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 208 목사님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목사님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저 이상목 목사입니다. 지난 달 동부 필라델피아 지역에서 사역하시는 어느 목사님이 카톡으로 반가운 인사를 전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 분에 대한 기억이 없었습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나를 어떡케 아시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왜 자신을 모른다고 부정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농담으로 자신을 웃게 하려고 그런 말을 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이런 설명을 하셨습니다. 오래 전에 목사님과 함께 San Diego의 어느 신학교에서 함께 공부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목사님이 사시던 아파트 건너편에 자기 가족이 살면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다시 답장을 했습니다. 저는 San Diego에 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신학교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님에 대한 기억이 없을뿐더러 목사님을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의 이름 때문에 혼동을 가진 것 같다고 말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사는 이곳에는 나 말고도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또 다른 목사님이 한 분 더 계십니다. 동명이인으로 나 보다는 젊고 생기기도 더 잘 생기신 분이라는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제야 상황을 이해하시는 듯했습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카톡 전화로 다시 연락을 해 오셨습니다. 그 전화를 통하여 서로를 확인하고서 한바탕 웃으면서 통화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같은 이름 때문에 가끔 웃게 되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오해를 받기도 하며 때로는 생각지 못한 전화를 받아야 할 때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10여 년 전에 같은 이름을 가지신 목사님의 사모님이 세상을 떠나셨을 때 신문에 부고가 났습니다. 그 때 저를 아는 많은 지인들이 그 부고를 보고서 사방에서 위로 전화를 해온 것입니다. 나만 이런 일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나의 이름 때문에 동명이인 목사님도 비슷한 일을 당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나 때문에 다른 동명이인 목사님이 손해를 당하시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가 더 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으로서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해 보았습니다. 나의 이름을 가진 목사님이 같은 지역에서 주의 종으로 사역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 때문에 동명이인 목사님이 어떠한 경우에도 가까운 이웃으로부터 비난이나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아름다운 선행과 삶 그리고 하나님과 교회를 위한 헌신과 충성 나아가서 성도를 섬김의 본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이름만 같은 것이 아닙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 이름과 같은 이름의 교회가 한 때는 동일한 지역에 세 개나 더 있었습니다. 그로인한 전화도 여러 번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전화를 받으면 아무개 장로님이나 성도님을 바꾸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런 분이 안 계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럴 경우 상대방이 왜 그런 분이 목사님의 교회에 안 계시느냐고 묻기도 전에 먼저 말을 합니다. “우리 교회는 평강교회가 맞기는 한데 원조 평강교회입니다”라고 말을 하면 그 말을 이해하는 분은 웃으며 전화를 바로 끊지만 센스가 없는 분들은 그렇게 말하는 뜻을 잘 받아 드리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이름도 중요하지만 교회의 이름도 다르지 않습니다. 나의 이름은 내가 짓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나 아니면 할아버지가 지었을 것입니다. 이름을 지을 때 아무렇게나 짓지 아니합니다. 모든 이름에는 그래서 숨겨진 의미와 뜻이 있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 이름은 내가 지은 것이 아닙니다.

함께 교회 개척을 하셨던 K 장로님이 지으셨습니다. 평강이라는 이름의 뜻은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후 밀폐된 공간에서 두려움과 공포로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처음 나타나시어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복이 평강인 것입니다.

3개월 후면 교회 설립 4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교회 이름처럼 광야 같은 이곳에서 평강으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까지 함께 하여 주실 것을 믿으며 교회의 주인 되시는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9월 21일 2020년
이상기목사

목양칼럼 # 207 할아버지 할머니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지난 월요일에 생각지 못한 아름다운 메일을 한통 받았습니다. 큰 딸의 세 손녀들이 사랑의 메시지를 담아 보내온 카드였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너무 너무 사랑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카드를 읽고 나서 달력을 보았더니 지난 13일 주일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을 기리는 날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매년 이맘때면 비슷한 내용의 카드를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이전에는 딸이 카드를 준비하고 손녀들이 카드 모퉁이에 간단하게 사랑의 내용을 적은 것을 보내왔습니다. 이번에는 아닙니다. 딸과는 상의하지 아니하고 어린 세 손녀들이 의논하여 마음을 모으고 정성으로 준비해서 카드를 보내온 것입니다.

카드 안에는 세 손녀들이 작은 고사리 손으로 직접 쓴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내용의 글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세 손녀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세월의 빠름을 느끼며 변해 가는 모습에 때마다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엄마(딸)도 아이들이 할아버지에게 카드를 보낸 사실을 모르고 있었나봅니다. 그래서 보내온 예쁜 카드를 사진에 담아 잘 받았다는 뜻으로 딸에게 카톡 메시지로 보냈습니다. 잠시 후 딸에게서 이런 내용의 답신이 왔습니다. 지난 토요일에 세 손녀 중 나이가 가장 어린 막내딸의 방에 들어갔다가 놀랬다는 것입니다.

자기 방에서 혼자서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딸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울 이유가 전혀 없었는데 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왜 우느냐고 물어본 것입니다. 어린 나이 이기에 홀로 울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친구들과 싸워서 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언니들과 싸우고 우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엄마의 다그치는 물음에 손녀는 말을 하지 못하고 계속 눈물을 흘리면서 종이에 자신이 우는 이유를 이렇게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I was missing sweet 할머니” 할머니 생각에 울고 있다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명을 달리한지가 벌써 3 년이 지났습니다. 아이들에게 3 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다른 두 손녀들은 할머니의 기억을 잊어가고 있었는데 어린 막내는 아직도 할머니와의 길지 않는 추억 속의 사랑을 잊지 못해서 홀로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에 없는 할머니 때문에 울고 있는 것을 엄마에게 조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자기 방에서 홀로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는 이유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해서가 아니며 누구와 싸워서 우는 것도 아니고 오직 추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랑하는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엄마도 그 글을 읽고서 어린 딸을 부둥켜 앉고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하였을 뿐 아니라 며칠 후 이를 듣는 필자의 가슴을 먹먹케 했습니다.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는데 비록 명을 달리하여 세상에서 다시 볼 수는 없지만 하늘에 먼저 가 있는 할머니에 대한 어린 손주들의 마음에 그리움으로 인한 눈물을 흘리게 한 삶을 살았다면 할머니의 삶은 후회 없는 삶을 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작은 딸의 가족은 알라스카에 살고 있지만 큰 딸의 가족은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 딸의 가족은 자주 만나는 편입니다. 9월 하순에 만나기로 했는데 어린 손녀는 이 말을 엄마로부터 전해 듣고 카드 말미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I can not wait till I see You again”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시128편 1 – 3 절의 말씀입니다. 젊어서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아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받는 하늘의 복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은 가정의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중에서 귀하고 복된 것은 자손이 잘 되어가는 것을 보는 기쁨으로 이는 우리의 수고와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받는 것이라고 시편의 기자는 자신의 체험을 간증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2020년 9월 15일 오후 1시
이상기 목사

목양칼럼 # 206 목사님! 이곳이 마치 지옥인가 싶어요, 어떡하죠!

9 월 8일 오후 6시에 16살 다은이 엄마의 다급한 소식을 카톡으로 전달 받았습니다. 그 내용은 지난 일주일의 시간이 마치 지옥인가 싶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은이의 폐가 너무 갑자기 나빠졌다면서 또 어떤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데 참 드문 케이스라고 말하니까 저도 숨도 못 쉴 만큼 무섭고 힘들었습니다.

한 달 반전에도 폐에 이상이 없었는데 폐에 물이 차서 숨을 쉴 수가 없어 병원에 입원을 해서 4 일전 폐에서 4 리터가 넘게 물을 빼어야 했습니다. 문제는 지금도 계속해서 폐에 물이 차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일주일 동안 방독면 같은 특수 산소 호흡기를 쓰고 있어 일주일 동안 식사를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외동딸이 이렇게 되니까 엄마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미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필자가 어려운 병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다은이를 알게 된 것은 벌써 2 년 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다은이나 그의 부모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다은이를 위해서 계속 기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은이가 앓고 있는 병이 50년 전 필자가 알던 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위중한 카톡을 받고서 기도 후 잠 잠자리에 들었다가 밤 11시 반에 잠에서 깨어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어 차로 30분을 달려서 불 꺼진 교회로 나와 다은이를 위하여 기도한 후 이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나를 살려주신 주님! 다은이도 살려주세요, 나와 동행하신 주님, 다은이도 동행해 주시어 지금까지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쓰임 받게 하신 주님, 다은이의 생애를 축복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빛나는 여종으로 사용해 주시길 원합니다. 다은이를 위해서 기도를 시작한 것이 벌써 2 년 반이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교인은 아니지만 매일 다은이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다은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8년 4 월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하나 뿐인 외동딸을 죽음에서 구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수소문 하던 중 우연하게 인터넷에 실린 필자의 투병기(재생불량성빈혈)를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후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카톡으로 소식과 안부를 주고받다가도 다은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어머니는 전화로 딸의 상태를 알리곤 하는 것입니다. 의학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도 다은이와 같은 병에서 살아나는 길은 골수 이식을 하는 것 외에는 달리 치료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골수 이식이라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다은이의 골수와 일치하는 기증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너무 어려운 것입니다. 살기 위해선 기증자를 만나야 하기에 다은이 부모와 주변의 많은 분들이 다은이를 살려줄 기증자를 위해서 오랫동안 기도해 왔었습니다.

골수 이식을 하는 절차도 간단하지 않습니다. 수술을 받고도 두서너 달은 무균실에서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고 격리된 병실에서 힘든 과정을 지나야 합니다. 1 년 전 다은이와 일치하는 골수 기증자가 나타나 수술을 받았을 때 이제는 살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의 좌절과 절망은 너무 컸습니다.

더 이상 다은이를 그대로 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특단의 조치를 위했습니다. 딸을 위해서 자신의 골수를 주기로 한 것입니다. 본래 이식에 필요한 골수는 건강한 골수, 젊은 사람의 골수래야 하는데 달리 방법이 없어서 의료진에게 강청하여 아버지의 골수로 4-5개월 전에 그 힘든 2 차 이식 수술을 하였던 것입니다.

다행이 수술 결과가 좋아 골수에서 피를 생산해 내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뜻하지 않는 일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다은이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너무 흥분하고 아파하며 계속되는 모르핀주사로 지난 4 일 동안의 일을 기억을 못하고 계속 며칠인지 인지도 못해서 청천벽력이 이런 건가 싶다고 하시는 겁니다.

일주일 동안 밥을 먹지 못하다가 어제 저녁 처음으로 밥을 먹으면서 너무 행복해 하는 딸을 보면서 어머니의 가슴이 찢어진다고 하셨습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힘든 투병중에도 학업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중환실에서도 에이 프러스를 받아야 한다며 공부하는 것을 처음 본다고 의료진들까지 말을 하는 것입니다.

다은이에 대한 칼럼을 세 번째 쓰고 있습니다. 같은 이름으로 세 번 칼럼을 써보기는 처음입니다. 이 칼럼을 대하는 존경하는 기도의 용사님들께 정중하게 요청 드립니다. 큰 위기에 처한 16살 다은이가 주님의 도우심으로 반드시 살아서 주의 나라를 위해서 귀하게 쓰임 받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2020년 9 월 9일 새벽 1 시 목양실에서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205 수술실에 들어가면서 주님께 드린 감사의 기도!

3개월 전인 지난 6월 5일 열병으로 입원한지 6일 만에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입원 이틀 만에 열병의 원인을 발견하고 그 원인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쓸개를 제거해야 하는데 곧 바로 수술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2년 전 심장 혈관 한 개가 막혀서 스텐트를 삽입하고 Blood thinner를 매일 복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심장혈관에 스텐트를 삽입했기 때문에 수술을 하는 동안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2 틀 동안 세밀한 심장 검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 결과에 합격하지 못하면 수술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환자가 되지 아니하는 것도 은혜이지만, 환자가 되어도 다 수술을 받고 회복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수술을 받을 수 없는 경우의 환자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프지 않은 것도 축복이지만 아파도 좋은 의사와 병원을 잘 만나 수술 받는 것도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술실에 들어가려면 먼저 병실에서 수술실까지 이동을 해야 합니다. 입원실은 9층이었는데 수술실은 지하 1층에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곳을 방문해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수술실은 금방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도착하면 순서를 기다려야 합니다. 큰 병원이기에 수술 환자가 여럿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담당 마취의사가 수술 진행 사항을 설명을 하고 나서 수술실 담당자가 준비 되었다고 하면 들어가게 됩니다.

수술실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 1호실, # 2호실, # 3 호실까지 제 눈에 보였습니다. 그 다음 얼마까지 더 있는 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수술실에 들어갈 때 마취의사가 곁에 동행했고 수술 담당 의사도 함께 들어갔습니다. 드디어 수술대 위에 눕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는 영화에서 보던 장비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두 세 분의 간호사님들도 보였습니다. 마취의사가 하나 둘 세어 보라고 해서 세기를 시작하는데 6-7 까지 세기도 전에 의식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깨어났을 때는 22시간 후인중환자실이었습니다. 11일 동안 입원해 있는 동안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때는 수술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수술 후 깨어났을 때였습니다. 당시 인공호흡기로 호흡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매 순간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그로부터 서너 시간 후 인공호흡기를 제거했을 때 비로소 다시 살았다는 것을 확인하며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주님께 깊은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지금까지 나의 삶을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니 나의 수고와 노력으로 살지 아니했습니다. 주님의 도우심과 축복으로 살았고 맡기신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제 이 자리에서 잠시 후 주님이 불러주셔도 조금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르심으로 주님의 영원한 품에 안기는 것을 감사드리겠습니다. 주님의 나라를 믿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죽음이 저주가 아니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영광의 문인 것을 깨닫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그 기도를 드리고 나니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수술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사라졌습니다.

주님의 명을 따라 나를 위하여 수고하는 의료진들의 노고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나의 건강을 위해서 준비한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주님은 나를 위해서 이 모든 것을 다 예비하셨습니다. 좋은 의료진들을 오랫동안 훈련시키시고 좋은 기계들을 발명케 하시며 좋은 치료약과 시설들을 도처에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만물을 창조하신 그 사랑으로 세상 나라를 허락하시고 지금도 우리의 생존과 미래를 위하여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심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다시 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새 삶을 사는 동안 주님께 간절히 원하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계속 은혜 주시길 원하는 것입니다.

9 월 1 일 20년
이상기목사

목양칼럼 #204 – 8월의 중순은 붉게 물든 대추를 수확하는 때!

금년 들어 가장 무더운 여름 더위가 연일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여름의 이런 날씨는 땀을 흘리게 하여 반갑지 않지만 결실을 기다리는 과일 나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날씨라고 생각합니다. 해마다 8 월 중순이 되면 집 뒤 뜰에 심은 대추나무에 붉게 익은 대추가 줄줄이 달려 수확을 기다리게 합니다.

27-8년 전에 집을 주시기 위해 4 년 동안 열심히 기도한 것에 대한 응답으로 꿈에도 그리던 작은 집을 선물 받았을 때 교인 중 두 분의 권사님이 기념으로 대추나무와 다른 나무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대추나무가 연년이 결실하여 우리 가족이 먹고도 남아 매년 이맘때면 교인들과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나누는 기쁨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 동안의 경험으로 여러 가지 과실수를 집 뜰에 심었었지만 경험한 바에 의하면 가장 관리하기 쉽고 노력한 것에 비하여 큰 소득을 얻는 것은 대추나무뿐이었습니다. 다른 나무는 벌레가 먹어 죽기도 하고 잘못 관리하면 뿌리가 썩어 죽기도 했습니다.

감나무가 그러했고 배나무도, 사과나무도 그랬으며 포도나무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대추나무는 근 30년을 지나오면서 한 번도 실망을 주지 않았습니다. 대추나무가 주는 기쁨은 수확만이 아닙니다. 나에게 기다림을 배우게 했습니다. 겨울이 되면 잎사귀가 다 떨어져 마치 죽은 나무처럼 됩니다.

그러다가 2 월이 되면 죽은 가지 같은 곳에서 하나 둘 잎이 돋아나기 시작합니다. 봄이 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는 듯 대추나무 잎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면서 생명의 신비로움을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런 기쁨이 있기에 대추나무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더 가지게 되며 가까이 하게 됩니다.

마른 가지에 대추나무 잎이 풍성하게 돋아나면 곧 꽃이 피기 시작하고 이어서 작은 열매들이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6 개월 동안 성장하여 주인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대추나무가 주는 기쁨가운데 보고 먹는 기쁨도 있지만 나누는 기쁨이 있습니다. 많이 드리지는 못하지만 조금씩이라도 나눌 때의 기쁨이 있습니다.

대추를 보면서 배우는 자연의 섭리가 또 있습니다. 익은 대추를 우리만 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추가 익는 것을 기다리는 것은 풍뎅이와 작은 새들입니다. 신기한 것은 필자가 사는 곳이 시골이 아닙니다. 세계적 도시 로스엔젤스입니다. 단일 시로서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면적을 가진 대 도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볼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추나무에 대추가 익어가기 시작하면 어디에서 날아오는지 풍뎅이가 떼로 몰려와 익는 대추를 먹기 시작합니다. 풍뎅이만이 아닙니다. 여러 종류의 크고 작은 새들이 달라붙어 익은 대추를 쪼아 먹습니다. 그래서 설익은 대추지만 서둘러 수확을 하게 됩니다.

지난 해 5 월 33년 동안 사용해 오던 교회당 건물을 매각하고 지금의 새 교회당으로 이전하면서 기념수로 여러 종류의 과실 수를 심었습니다. 심은 지 일 년 만에 지난 4-5월에는 살구를 거두었고 7월에는 3 구루의 복숭아나무에서 수확했으며 지금은 대추를 수확했고 10월이면 사과와 감이 결실을 향하여 열심히 익어가고 있습니다.

교회 뜰에 심기어진 과실 수를 보면서 여호와의 전에 심기어진 너희가 복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보는 이들의 사랑과 축복 그리고 특별한 관심 속에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이 나무들에게 때를 맞추어 물을 주고 관리하는 것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을 하면 이마에 구슬땀이 흐르는 기쁨을 더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마 7장에서 아름다운 열매 맺는 좋은 나무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좋은 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나쁜 열매 맺는 나무도 있습니다. 나쁜 나무가 되고 싶어서 나쁜 나무가 된 나무는 없습니다. 위의 말씀은 우리를 나쁜 나무가 아닌 아름다운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통하여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농부를 기쁘게 하는 좋은 나무처럼 위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며 옆으로는 이웃에게 위로와 사랑을 전하며 기쁨을 드리는 소금과 빛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8 월 24일 2020년

이상기 목사

“목사님은 성공한 삶이십니다”(2)

세 번째 은인은 Dr. Pedigo와 영자신문인 코리아 헤럴드의 김경해 기자님이십니다. 중앙일보와 동양테레비 그리고 라디오의 캠페인으로 헌혈과 도움의 손길이 끊이지 않았지만 꺼져가는 생명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의학이 발달한 외국에 나아가 치료를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코리아 헤럴드 신문사를 찾아간 것입니다. 호소를 들어준 김경해 기자님이 어느 날 전보를 보내오셨습니다. 내일아침 조선호텔 427호실로 오전 8시 반까지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조선호텔이 어디에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른 아침 수원에서 첫 차를 타고 신문사로 갔습니다.

김 기자님과 사진 기자 그리고 미국 하와이 영자신문사에서 나온 미국인 기자와 함께 조선호텔로 갔습니다. 당시 그곳엔 한국의 고아원을 오랫동안 도와온 미국 선교본부의 회장이 와 계셨습니다. 회장님이 한국의 불우한 어린이들을 위하여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 이상기군에게도 도움을 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네 번째 은인은 미 대사관의 Dean Martin 영사님이십니다. 미국 UCLA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치료비와 체재비 왕복 비행기 표까지 제공 받았습니다. 이듬해 7 월 담당 의사인 혈액학 주임교수 Dr. Costea 박사로부터 완치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제부터 네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라셨습니다.

그런데 네가 왜 나았는지 당신도 알 수 없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완치 진단을 받고 귀국을 했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건강하게 생활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불안했습니다. 다시 아플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처음 비자를 발급해 준 영사님께 다시 미국에 가서 완전한 치료를 받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드렸습니다.

2주 만에 답장이 왔습니다. 대사관 내에는 나에 관한 자료가 없으니 이 편지를 가지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대사관을 방문했습니다. 구여권에 B-2 비자를 주셨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김포 공항으로 달려가 미국에 갈 수 있느냐고 문의했더니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죽은 여권이라는 것입니다.

비자가 살아 있어도 여권기간이 만료되어 사용 불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청와대 육영수 여사님께 속달 편지를 드렸습니다. 그간의 사정과 미 입국 비자를 다시 발급 받은 경위 등을 담아 속달로 우체국에서 부치고 2 시간에 걸쳐 수원 집에 도착하니 청와대에서 온 전보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섯 번째 은인은 육영수 여사님이셨습니다. 내일 아침 오전 8시 반 외무부 제2 여권 과장을 만나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중앙청을 방문했더니 문 앞에 여 직원이 기다리고 있다가 안내 했습니다. 과장님이 여권을 달라고 하시더니 이 여권은 유효함이라는 사각도장을 찍어 주시며 잘 다녀오라고 하셨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미국 생활에서 주의 종으로서의 삶을 이어오게 하신 은인은 김시철 장로님이십니다. 1980년 10월 목사 안수를 받고 나서 2달 만이었습니다. 김시철 장로님이 교회를 개척하자고 하셨습니다. 목회 경험도 없고 아직 어린 아이 같은 초보 목사가 교회를 개척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그런 나를 세우시고 지금의 교회를 개척하시어 40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어느 날 어느 교인이 장로님 살아 계실 때 물으셨답니다. 이곳에는 이름 있고 실력있는 목사님들이 많이 계시는데 왜 이 목사님을 담임 목사로 모시게 되었습니까? 그 때 장로님이 하신 말씀이 진실한 것 하나만 보셨다고 하셨답니다.

목회 성공의 비결은 실력이 아닙니다. 목사가 아무리 뛰어난 실력이 있어도 믿음의 장로님을 만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좋은 교인이 좋은 교회와 좋은 목사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같으신 장로님이 아들 같은 목사를 주님의 종으로 섬겨주셨기 때문에 교회가 든든하게 세우질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 삶은 성공이십니다”는 친구 Y 목사님의 말이 그래서 더욱 가슴에 깊이 사기어지는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sub_read.html?uid=26681&section=section3&section2=

“목사님은 성공한 삶이십니다”

지난 주 필자가 쓴 칼럼 “할아버지가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는 것을 알아요”라는 글을 읽고서 동일한 지역에서 사역하시는 친구 Y 목사님이 카톡으로 보내온 것입니다. 나를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지척의 거리에서 자주 만나는 가까운 친구 목사님이 주신 내용이기에 지나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필자를 칭찬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고 그렇게 말하므로 나에게 무엇을 얻고자 하신 말도 아닙니다. 특별히 말에 실수가 없으신 목사님이 하신 말이기에 그 말의 뜻을 몇 번 되새기며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의 삶이 성공한 삶이라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평범한 삶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 나의 삶을 지척의 거리에서 오랫동안 교제하여오던 친구 목사님이 하신 말이기에 남다르게 마음에 다가온 것입니다. 특히 “목사님은 성공 하셨습니다”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목사님은 성공한 삶”이라고 한 말이 비슷한 말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목사님은 성공한 삶”이라고 한 말이 마음에 강한 여운으로 다가와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나의 삶에서 위기를 만날 때마다 도움을 주셨던 분들이 여러분 계셨습니다. 그 중 첫 번째 분은 수성고등학교 오익환 교장선생님이십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여러 마을에서 하나뿐인 방앗간 집에서 났습니다.

어려선 부족함 없이 성장했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친구의 빛 보증을 선 것이 화가 되어 어느 날 갑자기 전 재산을 내주고 고향을 떠나 작은 방 3 개짜리 수원 집으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13식구가 이사를 했습니다. 그 때의 충격으로 아버지는 가장의 지위를 잃고 끝내 회복치 못하셨습니다.

이후 가정 경제는 어머니가 행상과 시장에서 채소 장소를 하며 꾸려 나가야 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시험을 보았는데 1 등으로 합격하지 못해서 학비를 면제 받을 수 없어 진학을 포기했습니다. 4 등을 해 입학금의 절반인 당시 금성라디오 한 대 값인 3,400 원이 없어서 학업을 중단했습니다.

2년 동안 어머니를 돕고 장터 몇 가게에서 허드레 일을 했습니다. 2 년 후 야간 중학교에 입학을 하고 낮에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선생님의 추천으로 다니는 학교에서 낮에 급사로 일하며 교무실에서 잔심부름을 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원하는 고등학교에 가려했지만 입학시험에서 1 등을 놓쳤습니다.

그래서 다시 학업을 포기하고 두어 달이 지난 4 월 말에 수원 수성 고등학교 교장실을 찾았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받은 개근상장, 우등상장, 성적표를 가지고 갔습니다.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교장실에서 나에게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달라고 했습니다. 오익환 교장선생님은 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갑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교복과 가방 책을 살 수 있는 돈을 주시며 내일부터 학교에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5-16 장학생으로 추천해 주셨습니다. 교장 선생님의 관심은 학교 전 선생님의 사랑으로 이어졌습니다. 3학년 여름 방학 하던 날 담임선생님의 강력한 권고로 병원을 방문했다가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두 번째 나의 삶에 큰 은혜를 주셨던 분은 중앙일보 본사 김천수 사회부장님이십니다. 재생불량성빈혈이라는 진단을 받고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선 반복 수혈을 받아야 했습니다. 치료가 되지 아니하는 병이었습니다.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에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중앙일보사를 찾아 갔습니다.

훗날 미국에서 완치 진단을 받고 귀국해서 인사차 김천수 부장님을 찾아 갔을 때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이 목사의 신이 자신을 감동케 해 살릴 수 있었다고 하시며 신문에 캠페인을 하기 전 여러 곳에 문의한 결과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시며 300년 만에 하나 나오는 기적의 은혜를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671

할아버지가 우릴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을 알아요

손·자녀들이 모이면 저희들끼리 주고받는 말 가운데 할아버지가 자신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는 것을 큰 딸이 전화로 알려주었습니다. 손·자녀들 가운데 둘은 고등학생이고 둘은 중학생이며 둘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이기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삶을 돌아볼 때 그 정도의 어린 나이에 그런 말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20대에 미국에 건너와 50년 가까이 이곳에 살아왔기에 필자도 조부님의 사랑을 크게 받지 못하고 자랐을 뿐 아니라 이곳에서 태어난 두 딸과 아들도 조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모르고 성장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반하여 이민 3세로 이곳에서 태어난 손·자녀들이 할아버지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감사하며 자랑스러워 한다는 말에 놀라움과 함께 고마운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그러하듯 필자도 손·자녀들을 사랑하면서 인생의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젊어서는 의식주 걱정 없이 사명자로 사는 것이 인생의 행복인줄 알았는데 70을 바라보는 인생 후반기에 접어 들면서 알게 되는 것은 세상에 사는 동안 받는 복중의 복은 자손들이 번창하며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고 행복이라는 것을 생활 속에서 느끼며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손·자녀들을 더욱 사랑하며 관심을 가지게 되기에 저들을 향하여 축복의 디딤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저들이 거두어들일 수 있도록 축복의 씨앗, 믿음의 씨앗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좋은 땅에 뿌리는 일에 열심 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필자가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오래전입니다. 불신 가정에서 성장하여 교회를 모르고 살았습니다. 청소년 시절 난치병을 통하여 주님을 만나고 나서 교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주변에 믿음의 부모와 조상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이렇게 귀하고 좋은 것을 부모로부터 전수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40년 동안 한 교회를 섬겨오면서 보아온 것이 있습니다. 가정의 복, 자손의 복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희생과 사랑으로 자손들이 축복의 열매를 누리는 것입니다. 나의 삶은 나 하나로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따라서 자손들이 영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조심하며 살게 됩니다. 내가 죄에 무너지면 그 죄 값이 나만 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손들까지 고통 받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126편 5-6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위의 말씀은 비단 씨앗의 법칙에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전반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어느 특별한 사람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종교의 유무를 떠나서 신앙의 크고 작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 중 어떤 삶도 의미가 없는 삶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아무리 지치고 힘들고 어려워도 쉽게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아니하고 주어진 삶을 감사함으로 인내하며 의를 이루는 삶을 살아갈 때에 반드시 복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이 우리를 도우시고 기쁨으로 보상하신 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종의 어린 여러 자손들이 주의 축복 가운데 성장케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인생은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주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받은 것처럼 나의 자손들도 같은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있도록 오늘도 마음의 옷깃을 조이며 기쁨으로 주 앞에 더욱 가까이 달려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661

급한 기도에 대한 신속한 응답을 감사드립니다

지난 7 월 26일은 7 월의 마지막 주일이었습니다. 한 주간 동안 입안에 혓바늘이 생겨서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음식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물을 마실 때도 약간의 통증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말을 길게 하면 불편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남은 알지 못하는 나만의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것을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기도 그래서 나만이 간직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통증이 하루 이틀 지나면 가라앉으리라고 기대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지난 달 받은 수술 후유증으로 나타난 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주일이 가까워 오면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태로 주일을 맞으면 설교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금요일까지 기다려도 회복이 되지 않거나 더 증세가 악화가 되면 주일 설교를 다른 목사님에게 부탁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혓바늘이 시간이 지나도 더 악화가 되지도 않고 더 나아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주일을 맞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주일 아침 예배 시간이 가까워 오면서 약간의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이 런 몸 상태로 설교하기엔 무리가 될 것 같아서 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에서 설교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때는 늦었기 때문입니다. 설교자에게 혀는 매우 중요합니다. 말씀을 전달함에 있어서 발음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조용하게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힘주어 설교를 하게 되면 혓바늘로 인한 통증이 가증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때에 설교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배 시작 30분 전에 주님께 간절하고도 진실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아시지 않습니까? 이런 상태로 말씀을 전할 수 없습니다. 부족한 종을 도우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님이 허락하신 말씀을 잘 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셔서 오늘의 예배가 하나님 기뻐 받으시는 영광스러운 예배가 되게 하시고 전하는 사람이나 말씀을 듣는 모두에게 은혜와 축복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드디어 예배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한 주간 동안 나의 생각과 마음에 부담을 주어 왔던 혓바늘로 인한 고통이 예배 시작과 함께 나의 생각에서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예배드리는 한 시간 동안 조금도 고통을 느끼지 아니하고 말씀을 전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예배가 끝나면서 나의 입에서 탄성이 나왔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나를 도우셨습니다. 성령님께서 나의 불편함 몸을 만져 주셨습니다. 그로인하여 예배하는 동안 지난 일주일 동안 혓바늘로 고통스러워하던 아픔에서 자유롭게 하시고 은혜 가운데 예배를 인도할 수 있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예배에 참석한 사람 중 누구도 이 같은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은혜와 도우심의 손길을 체험했기에 주님을 향한 무한한 감사와 신뢰가 되었던 것입니다.

1년 여 전에는 따발총 기침을 했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1-2분 간격으로 기침이 쉬지 아니하고 연달아 자동적으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예배에 참석한 성도님들께 기도해 주실 것을 요청했었습니다. 온 교우님들이 필자를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설교하기 위해서 강단에 서자마자 따발총 기침이 거짓말처럼 멈추었다가 설교를 마치고 나서 다시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예배 참석자들 모두가 살아 계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렸었습니다.

우리에게 기도는 무엇일까요?

기도는 막힌 담을 여는 축복의 열쇠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6장 23-24에서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이 말씀을 믿으시고 살아가면서 여러분이 만나는 무엇이든지 원하는 소원을 주의 이름으로 구하시어 응답 받으시므로 기쁨이 충만한 삶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드립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650

다시 멀어져 가게 하는 교회를 향한 발걸음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예배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지도 6개월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놀라우리만치 과학만능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때에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미세한 바이러스가 현대과학과 의학을 무색케 할 정도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특별히 필자는 미국의 힘과 국방력, 부와 의술을 믿어왔기에 이 같은 일이 있을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세상 모든 나라가 다 어려움을 당해도 미국에 사는 사람은 그런 공포와 두려움에서 당연히 벗어 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믿음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다른 나라들보다 코로나 19의 피해가 더 급속하게 번져가는 것을 보면서 놀라움과 함께 우리가 사는 미국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지도자들에 대한 믿음도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지난 7월 13일에 발표된 캘리포니아 주 지사의 두 번째 Stay at Home 명령으로 코로나 19의 위험이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 주변에 가까이 다가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코로나 19에 대한 이야기가 더 이상 먼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고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아는 주변의 지인들이 코로나 19에 걸렸다는 소식을 자주 듣고 있습니다. 상황이 그러다 보니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로서 이제는 교인들을 향하여 교회 나오라는 권면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주일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교우님들 중에는 전화로 “목사님! 교회 나가지 못해서 미안해요” 라고 연락을 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 전화를 받으면 전과 같으면 교회 참석하지 못하는 이유를 물어야 했습니다. 어떤 일로 왜 예배에 참석할 수 없는지 알아야 위로도 하고 기도도 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전화를 받을 때면 망설임 없이 이렇게 말합니다. “잘 하셨습니다” “조심하면서 건강을 챙기시기 바랍니다.” 코로나19의 위험 때문에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교인들과 대화를 이어갈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과연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로서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하여 생각을 다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의 이런 모습을 어떻게 보실까?

그러나 때가 때이니 만큼 예배에 참여하라 권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코로나 19는 신자나 불신자를 가리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큰 자나 작은 자를 가리지 않습니다. 코로나 19는 신앙과도 상관이 없고 믿음과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부의 지침대로 따라야 하고 자기를 보호해야 합니다.

같은 지역에서 목회하시는 친구 목사님이 행정명령에 따라 당분간 교회 예배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필자가 섬기는 교회도 예배를 중단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으셨습니다. 당연히 행정명령에 따라야 하는 것이 맞지만 그래도 예배를 중단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동안 전 교인이 예배에 참석하지는 못하지만 지난 수개월 동안 교역자 중심으로 소수의 교인들이 모여서 예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도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유튜브TV방송을 통하여 주일 설교를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교인들을 향하여 가정으로 송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가 언제 우리 곁에서 떠나갈지 모르지만 만일 지금보다 큰 위력을 발휘하여 우리 에게 더 강력한 행정명령이 발동하여 예배드리는 것을 금한다 할지라도 나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어떤 위험과 협박이 주어져도 두 세 사람이 모여서라도 주일 예배는 반드시 지켜야겠다는 각오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