툰 바늘 솜씨로 이리저리 얽어 맨 것을 신고 계셨던 것이다. 그 때 필자가 드린 말씀이 생각이 났다. 이제는 그만 하셔도 됩니다. 이제는 본인을 위해서 사셔도 됩니다. 어려서 너무 가난하게 사셨던 것이 습관화 되셔서 먹는 것 입는 것까지도 절약하며 사셨던 것이다.

불현듯 다가온 자신의 죽음을 의식하면서 그 날을 준비하신 여사님의 마음이 얼마나 무겁고 얼마나 기가 막히고 슬퍼하였을까를 생각할 때 가슴이 답답해 옴을 느꼈던 것이다. L 여사님! 자랑스럽습니다. 멋있게 사셨습니다. 아름답게 사셨습니다. 존경스럽습니다. 우리의 곁에 지금까지 계셔 주셔서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574

나는 나의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30년 전의 일 이었습니다. 아무런 염려와 근심이 없어 보이는 노년의 여 집사님이 아들의 집을 방문해 달라고 간곡한 요청을 했습니다. 수년 동안 교회를 출석하셨음에도 그 말을 하시기 전까지는 집사님에게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심방을 긴급하게 요청한 이유는 사랑하는 아들이 어려운 병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집사님의 아들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의 은혜로 서울에서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1980년대 미국에 유학을 와서 어려운 과정을 극복하고 많은 사람이 원하는 자랑스러운 박사학위를 받고 이곳에서 군수산업회사의 중역으로 일하면서 돈도 많이 벌어 좋은 집에서 가정을 이루고 성공한 이민 가정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좀 사는가 싶더니 그만 죽을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자동차로 1시간을 달려가 아들의 집을 방문했는데 우리를 조금도 반갑게 맞아주질 않았습니다. 당시의 분위기로는 어머니와 함께 하지 아니했다면 문전 박대를 당할 그런 분위기 였습니다. 지금까지 오랜 기간 목회를 해 오면서 그런 대접과 심방은 처음이었습니다.

도무지 예배드릴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기도를 하자고 권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집사님의 아들은 마주 앉은 필자를 향하여 묻지도 않은 말을 불편한 마음으로 이렇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나의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남들이 편히 쉬고 놀 때 밤을 새우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자리에 까지 올라왔습니다. 내가 만일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지 아니했으면 오늘의 나는 없었다고 했습니다. 예배드리러 가서 성경은 펴보지도 못하고 찬송도 부르지 못하며 기도도 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 분의 심정과 영양가 없는 세상적인 말만 들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법대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어려운 문제도 다른 누구의 도움이 필요치 않다고 했습니다. 나는 나의 문제를 내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럴만한 실력과 자신이 있다면서 예배를 거부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 기도의 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렇게 자신 있어 보이던 분은 자신의 병을 이기지 못하고 오래 가지 않아서 결국은 안타깝게도 명을 달리하고 말았습니다. 죽음과 동시에 그는 모든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학위도 아무런 쓸데가 없어졌습니다. 그가 소중하게 여기던 가정과 자녀 모두가 그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이룬 모든 것들이 자신을 지키며 행복케 할 것으로 믿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좋은 세상에서 부족함 없이 천년만년 영원할 것으로 믿었지만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공부도 많이 하고 세상 적으로는 실력이 많은 똑똑한 분이셨지만 그러나 그 분이 알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생명의 주인이 계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세상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죽은 다음에 천국과 지옥중 하나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사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 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사람이 세상에 사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은 천국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난 사람마다 다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이 귀한 것은 세상에 나지 아니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다가 아닙니다. 천국에 가기 위한 징검다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는 동안 구원의 주를 만나는 것이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온 천하를 얻고도 구원을 얻지 못하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냐?” 세상에서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어리석은 인생이라고 성경은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남보다 잘나서 좋은 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그에게 공부하는 지혜를 주시고, 환경을 주시고 미국에 유학을 허락하신 분이 인생의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셨던 것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평탄한 삶을 살아온 것이 전적으로 자신의 수고와 노력으로 알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자기의 노력으로 좋은 병원, 좋은 의사, 좋은 신약을 찾아서 병을 싸워 위기에서 벗어날 것으로 자신했지만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생각으로는 그 어느 누구도 정해진 자신의 운명을 하루도 연장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549

어느 집사님의 가슴 아픈 이민 이야기

한국에서 부족함이 없이 사셨던 L 집사님은 중학교에 다니는 두 딸과 두 살 된 아들을 데리고 30여 년 전에 이민을 오셨습니다. L 집사님을 처음 뵈올 때는 교회를 알지 못하는 분이셨습니다. 그 분을 처음 만난 것은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폐병 환자들을 격리해서 장기간 치료하는 요양 병원이었습니다.

아는 분의 소개로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병상을 찾아가 여러 번 기도를 해준 것이 인연이 되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건강을 회복하고 병원에서 퇴원하고서 교회로 찾아와 인연을 이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 분이 그렇게 큰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첫 심방을 하고나서야 그분의 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민을 오기전 재산을 정리하기 위하여 한국에 남아있으면서 부인에게는 먼저 가서 가족들이 편하게 이민 생활을 정착 할 수 있도록 집을 장만하라고 큰 목돈과 함께 부인을 먼저 보냈습니다. 6개월 후 세 자녀들과 함께 큰 꿈을 가지고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마중 나와 있어야 할 부인이 보이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아서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는 겁니다. 지금 같으면 공항에 한국인을 흔하게 만날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그렇지 않았기에 형언할 수 없는 고생을 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부인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며칠째 연락이 두절되어 부인의 주소로 찾아갔습니다. 너무나 사랑했던 부인이었습니다.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던 부인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세 자녀를 사랑했던 어머니였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순간도 부인이 없는 삶을 생각지 못했습니다. 평생을 함께 행복하게 살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6개월 여 만에 타국에서 처음 만난 부인은 타인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집안에서 나오는 사람은 부인이 아닌 외국인 남자였습니다. 그 남자의 뒤를 따라 부인이 나타났습니다. 부인은 남편을 보자 타인을 대하듯 한 것입니다. 너무나 당황스럽고 눈앞에 전개된 현실이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어떻게 당신이 그럴 수가 있습니까? 우리가 어떤 부부인데 이럴 수가 있습니까? 결국 부인을 그곳에 두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청천병력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수일을 눈물로 지새우고 다시 부인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애원을 했던 것입니다. 그간의 사정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의 곁으로 돌아와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길 몇 번 더 하다가 결국은 타협을 하기에 이릅니다. 두 딸은 아버지가 그리고 어린 아들은 부인이 맡기로 한 것입니다. 행복을 찾아서 미국에 왔지만 온 가족이 꿈꾸던 그 행복은 한 순간도 느껴보지 못하고 미국에 도착하면서 산산 조각이 나고 만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마음도 상하고 몸도 상해서 몸이 약해져 폐병으로 발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부인만 잃은 것이 아니라 재산도 잃고 돈도 잃고 가정도 잃게 되었습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돈을 먼저 보내지 말 것을, 아니 반만 보낼 것을 하면서 탄식을 해 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부인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부인이 자신과 아이들을 버릴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너무나 사랑하던 부인에게 속은 사실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그 아픔은 점점 더 커만 갔습니다.

결국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결심을 하게 됩니다. 두 딸이 집을 비운 사이에 아파트 목욕탕에 들어가 물을 틀어 놓고 욕조에서 면도칼로 왼쪽 손목의 정맥을 세차게 자르고 자살을 시도한 것입니다. 욕조에 물이 흘러넘치면서 피 석인 물이 밖으로 흘러내리자 이를 발견한 사람의 신고로 응급 팀이 도착을 했을 때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정신을 잃고 욕조에 쓸어져 있을 때였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폐병 환자인줄 알지 못했습니다. 병원에서 기사회생을 하고나서 곧 바로 폐병 환자를 위한 요양병원으로 이송 되었던 것입니다. 그 분은 훗날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미국에 속았습니다.

내가 지금 당하는 모든 시련과 고통은 나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미국에 가면 사는 날까지 염려와 근심이 없는 행복한 삶을 살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22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505

해마다 이어지는 크리스마스 특별헌금

교회를 출석하지 않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년에 한 번씩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편지로 500달러를 20년 가까이 교회로 보내옵니다. 편지 안에는 다른 내용은 없고 수표를 흰 백지에 말아서 보내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수표에는 보내는 사람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인쇄되어 있지만 그 분의 수표에는 주소도 없고 전화번호도 없습니다.

다만 그 분의 우편번호만 인쇄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탄헌금을 받아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화로 전하지 못합니다. 지난 연말에도 편지로 헌금을 받고서 감사의 편지와 함께 새해에는 만나보고도 싶고 전화로 소통하고 싶다고 하면서 통화할 수 있는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지만 답장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서 그 분을 만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그 분을 알게 된 것은 그 분의 어머니 때문입니다. 어머니를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33년 전입니다. 로스앤젤레스 한인 타운에서 교회를 설립하고 2-3년 지났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60이 넘으신 할머니가 교회를 찾아 오셨습니다.

몇 개월 동안 아무 말 없이 교회를 다니시다가 어느 날 심방을 했을 때 교회를 나오시게 된 동기를 말씀했습니다. 북한이 고향이신 할머니는 6.25전쟁으로 고향을 떠나 실향민으로 서울에서 사시다가 1970년 초 미국에 유학을 온 아들의 초청으로 이민을 오셨습니다. 교회에 대한 기억은 어린 시절 고향에서 잠시 다녔던 기억이 전부였습니다.

그 동안 교회를 멀리하며 하나님을 잊은 채 살아오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일상적인 꿈은 잠에서 깨어나면 쉽게 잃어버립니다. 그런데 그 날의 꿈은 시간이 가도 잊혀지지 않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새롭게 기억이 되는 것입니다. 꿈인데도 생시보다 더 분명하고 더 실감 있게 느껴졌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꿈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천국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안내 받아 간 곳은 주님 앞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할머니에게 사랑하는 딸아 그 동안 수고 많았다고 하시면서 할머니 머리에 개털모자를 씌어주셨습니다. 그것을 받는 순간 너무 좋아서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샘솟았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세상에 사는 동안 한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 자신에게 분에 넘치는 대접과 상을 주신 것에 대하여 너무 기뻤습니다. 만왕의 왕이시며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자신을 기억해 주시고 초청해 주실 뿐 아니라 손수 머리에 개털모자를 씌워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쁨은 잠시였습니다.

개털 모자를 받아쓰고 주님의 곁을 떠나 천국의 아름다운 황금 길을 걸어갈 때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할머니의 모자와 같은 모자를 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다 빛나는 면류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모자를 쓰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가 만나는 사람마다 빛나는 모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자기 머리에 쓴 모자가 자랑스러운 모자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할머니의 머리의 개털모자를 조롱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비난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머리에는 자랑스러운 면류관들이 씌어져 있는데 본인의 머리에는 개털 모자가 씌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찾아 나오신 겁니다. 그 때부터 시작된 교회 생활은 세상을 떠나시기 까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세례를 받으시고 집사로 직분을 감당하시다가 마지막에는 시무 권사로 10여년을 충성스럽게 섬기셨습니다.

그 분의 아들은 80년 대 초 사업에 크게 성공해서 부자들만 산다는 베벌리힐즈에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한인 타운에서 듣던 말로는 다섯 손가락안에 들 정도로 그 곳에 성공한 한인이 살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곳에 살고 계십니다. 어머니 생전에는 교회를 매주 나왔습니다. 그러나 축도를 하고 강단에서 내려가면 교회를 떠나 만날 수가 없습니다.

당시는 헌금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교회를 출석하는 것은 오로지 어머니를 뵙기 위한 것으로 생각 되었습니다. 예배 중에는 어머니와 손을 잡고 앉아 있다가 예배가 끝남과 동시에 교회를 떠나가는 겁니다. 언젠가 어머니 권사에게 아드님의 집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그 집을 보지 못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자랑이라도 하고 싶어서 초청을 하는데 그 분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십 수 년 전에 어느 식당에서 우연히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때 그 분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어서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C 사장님은 왜 늘 같은 옷을 입고 다니십니까? 한 번도 양복을 입은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입은 이 옷 늘 같은 것 입는 것 같지요! 아닙니다. 같은 옷이 10벌이 있어 교대로 매일 바꾸어서 입고 있습니다. 늘 허름한 차림으로 부자가 아닌 소박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변장을 하고 생활하시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이 사업에 크게 성공한 큰 부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는 겁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437

자녀를 위한 어머니의 기도

1남 2녀를 둔 어머니가 있습니다. 세 자녀는 이민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하여 지금은 모두 성년이 되었습니다. 두 딸은 십 수 년 전에 출가해서 가정을 이루고 있고 각기 세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평범한 가정 같지만 실은 평범하지 아니한 가정입니다. 하나님께 특별한 복을 받은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세 자녀가 특별한 이유는 어머니의 기도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두 딸이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남다른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두 딸의 배우자를 위하여 매일 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 기도를 할 때에 누구와도 상의하지 아니했습니다. 심지어 남편에게도 상의하거나 함께 기도하자고 부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딸은 물론 가정의 어느 누구도 어머니가 그런 내용의 기도를 매일 반복해서 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자녀를 위한 어머니의 기도는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중언부언하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하다가 중단하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같은 내용으로 늘 하는 기도였습니다.

어머니가 두 딸의 배우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 막연하게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예를 들면 두 딸이 이민 가정에서 태어났기에, 저들의 배우자도 같은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배우자를 원한 것입니다. 뿌리가 같지 아니하면 평탄한 가정을 가꾸기가 쉽지 않은 것을 주위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민 가정 중에도 양부모가 계신 가정의 배우자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배우자의 성격, 키, 인격, 품성, 나이, 학력은 물론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배우자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특별히 믿음의 가정에서 성장한 배우자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어머니가 기도한대로 된 것입니다.

두 딸이 결혼을 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어머니가 기도한대로 그런 배우자를 두 딸에게 허락하신 겁니다. 그래서 두 사위가 모두 이민 가정에서 태어나, 양부모 밑에서 어려서부터 믿음으로 성장했습니다. 어머니가 기도한 대로 두 사위의 키가 같습니다. 얼굴 모양도 비슷하고 기도한대로 두 사위의 인품도 나이도 비슷합니다.

세상에 기적이 많지만 이 또한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기도의 응답, 기도의 축복을 아는 어머니는 아들을 주시기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처음에는 넉넉지 못한 이민가정 형편상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두 딸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아들 주시기를 뒤늦게 기도한 것입니다.

수년 동안 기도하고서 둘째 딸과 나이 차이가 10살이나 된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늦둥이 아들을 위하여 다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기도의 내용은 가문을 빛내는 아들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품에 앉고 젖을 먹일 때부터 그런 기도를 쉬지 않고 반복해서 했습니다.

아들이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이름 뒤에 박사님이라는 호칭을 붙여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있을 때는 그런 호칭을 사용치 않았지만 가족만 있을 때는 늘 그렇게 불렀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로 어린 아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성장하길 시작합니다.

마침내 Georgetown 대학을 전액 장학생으로 졸업하고 지난 해 Stanford 대학원에서 국제정치 경제학을 전공하고 졸업 했습니다. 가정 형편상 그런 명문 사립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생각할 수도 없었고 설령 그런 사립대학에 입학 허가를 받았더라도 재정적인 문제를 감당할 형편이 되지 못했는데 하나님의 축복으로 부모의 도움 없이 학업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로 부모도 이루지 못한 학문의 복을 받았습니다. 기도한 대로 가문을 빛내는 아들이 된 것입니다. 만일 자녀를 위해서 그런 구체적인 기도를 하지 않았다면 세 자녀들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자녀들이 받은 지금의 모든 복이 기도로 이루어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7-8절에서 믿음의 사람들이 기도할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397

36년 동안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기셨던 장로님을 보내드리면서

지난 12월 17일 토요일 밤 K 장로님이 89세의 연세로 방금 전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잠에서 깨어나 20여 분을 달려 장로님 댁으로 갔더니 이미 911 응급 팀이 와서 응급조치를 해도 소생이 되지 않자 경찰에 연락을 취하여 현장에 4 명의 경찰이 와 사망 원인을 조사하고 있었다.

한국과 다른 것이 미국에선 집에서 운명을 하게 되면 경찰이 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찰이 고인의 사망 원인을 조사하고 자연사한 경우에만 시신을 장의사로 이송하는 것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만일 조금이라도 의심이 갈 때는 바로 검시소로 보내지기 때문이다. 경찰의 허락 하에 장로님을 장의사로 떠나보내고 돌아와 잠을 자려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지난 36 년 동안 K 장로님과 함께한 아름다운 감동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 년여 전부터 병을 앓아 오셨기에 가까운 시일에 우리의 곁을 떠나실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일을 당하고 나니까 그렇게 빨리 가신 것에 대하여 서운한 마음과 허전함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기 때문이다.

장로님은 미국에 오신지 50년이 되신다. 필자가 처음 만난 것은 40년 전이다. 지난 삶을 돌아보니 나의 삶에서 가장 많은 부분이 장로님과 함께 한 세월이었다. 부모님이나 형제자매 가족들보다 장로님과 함께한 세월이 더 많았던 것이다. 나의 삶에서 가장 큰 부분에 장로님이 계셨던 것이다.

오늘의 내가 존재하는 것도 장로님을 만났기 때문이며 지금까지 한 교회에서 부족한 사람이 목회를 수행할 수 있었던 것도 장로님 때문이었던 것이다. 목사 안수를 받고 두 달여 지나서 사역지가 정해지지 않았을 때 장로님으로부터 새 교회를 설립하려고 하는데 함께 하자는 제의를 받았을 때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당시 서류 미비자로 7년 여 동안 불안하게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로님의 제의로 받고 두 달 만에 장로님 댁에서 첫 예배를 드리며 지금의 평강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의 내게는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었다. 더구나 담임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교회 이름도 장로님이 지으셨다.

교회 등록도 목사인 내가 하지 아니하고 장로님이 하셨다. IRS 면세 신청서류는 물론 교회 허가서가 나오자마자 제일먼저 하신 것은 가족 4 명의 영주권신청을 새로 설립한 교회이름으로 신청해서 일 년 여 만에 영주권을 받게 해 주셨던 것이다. 변호사에게 지불하는 모든 비용까지도 장로님이 담당해 주셨던 것이다.

오래전에 어느 일간지 신문사의 종교담장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하면서 장기목회를 하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어온 적이 있어서 글로서 답을 한 적이 있었다. 경험상 목회 개인의 능력보다는 장로님들의 믿음에 달려 있다고 했던 것이다. 목사가 아무리 신령하고 설교를 잘해도 장로님들의 도우심이 없이는 절대로 목회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장로님의 소식을 들은 필자의 큰 딸이 카톡을 보내왔다. “Please let us know when funeral is… Elder Kim was an amazing man. I know our Heavenly Father is welcoming Him in. Hope you are ok, dad.” 그렇다 장로님은 단 한 번도 말이나 행동에 실수를 보이지 않으셨다. 내게만 아니라 나의 가족과 모든 교우들에게도 그러셨다.

교회에서만이 아니시다. 진실로 장로님은 믿음의 사람이셨던 것이다.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셨다. 그런 장로님 때문에 행복한 목회를 지금까지 해 올 수 있었다. 단 한순간도 교회에 장로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보지 못했기에 명을 달리 하시고 나서 지난날을 돌아보니 장로님의 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지고 있는 것이다.

장로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부족한 종을 그렇게 사랑해 주시고 섬겨 주셨습니다. 장로님은 교회 밖에 모르고 사셨던 분이시다. 그 흔한 여행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지난 10여 년 전에 당회를 하다가 교회 페이먼트가 완료되고 헌당을 하게 되면 그 수고의 기념으로 크루즈 여행을 보내 드리자고 했는데 그 선물도 받지 못하시고 주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장로님은 믿음의 거장이셨습니다. 그런 장로님과 함께 한 것은 우리 모두에게 너무도 큰 은혜요 축복이었습니다. 장로님을 주님께 먼저 보내 드리면서 장로님이 그토록 사랑하시고 충성하셨던 교회의 유산을 저희들에게 남겨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본을 보여 주신대로 우리도 장로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생명이 다하는 날 까지 충성하겠습니다.

장로님! 천국 입성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주님의 나라에서 기쁨으로 다시 뵈올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340

로스앤젤레스는 미국이 아닙니다

얼마 전 어느 병원 의사에게서 들은 말이다. 어느 환자가 담당 의사를 향하여 이런 질문을 했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세계인들이 동경하는 도시 단위로는 최대의 면적을 가진 도시인데 어쩌다가 이런 환자들이 생겨나는 겁니까? 그것도 작은 숫자가 아니고 많은 사람이 이런 질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그런 질병은 가난한 후진 국가에서나 있는 병이 아닙니까? 그 말에 의사는 이렇게 대답을 한 것이다. 이곳은 미국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미국은 미국이지만 미국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수십 년 전 한인 타운의 어느 공원에서 한국의 공영 방송중 하나인 모 방송사가 한국의 날 특집 행사의 일환으로 노래자랑을 녹화할 때였다.

그 때 한 가족으로 여러 명이 무대에 올랐는데 노래를 마치고 나서 아나운서가 무대에 오른 가족 중에서 한 어린 학생을 향하여 언제 미국에 이민을 오게 되었으며 미국에 온 소감을 묻을 때 이렇게 대답을 했던 기억이 떠 오른 것이다. 미국에 와서 느낀 소감은 미국은 미국이 아니라고 했던 것이다.

어린 학생으로부터 이해하기 어려운 뜻밖의 말을 들은 아나운서가 그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묻자 학생은 이렇게 말을 했던 것이다. 미국에는 백인들만 사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미국사람은 다 키도 크고, 코도 크고 다 잘생긴 사람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미국에 사는 사람은 다 부자로 좋은 집과 환경에서 사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에 가보니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미국사람 같지 않은 미국 사람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백인보다는 흑인이나 남미계 학생들이 더 많아 자신이 꿈꾸며 생각했던 미국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학교만 아니라 길에서 보는 사람들도 미국 사람보다는 다른 나라 사람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그렇다. 로스앤젤레스는 전 세계인이 다 모여 사는 곳이다. 미국의 다른 도시도 다르지 않지만 특별히 이곳은 더 그런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가 살고 있는 이곳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언어가 사용이 되는 곳이기도 하며 가장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방식대로 생활하며 그들의 전통대로 살아가는 곳이다.

그로인하여 다양한 문화가 충돌하기도 하고 때로는 조화를 통하여 서로 공존하는 곳이다. 이 시대 이런 국제적인 대도시에 산다는 것이 그래서 축복이 되는 것이다. 시시각각 빠르게 변하는 세계 구석구석의 모든 소식 뿐 아니라 각 나라와 민족들의 변하는 것들을 빠르게 습득할 수 있으며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도시에 사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요즘 들어서 하게 되는 것이다. 큰 도시에 사는 것이 편리한 것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는 요즘 점점 더해가는 교통 체증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느껴지는 교통 체증은 이제 우리의 삶에 무거운 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도시의 삶은 자동차가 없이는 생활을 할 수 없는데 요즘 같은 교통 체증 때문에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불과 수년 전 까지만 해도 태어난 고국을 떠나 이민자로 이 땅에 살아가는 고마움 가운데 하나가 대도시의 도로망 때문이라고 생각을 해왔었는데 요즘 들어선 그런 생각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요즘 들어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도 한국의 교통 정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사는 이곳이 더 살기에 좋은 도시가 될 수 있을까? 지금과 같은 추세로는 점점 더 시간이 갈수록 교통 정체는 더해갈 것 같은데 이 근본 문제를 누가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로스앤젤레스에서만 40여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요즘 같은 교통 체증은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음번 로스앤젤레스 시장과 시 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를 선택하는 기준으로 교통 정체를 해결하려고 공약하는 후보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보게 되는 것이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320

존경심이 더해가는 어르신

필자가 섬기는 교회 근처에서 6년째 농원(너서리)을 경영하시는 어르신이 계십니다. 이희덕 선생입니다. 그분을 알기 시작한 것은 40여년이 넘고 있습니다. 교제를 나누는 사이는 아니지만 오가다 만나면 악수를 나누고 있습니다. 1973년에 이곳 나성에 와서부터 그 분을 알게 된 것은 한인 최초로 운영하는 올림픽마켓을 이용하면서부터 이었습니다.

이희덕 선생님을 만나면 호칭을 회장님이라고 부릅니다. 오래전부터 타운에서 그 분의 호칭이 한때 회장님으로 통했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그분을 존경하는 것은 신앙인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업에 성공한 사람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물론 한 때는 사업에 크게 성공해서 지금의 한인 타운을 만드는데 큰 공을 세우기도 하셨습니다.

올림픽과 놀만디 인근의 대여섯 부락을 사들여 코리안빌리지란 이름으로 한인타운 개발에 앞장섰습니다. 지금도 올리픽가를 지나다 보면 그분이 남기신 타운을 대표하는 건물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영빈관, VIP 플라자 등 한때는 모두가 부러워할 정도의 큰 재력을 지닌 성공한 사업가이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에 공들였던 개발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음으로 파산하고 LA를 떠나 중국에서 가서 10여 년간 사업을 하다가 다시 돌아와 한인타운 중심가에 이화장이란 이름으로 직원 수십 명이 넘는 큰 식당을 운영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일 년여 만에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세월이 많이 흘러 지금은 77세의 어르신이 되신 겁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 나이에 일손을 놓고 여생을 편하게 살려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회장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시 새 일을 시작하신 겁니다. 6년여 전부터 너서리를 운영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너서리는 많은 일손이 필요한 직업입니다.

일하는 사람들에게만 맡겨선 되지 않는 일입니다.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12시간 이상 하루도 쉬지 않고 노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2년 전에 너서리에 들려서 대화를 나눈 일이 있습니다. 그 때 이런 질문을 드렸습니다. 이제는 쉬셔도 되지 않습니까? 자녀들도 다 성공하셨고 좋은 집도 가지고 계시며 살아가는데 부족함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힘든 일을 하십니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편한 사업을 하실 실력과 방법과 능력이 되시는데 구지 이렇게 힘든 너서리를 경영하시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은 것입니다. 그 물음에 이렇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일이 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움직이는 일이 좋으시다는 겁니다.

자신은 성격상 편하게 쉬지를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특별히 말년에 너서리를 운영하는 것은 어린 시절 시골 공주에서 살면서 농사일의 즐거움을 알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일이 힘들어도 사람들처럼 나무들은 주인을 속이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험한 세상 살아오시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으셨음을 짐작케 했습니다.

그런데 나무나 꽃식물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사랑과 관심 땀과 공을 들인 주인에게 절대로 배신하거나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한 것 만큼 열매를 준다는 것입니다. 수일 전 이 회장님을 교회 인근 식당에서 우연히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직원들의 점심을 대접하기 위해서 들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연세에 긴 청바지에 긴 팔 작업복을 입고 머리는 모자를 눌러 쓰고 계셨습니다. 너서리를 운영하시는 동안 한 번도 다른 복장을 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하루도 몇 번씩 교회를 오갈 때마다 이회장님이 운영하시는 너서리를 지나며 먼발치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것입니다.

이회장님이 식당을 떠나시기 전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세계에서 쇼핑 매너가 제일 나쁜 민족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하시면서 둘을 말씀하셨습니다. 한국인과 필리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당신의 사업장에서 만나는 손님들 중에도 가장 힘든 고객이 한국 사람과 필리핀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정해진 물건 값을 깎는 것은 물론 세금까지 감해 달라고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면 매너 없는 그런 손님들을 향하여 팔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다시는 우리 가게에 오지 말라고 말한다고 하셨습니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으시고 새로운 일을 찾아서 열심히 땀 흘리며 살아가시는 이회장님을 그래서 존경하는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165

선택 받은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임

남가주목사장로부부찬양단 제9회 정기공연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공연 일자가 가까이 다가오면서 나성영락교회 소망관에서 매주 월요일 저녁 6시 반부터 밤 9시까지 2 시간 이상 계속되는 연습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목사장로부부찬양단은 2006년에 창단되어 금년으로 11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목사장로부부합창단 창단 멤버로 참여하여 지금까지 합창단을 섬겨오면서 찬양을 통하여 주님의 크신 은혜와 감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짧은 세월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바쁜 목회자의 일상에서 찬양단을 계속해서 섬기는 것은 사명감보다는 찬양을 통하여 받는 은혜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여러 번의 공연을 준비해 오면서 공연일자가 가까워 올수록 늘 반복해서 느끼는 것은 염려와 걱정이었습니다. 과연 정해진 일자와 장소에서 부끄러움이 없이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며 찬양하는 우리는 물론 참여하는 많은 청중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공연이 될 수 있을까하는 우려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금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그런 염려와 걱정이 없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공연이 기다려지고 기대가 되며 즐거운 마음으로 그 날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드디어 10여 년 만에 목사장로부부합창단이 정상의 궤도에 올라선 것입니다. 남가주의 많은 합창단 가운데 당당하게 우리 합창단의 이름이 오른 것입니다.

이제는 여러 기관에서 특별행사를 할 때마다 찬양을 해 주길 원하는 요청이 많아서 거절하기도 어려운 형편에 처하고 있습니다. 물론 오늘의 이런 성장이 있기 까지는 물심양면으로 합창단을 위하여 헌신하시고 희생을 아끼지 아니하시는 단장 박재웅 목사님을 비롯하여 임원 여러분들의 수고의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보다 우리에게 연습을 위하여 모일 때마다 감동을 주는 단원들이 있습니다. 데저트 핫 스프링에서 사시는 차우덕 장로님부부는 왕복 6시간을 달려서 연습에 참가하고 계십니다. 신용채 목사님부부는 빅토빌에서 참여하고 계십니다. 그런가하면 서정기 목사님부부는 엘시노 레이크에서 참여하고 계십니다.

찬양을 위해서 먼 거리를 마다하고 달려 나오시는 그 분들의 열정을 볼 때마다 같은 단원으로서 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것입니다. 감동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지난 8회 정기 공연시 공연을 마치고 강단에서 내려오다가 계단에서 넘어져 응급실로 실려가 깨어진 엉덩이뼈를 수술 받으시고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하셨던 김은혜 사모님이 계십니다. 다시는 합창단에서 뵈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공연 중 그런 일을 당하셨기 때문에 합창단을 졸업하시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수개월 동안의 치료를 통하여 회복이 되신 후 다시 합창단에 나오셔서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하셨습니다.

그런가하면 반주하시는 집사님은 한 번도 거르지 아니하시고 정성된 케이크를 직접 집에서 만들어 오십니다. 지휘하시는 이 데이빗 목사님과 반주하시는 집사님 모두 사례비를 받지 않으십니다. 뿐만 아니라 도리어 합창단을 위하여 많은 돈을 도네이션 해주고 계십니다. 지금까지 합창단을 섬겨오면서 이런 지위자, 이런 반주자를 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런 분이 계시다는 것을 듣지도 못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희생과 헌신 봉사가 가능 할 수 있습니까? 주님을 사랑하고 찬양을 사모하는 선택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니 찬양을 하기 위하여 모일 때마다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합창단에 가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더 기다리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여서 준비하는 찬양은 그래서 기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제는 공연일자가 걱정스러운 날이 아니라 기다려지는 날이 되고 있습니다. 금번 11월에 개최되는 제9회 정기공연을 통하여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될 것을 확신하여 우리 모두에게 큰 감동과 은혜의 시간이 될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목사장로부부합창단을 위해서 기도와 물질로 끊임없이 후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주님의 위로와 은혜가 충만하시길 기원 드리며 그 날 그 장소에서 다시 기쁨으로 만나길 기대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087

고향 떠난 진돗개의 고독한 타향살이

필자가 살고 있는 집에서 일곱 번째 떨어진 곳에 입양되어 살고 있는 진돗개 한 마리가 있습니다. 두 귀가 송곳처럼 솟고 털은 황금빛으로 물들어진 누런색의 진돗개입니다. 집 주인은 변호사로 은퇴한 미국 사람입니다. 진돗개가 그 집에 사는 지는 10여년이 넘은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동차로 밖을 드나들 때마다 그 집 앞을 오가게 됩니다. 그러면 항상 시선이 가는 곳은 그 집에 살고 있는 진돗개입니다. 필자가 특별히 그 개를 마음에 두는 것은 오래 전 처음으로 그 집에 왔을 때는 지금처럼 늙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그 개가 어렸을 때는 지금처럼 목에 긴 줄을 매어놓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과 함께 울타리 밖으로 자주 나오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린 진돗개는 우리 집으로 달려오는 겁니다. 우리 내외를 보면 그렇게 반가워하며 꼬리를 치는 것입니다. 때로는 나의 품에 안기기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개 주인과도 다정한 인사를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주변엔 필리핀 사람도 있고 멕시칸도 있으며 흑인 가정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인종들에 대해선 관심을 가지지 않고 유독 나와 집 사람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아서 그 개가 한국인 집에서 태어나 미국인 가정으로 입양된 것으로 생각 되었습니다.

얼마나 한국 음식이 그립고, 얼마나 한국인의 정이 그리우면 그토록 우리 내외를 반겨주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늘 그 개를 향하여 손을 흔들며 미소를 보내고 있습니다. 가끔씩 집 주변을 걷게 될 때는 그 집 철문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개를 향하여 손을 내밀어 머리를 만져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진돗개가 가끔 씩 보이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항상 그 집 철문 안쪽에 자리하고 있었던 진돗개가 그 자리에 없으면 혹시 병이 든 것은 아닌가? 세상을 떠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개의 수명이 12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갈수록 점점 개의 활동량이 줄어들더니 이제는 집 앞을 오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힘차게 짖어대던 그 용맹스럽던 짖음 소리도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습니다. 서있는 것도 힘이든지 볼 때마다 피곤해 지친 몸으로 배를 시멘트 바닥에 엎드린 채 움직이기를 포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바지런하고 그토록 생기가 넘쳤던 예전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우리 내외가 가까이 다가가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반갑게 맞아주며 흔들어대던 꼬리도 더 이상 흔들지 않습니다. 눈길조차 주는 것도 힘든 것처럼 보입니다. 어쩌면 자신의 운명을 아는 지 세상 떠날 순간을 기다리는 것처럼 생각 되었습니다.

그 개를 보면서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 했습니다. 주변엔 이런 개처럼 좋은 시절 다 보내고 외롭고 쓸쓸한 가운데 세상을 떠날 날 만을 병상에서 기다리며 고독한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건강상 이유로 그리운 고향과 옛 친구들을 보고 싶어도 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개를 보면서 나의 미래를 생각해 봅니다. 나의 삶도 살고 싶다고 원하는 만큼 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게 됩니다.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간 동안만 이 땅에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이 생명의 법칙을 벗어날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한번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명이 귀한 것은 예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예수 안에 구원 받은 우리의 생명에 대해서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016년 부활 절기를 맞으면서 우리가 생각지 못하고 상상하지도 못한 영원한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시어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주님의 크신 은총을 깊이 감사드리며 마지막 우리의 호흡이 다하는 날까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따를 것을 다짐해 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0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