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도시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수일 전 필자가 반백년 가까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 제일의 면적을 자랑하는 도시인 Los Angeles Downtown를 몇 부락 걸어본 일이 있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다닐 때는 미관상 거리 곳곳에 텐트를 치고 노숙하는 홈리스들이 보기에 좋지 않다고만 생각을 해 왔었는데 직접 그 곁을 지나며 걷게 될 때는 전혀 다른 느낌을 가져야만 했습니다.

보기에만 좋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저들이 노숙하는 곳에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해 보지 못했던 역하게 풍겨나는 악취가 너무 강렬해 그 곁을 지나는 사람마다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로 불쾌함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도시인 미국의 대도시에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냄새만 아니라 눈으로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오물의 자취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목도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저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왜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세계 모든 사람들이 동경하는 축복의 땅 미국에서 어쩌다 저렇게 되었을까?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건강하고 행복하며 세상이라는 징검다리를 통하여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하도록 보내셨는데 어쩌다가 주신 축복의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저렇게 천한 바닥의 삶에서 힘들어하며 고통 속에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 저렇게 사는 것이 누구의 잘못이고 누구의 책임입니까?

더구나 최근 뉴스에 의하면 지난 2월에 남가주의 날씨는 132년 만의 추위였으며 지난 수년 내 가장 많은 비가 내렸는데 피할 곳 없는 거리에서 그 비와 추위를 다 받으며 살아야 하는 저들의 기막힌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면 너무 불쌍하고 너무 안 되었다는 생각을 지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이 이제는 더 이상 천사의 도시가 아닙니다. 홈리스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인가요? 언제까지 이런 상태로 우리의 삶의 환경이 지속되어만 합니까? 우리가 사는 이곳의 홈리스 문제는 저들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저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냥 지켜볼 수만 없는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당면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어떻게 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시 의회에서도 계속 노력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이 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이 될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두고 볼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노숙자들의 숫자가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닥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2028년 제 34회 하계 올림픽이 7월 21일부터 8월 6일까지 이곳에서 개최되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모습으로는 올림픽을 개최할 수 없습니다.

도시가 새로워 지지 않으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오는 손님을 맞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를 위해서 우선 되어야 하는 것은 홈리스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 지방 정부만 아니라 나라 전체가 나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힘들더라도 홈리스 여러분들도 조금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해결하지 못하고 할 수 없었던 문제들을 해결해 줄 방법이 곧 나타날 것입니다. 가까운 시일에 지금보다 비교할 수 없는 보다 나은 삶의 환경이 정부로부터 제공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9년 후 개최되는 제 34회 하계 올림픽을 계기로 우리가 사는 이곳이 명성 그대로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천사의 도시가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이 도시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국제도시로 더 크게 발전하게 되리라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 일에 우리 모두가 마음을 합하게 될 것입니다.

Viva Los Angeles!

God Bless Los Angeles!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845

하나님 우리 가정에도 아들을 하나 주세요!

지금으로부터 33년 전 이었습니다. 필자가 속한 노회 안에 Los Angeles 한인 타운에서 동산교회를 시무하시는 박은규 목사님의 아들 결혼식에 초대 받았습니다. 당시 제게는 9살 그리고 7살의 두 딸이 있었습니다. 모두 이곳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전에는 아들이 없는 것에 대하여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결혼식장에서 60세 되시는 박 목사님이 며느리를 맞는 예식을 보면서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나도 그 나이가 되면 며느리를 봐야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여유롭지 못한 이민교회 목회자로서 두 딸을 키우는 것으로 만족했던 것은 자녀가 늘어나는 것에 대하여 재정적인 부담을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내에게 그런 나의 마음을 설명하면서 비록 늦기는 했지만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아들을 주시길 매일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2년 동안 기도하고 나서 3년 만에 아들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 때 부인의 나이가 38살 이었기에 해산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산 하는 날은 월요일 오전이었습니다. 부인은 여느 날과 같이 오전 7시 반에 집에서 떠나 직장으로 운전을 하고 출근을 했습니다. 그런데 직장에 도착하자마자 해산을 할 것 같다고 전화로 급하게 연락이 와서 곧 바로 20여분 차로 달려가 만삭이 된 아내를 차에 태우고 해산할 병원을 향하여 빠르게 운전을 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출산하기 2일 전 토요일에 해산할 병원을 사전에 답방을 한 것입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아니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날 답방을 하지 아니했으면 길에서 해산을 할 뻔 했습니다. 진료는 의사 사무실에서 하지만 해산 할 때는 산부인과 의사가 소속되어 있는 큰 병원에서 하기 때문입니다.

그 때만해도 지금처럼 Google map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상시를 대비해서 사전에 빠르게 가는 길을 알아 두어야 했던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큰일을 당할 뻔 했던 것은 집 사람이 병원에 도착해서 분만실로 들어간 지 10분도 되지 않아서 아기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담당 의사가 연락을 받고 왔지만 이미 해산을 한 후 이었습니다. 특별하고 감사한 것은 이미 두 번의 해산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산고의 고통을 크게 느꼈습니다. 여러 시간 동안 견디기 어려운 산고로 힘들어 할 때마다 곁에서 지켜보는 나도 몸 둘 바를 몰라 했었는데 아들 때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너무 쉽게 몸을 푼 것입니다. 모두가 염려했었습니다. 둘째 딸을 해산한지 10년 만이었기 때문에 본인도 고생을 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너무 쉽게 몸을 푼 것입니다. 그 일이 얼마나 감사하고 큰 은혜인 것을 남자는 알기 어렵지만 부인은 알기에 크게 주님께 감사했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을 해도 당시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임을 감사하게 됩니다. 만일 조금만 길에서 시간을 허비했어도 큰일을 당할 뻔했습니다. 늦은 나이에 아기를 가졌기에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해산달에는 직장을 쉴 것을 몇 번 권했지만 그럴 때마다 힘들지 않다고 말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해산 하는 날까지 직장에 출근을 했던 것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제라도 아들을 주시기 위하여 기도할 동기를 부여해 주신 박은규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내외의 기도를 외면치 아니하시고 응답하시어 큰 어려움 없이 해산할 수 있도록 은혜 베푸신 주님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그 아들이 지금 30살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 때 기도하지 아니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를 가끔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은 기도한 것 이상으로 큰 은혜와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아들은 Georgetown University를 전액 장학생으로 졸업을 하고 Stanford 대학원에서 International Political Economy를 전공했습니다.

넉넉지 못한 이민 목회자의 자녀로서는 학비가 비싸기로 소문난 대학이기에 처음 그 학교를 가겠다고 했을 때 쉽게 동의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로 무사히 어려운 공부를 마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장차 어디로 어떻게 인도하시어 어떠한 감사와 영광을 받으실지 기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840

이것은 무엇을 위하는 행동입니까(2)?

좁은 한인 타운의 많은 사람의 입에 우리 교회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발 없는 말이 십리를 간다는 속담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평강교회가 문을 닫았다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해져 갔습니다.

그 즈음에 뉴욕에서 교단 연례행사가 있어서 LA 지역에 있는 교단 산하 목사님들이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향하던 중 비행기 안에서 있었던 대화 내용을 들려주었습니다. K 목사님이 하신 말씀은 이러했습니다. “평강교회가 교회당 건물을 위하여 기도를 하고 있다면서요, 평강교회가 교회당 건물을 허락받는 것은 홍해가 갈라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인데요”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만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의 남은 교인들의 숫자와 실력을 정확히 알기에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홍해가 갈라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그것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두 달여 만에 교회당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하나님은 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자의 기도를 외면치 않으셨습니다. 4년 동안 쉬지 아니하고 강청한 여러 사람의 기도를 사람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응답하셨습니다. 교우 중 청년 집사가 부동산 면허를 받고서 처음으로 일한 것이 우리 교회당을 구입케 한 것이었습니다.

교우 중 서독에 간호사로 오래 근무하다가 이민을 오신 여자 집사님이 백혈병으로 Cedars Sinai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었는데 병원에서 환자를 위해서 헌혈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교회에 광고를 했습니다. 그 때 헌혈을 하기 위해서 K장로님과 필자 그리고 한국에서 이민 온 Y 집사님이 병원을 방문하고 헌혈을 했습니다.

헌혈 후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집사님의 소개로 교회 건물을 보기 위한 장소로 이동을 했습니다. 건물을 사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청년 교인의 말이기에 거절할 수 없어서 아무런 계획도 없이 방문을 한 것입니다. 그 때 병원에 동행을 하셨던 Y 집사님이 교회당 건물을 둘러본 후 나는 간이 나빠서 헌혈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건물을 구입 하겠습니다라고 말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가지만 해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말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건물을 구입하기 위한 다운페이먼트 55,000.00불을 단번에 내어 주시므로 즉시 건물주인으로부터 키를 물려받고 건물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한 달 동안 건물 안과 밖을 단장한 후 그동안 사용하던 흑인 교회에서 교회 설립 5년 4개월 만에 이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평강교회가 건물을 샀다는 소문이 다시 나기 시작했습니다.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확인을 하기 위해서, 혹은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을 보기 위해서 여러 사람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교회 건물을 주시길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잘못된 기도이며 강도의 기도라고 했던 교인들도 구경삼아 교회에 와서 눈으로 확인을 하면서 역시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말을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교회당 건물을 받기 위하여 4년 여 동안 기도한지가 벌써 34년이 지났습니다. 그 때 그 기도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직도 다른 교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교회 저 교회 옮겨 다니며 지금도 셋방살이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33년 동안 사용하던 교회 건물을 지난 해 12월 초 팔고 지금은 기도하면서 새 교회 건물을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막연하게 기도했지만 지금은 큰 목돈을 가지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감사하면서 우리에게 주실 교회당 건물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가까운 시일에 다시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새 교회당 건물을 여러분 앞에 들어 내놓고 감사와 영광을 돌릴 날을 기대해 봅니다.

기도가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큰 축복인가에 대해서 요 14장 13-14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821

이것은 무엇을 위하는 행동입니까(1)?

평강교회를 설립하고서 첫 주일 예배를 드린 곳은 다저스 야구장이 있는 엘리시안 공원 이었습니다. 1981년 1월의 첫 주일이었습니다. 당시 공원은 싸늘한 겨울 날씨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 한산했습니다. 개척을 하는 교회마다 예배 처소 구하기가 지금도 쉽지 않지만 당시도 그러했습니다.

예배처소를 구하기까지 2달 동안 공원 예배가 계속되었습니다. 11시 예배 후 같은 장소에서 점심을 나눈 후 곧 바로 오후 예배까지 드렸습니다. 어느 주일에는 비가 내린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것은 당시의 교인들이 비를 피해가면서 공원 예배드리는 것에 대하여 불평하거나 불만을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두 달 만인 3월 첫 주일에 예배 처소로 허락받은 곳은 침례교회에 속한 흑인 교회당이었습니다. 예배 시간은 주일 오후 1 시 30분이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주일 저녁 7시와 수요일 밤 7시, 그리고 매일 새벽기도까지 허락을 받았습니다. 예배 당 사용 시간으로 보면 흑인 교회보다 우리가 더 많이 사용한 것입니다.

5년 2개월 동안 그 교회를 사용하고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교회당 건물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교회 건물을 주시기 위해서 기도를 하게 된 동기가 있었습니다. 부산 수영로교회를 담임하시는 정필도 목사님 때문이었습니다. 정 목사님이 저희교회 처음 외부 강사로 오셔서 한 시간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부산에서 수영로교회를 개척하고서 교회 건물을 주시기 위해서 기도한대로 하나님이 주신 응답에 대한 간증이었습니다. 그 간증을 듣기 전까지는 교회당을 달라고 기도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형편이 너무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약하지만 하나님은 강하신 분이시고 크신 분이십니다.

곧 바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영로교회의 기도를 들으시고 축복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예배당을 주시옵소서! 공적인 예배 시간마다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매 주일 새벽 기도회가 끝나면 기도회에 참석한 교우들이 흑인 교회당 건물을 한 바퀴 돌고서 기도 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4년 여 동안 기도를 해 오던 중 어느 날 흑인 교회 교인들이 새벽에 교회당을 도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긴 것입니다. 흑인 교회를 담임하시는 목사님이 정중하게 묻었습니다. “주일 새벽 기도를 마친 후 목사님이 앞에 서서 교인들을 인솔하고 교회당을 한 바퀴 도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이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교회당 건물을 우리에게 주시길 기도한다고 말했습니다. 특별한 반응이 없이 듣고 마는 줄 알았습니다. 3-4개월이 지난 후 어느 날 흑인교회 목사님이 정말로 이 교회당을 인수 받기를 원하느냐고 질문을 해 왔습니다. 이 건물을 팔고 흑인이 많이 사는 곳으로 이사를 가려는 계획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인수하기로 하고 가격 흥정에 들어갔습니다. 132만 불에서 출발한 가격이 몇 달 동안의 흥정으로 920,5000불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러는 동안 건축위원회를 구성하고 미국교회와 매매 계약 서류에 싸인을 했습니다. 당시 계약금으로 2000불을 지불했지만 은행에는 잔고가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3 개월 후 다운페이먼트로 20만 불을 지불을 해야만 하기에 교회 앞에 그 간의 사정을 알리고 특별 헌금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당시 건축위원회 위원이며 피택장로였던 P 집사님이 반기를 든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잘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강도의 기도라는 것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돈을 가진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3개월 이내에 20만 불의 돈을 만들어 내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은 이 교회를 더 이상 나오지 않겠다고 여러 교인들 앞에서 선포하고 교회당을 떠났습니다. 나중에 자신이 낸 2000불의 건축헌금도 돌려달라고 해서 당회의 결의로 되돌려 주었습니다.

문제는 P 집사님 한분으로 그치고 만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의 뒤를 따라 여러 가정이 교회를 떠난 것입니다. 건축헌금을 할 수 있는 분으로 믿었던 분들이 떠나간 것입니다. 다음 주일이었습니다. 예배 당 안은 썰렁했습니다. 남은 교인들의 숫자보다 나간 교인들의 숫자가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개척하고서 처음으로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서 너무 낙심이 되어서 할 말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 때 K 장로님이 저를 위로하셨습니다. “목사님! 우리 다시 개척하는 겁니다. 다시 시작하십니다.” 그 때 장로님의 그 말씀이 아니었으면 다시 일어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790

세 번의 자살 시도 후 부르짖은 아모스의 기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를 찾으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아모스 5 장 4 절과 8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좋아하는 이유는 죽음의 그림자가 왔을 때 나를 살리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삶에 대한 희망이 없었습니다. 자고 나면 생각하는 것이 죽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만나는 의료인들이 같은 말을 했습니다. 남은 생명이 몇 개월 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밤에 죽으면 흰 천에 덮여 차가운 시체실로 들어가야 합니다.

영구차에 실려 고향 땅 선산에 묻히게 될 때 나의 몸을 부둥켜 앉고 통곡하실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질 듯 했었고, 친구 중 산까지 올라와 나를 위해 울어줄 사람은 누구일까를 생각하면 한 밤 중에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앉고 일어서는 것도 힘이 들었고 조금만 언덕진 길을 걸어도 온 몸에 땀이 비 오듯 했습니다.

온 몸은 피멍으로 얼룩져 있었고 몸에서 한 번 피가 흐리기 시작하면 멈추질 않아 응급실로 시도 때도 없이 달려가야만 했습니다. 피의 응고작용을 하는 혈소판이 정상치의 수백분의 일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몸에서 피를 만들어 내지 못하기 때문에 반복해서 수혈을 하지 아니하면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유롭지 못한 가정 형편상 더 이상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상황에서 어머님과 남은 가족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선한 일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가정 형편도 돕고 반복되는 두려움과 견디기 어려운 아픔도 끝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단이 서자 즉시 실행으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받은 약이 있습니다. 엽산인데 세병을 땅 바닥에 쏟아 모으고 입으로 집어넣었습니다. 맨 입에 잘 넘어가지 않았지만 600알 정도의 알약을 여러 번에 걸쳐서 삼켰습니다.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다음 날 깨어난 것입니다. 약으로 실패한 후 다시는 약으로 죽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두 번째 방법이었습니다. 집에서 40-50미터 떨어진 곳에 국도가 있었습니다. 큰 차들이 오고 가는 곳입니다. 큰 차에 달려들면 쉽게 죽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버스나 대형 트럭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마주 오는 차를 향하여 눈을 감은 채 몸을 던진다고 했는데 뜻대로 되지를 않았습니다. 며칠 그런 시도를 하다가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운수업을 하는 분들과 운전하시는 분에게 큰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생각한 것이 물에 빠져 죽자는 것이었습니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몸에 상처하나 입지 아니하고 죽었습니다. 집에서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호수가 있습니다. 긴 호수 제방 뚝 중앙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물속을 내려다봅니다. 이제 여기가 나의 삶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 생각을 했습니다. 결단하고 몇 미터만 내려가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왜 죽어야만 하는가? 이렇게 살고 싶은데! 누가 날 살려 주세요! 나는 살고 싶습니다.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큰 소리로 반복해서 외쳤습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오길 시작합니다. 이 제방의 둑이 만들어져 큰물이 모인 것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만들었던 분들을 보지 못했지만 분명한 것은 나의 이전 어르신들이 만드신 것입니다. 저 눈 앞에 보이는 도로 양편에 즐비하게 늘어선 가로수들도 저절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가 심어서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하늘의 해와 달 별도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우연히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디자인 하시고 자리를 지키게 하시며 운행하시는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 능력으로 나를 살려 주세요! 그러면 내가 당신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절대자가 계신 것을 믿었습니다. 의학이나 병원이 할 수 없는 것도 그 분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습니다. 그 능력으로 나를 살려달라고 온 힘을 다하여 부르짖기를 얼마나 했는지 모릅니다.

그 때 나의 몸이 갑자기 뜨거워지기 시작하면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길 시작합니다. 그렇게 많은 눈물을 지금까지도 흘려보지 못했습니다. 긴 시간이 지나간 후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마음의 평안이 자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죽음의 문전에서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만져 주셨습니다.

놀랍게도 지금까지 47년이 지났지만 수혈을 받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당시 세브란스병원의 한지숙 박사님이 변화된 나의 건강 상태를 가지고 일본 혈액학회에 가서 보고했지만 치료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지 못한 것은 이전에 그런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 될지 알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부터 보이지 않은 손에 이끌려 미국에 오게 되었고 이곳에서 UCLA 의과대학 혈액학 주임교수이신 Nicolas Costea 박사님께 인도 되었고 미국에 온지 8-9개월 만에 완치 지단을 받은 것입니다. 그 때 박사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왜 너의 병이 어떻게 나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의학적으로 완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고 낮과 밤을 바꾸시는 그 이름이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지 아니했으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지금까지도 그러하셨듯이 앞으로 계속 동행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779

기도 중 받은 특별한 은혜(2)

팜데일 기도원은 미국인이 운영하는 기도원이지만 당시만 해도 한인이 운영하는 기도원이 없어서 한인들도 그곳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필자가 그곳에서 기도할 때 몇 분이 함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크리스찬투데이 발행인이신 서종천 목사님과 다우니 지역에서(특수사역) 장의사를 운영하시는 정영목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두 분은 일주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셨습니다. 당시 기도하시던 분 가운데 나에게 큰 은혜를 주신 분은 박대희 목사님 이셨습니다. 박대희 목사님은 80년대 초 한인 이민사회에서 손꼽히는 대형교회중 하나인 나성한인감리교회를 담임하고 계셨습니다. 장년 교인이 400여명이나 되는 큰 교회를 섬기고 계셨습니다.

기도원에 올라오는 사람마다 특별한 기도의 제목으로 금식을 하지만 박대희 목사님은 우리들과 같은 내용의 기도를 하시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이미 박대희 목사님은 모든 것을 다 이루신 분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저녁에 기도원에 오신 이유에 대해서 질문을 드렸습니다.

휴가차 기도원에 쉬러 오신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말을 들었습니다. 당시의 박 목사님은 은퇴를 몇 년 앞두고 계셨습니다. 평생 목회를 해 오시면서 늘 마음에 소원을 가진 것이 있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처럼 신유의 은사 받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방언의 은사도 받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설교의 능력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강단에서 설교할 때마다 아멘 할렐루야로 화답 받는 능력을 사모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이런 기도를 가질 수 없을 것 같아 생애 마지막으로 능력 목회를 하고 싶어 사모님과 처음으로 일주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응답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이제 날이 밝으면 하산을 해야 하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필자의 곁을 떠나실 때 크게 실망하신 얼굴을 보이셨습니다. 다음날 이른 새벽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조용하시고 작은 소리로 말씀하셨던 박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날 새벽은 평소의 박 목사님이 아니셨습니다. 기도원에는 나 말고도 다른 외국인들도 있었는데 상관치 아니하시고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는 큰 소리로 제 방 앞에서 외치고 계셨습니다. “이 전도사! 나 기도 응답 받았어요, 예수님을 뵈었습니다. 어서 문을 열어요!” 하시면서 문을 두드리고 계셨습니다.

문을 열자 박 목사님은 방금 전 주님을 만나셨다고 떨리는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일주일동안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으셨던 주님이 하산하기 전 박 목사님 방에 갑자기 나타나시어 말씀하시며 네가 그토록 오랫동안 원하던 것이니 받으라고 하시어 두 손을 펴 공손이 주신 것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주신 것을 보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공사판에서 쓰다가 버린 못대가리도 없고 녹이 슬고 휘어진 서너 개의 쓸모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박 목사님이 예수님께 조용하게 항의를 하셨습니다.

“예수님! 제가 원하던 것은 이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나는 신유의 능력을 원했습니다. 설교의 권능을 원했습니다. 방언의 은사를 원했습니다. 기도하면 귀신이 물러가는 은사를 원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신 예수님이 박 목사님에게 말씀하시길 “네가 구한 모든 것들은 지금까지 네가 강단을 지켜온 것에 비하면 다 이런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즉시 자신의 기도가 잘못된 것임을 깨달으셨습니다.

구한 것보다 이미 더 크고 비교할 수 없는 큰 은혜와 능력 받은 것을 알게 되신 것입니다. 그 말씀을 하실 때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하산했을 때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났듯이 예수님을 만나신 박 목사님의 얼굴은 붉게 흥분되어 계셨고 떨리셨던 박 목사님의 말씀은 내 가슴에 화살처럼 박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나의 기도의 방향이 은사와 능력주시길 위해서 기도하던 것이 말씀의 은사 받기를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박 목사님의 응받 받으신 것을 듣기 전에는 최복규 목사님, 이천석 목사님, 강달희 목사님 같은 부흥사가 되기를 기도했었습니다. 그 기도를 즉시 중단하고 말씀목회를 할 수 있게 기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771

기도 중 받은 특별한 은혜

다섯 가지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원에 갔던 때가 일 년 중 가장 더운 7-8월 이었습니다. 기도원이 있는 곳은 사막이었기 때문에 여름이면 매우 더운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낮에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뜨거운 태양 빛을 피하여 좁은 방에서 머물러야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금식 경험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한 준비도 하지 못했고 금식이 끝난 후 어떻게 회복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도 갖지 못했습니다. 후에 안 것은 나의 이러한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33일이 되는 날 부터는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면 1 분도 안 되어서 구토를 하게 되는데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후에 안 것은 위 안에 염분이 없어서 마시는 물이 즉시 밖으로 토해져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것을 알았다면 물을 마실 때 소금을 조금씩 먹었더라면 그렇게 힘든 시간은 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30여일 지난 후 부터는 권사님 두 분이 끝까지 곁에서 도우셨습니다. 기도를 마치는 날 몸무게가 평소의 반으로 줄었습니다.

그 때 L 권사님의 며느리가 간호사셨는데 약해진 몸의 부족한 수분을 채우셔야 한다고 두 병의 링거를 가지고 방문했다가 시어머니 권사님에게 제 앞에서 크게 야단을 맞고 돌아가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기도를 마치고 오신 목사님을 그런 방법으로 회복케 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나는 그 권사님이 그렇게 미워 보이실 수가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물도 음식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미음을 조금 마셔도 배 안에서 엄청난 고통과 함께 열이 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안 것은 창자가 말라서 꼬인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금식 기도의 경험이 많으신 분이 큰 수박을 두통 가져오셨습니다.

수박을 썰어 천에 말아서 즙을 낸 것을 마시게 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어떤 것도 받지 않았던 몸이 수박 물은 넘길 수 있었습니다. 죽기를 각오한 기도였습니다. 의미 있는 삶을 살지 아니할 바에는 살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한지 4-5일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방안에 도너스의 향기가 밀려 들어왔습니다.

이곳은 사막인데 어디에서 이렇게 맛있는 음식 향기가 난다는 말인가? 아무래도 이 특별한 향기는 세상의 것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어쩌면 나를 돕기 위해서 하늘의 맛나를 보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부터는 어느 방향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도너스 향기가 나는지 살피기로 한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도 기도를 하는 것도 집중이 되지를 않았습니다. 냄새를 살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시간 이후 그 아름다운 냄새가 다시 나지 아니한 것입니다. 지금도 생각하는 것은 내가 기도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 하늘에서 보내준 만나의 영양으로 기도를 마칠 수 있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기도한지 10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33호실 방은 좁은 공간입니다. 간이침대와 작은 책상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있는데 방안에 싸늘한 기운이 느껴지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뒤로 돌려 방바닥을 살피다가 놀라고 말았습니다. 독성이 강한 불 뱀이 나를 노려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막의 불 뱀은 길이가 1 미터 정도 되는데 검은 점과 붉은 점이 있는 맹독성을 지닌 뱀입니다. 급히 일어나 밖으로 나가 몽둥이를 들고 왔습니다. 불 뱀이 나를 보고도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작은 책상과 의자를 밖으로 끌어내고 몽둥이로 뱀을 잡았습니다. 얼마나 세차게 여러 번 때렸는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틀 후에는 옆방에서 같은 크기의 불 뱀이 대낮에 나타났습니다. 흑인 여인 두 명이 기도하던 방이었습니다. 함께 기도 중이던 10명이 모여서 그 뱀도 잡았습니다. 흑인 두 분은 기도를 중단하고 하산을 했습니다. 그 밤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시 뱀이 잠든 사이에 나타나면 죽을 수도 있는데 하는 염려였습니다.

그 때 다른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시험이다. 이 시험을 극복하지 못하면 기도를 마칠 수 없다는 생각이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 죽기로 각오하고 시작한 기도가 아닌가? 여기에서 밀리면 무슨 응답을 기대하겠는가? 다행히도 기도가 끝나기까지 다시 불 뱀이 나타나지 아니했던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747

교회만 섬기게 해 주세요!

교회를 설립하고 한 교회를 섬겨온 지 38년이 지나감에 따라 마냥 젊을 것 같았던 나의 청년기도 어느 덧 다 지나가 버렸습니다. 검고 풍성했던 머리카락은 어디로 갔고 듬성듬성 남은 머리는 반백이 되었으며 멀게만 느껴졌었던 목회 정년의 때가 바로 눈앞에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2019년 새해를 맞으며 지난날을 돌아보니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 전적으로 주님의 도우시는 은혜였음을 고백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그동안 감사하는 마음으로 반복해서 생각을 해 오던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께 받은 기도의 응답을 글로 써 남기고 싶은 것입니다.

때가 된 것 같아서 구한 것을 응답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글을 쓰고 싶은 것입니다. 필자가 받은 은혜 중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싶은 것은 사역에 대하여 응답하신 것입니다. 지금도 주변의 동역자들 중에서 교회일 만 하고서 생활을 하시는 목사님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상당수의 교회를 담임하시는 목사님들이 다른 일을 하시면서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해 오고 계십니다. 초창기 이민 교회도 그랬습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목사 안수를 받았지만 일할 곳이 없었습니다. 교회에서 청빙을 받는다 할지라도 충분한 사례비를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두 가지 일을 다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어려운 병에서 기적 같은 생명으로 살려주신 은혜를 생각할 때 마다 얼마나 살지는 모르지만 남은 생명을 다 주님께 바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택한 것이 하나님께 기도로 도우심을 구하기로 한 것입니다.

1980년 7월에 시작해서 40일간 Palmdale에 있는 미국인 기도원으로 향했습니다. 죽기를 각오한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죽을 목숨을 살려 주셨는데 아무렇게나 살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니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주의 종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환경의 복을 주시기 위해서 기도한 것입니다.

그 때 기도한 기도의 제목은 5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영주권을 주시길 기도했습니다. 당시 7년 반 이상 서류 미비자로 살고 있었는데 나의 실력으로는 영주권을 얻을 길이 없었습니다. 두 번째 기도는 목사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세상일 하지 아니하고 교회일 만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세 번째 기도는 주의 일을 하는 동안 말씀의 기근을 당하지 않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언제 어떤 장소든지 말씀을 전할 기회가 주어지면 필요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은혜 주시길 기도한 것입니다. 네 번째 기도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있으나 마나한 종이 아니라 필요한 종이 되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섯 번째는 세상과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지 않는 목사가 되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금식기도 2 달 후 10월 정기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고, 그 후 다시 두 달 후 평소 존경하던 장로님으로부터 교회 개척 요청을 받았습니다. 장로님은 교회 이름은 물론, 교회 등록까지 하셨습니다.

바로 이민변호사에게 가셔서 1년 만에 교회 이름으로 가족 모두 영주권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 장로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한 교회를 섬겨오고 있습니다. 그 동안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적도 있어서 몇 번 다른 일을 해 보고 싶은 유혹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기도하던 때가 생각이 났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니 지금까지 나의 나 된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였으며 도우심이었을 고백하며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너무나 부족한 종을 여기까지 선하게 인도하셨습니다. 남은 사명의 길 동안도 실족하지 않도록 지켜주시고 계속 형통한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기도드립니다.

40년 전 더운 여름 기도원에서 그 기도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 때 그 기도가 지금도 응답의 열매를 받고 있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728

33년 동안 사용하던 교회건물을 매각하면서

지난 해 11월 말 33년 동안 우리가 사용해 오던 평강교회당 건물이 팔리게 되었습니다. 당회가 매각을 결정한지 4개월 만이었습니다. 그 동안 몇 차례 교회 건물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갈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번처럼 당회가 결의하고 책임자를 선정해 매각을 실행하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교회 건물을 매각하려고 했었던 것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하여 볼 때 교회 성장에 필수 요소중 하나가 장소의 중요성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장사만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회 성장도 장소가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당 건물을 팔기로 결정하면서 걱정이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무를 담당하는 K 집사님에게 3가지 특별한 임무를 맡겼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좋은 조건,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그 동안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은혜 받아온 건물을 아무에게나 팔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한 3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술집은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교회와 길 건너 마주하고 있는 아름다운 교회당 건물이 수년 전에 술집으로 팔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는 그런 일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우리가 사는 미국 땅에서 그것도 바로 우리 교회와 마주하고 있는 교회당 건물이 술집으로 팔리는 것을 보면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오가며 그 건물을 바라볼 때마다 왜 이런 일이 청교도의 나라 이 땅에서 일어나는지에 대한 생각을 반복해서 해오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절에게는 팔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오래 전에 가까이서 모셨던 어르신이 섬기던 교회당 건물이 절로 팔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배 처소로 사용되었던 교회 건물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눈으로 확인을 하고 싶어서 였습니다. 교회당이 변하여 절이 된 것을 확인하는 순간 이거는 아닌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오랫동안 존경해 오던 어르신에 대한 믿음이 일순간에 무너져 내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슬람교에게 팔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최근에 가까운 친구 목사님이 예배 처소로 사용해 오셨던 미국교회당 건물이 무슬림에게 팔려서 급하게 새로운 예배 처소를 구하고 이전을 해야 하셨습니다. 빠르게 확장되어 가는 이슬람 세력들이 오일머니를 가지고 미국 내에 있는 교회당 건물을 공격적으로 매입하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교회당 건물을 매입한 분들이 우리가 염려하던 그런 분들이 아닌 좋은 매입자를 만나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교회당 판매 대급은 12월 초에 받았고 3개월 이내에 교회 건물을 비워 달라고 해서 이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사 갈 새로운 예배 처소를 구하고 있습니다.

지난 33년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회당 건물을 허락하셔서 지내오는 동안 여러 번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매월 지불해야만 하는 건물 페이먼트로인한 어려움이었습니다. 언제나 그 고통스러운 시간에서 벗어나나! 그럴 날이 있기는 한 것일까? 이대로 가다가 은행에 건물을 빼앗기는 것은 아닌가?

셀 수 없이 염려했던 이런 걱정들은 건물을 받은 달부터 지난 30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3년 전 건물 페이먼트를 다 갚았을 때는 그렇게 힘들고 무겁게 눌림을 받아온 고통에서 해방을 받는 기쁨을 경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에 교회당 건물 판매 대금을 받고 보니 그 동안의 아픔이 축복의 선물이었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를 사랑하시는 주변의 여러 분들이 평강교회가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해서 걱정을 해 주시고 계십니다. 저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알고 믿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교회를 도우시고 선하게 인도하신 주님이 우리 앞에서 일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714

칼럼 및 자서전 출판기념회 답사

살다보니 이런 영광스러운 날도 만나게 되는군요! 나의 계획으로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년 중 가장 분주한 때임에도 불구하시고 이 날을 기억해 주시고 이렇게 귀한 시간 내어 주시어 먼 길을 달려 이 자리를 빛내주신 여러분 한분 한분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평소 가까이서 크게 존경하는 어르신들께서 귀한 순서를 맡아 주시고 주옥같은 말씀을 주심에 대하여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책을 출판했다는 소식을 들은 주변의 목사님들이 제게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아무런 소문도 없이 언제 그런 준비를 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시면서 묻는 질문은 비용이 얼마나 들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목사님들이 바라는 소망은 다르지 않습니다. 설교집이나 칼럼 그리고 자서전을 출판하는 것입니다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내는데 돈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돈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십 수 년 동안 크리스찬투데이의 금 같은 지면에 부족한 사람의 글을 실어 주신 것도 귀하고 감사한 일인데 이번에 이렇게 아름다운 책을 출판할 수 있도록 저를 강하게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 책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크리스찬투데이 발행인과 사장님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 시간 특별히 감사드리는 것은 자서전 (야곱의 고백)출판을 위해서 크게 수고하신 아름다운동행의 박에스더 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수년전부터 이곳에 오실 때마다 저에게 자서전을 내야 한다고 말씀하실 때마다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제가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럴 때마다 박에스더 사장님이 반복해서 하시던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이 목사님은 빚이 있지 않으십니까? 하나님께 받은 특별한 은혜가 있지 않으십니까? 그것을 감사드려야 하지 않습니까? 라고 하시는 말씀에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내가 주님을 모르던 때에 죽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는 겁니다. 주님도, 천국도 하늘의 상급도 얻지 못했을 텐데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의학적으로 치료가 어려운 병이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한국의 모든 병원이 1972년을 넘기지 못한다고 했었습니다. 한 때 서울 세브란스 병원만 4 번 입원 했었습니다.

마지막 입원은 40일 동안 있었습니다. 당시 나의 몸의 상태는 혈압이 60/25, 맥박이 일분에 330번까지 뛰었습니다. 혈압이 너무 약하게 뛰니까? 심장에 청진기를 대고 박동 수를 세어야 했습니다. 혈압이 내려가니까? 피가 신체 전 부분으로 공급이 되지 않아 발끝 손끝에서부터 굳어져 갑니다.

심할 때는 헤모글로빈의 숫자가 2-3까지 내려간 적도 있었습니다. 일 년 이상 반복 수혈을 통하여 생명을 이어가야 했었습니다. 그런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났습니다. 당시 중앙일보 사회장이셨던 김천수선생님이 치료 되었다는 말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목사가 산 것은 이 목사님의 하나님이 살리신 겁니다.

이 목사의 병이 자연적으로 치료될 확률은 3-400년 만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당시는 몰랐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를 살리신 분은 의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모 형제도 아니고 나의 수고나 노력으로 산 것도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살리시고 여기 이 자리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를 빛내 주신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리면서 인사의 말씀을 마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6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