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크게 존경하던 원로와의 유익한 만남의 시간

K 목사님은 로스앤젤레스 한인 타운의 역사적인 교회 가운데 하나인 L H 한인교회를 섬기시다가 정년 은퇴하시면서 오랫동안 생활의 터전으로 삼으셨던 교회가 있는 로스앤젤레스를 떠나 타주에서 생활하시다가 수년 전 필자가 사는 곳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여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K 목사님을 후배 목사님들이 크게 존경하는 것은 필자가 속한 교단의 원로 중 한 분으로서 후배 목회자들에게 섬김의 본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K 목사님에 대해서 필자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느 덧 나의 목회도 수년 내에 정년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담임목사님이 물러나면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K 목사님이 섬기셨던 교회는 그런 문제없이 조용하고 평안한 가운데 후임 목사가 담임을 이어 받았고 이후 교회도 큰 어려움 없이 안정된 궤도에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오래전에 K 목사님이 담임에서 물러나면서 교회를 멀리 떠나 타주로 떠나셨다는 소식을 듣고서 참으로 어려운 결정을 내리셨다는 말을 후배들이 모이면 했었습니다.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해도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결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평생을 섬겨온 교회와 성도를 쉽게 떠날 수 있습니까? 필자가 35년 동안 동일한 지역에서 동역자로 교제를 이어가고 있는 P 목사님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K 목사님을 찾아뵈올 때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노년의 선배 K 목사님은 우리가 원하는 만남의 요청을 기쁘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목회자가 주중 하루를 비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P 목사님과 필자는 K 목사님을 찾아뵙는 것을 귀한 것으로 알아 지난 주 먼 거리를 함께 운전하고 달려가서 원로목사님과 사모님을 만나서 정겨운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같은 교단을 섬기면서도 K 목사님이 교회를 담임하시는 오랜 기간 동안 지금과 같은 사적인 만남의 시간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노회나 총회로 모일 때 공적인 장소에서 만난 것 외에는 달리 만날 시간의 여유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적인 대화도 나누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만남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제껏 가져보지 못한 정말로 유익하고 귀한 만남의 시간이었습니다. 평소 알지 못하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비롯하여 목회 이야기, 건강에 관한 이야기 등 특별한 주제가 없이도 우리의 대화는 끊이지 아니하고 계속 이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누가 선배고 누가 후배인지 모를 정도로 우리의 대화는 격의가 없었습니다.

오랜만에 격의 없는 만남을 통하여 크게 웃을 수 있었고 서로간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멀게만 느껴졌던 선배 목사님과의 관계가 생각처럼 먼 것이 아님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만남을 원했던 우리만 유익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원로 목사님과 사모님도 만남을 통하여 너무 기뻐하셨고 행복해 하셨습니다.

이번 만남을 통하여 원로 목사님과 후배 목사님들의 만남이 계속 이어질 것을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한 것은 은퇴 후에도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해 나가시는 선배 목사님을 보면서 우리의 밝은 미래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앞에 불현듯 다가온 은퇴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에 대한 해답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남은 사역의 기간 동안 어떻게 교회와 성도를 섬겨야 하는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귀한 만남의 시간을 진작에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가져보았습니다. 친구 목사님과 먼 거리를 운전하고 돌아오면서 우리에게 아름다운 목회의 본을 보이신 K 원로목사님을 더 흠모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고 사랑 받는 목회자가 되어야 겠다는 다짐을 했으며, 가까운 시일에 다시 존경하는 선배님을 만난 것을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존경하는 K 목사님, 그리고 사모님 감사합니다. 남은 생애동안 더 건강하시고 행복 하시며 우리 곁에 오래도록 계셔서 목회하다가 지친 후배 목회자들이 힘을 잃고 넘어질 때에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259

삶의 아름다운 향기를 전하시는 샤론 사모님

필자가 창단 시부터 12년 째 섬기고 있는 남가주 목사장로 부부합창단은 매주 월요일마다 한인 타운 중심에 위치한 아가페선교교회에서 밤 6시 반부터 9시까지 70여 명의 단원들이 모여서 지휘자 이재경 목사님과 반주하시는 이샤론 사모님의 지도하에 큰 감동과 은혜 속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주 전 우리를 놀라게 한 소식이 합창단에 알려졌습니다. 그렇게 조용하시고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신 이샤론 사모님이 중한 병으로 큰 고통을 당하고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이샤론 사모님이 그렇게 어려운 병에 걸리셨다고 생각지 못했었기에 허탈과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늘 말없이 조용한 미소로 영감 넘치는 은혜로운 찬양 반주를 해 오셨기에 당연히 건강하신 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샤론 사모님이 아프신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오래전부터 반복되는 수술과 약물 치료를 해 오시다가 이제는 의학의 한계 점에 이르고만 것입니다.

세계 최고의 의술을 자랑하는 미국에서 더 이상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족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은 한국을 방문해서 새로운 치료의 도움을 받기를 기대하고 두 주전 한국을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결과는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도 사모님을 치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사모님에게 현대 의학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이 다 동원되어 더 이상 병원과 의사의 도움이나 약의 효력을 기대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필자의 아내도 오랜 기간 동안 어려운 병으로 투병 하다가 주님께 보낸 경험이 있기에 사모님과 가족이 당해셨을 아픔과 고통을 가슴 저리게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작은 희망을 품고 고국을 방문했다가 아무런 의학적 도움을 받지 못하고 돌아오셔야 했습니다. 우리는 생각했습니다. 그런 몸으로 이제는 합창단에서 사모님이 반주하시는 모습을 볼 수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샤론 사모님이 한국에서 돌아오자마자 합창단에 그 힘든 몸을 이끄시고 나오신 것입니다.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자리를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두 시간 동안 곧은 자세로 흔들림 없이 반주를 훌륭하게 잘 감당하셨습니다. 샤론 사모님의 의학적 상태를 아는 우리로서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려운 일을 만나면 하던 일도 중단을 하게 됩니다.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고 심각한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샤론 사모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사모님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선택하신 것은 생명이 다하는 그날 까지 하나님이 주신 반주의 은사를 온 힘과 마음을 다하여 하시기로 결심하셨다는 것입니다.

순간마다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와 두려움의 공포에서도 주님을 향한 헌신과 충성의 줄을 굳게 잡으시기로 다짐하신 것입니다. 그런 사모님의 아름다운 믿음의 선택과 결단이 우리에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너무도 존경스럽고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마치 구약의 에스더를 보는 것 같은 감동이었습니다.

자신에게 다가온 피할 수 없는 운명에도 죽으면 죽으리다는 일사각오로 싸워 자신도 살고 많은 사람을 살게 한 에스더처럼 이 샤론 사모님의 탁월하신 선택과 믿음을 우리 주심이 기쁘게 받으시고 속한 시일에 완전한 회복을 허락하시어 이전보다 더 큰 영광을 돌리시는 사모님과 사역이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이재경 목사님 그리고 이샤론 사모님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에게 힘든 모습을 보여주지 아니하시고 늘 잔잔한 미소로 사명을 감당해 오신 것에 대하여 경의를 표합니다. 우리가 어떤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 고난을 당할 때 가져야 할 믿음의 자세와 방법을 일깨워 주심에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222

시어머니 별세 소식에 뜨거운 눈물을 보인 어느 며느리

우리가 두고 온 고향 땅 한국에서 외롭게 홀로 살아가시던 고령의 시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서 이민자로 타국에서 살아가는 넉넉지 못한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함께 두 달 전 고국을 방문해서 병상의 시어머니를 크게 위로하고 돌아온 지 서너 주 만에 별세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소식을 듣자마자 남편만 장례식을 위하여 고국에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며느리는 마지막 가시는 길에 참석하지 못함을 서러워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조용히 흘리는 눈물이 아니고 몸부림치며 절제하지 못하는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근래 참으로 보기 드문 아름다운 광경이 아닐 수 없는 일 이었습니다.

우리 시대에 과연 어느 며느리가 이처럼 고령의 시부모님의 별세 소식에 그토록 서러운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요?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지만 시어머니를 위하여 그런 눈물을 보이는 것은 쉽지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익숙지 아니한 이런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우리 모두를 감동케 했습니다.

누구나 별세하신 시부모님을 위하여 잠시 눈물을 보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아름다운 부모 사랑의 진솔한 모습을 보여준 며느리의 시어머니를 향한 눈물은 그런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수일 동안 반복해서 큰 슬픔의 눈물을 보인 것입니다. 이틀 동안이나 몸져누워서 앞서가신 시어머니를 향하여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결혼한 지 30년이 지난 시부모님이라고 했습니다. 고국을 떠나 이민자로 살아가면서 아직도 여유롭지 못한 삶 때문에 마음은 간절하면서도 시어머님을 이곳으로 초청해 모시지 못했습니다. 살아생전에 이곳으로 모시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하고도 죄스러운 마음에 더 큰 아픔을 가지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진작 이곳으로 모시지 못한 것은 오랫동안 이 땅에 살면서도 미국 시민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이제는 어머니를 초청할 수 있는 시민권을 얻자마자 세상을 떠나신 겁니다. 큰 상심으로 울음을 억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던 어느 권사님이 며느리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사모하고 가야할 아픔과 고통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로 가셨는데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우리에게 천국이 없다면 슬퍼할 수 있지만 죽음을 통해서 주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축복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은 은혜 중 은혜이고 축복이며 영광이기에 주 안에서 보장된 구원의 길로 인도 받으신 시어머니를 감사와 기쁨으로 보내드리라고 권면하였던 것입니다.

주님을 남달리 사랑하는 며느리가 왜 이를 모르겠습니까? 그러면서도 서러움에 큰 눈물을 흘리는 것은 부모로부터 그 동안 받아온 큰 사랑에 대한 고마움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생전에 그 은혜와 사랑을 만 불의 일 이라도 돌려 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안쓰러움 때문이었습니다.

며느리 자신도 성년이 된 아들과 딸을 두고 있지만 부모님이 보이신, 부모님께 받은 큰 사랑처럼 자녀 사랑에 대한 사랑의 본을 따르지 못한 것에 대한 죄송한 마음도 있었던 것입니다. 시어머니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보면서 그 분의 아름다운 믿음과 주님을 본 받은 섬김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오랜 시간 한 교회를 섬겨오면서 우리에게 보여준 주님 사랑, 이웃 사랑, 교회를 섬기는 아름다운 자세, 이 모두가 깊은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칼럼을 쓰면서 에베소서 6 장의 말씀이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 말씀의 복이 부모 섬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 며느리와 그 가정 자손들에게 속히 이루어지는 것을 가까운 시일에 우리 모두는 보게 될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179

평창올림픽이 보여주는 감동의 눈물

전 세계인의 축제인 제 23회 동계올림픽이 고국 평창에서 성대하게 개최되고 있습니다. 우려와 기대 속에 기다려왔기에 이전 어느 때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TV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오프닝에서 감동의 장면이 연출될 때마다 입가에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경기가 시작이 되면서 관심은 커가고 있습니다.

지난 토요일에 있었던 촌각을 다투는 스피드 스케이트 한국여자의 릴레이 예선 경기는 손에 땀이 나게 할 정도였습니다. 이어지는 경기에선 스키 점프의 메달이 결정되었습니다. 독일 선수가 금메달을 땃습니다. 경기 후 건장한 체격의 청년이 우승 한 것을 알고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게 되었을 때 진한 감동이 필자에게도 전해졌습니다.

그 순간의 영광을 위해서 지난 오랜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반복되는 훈련과 절제된 생활, 땀과 희생이 있었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혹독한 고독의 시간과 부상 등으로 수많은 아픔을 견디어 왔었을 것입니다. 세상에 우연한 것은 없습니다. 저절로 되는 것도 없습니다.

운동 경기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업도 그렇게 직장도 그렇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마다 반복되는 노력과 자기희생이 없이는 지금의 자리를 유지하지도 지키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도 다르지 않습니다. 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기도를 잘하지 못하나요? 왜 나의 믿음은 성장하지 아니할까요?

교인들로부터 가끔 그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신앙 성장을 마음으로만 바란다고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원한다고 되지도 않습니다. 국가의 명예를 걸고 올림픽에 나가는 선수들이 되는 것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운이 좋아서 선발이 되어도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자기를 깎는 인고의 노력이 없이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결국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하는 곳을 지옥 훈련장이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힘이 든다는 것이겠지요! 그런 과정이 없이는 누구도 승리의 기쁨과 영광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받는 면류관도 기쁘고 자랑스러우며, 가문의 영광이요, 나라의 자랑이지만, 우리가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받을 면류관은 올림픽에서 받는 것 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이며 더 영원한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요한일서 5장 4 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다시 태어난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별하여 자녀 삼으심은 세상을 이기는 승리자가 되게 하심인 것입니다. 우리가 싸워 이겨야할 세상의 적은 무엇일까요? 믿음의 적, 신앙의 적은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까이에 있습니다. 우리가 싸워 이겨할 적은 자기 자신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어두움의 세력입니다. 나를 죄악으로 이끌고 나아가게 하는 악한 영입니다. 이것을 싸워 이기지 아니하고는 마음의 평안을 이룰 수 가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약 1 장 22절에서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변에서 도박으로 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약, 음주로 가정이 파탄 나는 것을 봅니다. 누가 그렇게 했습니까?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죄의 유혹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올림픽에 임하는 선수들이 철저하게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를 악물고 인내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도 하나님의 군사로서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반복되는 행동을 쉬지 않고 계속해야만 합니다. 예배도 일 년에 한번만 드리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매 주일 주님의 전에 나아가는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찬송도 반복해서 해야 하고, 기도도 반복해서 해야 하며, 성경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이런 행동이 반복되어야할까요? 주님께 부르심을 받는 순간까지 이런 믿음의 행동은 중단 없이 이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의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163

말도 안 돼요 어떻게 우리 나이가 이렇게 되었나요!

수일 전 어느 분과 전화로 대화를 하다가 서로 한바탕 웃었던 일이 있었다. “말도 안 돼요, 어떻게 우리 나이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70이라니 그 나이는 남의 나이인줄로만 알았는데 한 해가 지나면 내 나이가 되네요! 나보다 서너 살이 위이신 분이시다. 그 말에 저도 100%공감한다고 화답했다.

60, 70, 80은 한 번도 나의 나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나이는 나와 상관이 없는 나이로만 생각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나이가 남의 나이가 아니라 이제는 나의 나이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 앞만 보고 달리다보니 어느새 검었던 나의 머리는 파 뿌리처럼 하얗게 변해 있었다.

지나간 세월은 젊어서 풍성했던 나의 머리카락을 가을 낙엽처럼 소리 없이 사라지게 해 이전의 아름다웠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그렇게 보기 좋았던 주변머리와 소갈머리는 여기저기 빠져나가 보기가 흉할 정도가 되었고, 팽팽하던 피부는 주름이 늘어만 갔고 검게 변해있었다.

집 사람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는 흰머리가 보이기전에 염색 할 것을 항상 권했다. 그래서 주변에서 내 머리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 몇 달 동안 머리에 염색을 하지 않았다. 그런 백발의 나의 모습을 본 주변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났다. 염색을 왜 하지 않느냐고 하시면서 염색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하시는 분과 그대로도 보기에 좋다고 말씀을 하시는 분도 있었다. 권하는 분도 그렇고, 그렇지 않는 분도 나름대로 나를 위해서 하시는 말씀이기에 고맙게 받고 있는 것이다.

변하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아니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종합 검사를 받고 보니 속도 성한 곳이 없었다. 위장과 내장을 검사 후 치료 받았고 간도 지속적인 검사를 받아오고 있으며 지난 두 주 동안은 심장을 검사 받았다. 검사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것이 발견 되었다. 심장에서 밖으로 나가는 혈관 두 곳 이 막혀있어 다음 주에 병원에 입원을 해서 막힌 혈관을 뚫는 치료를 받게 된 것이다.

이번 일을 당하면서 집 사람이 생전에 자주 했던 말이 생각났다. “여보! 당신은 내가 죽기 전에 아프면 안 돼요! 내가 먼저 가야지 당신이 나보다 먼저가면 나는 어떻게 해요” 오랜 세월 동안 어려운 병으로 투병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불편한 몸이었기에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집 사람은 원했던 대로 5 개월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났고 이제 나의 몸을 돌보게 될 여유가 생긴 것이다. 막힌 심장 혈관을 뚫는 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권사님 한분이 전화를 주셨다. 목사님! 어떠세요! 얼마나 걱정이 되세요! 괜찮으세요! 겁은 나지 않으세요! 심장의사가 몇 칠전 내게 한 말이 있었다.

‘선생님은 Lucky 하다’는 것이다. 많은 분들이 병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치료시기를 놓치므로 위험에 빠지는데 나의 경우는 치료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심장에 이상이 있다든지 아니면 치료가 어려운 병이라면 염려도 되고 걱정도 되겠지만 심장이 아니라 혈관이 막힌 것은 치료가 되는 병이기에 안심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치료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의사가 곁에 계시고 좋은 병원에서 시술을 하게 되므로 이 모든 일에 하나님께 감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 모두는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이며 하나님이 정하신 길로 나아가는 것임을 깨닫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누가 가는 세월을 막을 자가 있을까? 누가 오는 죽음을 피할 자 있을까? 세상 누구도 하나님이 정하신 길을 거스를 자가 없는 것이다. 인생 누구도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지 못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가는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죽음의 문을 통하여 영생으로 들어가는 영원한 나라를 예비하셨습니다.

나를 향하신 사랑을 알기에 주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내가 거할 영원한 처소를 아버지의 나라에서 지금도 쉬지 아니하시고 아름답게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주님을 기쁘게 찬양할 수 있으며 큰 소리로 경배와 영광을 돌리길 원하는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122

수십 년간 쌓아온 신뢰를 한 순간에 잃을 뻔하다!

얼마 전 필자는 27-8년 동안 쌓아온 두터운 신뢰의 관계를 맺어온 여러 사람들과 나의 잘못된 판단과 부주의로 한 순간에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을 뻔한 일로 마음을 졸여야 했던 일이 있었다. 지난 두 달 동안 25년을 넘게 살던 집을 리모델링을 하던 때였다. 공사를 맡은 책임자는 이곳에서 태어난 멕시코계 사람이었다.

공사를 그 사람에게 맡긴 이유는 신뢰를 받은 만큼 나도 그 사람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은 Cali 이었다. 오래전에 이름의 뜻이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California에서 태어나서 Cali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었다. 그를 오래전부터 알았던 것은 그가 섬기는 교회가 우리 교회 안에 있기 때문이다.

한 지붕 아래 두 교회, 한인교회와 멕시칸 교회가 시간을 달리해서 예배당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31년 전에 교회당을 구입하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았을 때 아무런 예고도 없이 멕시칸 목사님이 찾아 오셨다. 예배 처소를 구하고 있는데 우리가 사용하지 아니하는 시간에 교회당을 사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 시절만 하더라도 한인교회가 다른 인종의 교회와 교회당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 흔치 아니하던 시절 이었다. 37년 전에 우리도 교회를 처음 시작하면서 예배 처소를 구하지 못해서 두 달 동안 공원에서 야외 예배를 드리다가 어렵게 허락 받은 곳이 흑인 교회당이었다. 그곳에서 5 년 반 동안 셋방살이를 해본 경험이 있어서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려웠던 시절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였다. 그러면서도 행여나 우리가 생각지 못한 일들로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지 아니할까하는 염려를 하면서 조심스럽게 예배당 사용을 허락한 것이다. 처음에는 잠시 우리 교회를 사용하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갈 것으로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함께 교회당을 사용해 오고 있는 것이다.

멕시칸 교회가 재정실력이 약해서 정한 헌금을 매월 이행치는 못하고 있다. 그래도 우리가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보다 교회 건물을 너무 잘 관리해 주기 때문이다. 교회 건물이 90여년이 넘은 극장 건물이기에 시도 때도 없이 수리를 해야 할 일들이 많았었다. 그럴 때마다 멕시칸 교인들이 밤을 새워가며

몇날 며칠씩 자비량으로 교회당을 수리하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항상 Cali가 있었고 그가 모든 공사를 진두지휘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모습에 우리는 큰 감동을 늘 받고 있는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주중에는 서너 명의 여성 교인들이 와서 예배당 구석구석을 말끔하게 정리 정돈을 하는 것이다.

우리보다 저들이 더 교회를 아끼고 돌보는 것이다. 그런 저들을 보면서 평강교회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멕시칸 교인들이다 라고 교인들 앞에서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이 시대 그런 사람, 신실한 믿음의 사람을 어디에서 볼 수 있겠는가? 어느 날 Cali에게 예수를 언제 어떻게 믿게 되었는가를 물어 보았다.
20살 이었을 때에 사거리 큰 길을 건너다 마주 오는 자동차에 치어 20여 미터 거리로 날아가 던져 졌다는 것이다. 그 일로 전신 마비가 되어 수년 동안 고생을 하다가 신유 은사를 행하는 목사님에게 기도 받은 후 걷게 되어 그 때부터 지금까지 주님께 받은 은혜를 감사하며 충성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그이기에 교회 건물에 문제가 생기면 우선적으로 그와 상의하여 그가 지시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오곤 했었던 것이다. 금번에도 집을 보수하려고 하는데 와서 보고 조언을 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자기가 그 일을 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할 것에 대해서 묻지도 않았는데 방법을 말하는 것이었다.

공사를 전체 맡기면 큰돈이 들어가므로 공사에 들어가는 재료비만을 지불하고 일하는 사람들에게 일당으로 지불하라는 것이었다. 서너 명이 일을 했다. 저들이 하나 같이 다 예수를 잘 믿는 사람들이기에 나도 최선을 다하여 일하는 동안 저들을 섬기며 기뻐했다. 점심을 제공하고 수시로 음료수와 다과를 대접했다.

그러다가 한 달여 만에 집안 공사가 끝나갈 때 부엌에서 아끼던 냄비 두 개가 없어진 것을 발견한 것이다. 늦게 발견한 것은 그 동안 부엌을 사용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럴 수가 있는가? 나름대로 저들을 정성으로 섬겼는데 나에게 이런 배신을 때릴 수가 있을까? 일하는 서너 명의 사람 중 누가 이런 일을 했을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한 사람이 지목되었다. 틀림없이 그 사람이 가져갔을 것이라는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그 사람에게 가져간 냄비를 가져오라고 말을 하려고 하다가 몇 번을 참았다. 그냥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자! 그러다가도 다시 말을 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 주고 싶었던 것이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결국 말하지 않기로 결심을 했다. 그리고 한 주 일 후 그 냄비가 구석진 곳에서 나타난 것이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참치 못하고 성급하게 생각한대로 지목한 사람을 향하여 책망하며 냄비를 가져오라고 했더라면 그 일로 저들이 받아야 했던 충격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 일로 수십 년 쌓아온 신뢰가 살아져 버렸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주님 나의 섣부른 잘못된 판단을 용서해 주세요! 잠시나마 애매한 사람을 죄인으로 지목하고 정죄하며 속으로 비난했던 잘못된 나의 속단이 저들 앞에서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다시는 이런 어리석은 판단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라며 주님께 용소를 구해야 했던 것이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096

년 말에 초대 받은 어느 특별한 모임

10여 일전 크리스찬투데이 신문사 서인실 사장님이 전화를 주셨다. 12월 17일 주일 오후 4 시에 새로 구입한 사옥에서 신문사 직원들과 신문에 칼럼을 쓰시는 몇 분의 필자 분들을 모시고 송년 모임을 갖고 싶으시다고 정중하게 초청을 하신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초청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기독언론사의 초청이었지만 쉽게 허락하지 못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였다. 첫째는 일반 신문사와 달리 남가주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기독언론사가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힘들게 일하는 것을 알기에 어렵게 사역을 감당하시는 분들을 위로해 드리지는 못하고 도리어 위로를 받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는 금번 모임에 초대하는 이유가 지난 일 년 동안 신문에 글을 써 주신 것에 대한 작은 감사의 뜻이라고 하신 말씀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우연한 계기에 크리스찬투데이에 칼럼을 쓰기 시작할 때는 이렇게 오랜 시간 계속해서 글을 쓸 것을 생각지 못했었는데 벌써 10 년 이상 칼럼을 써 오고 있는 것이다.

칼럼을 써 오면서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알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는 것 같아서 늘 이런 기회를 주신 크리스찬투데이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신문에 실린 글들을 통하여 생각지 못한 귀한 분들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큰 은혜요 축복이며 자랑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신문의 금 같이 귀한 지면에 부족한 사람의 칼럼을 실어 주시는 것만도 너무 감사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는데 그런 나를 대접하시겠다고 하니 주객이 전도 된 것 같은 부끄러운 생각에 쉽게 허락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끝까지 사양치 아니한 것은 그간 크리스찬투데이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오던 베들레헴교회가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선물 받았기 때문이었다.

한인 타운의 중심인 윌셔 거리에 아름다운 3 층 단독 건물을 하나님께 선물 받은 것이다. 그 기적의 현장을 방문해서 눈으로 확인을 하고 싶은 생각으로 초청에 응하기로 한 것이었다. 윌셔 거리에 사무실 한 칸을 빌려서 입주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건물을 통째로 받았고, 교회와 함께 신문사도 이곳으로 이전을 한 것이다.

정해진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방문을 했다. 방문하는 동안 어느 정도의 건물이며 어떻게 생겼을까? 나름대로 생각하면서 신문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데 나는 크게 놀라고 말았다. 나의 입에서 아! 하는 비명 소리가 저절로 나오며 하나님! 어떻게 이런 복을 하면서 감탄이 터져 나온 것이다.

지금까지 보아온 기독 언론사의 건물이 이렇게 아름답게 단장된 곳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1층에서 2 층으로 3 층까지 방문 하나 하나를 다 열고 눈으로 확인하며 손으로 만져 보았다. 이렇게 규모가 있으며 어느 곳 하나 흠 잡을 곳 없이 아름답게 단장을 해 놓으신 발행인 서종천 목사님과 사장님께 깊은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다.

송년 모임이라 많은 분들이 초대 되는 줄 알았는데 모이신 분은 여덟 분밖에 되지 않았다. 그것도 신문사 직원들을 제외하면 외부 필자로 나까지 두 분이 참석을 하고 초대 받은 다른 두 분은 개인 사정으로 참석치 못했다고 하셨다. 정성된 귀한 음식만 대접 받은 것이 아니고 분에 넘치는 선물까지 받았다.

정말로 신나고 감사가 넘치는 연말 선물이 아닐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역사의 현장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Los Angeles 명성의 거리 윌셔 중심 거리에 둥지를 잡았기 때문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온 몸으로 힘들게 신문사를 지켜온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금번 초대를 받으면서 제 마음에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만세 반석 되시는 주님이 크리스찬투데이를 크게 축복하신 이유는 그 동안 복음의 나팔수와 파수꾼의 사명을 잘 감당해 오신 것에 대한 위로와 보상일 뿐 아니라 앞으로 더 큰 사명을 주시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크리스찬투데이를 축복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와 영광을 올립니다. 이제 새 사옥에서 새로운 비전과 사명으로 재무장을 하고 앞서 가시는 주님을 따라서 새 세상으로 힘차게 달려 나아갈 크리스찬투데이를 향한 기대와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2018년 새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059

오랜만에 세 자녀들 가족과 함께 보낸 한 주간

많지 않는 세 자녀들이 성장하고 나서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사는 곳이 모두 다른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동부에 살고 둘째 딸은 서부의 북쪽 끝자락인 알라스카에서 살며 큰 딸은 집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에 삽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이 다 모이는 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해 8 월 집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장례식을 준비하기 위하여 10여 일간 모일 수 있었습니다. 함께 지내는 시간이 끝나갈 무렵 세 자녀들이 저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아빠는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집을 파시고 다른 곳으로 이사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대로 이곳에서 사시길 원하십니까?

둘째 딸은 홀로 외롭게 사셔야 하는데 그러지 말고 자신들이 사는 알라스카로 올라와서 함께 살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생각지 못한 갑작스로 질문을 받고서 잠시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그런 다음 정중한 제안이기에 저도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그대로 살기를 원한다.

이곳은 너희들과 함께 한 추억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이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기 전 모여서 이야기를 나눈 것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집을 리모델링하는데 도움을 주겠습니다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집수리가 11 월 한 달 동안 이루어졌습니다.

지금까지 25년 동안 살았던 헌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는 이유가 단순히 지나온 가족에 대한 추억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자녀들은 느끼지 못하는 나만의 특별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26-7년 전이었습니다. 당시 제게는 기도회 모임이 있었습니다.

7분의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님들이 매주 월이면 모여서 목회 정보도 나누고 서로의 기도 제목을 위하여 기도하는 모임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S 교회를 담임하시는 O 목사님이 지난 주간에 부흥회 강사로 모셨던 인천의 장원모 목사님의 간증을 하셨습니다. 장 목사님은 목회 기간 중 재정 자립이 충분치 못하여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사택도 환경이 좋지 못했습니다. 자녀들은 커 가는데 아침마다 화장실 문제로 어려움을 당해야 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신 장 목사님은 특별 기도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도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왜 주의 종이 가난하게 살아야 합니까? 자녀들에게도 넉넉한 주거 공간이 필요합니다.

종의 가정에 집을 주시옵소서! 매일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교인들이 돌아간 것을 확인하고 나서 홀로 강단 아래에 다시 엎드리어 그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강단아래서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자신의 기도를 누군가가 들었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참을 수 없어 기도를 중단하고 내려다보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그 교회의 BMW인 수석 장로님 부인인 여전도회 회장 권사님이 있었습니다. 강한 수치심을 느끼셨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Big Mouth Woman 때문이었습니다. 그 분이 얼마나 영향력이 많으면 바람을 원하는 방향으로 일으키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일로 일어날 광풍을 목사님은 알고 있었습니다.

장 목사님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사표를 쓰셨습니다. 당회가 열리자 수석장로님이 여러 당회원 앞에서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목사님! 용서하세요! 목사님은 가난하게 사셔야 되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는 큰 집에서 살면서 목사님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사택을 구입할 돈의 절반을 내 놓으신 겁니다. 그래서 집을 받으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간증을 듣는데 나의 마음에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다음날부터 나도 기도하길 시작했습니다. 장 목사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 제게도 집을 주시길 원합니다. 부인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홀로 2년 동안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로 지금의 집을 기적처럼 받았습니다. 집을 구입하고 나서 몇 개월 만에 강력한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은혜인 줄 몰랐습니다. 보험회사에서 받은 보상으로 2년 반치의 페이먼트가 해결되었습니다. 남아 있던 모기지 페이먼트도 금번에 자녀들이 다 지불해 주었습니다. 그 때의 기도가 아니었으면 아직도 아파트에서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집을 떠날 수가 없는 겁니다. 주님이 내게 주신 장막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056

“목사님은 터키 파죠! 그래서 난 교회를 나갑니다”

추수감사절 기간에 같은 지역에서 사역하시는 두 분 목사님 부부와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들은 이야기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잘 아는 목사님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M 목사님이 섬기시는 교회에서 추수감사절 잔치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여전도회 회원들이 모여서 의논을 했습니다.

다른 때와는 달리 그 날의 모임에서 한 분이 새로운 제안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매년 추수감사절 감사 음식으로 전통을 따라 터키를 해왔는데 이번에는 터키로 하지 말고 우리 입맛에 맞는 부드러운 닭고기로 잔치 음식을 준비하자고 한 것입니다. 좋은 뜻에서 시작한 대화였습니다. 그러나 결말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왜 갑자기 터키가 아니고 치킨이냐는 것이었습니다. 추수감사절은 뭐니 뭐니 해도 터키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소리로 시작된 대화가 의도와는 달리 큰 소리로 번져 갔습니다. 양쪽 모두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습니다. 다른 모임도 아니고 교회안의 모임이었습니다.

모두가 신실한 믿음의 직분 자들이었습니다. 양쪽의 주장이 큰 소리로 발전하면서 교회안의 여러 사람이 알게 되었습니다. 이 광경을 말없이 곁에서 지켜보던 담임목사님도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여전도회 회원들의 인품과 신앙을 믿어온 목사님이기에 결말은 아름답게 끝이 나리라 기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는 상황으로 전개가 되었습니다. 치킨으로 하자는 의견을 내신 분이 자신의 의사가 반영되지 못하고 전통을 따라 터키로 하기로 한 것에 대하여 화를 내면서 회의 자리를 박차고 성난 얼굴로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신 목사님이 그 분의 뒤를 따라 나서며 위로의 말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무슨 말로 뭐라고 위로를 할 수 있습니까? 문을 박차고 나가던 여전도회 회원은 담임 목사님이 그 분을 향하여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성난 얼굴로 목사님께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지 못한 것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려는 듯 목사님도 터키파시죠! 그래서 나는 이 교회를 나갑니다.

목사님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들으려고 하지도 아니하고 자신이 판단하고 생각한 말만 빠른 속도로 내던지고 떠난 것입니다. 교회의 화평을 위하여 위로하고 권면하려던 목사님은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37년 동안 이민교회를 섬겨오면서 가장 두렵고 떨리게 하는 교인들의 소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말로나 혹은 편지, 때로는 전화로 교회를 떠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목사님의 설교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는 경우도 있었고, 어떤 경우는 특정인을 지정하면서 그분 때문에 교회를 떠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목사는 힘을 잃게 됩니다. M 목사님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를 두고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표현이 오를지 모르지만 두 분 목사님으로부터 그 말을 들으면서 이것이 지금의 이민 교회 우리들의 자화상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남의 일처럼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왜 목사님이 터키파입니까? 목사님은 터키파도 아니시고 치킨파도 아니십니다.

담임목사님은 언제다 한결 같으십니다. 모두가 다 화평하여지는 파이십니다. 어떤 경우에도 목사님은 분쟁하거나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며 나누이는 파를 반대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주 안에서 하나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 목사님 뿐 아니라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은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주님을 섬길 수 있습니까? 생각하는 대로 다 말하고서 누구와 화평할 수 있습니까? 나의 주장만 옳은 것이 아니고 상대방의 주장도 일리가 있는 것이면 나의 주장을 양보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교회의 평안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어느 교우님이 하셨던 말이 생각이 납니다. “나는 순교를 해도 화를 참지는 못합니다” 듣기에 좋은 말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화를 참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목숨을 내 놓은 순교를 당할 수 있습니까? 교회는 화를 발하는 곳이 아닙니다. 나를 희생하므로 다른 사람에게 화평을 주는 곳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043

암으로 죽어가는 강아지를 위한 안수기도

집 사람의 오랜 투병생활을 통하여 만난 귀하신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인연이 아니었으면 만날 수 없는 분들이십니다. 그 중에는 신실한 사명감으로 환자를 위하여 성심으로 수고하시는 의사 분들이 계십니다. 진심으로 존경이 가고 오래도록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하는 고마우신 분들이십니다.

그 중에 오늘은 특별한 분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집 사람이 십 수 년을 방문하던 암 병원 진료소의 매니저를 담당하시던 Lee 선생님이십니다. 그 분을 안 것은 15-6년 전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정말로 귀한 만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집 사람이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 병원에 있으면서 제게 부탁을 했습니다.

200불을 이 매니저님에게 보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매니저님이 강아지를 13년 째 자식처럼 키우며 사시는데 그 강아지가 암으로 생사의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매니저님에게 강아지는 자신의 생명과 같은 것이기에 죽어가는 생명을 지켜보는 마음이 너무 안됐다는 것입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아내의 그런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의 죽어가는 것도 아니고 먼 이웃의 죽어가는 강아지를 위하여 위로금을 보내라는 것은 상식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거절하지 못한 것은 본인도 암으로 생사의 위기에 처한 상태에서 청한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체크를 동봉하면서 매니저님이 그토록 사랑하는 “둘리”를 위하여 좋아하는 것을 사 먹게 해 주시라며 이는 집 사람이 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후 한 달 만에 집 사람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당시의 매니저님은 수년 전에 병원 일을 그만두고 가게를 하기 때문에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어느 주일 오후에 매니저님은 집 사람의 무덤을 방문하길 청했습니다. 그 때 만난 매니저님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강아지 둘리를 동반하고 왔습니다. 그 때가지만 해도 강아지도 암으로 죽어간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말을 간혹 듣기는 했어도 실제로 암에 걸린 강아지를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백색의 작은 강아지 둘리는 암 덩어리가 목 뒤쪽에서 시작하여 얼굴을 뒤덮으면서 눈의 한 부분까지 가릴 정도가 되었습니다. 민첩하고 활발하게 활동해야 할 강아지가 제도로 움직이지를 못합니다. 자기 몸 하나 감당하기도 힘든 모습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둔한 나의 마음도 안쓰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매니저 품에서 둘리를 손으로 받아 내 품으로 끌어안고 기도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그냥 기도가 아니라 아픈 부위에 손을 얻고 안수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기도를 해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런 기도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강아지 주인이 원해서 하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제 마음이 그렇게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하나님! 이 시간 매니저님이 생명처럼 아끼시는 둘리를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둘리의 생명은 보통의 생명이 아닙니다. 지난 13년 동안 매니저님의 삶의 한 부분으로서 함께 살아온 생명입니다. 지금 그렇게 사랑하는 둘리가 암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둘리만 죽는 것이 아니라 둘리를 사랑하는 매니저님의 마음이 너무 아프고 슬픕니다. 모든 생명은 나고 죽습니다. 죽지 않는 생명은 없습니다. 그래도 이 시간 감히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둘리 까닭에 매니저의 마음이 아프지 않게 해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가능하시다면 더 오랜 시간 매니저와 함께 하게 해 주세요!

기도를 마치고 산에서 내려오는 동안 내가 지금 무슨 기도를 한 것이지! 강아지의 병 고쳐주심을 위하여 기도한 것입니다. 그것도 그냥 기도가 아니고 안수하고 기도한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이런 기도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인데 하면서도 그래도 후회하지 아니하는 것은 매니저님의 아픈 마음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된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후 둘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받았습니다. 둘리를 자식처럼 의지하고 살았던 매니저님이 그 일로 큰 상심에 빠질 것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염려와는 달리 감사하는 마음을 전해 오셨습니다. 오랫동안 교회와 주님을 떠나 살아 왔었는데 둘리의 생명을 통하여 주님을 다시 의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