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가 바꾸어 놓은 장례문화

지난 5 월 5 일은 화요일이었습니다. 당일 오후 3 시에 Hollywood Forest Lawn에서 필자와 같은 노회를 섬기는 멕시코 한인교회 담임 Ahn 목사님의 어머니가 89세로 세상을 떠나시어 장지에서 행하는 하관식에 참석 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많은 동역자들이 장례식장에 참석해서 유가족을 위로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기가 시기이니 만큼 장례식장에 참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의사에서 장례식장에 참석하는 인원수를 10명 이내로 제한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지침은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관할 시의 강력한 행정명령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Ahn 목사님의 가족도 숫적인 제한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지내던 동역자 중 누구도 장례식장에 참석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필자도 장례식장에 갈 수가 없어서 시신을 매장하는 장지로 가서 하관식 만이라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슬픔 당한 유가족을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목회자로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수많은 장례식을 집례도 하고 참석도 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쓸쓸하고 외로운 장례식을 이전엔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여러 가지 어려운 일 가운데 가장 슬프고 힘든 때는 사랑하는 가족을 죽음으로 잃게 되었을 때입니다. 그래서 장례식은 어떤 예식보다도 평소 가까이 지내오던 주변의 많은 이웃의 위로가 절실하게 필요한 예식입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가족을 읽고 큰 슬픔에 처한 유가족들이 슬픔을 극복하는데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19가 슬픔당한 가족들까지 큰 고통에 빠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이러한 외롭고 쓸쓸한 장례식을 바라보는 교회의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이 있습니다.

코로나 19 기간 동안 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타주에 사는 자녀들이 부모님의 장례식에 참석지 못하므로 평생 동안 큰 슬픔을 가지고 살아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필자가 오늘 하관식을 멀리서나마 참석하여 유가족을 위로할 수 있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한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장지인 Rose Hills 공원묘지에선 하관식에 참여하는 가족의 숫자를 2 사람으로 제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예전처럼 하관하는 절차를 유가족들이 지켜볼 수도 없게 하고 있지만 Hollywood Forest 공원묘지는 유가족들이 하관하기 까지 지켜볼 수 있게 허락되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코로나 19의 위력이 전 세계를 죽음의 공포로 몰아갈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의 경계를 얼마나 어디까지 변하게 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어느 분의 말이 기억이 됩니다. 미국의 최강의 무기와 핵보다 더 무서운 것이 코로나 19의 위력이라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장례식에서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되는 마지막 시간은 모든 예식을 마친 후 식당에서 예식에 참석한 이웃들과의 애찬을 통한 위로와 교제의 시간인데 이러한 모임까지도 코로나 19가 빼앗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로인하여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주위로부터 위로 받지 못하는 아픔을 더하게 하는 것입니다.

금번 코로나 19로 인하여 우리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아니하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나의 삶, 우리의 삶에서 가정 우선해야 할 것은 성공도 아니고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며 하나님이 주신 건강과 가정을 지키는 것임을 알게 했습니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반을 잃은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은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돈이나 명예는 있다가도 없으며, 없다가도 있을 수 있으나 나의 건강, 우리의 건강은 있을 때 잘 유지하고 지키지 아니하면 잃은 후 다시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담당 의사가 필자에게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외출을 삼가시고 방콕 하시어 이번 위기를 반드시 극복하셔야 합니다. 나의 건강은 남이 지켜주지 아니합니다. 나의 건강, 가족의 건강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의 코로나 19 위기를 인내와 지혜로 잘 극복하시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sub_read.html?uid=26519&section=section3&section2=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화상으로 참여한 어느 임종예배

지난 토요일 오전에 지인으로부터 카톡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한 시간 후에 진행될 어느 분의 임종예배를 알리는 내용이었습니다. 필자도 아는 L 목사님 사모님이 오랜 시간 동안 어려운 병으로 투병을 해 오시다가 병원에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의사의 권유로 임종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요즘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병원 중환자실에서 진행되는 임종예배는 남편 한 사람만 병실에 머무는 것이 허용되어 타주에 사는 자녀들이 임종을 지키기 위해서 왔지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필자도 어려움 당한 목사님 부부와 오랫동안 교제를 나누어 왔기에 참석해서 가족을 위로하고 싶었지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Zoom 화상을 통하여 임종예배를 마치고 나서 두 시간여 만에 L 사모님은 길고 깊은 고난의 터널을 벗어나 다시는 아픔과 눈물이 없는 주님의 나라로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필자가 L 목사님 부부와 인연을 맺은 것은 남가주목사장로부부찬양단을 통해서였습니다. 남편 되시는 L 목사님은 지휘를 맡으셨고 사모님은 반주를 하셨습니다.

반주를 하셨을 때도 병이 중한 상태셨지만 그 힘든 몸으로 주변 누구에게도 힘들다 말하지 않으시고 늘 화사하게 웃는 얼굴로 정성을 다하여 기쁘게 섬겨 주셔서 단원 모두가 큰 은혜를 받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사모님이 그렇게 중환 환자인 것을 알지 못했었습니다. L 사모님을 필자가 귀하게 여기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이 그 정도의 몸이면 사명을 포기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L 사모님은 자신에게 임한 질병이 현대 의학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난치병임을 아시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시거나 무서워하지 않으시는 것 같으셨기 때문입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의식하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죽으면 죽으리다는 각오로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필자가 L 목사님과 사모님께 각별한 관심을 가진 것은 동병상련이라는 말처럼 필자의 아내도 오랜 세월동안 어려운 병상을 지켜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L 사모님과 곁에서 내조하시는 목사님을 순간순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아프신 사모님도 힘드시고 자녀들도 힘들지만 그 중에서도 곁에서 내조하시는 목사님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아픔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여러 차례 L 사모님이 위기를 당하고 계시다는 소식을 접하여 왔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변의 동역자들이 위해서 기도를 이어오곤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입원한 병원 의사들이 더 이상 의학의 힘으로는 환자에게 도움을 줄 것이 없다는 판단 하에 임종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Zoom 화상을 통하여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고 해서 보내온 Zoom ID 번호와 패스워드 번호를 받고서 임종예배를 시작하는 시간에 연결하였습니다.

신기하게도 컴퓨터 화면을 통하여 중환자실에서 임종을 지키시는 남편 목사님과 사모님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배를 주관하시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여러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함께 예배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진 것입니다.

우리 시대 과학이 어디까지 발전할 것인지 놀랍기만 합니다. 존경하는 L 목사님! 그동안 사모님을 위하여 수고하신 모든 것을 주님이 받으신 줄 믿습니다. 이 시대 우리가 해야 할 주의 일은 복음 전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어려움 당할 때 온 힘과 정성으로 가족의 아품에 참여하는 것도 주의 일인 것입니다.

주님이 맡겨 주신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의 십자가를 끝까지 지시고 잘 인내하시어 사모님을 천국으로 입성케하신 수고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고 목사님과 자녀들에게 큰 위로로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에게 섬김의 본을 보여주신 목사님께 다시 한 번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507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한 고난이 언제나 끝이 날까요?

지난 주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서 연세가 제일 많으신 권사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91세 되시는 K 권사님 이십니다. 목사님!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한 고난이 언제나 끝이 날까요? 이는 K 권사님만 궁금해 하시는 것이 아니라 현재 땅위에 호흡하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궁금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이 하나님께 기도로 물어보시면 알려 주시지 않을까요? 하나님께 물어보시어 알게 되시면 자신에게도 알려 달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정말로 그 때를 알고 싶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기도를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으시며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을 아시면서도 답답한 마음에 그런 말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어디 누구에게 하소연 할 때도 없으시기에 필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K 권사님은 연세에 비하여 아직도 기억력이 좋으시고 총명하시어 지금도 성경구절을 매일 암송하시고 계십니다. 매주일 강단에서 증거되는 설교 본문 가운데 요절을 정리하시여 30여 년 째 암송을 해 오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권사님이 성경을 암송하고 계시는 내용의 분량이 많습니다. 일 년에 두세 차례 주일 낮 예배시 교인들 앞에서 암송하고 있는 성경구절의 일부를 제한된 시간에 맞추어 지금도 암송하고 계십니다. K 권사님은 현재 시니어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계십니다. 세 명의 아들 가정이 있지만 모두 멀리 살고 있습니다.

권사님의 삶에서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간은 주일 날 교회에 나오시어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성도의 교제를 가지는 시간입니다. 권사님은 교회에서 보석 같은 분이십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권사님의 남편 되시는 K 장로님과 함께 지금의 평강교회를 개척하고서 지난 40년 동안 한 번도 공 예배를 빠지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의 교회로 자리하기까지 K 장로님과 권사님의 희생과 충성이 큰 밑거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한 정부의 행정명령으로 이전에 경험하지 못하고 꿈도 꾸지 못하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만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예배를 빠져 본 일이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교회만 출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한된 좁은 공간에서 오고가는 사람도 없고 자동차도 없으시기에 바깥세상을 다닐 수도 없으신 겁니다. 그야말로 죄 없는 죄인이 되어 창살 없는 감옥 같은 하루하루를 지루하게 살아가고 계신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갑갑하고 고독하며 외로우시겠습니까?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하여 어려움 당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병든 사람만 힘든 것이 아닙니다. 가족이 힘듭니다.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전문 의료인들도 힘들어 합니다. 저들을 치료하다가 전염되어 목숨을 잃은 의사도 있고 간호사님들도 있습니다. 힘든 사람은 저들만이 아닙니다. 정치가들도 힘이 듭니다.

매일 방송에 나와 상황을 보고하고 대책을 발표하는 뉴욕의 쿠우모 주지사가 안쓰럽게 느껴졌습니다. 운수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합니다. 관광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힘들어합니다. 항공사에 근무하는 사람이나 경영인들 모두가 힘들어 합니다. 많은 공장, 농장을 경영하는 분들이 힘들어 합니다.

모든 가게와 회사가 문을 닫고 있어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다 힘들어합니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힘들어 합니다.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힘들어합니다. 은행에서 일하는 분들도 힘들어합니다. 지금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하여 고통당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심지어 교회마저 예배가 중단되는 엄청난 일을 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른이나 아이들도 힘이 듭니다. 큰 자도 낮은 자도 다 함께 힘들어 합니다. 언제 이러한 삶의 위기와 죽음의 공포가 우리에게 다가올지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도 우리가 소망을 가지는 것은 우리와 동행하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경 시 23 편 4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언제나 살아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굳게 잡으시고 이 어려운 고난의 때를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493

따사한 햇살이 빛나는 사월의 어느 봄날이 주는 행복

우리가 사는 이곳 Los Angeles는 여간해선 4월에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50년 가까이 이곳에서 살아오면서 4월에 금년처럼 많은 비를 경험하기는 처음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바이러스19로 움츠러든 마음으로 답답했는데 오늘의 밝은 봄빛으로 닫힌 마음이 열리는 듯 했습니다.

특별히 필자에게 기쁨을 가져다 준 것은 사무실 창가로 나타난 두 마리의 다람쥐 때문이었습니다. 일 년 전 33년 동안 사용해 오던 교회당 건물을 매각하고 지금의 교회당으로 이전하고 나서 교회당 주변에 20여 구루의 과실 수를 심었습니다. 그 중 일부에서 지난 해 사과와 복숭아 감 블루베리 등이 열렸습니다.

봄을 맞은 지금 나무마다 새순과 과실수 꽃들이 피고 지면서 새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리고 있습니다. 요즘 그 과일들이 커가는 모습을 매일 확인하면서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에 순종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겨울 동안 잠자던 나무들이 다시 살아서 잎과 꽃을 피우고 결실하는 모습이 너무도 보기에 좋습니다.

누가 보던지 아니 보던지 각 나무마다 심겨진 장소에서 자신들의 본분과 사명을 하나님과 세상 앞에 최선을 다하여 감당하며 충성하는 모습을 나타내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중 사과나무엔 지난 해 열렸던 10개의 크고 작은 사과들이 아직 나무에 그대로 달려 있는데 요즘 들어 그 숫자가 점점 줄어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것이 다람쥐의 소행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람쥐가 사과를 따 가지고 도망가는 것이 현장에서 필자에게 목격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현장을 목격하였는데도 다람쥐가 밉다는 생각이 들지 아니한 것입니다. 도리어 그 작은 손으로 무거운 사과를 움켜쥐고 뒤뚱거리며 힘들게 도망가는 모습이 너무도 귀엽고 예쁘게만 보였습니다. 일상의 삶에서 이처럼 야생돌물로 인하여 웃음과 행복을 느껴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다람쥐가 미울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우리교회 마당 뜰을 찾아 준 것이 고맙게 느껴진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람쥐와 이렇게 가까이 만나본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와 가까이 함께 할 수 없는 동물로만 알았는데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우리만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우리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창조 받은 만물들이 다 이 땅의 주인인 것입니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인 것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교만하여 다른 피조물들을 지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우리로 만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지 지배하라고 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요즘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하여 대기의 공기가 좋아졌다는 뉴스를 듣고 있습니다. 교통량이 줄고 공장 가동률이 현저하게 줄어 상대적으로 대기오염 방출이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 동안 세계는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구 도처에서 자연이 힘들다고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사인을 보내는데도 우리는 이런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아니한 것입니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하여 우리가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하고 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상의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생각해 봅니다. 나라와 나라가 연합하고 대륙과 대륙이 연합하여 새로운 질서로 온 인류가 더불어 살아가는 평화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sub_read.html?uid=26484&section=section3&section2=

코로나바이러스19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

필자의 큰 딸이 사는 곳은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인 오렌지카운티 플라센티아 시입니다. 둘째 손녀가 이번에 중학교를 졸업하는데 코로나바이러스19 때문에 졸업식을 하지 못할 것 같다고 하면서 한 밤중에 카톡으로 긴급하게 기도를 요청해 왔습니다. 그 내용은 둘째 손녀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의 어머니 때문입니다.

그 녀의 이름은 Teiko인데 50대 초반의 남편이 코로나바이러스로 10여 일 동안 인근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아 오다가 지난 4월 1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인과 세 아이들은 즉시 결리 당하여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남편과 아버지를 생전에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되어 그로 인한 충격이 너무나 컸습니다.

예기치 못한 갑작스런 일로 아픈 가슴을 달래며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남편을 보내고 이틀 후인 4월 3일 부인(Teiko)과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큰 딸이 코로나바이러스19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본인들만 충격 받은 것이 아니라 그 분을 아는 모든 분들이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남편의 장례식을 치르지 못할 뿐 아니라 앞으로 그 가정에 어떤 불행한 일이 더 일어날지에 대하여 모두가 불안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벽 1시에 잠에서 깨어 그 소식을 접하고 즉시 주님께 기도하기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Teiko를 살려 주셔야 합니다. 엄마가 살아야 아이들을 돌보지 않겠습니까?

이 가정이 원치 아니하는 큰일을 당하고 있습니다. 왜 저들이 이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누가 저들의 아픔에 대하여 책임 질 수 있습니까? 무엇으로 어떻게 위로 할 수 있습니까? 누구의 잘못입니까? 왜 그런 일이 저들에게 임했는지 누가 알 수 있도록 설명도 해 주지 못하는 너무도 억울하고 분한 일이 아닙니까?

영문도 모르고 갑자기 사랑하는 양 부모를 잃게 되면 남은 세 아이의 장래를 누가 돌보게 되겠습니까? 어린 세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어머니를 살려주셔야 합니다. 그 밤에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몇 번이나 잠을 설쳐가면서 반복해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침에 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당장 아이들의 식사 등은 누가 도와주며 아이들을 돌볼 다른 일가친척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단지 아는 것은 손녀의 친구라는 것입니다. 이웃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연락을 해서 순번제로 음식을 가져다가 집 앞에 놓고 간다고 했습니다.

이번 사태가 전쟁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지역적인 전쟁이 아니라 세계 3차 전쟁이라고 말합니다. 세계 3차 전쟁이란 말은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전쟁엔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 있습니다. 죽음입니다. 그것도 적은 죽음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은 인생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렇습니다. 우리가 왜 죽습니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이면 죽지 않습니다. 천사라면 죽지 않습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도 죽음을 피하지 못합니다.

사람마다 죽지만 그 죽음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 없는 죽음은 없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무서운 것은 왜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 이유 없이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야 할 사람이 자신의 생각과 달리 원치 않는 죽음을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19가 몰고 오는 죽음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살아야 할 사람이 죽습니다. 인정이 없습니다. 각 가정의 형편과 사정을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쟁이 소리 없는 무서운 전쟁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기도합니다. 주님! Teiko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세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지 않습니까? 주님만이 그 가정을 위기에서 구하실 수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2020년 4월 4일 12시

이상기목사

세계 3차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전투하는 우리들

지난 목요일(4 월 2 일) 오전 10시 자동차로 Freeway를 달리면서 차 안에서 Radio Korea에서 방송되는 Seoul Medical Group 회장 차민영 박사님의 대담 프로를 들었습니다. 오랜 시간 계속되는 코로나바이러스19의 치료 전망과 앞으로 사용될 치료약들에 대한 정보를 이야기하면서 지금의 상황은 “세계 3차 전쟁”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의 상황이 전쟁이라는 표현에 갑자기 귀가 서면서 섬뜩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것도 지역 전쟁이 아니라 세계 전쟁이라는 말에 더욱 놀라게 된 것은 이번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한 현상이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공동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세계가 하나 되어 싸워야 하는 것이란 뜻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전쟁엔 반드시 죽음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무서운 것은 전선에 나가 있는 군인들의 생명만 위험한 것이 아니라 먼 후방에 있는 나와 가족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에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는 큰 딸이 카톡으로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둘째 손녀 친구 아버지가 10여 일 전에 코로나바이러스19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 치료를 하던 중 방금 전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전쟁이 무서운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누려왔던 자유와 평화, 행복과 안식, 건강과 재산을 우리 스스로도 지킬 수 없을 뿐 아니라 국가도 지켜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전쟁으로 죽는 사람의 숫자는 작은 수가 아닙니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전시가 아닌 때는 병든 사람이나 각종 사고로 죽습니다만 전쟁 시는 젊은이나 노인이나 건강한 사람이나 병든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부자도 죽고 가난한 사람도 죽습니다. 어른도 죽고 어린 아이들도 죽습니다.

우리는 지난 수 주간 동안 세계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셀 수 없는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뉴스를 통하여 접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전쟁이 무서운 것은 나와 가족,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만 아니라 나라와 지역 사회를 힘들게 하고 세계 질서와 경제를 수렁으로 끌어가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지금 같은 전쟁을 경험한 이가 없습니다. 지금의 전쟁이 우리를 어렵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잘 발달한 현대 무기로 싸워 이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돈으로도 아니 되고 총과 칼로도 아니 되며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온 어느 무기로도 대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세계 3차 전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먼저는 주님께 보호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3-14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취할 행동은 정부의 지시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문 의료인들의 지시를 따라 힘이 들어도 지켜야 합니다. 그리함으로 세계 3차 전쟁에서 반드시 살아 우리에게 맡기신 사역을 완성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상기목사

국난의 시대에 부름 받고 충성하는 작은 영웅 곽혜민 소위님께

현존하는 사람 가운데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코로나바이스러19가 우리의 조국 대구에서 무서운 속도로 번져 가므로 먼 타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충격과 두려움으로 걱정하고 있을 때 한 줄기 빛 같은 아름다운 뉴스가 먼 나라 이곳 Los Angeles에도 빠르게 전달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얼마 전 한국 간호 사관학교 졸업생 75여 명이 졸업과 동시에 가정으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국가의 부름을 받고 재난 지역으로 달려간 것입니다. 지난 4 년 동안 훈련 받은 대로 절도 있고 신속하게 환자들을 정성으로 섬기는 것을 뉴스로 접하면서 우리의 조국에 대한 밝은 미래를 보는 것 같아서 흐뭇했습니다.

뉴스를 보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미국에서 40여 년 동안 교제를 이어가고 있는 존경하는 어르신이 소식을 주셨습니다. 대구 재난 지역에서 활동하는 자랑스러운 후배 중 하나인 간호 사관학교 60기 후배 곽혜민 소위와 통화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시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후배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마치 오랜 시간이 지난 옛날 20대 젊은 날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너무 감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어르신은 6·25 한국전쟁 참전 간호장교로 한국만 아니라 이곳 미국에서도 크게 존경 받으시는 어르신이십니다. 한국에서 소령으로 제대하시고 50여 년 전 미국에 오셔서 전문 의료인으로 살아오셨습니다.

9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 분에게선 아직도 군인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걸으시는 모습이나 생각하시는 것 그리고 사시는 삶의 방식도 군에서 배운 대로 지금도 살고 계십니다. 그 어르신을 필자가 귀하게 여기고 존경하는 것은 아직도 자신을 위하는 삶보다는 이웃을 위한 삶을 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늘 건강하시고 강하기만 하셨던 어르신이 얼마 전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진지한 부탁을 필자에게 하셨습니다. 평생을 홀로 살아 오셨기에 자녀가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불원간 자신에게 다가올 세상을 작별할 때를 위하여 마지막 일을 부탁하신 것입니다. 장례에 대한 계획을 준비하시고 절차 까지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 문제를 말씀하셨을 때는 그렇게 강하시던 어르신이 한없이 가엾어 보이고 슬퍼 보이셨었는데 국가적 재난을 당하여 부르심을 받은 어린 후배들의 혼신을 다하여 환자들을 구하기 위해서 충성하는 것을 보면서 감동하시며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필자에게도 가감 없이 전달되어 함께 흥분하게 되었습니다.

곽혜민 소위님! 나는 곽 소위님을 알지 못합니다. 언제 어디서 뵐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존경하는 어르신처럼 음성이라도 주고받을 수 있지도 못합니다. 그렇지만 곽 소위님에 대한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좋습니다. 진실로 곽 소위님과 동료들은 우리 시대 작은 영웅들이십니다.
여러분들이 계셔서 우리는 안심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때문에 행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곧 우리의 미래이고 우리나라의 보배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라기는 여러분을 바라보고 자랑스러워하는 국민들이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름 모르는 동료 간호 장교님들께도 고마움의 인사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기 목사

목사님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다는데 사실인가요?

3월 25일은 수요일 이었습니다. 늘 그러하듯 교회에 도착한 것은 오전 9시 반이 넘어서였습니다. 문을 열고 교회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여러 곳으로부터 전화가 빗발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 이게 웬일인가요? 그 말이 사실인가요? 어쩌다가 그렇게 되셨나요? 제가 들은 말이 거짓말이죠? 정말로 괜찮으신가요?

무슨 말을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언제 어떻게 들으셨나요? 전화를 하신 교우님에게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필자가 섬기는 교회를 오랫동안 섬기다가 십 수 년 전에 다른 교회를 섬기고 계신 K 권사님의 전화를 받고 알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말을 듣고 믿기에는 너무도 황당한 것 같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접 목사님께 확인하기 위해서 전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교인으로부터 듣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그 말을 하신 K 권사님에게 확인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제게는 그 분의 전화번화가 없었습니다. 교회를 떠난 지 너무 오래 되어서 전화번호가 나의 노트에서 지워졌기 때문입니다.

그 분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평소 말에 실수가 없으시고 정직하며 성실하게 살아오신 분으로 누구보다도 좋은 인격과 성품의 소유자이심을 알고 있는 필자는 그래서 즉시 K 권사님과 잘 알고 교제를 이어가고 있는 지금은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선교사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께 카톡으로 이 같은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러면서 나의 생각을 곁들어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K 권사님은 나에게 그런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다면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전에 먼저 나에게 전화를 해서 확인을 하실 분이신데 왜 분명하지도, 있지도 않은 사실을 깊은 생각도 없이 여러 사람에게 전화를 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이 좋아져서 먼 아프리카 우간다에 거주하시는 선교사님이 카톡을 보낸 지 10분 만에 답이 왔습니다. 그 내용은 목사님이 그 동안 전혀 모르고 계셨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치매를 앓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병원 약을 복용하고 계시며 가족들이 크게 걱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서 잘못된 소문에 대한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K 권사님과 가족들이 격어야 될 아픔과 어려움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병이라고 하지만 필자는 주변의 지인들 중 사랑하는 가족이 치매로 인하여 환자 본인보다도 가족들이 힘들어 하는 것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일을 당하고서 오랫동안 기억에서 사라진 일들이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동일한 지역에서 동명이인으로 교회를 섬기는 목사님 때문에 생겼던 일과, 같은 지역 안에 비슷한 교회 이름을 가진 교회들이 몇 곳 있어서 교회 이름 때문에 생긴 일이었습니다. 먼저 동명이인 목사님 때문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집사님이 큰 소리로 역정을 내면서 신문에 기사를 실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와서 집사님에게 이런 말을 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이 나가는 교회 목사님의 이름이 아무개가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했더니 왜 그런 교회에 나가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내용이냐고 물으니까? 듣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교회 목사님은 그런 목사님이 아니라고 했더니 아니긴 뭐가 아니냐고 그 이름을 가진 목사가 맞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교회 목사님은 절대로 그런 분이 아니라고 해도 믿어주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목사님이 그런 분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신문에 공고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이름 때문에 전화를 받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00교회죠? 네 맞습니다. 아무개 장로님을 바꾸어 주세요? 그런 분이 우리교회는 안 계시는데? 00교회가 맞는 다면서요? 네, 우리 교회는 00교회가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00교회 중 원조 00교회 입니다. 그 말을 듣고 이해를 하는 분은 웃으면서 전화를 끊습니다. 살다보면 이런 저런 일에 휘말릴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코로나바이러스19로 모든 사람이 어려움 당하는 때에 이 글을 대하시는 분들 중 잠시나마 웃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421

코로나바이러스19 행정명령 후 첫 주일예배

코로나바이러스19 사태로 정부로부터 행정명령이 발동하고서 첫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는 집에서 20마일 떨어져 있어 평소 같으면 35분 정도 걸려야 도착하는 데 오늘은 25분 만에 도착했습니다. Freeway가 이상할 정도로 한가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할 정도로 운전하기엔 좋았습니다.

같은 하늘과 늘 오가는 길인데도 오늘 아침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정부 지시사향이 발표 되었을 때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지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로서 고민을 하게 된 것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긴급 당회를 통하여 정부 지시를 따르기로 하고 교회 모임을 별다른 지시가 있을 때까지 중단키로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주일 예배는 유튜브TV 방송설교 녹화를 위해서 소수의 인원만 참석하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다보니 예배당에 늘 계셔야 할 교인들이 보이지 아니하므로 텅 비어 있어 마음에 허전함을 느꼈습니다. 나의 마음이 이러할 때 집에서 가정 예배를 드려야 하는 교우님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만 아니라 우리 예배 받으시길 기다리시고 기뻐하시는 주님의 마음도 편치 아니하셨을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코로나바이러스19가 사람만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이요, 전 세계 교회까지 충격을 가하는 것을 보면서 근심과 염려를 하다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것은 코로나바이러스만 아니라 하나님도 보이지 아니하는 분이심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코로나바이러스가 두려움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와 동행하시는 주님이 계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향하여 정직한 마음으로 코로나바이러스로 고통당하는 주변의 사람들과 지구촌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 절에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염려와 근심이 없는 사람을 향하여 주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제자들이지만 죽음의 공포로 두려워할 때 주신 말씀입니다.

지금과 같은 위기와 환란의 때를 대비하여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주님이 주시는 이 말씀이 우리에게 큰 위로와 능력이 되는 것은 코로나바이러스19보다 천배 만 배 아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주님의 능력이 더 강한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번 일을 통하여 새롭게 안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처럼 개는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리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가까운 지인 한 분이 Pet Shop을 10년 가까이 운영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번 일로 얼마나 힘드시냐고 안부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은 제 염려와 달리 개는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개만도 못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코로나비러스가 개를 이기지 못하는데 사람은 이기는 것입니다. 개는 사람보다 수명도 짧고 등치도 작아서 전염병에 더 약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정 반대였습니다. 우리는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능한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땅위의 피조물 가운데 가장 뛰어나고 가장 강한 것이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개만도 못한 존재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무능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연약을 인정케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위로자가 필요합니다. 구원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주님이 나의 주 되심을 감사하며 이 환란의 때에 주님의 큰 도우심을 받으시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410

우리의 삶에 빠르게 다가온 코로나바이러스19(2)

위 제목으로 10여일 전에 칼럼을 쓰고나서 다시 같은 제목의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세계 제일을 자랑하는 미국의 의학이 코로나바이러스를 쉽게 물리칠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만 그렇지 못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미세한 세균이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미국을 공포로 끌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일을 보면서 세상에는 돈으로도 아니 되고 힘으로도 아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상황이 심각하면 미국 대통령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행동명령을 시달할 정도로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코로나바이러스의19의 타킷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일이 심각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무리 믿음이 좋고 경건하게 산 사람도 조심하지 않으면 전염병에서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사람도 다르지 않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권세 자나 약한 자를 가리지 않습니다. 전쟁이 나면 큰 자나 권세자 부자들은 안전한 곳으로 피할 수 있지만 코로나바이러스19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가지 말라는 것이며, 부득이 모임에 갈 수 밖에 없다면 2 미터 거리의 간격을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미국인 생활지침을 받고서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로서 걱정이 생겼습니다. 교회는 제한된 공간에서 다수의 교인들이 모여야 하기 때문에 코로나바이러스19에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예배를 금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헤쳐 나갈 수 가 있을까요? 필자가 섬기는 교회는 하루 전 수요일에 긴급당회를 가졌습니다. 우리 교회가 위치한 곳에서 6 마일 덜어진 곳에서 확진 자가 나왔다고 보고되기 때문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교회에 확진 자가 생긴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당회를 통하여 이번 코로나바이러스19 사태를 어떻게 지혜롭게 대처해야 할까에 대하여 우리교회가 이끌어낸 결과는 이렇습니다. 수요예배와 토요새벽기도회를 잠정적으로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주일 예배 후 성도의 교제를 위하여 40년 동안 가져오던 식사 모임을 중단키로 했습니다.

면역력이 약하신 연로하신 교우님들의 경우 코로나바이스로19가 사라질 때까지 집에서 가정예배 드리는 것을 권고키로 했습니다. 주일 예배 참석치 못한 교우님들을 위해선 유튜브TV 방송설교를 보내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예배 당 안에서 교인들 간에 마주침이 없이 2 미터 거리를 반드시 지키기로 했습니다.

예배 후 교인 간에 악수도 금하고 예배를 마치면 곧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교회가 이런 결정을 해야 하는 이유는 코로나바이러스19는 영적인 문제가 아니라 무서운 전염병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나 말씀으로 물리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염병자와 접촉을 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코로나바이러스19의 공격에서 피하여 살아남는 것은 첫째도 조심, 둘째도 조심, 셋째도 내가 조심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전문 의료인들이 발표하는 생활 지침을 잘 지키시므로 하나님이 주신 성령이 거하시는 여러분의 귀한 몸을 잘 보존하시는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