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특별한 장례식을 집례 하면서

알츠하이머 질환으로 10여 년 동안 병마와 싸우느라 많은 고생을 하시다가 지난 8월 3일에 하늘의 부르심을 받으신 92세의 C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권사님을 알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40년 가까이 지척의 거리에서 인사를 나누어왔습니다. 3남 2 녀를 두신 어머니 권사님의 큰 딸이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창립교인이며 권사님이었기 때문입니다.

딸 권사님은 Los Angeles에서의 오랜 삶의 경계를 하와이 빅 아일랜드로 십 수 년 전에 옮겨 가셨습니다. 그로인하여 어머니 권사님과의 만남도 전과 같이 자주 갖지를 못했습니다. 1년 여 전에 딸 권사님이 어머니의 병문을 왔다가 필자에게 장례식을 부탁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머니가 기억을 잃어버리시므로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가 멀어져 갔습니다.

오래 동안 섬겨 오셨던 교회와의 관계도 단절이 되어갔습니다. 그래서 필자에게 부탁을 했던 것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 바로 양로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병실에는 가족들이 와 있었습니다. 장의사에서 시신을 모셔가기까지 서너 시간 고인의 곁에서 가족들과 함께 머물 때에 평소 볼 수 없었던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 두 분이 차례로 고인을 문상하면서 C 권사님의 손과 얼굴을 쓸어내리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병원에서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해오던 환자분도 고인 앞에서 작별의 아쉬운 눈물을 우리에게 보이셨습니다. 마지못해서 흘리는 형식적인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체면을 위해서 슬퍼하는 아픔이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목회를 해 오는 동안 많은 죽음을 보아왔지만 이번의 경우는 특별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을 때에 가족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직계 가족이 아닌 이웃이 그렇게 아파하며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것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환자를 돌보던 병원 직원들이 그런 슬픔을 보인 것은 아주 드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을 곁에서 지켜보는 순간 C 권사님의 인품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기억도 잃어가므로 매 순간 주변의 도움을 필요로 하며 힘들게 살면서도 의식이 돌아오거나 아니면 습관적으로라도 가까운 이웃에게 끊임없는 감동과 사랑을 베푸셨던 것입니다.

세상에 우연한 것은 없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심지 않으면 거둘 것이 없습니다. 고인 앞에서 눈물을 보이신 분들을 위해서 고인이 베푸셨던 희생과 사랑이 열배 100배 더 크지 않고는 그런 대접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는 동안 나의 노리에 스쳐가는 것이 있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했습니다. 나도 언젠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죽을 터인데 그 때 나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 달려올 사람은 누구일까? 그 때 날 위해서 진심으로 아파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려줄 사람은 누구일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내게는 그럴 사람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C 권사님처럼 이웃을 위하여 감동과 희생을 베푸는 삶을 살지 못한 것입니다. C 권사님 고인의 면전에서 다짐을 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세상을 더 살지는 모르지만 살아가는 동안 가까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삶을 살므로 죽어서도 이웃에게 사랑의 기억을 남기고 갈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C 권사님의 장례식을 준비할 때에 마음에 샘솟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이 땅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면서 만난 어르신 중 미국에서 태어난 어르신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C 권사님은 1926년 5 월에 Honolulu, Hawaii에서 태어나신 미주한인 이민의 뿌리로 태어나시므로 살아 있는 역사이기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권사님을 만날 때마다 알고 싶은 것도 많았고 묻고 싶었던 것도 많았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신 대로 주님과 교회를 남달리 사랑하셨으며 믿음의 본을 그 어려운 투병 중에도 잃지 않으시고 선한 싸움을 승리로 마감하신 권사님의 장례식을 집례하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462

목사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15년 전의 일로 기억이 됩니다.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교회 주일 학교 학생 중 하나가 치료가 되지 않는 어려운 병으로 생사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을 때에 그 학생을 돕기 위한 모금 운동이 교회 안과 밖에서 있었습니다. 어른 뿐 아니라 주일 학교 어린이 사이에서도 모금 운동이 진행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주일학생 중 하나가 필자에게 다가와 크게 화를 내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강력하게 항의 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지난 주일에 아픈 학생을 위하여 주일 학생들이 모금 할 때에 자신도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그래 좋은 일에 동참한 것 참 잘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를 위하여 얼마를 했느냐고 했더니 5불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것 때문에 화가 났느냐고 했더니 자기가 낸 돈으로 그 아이의 아빠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교회 당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목격한 것입니다.

그 일로 모금에 동참한 어린이가 격하게 화를 내는 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당시 어린 주일학교 학생이 아픈 친구를 위하여 모금에 동참한 5불은 어른이 생각하는 5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에게는 너무도 소중하고 큰돈을 아픈 친구를 위해서 바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드린 그 귀한 돈이 목적한 대로 아픈 친구를 위하여 사용이 되지 않고 자신 앞에서 병든 아이 아빠의 담배 연기로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고서 너무나 화가 났었던 것입니다. 당시의 담배 한 갑의 값이 3-4불정도 했던 모양입니다. 그 순간 자기가 순수한 마음으로 동참한 모금이 후회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정성으로 바친 그 돈이 그렇게 의미 없이 사용이 되는 줄 알았으면 모금에 동참하지 않았을 것처럼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어린이답지 않는 당당함과 자기의 생각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그 말을 듣고 나서 분노하는 학생을 향하여 필자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변명하지도 못했습니다. 무엇으로 어떻게 그 학생을 이해시킬 수가 있습니까? 그저 그 아이 앞에서 죄인 된 심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유구무언이 되었습니다. 이 후 그런 내용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아이 아빠에게도 지금까지도 말하지 아니하고 마음에 담아두고만 있는 것입니다.

15년 전의 그 어린 학생은 계속되는 학교생활에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마약과 술 담배의 유혹으로부터 스스로 자기를 지키며 보호하는 삶을 살아가더니 지금은 29살의 건강한 청년으로 동부의 명문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미 주류사회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지도자로 성장하여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사에 조심하며 나름대로 책임 있는 행동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세상은 나 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생각과 판단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이해가 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생각 없이 행동한 언행이 주변 사람을 화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나의 결정이 다른 사람에게 화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의 충성스런 교인들을 향하여 바울 사도는 고전 10장 31절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권면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잘 믿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주님께 늘 감사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연약을 아시고 보혜사 성령님을 허락하시므로 그 능력을 힘입어 매일의 삶을 통하여 자기를 굴복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하시기 때문에 오늘도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말씀의 푯대를 향하여 순종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420

“여러분! 나는 날라리 장로입니다”

남가주를 26년 만에 기록적으로 뜨겁게 달구던 살인적 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7 월의 두 번째 주일이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한인 타운에서 일 년 전 교회를 설립하고 꾸준하고 성장해 오던 H N 교회가 창립 1 주년을 기념하는 감사예배를 주일 오후 4 시에 드리고 있었습니다. 필자는 기념 예배에 초청 받아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 축사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창립 1주년을 축하하는 내빈의 시간이었습니다. 두 분이 축사로 단에 서셨습니다. 먼저는 한인 타운에서 존경 받으시는 원로 목사님이 축사를 하셨고 이어서 본 교회를 담임하시는 P 목사님이 자신의 외사촌 형님이라고 소개하면서 멀리서 오신 순서에도 없는 장로님을 단에 불러 세우셨습니다.

단에 서신 장로님은 이런 말로 축사가 아닌 자신의 신앙 간증으로 말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러분! 나는 날라리 장로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기념 감사예배에 참석한 50여 분 모두는 귀를 의심해야 했습니다. 날라리 장로라는 말은 진짜 장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름뿐인 장로라는 말입니다.

가짜 장로라는 고백이었습니다. 누가 자신을 향하여 그렇게 말을 해도 화가 나고 인정할 수 없을 터인데 그날 그 장로님은 강단에서 입을 열자마자 힘주어 그 말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말을 공적인 장소에서 선언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말은 이러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교회 강단에 서본 것이 처음이기에 축사를 해 본 일도 없어서 어떻게 덕담의 말을 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가정은 조상 대대로 부처를(절) 유별나게 믿어 왔다고 하셨습니다. 골수분자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정도로 절을 섬겨왔으면 지금도 한국 고향의 절에는 자신들의 이름이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엄한 가정에서 자라난 자신이 예수를 믿고 장로가 된 것은 전적으로 어머니의 은혜 이었다고 하셨습니다. 12 남매를 거느린 어머니가 가문에서 처음 예수를 믿으시므로 형제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불교 가정에 시집 오셔서 예수를 믿기까지 어머님이 겪으셔야 했던 아픔이 어느 정도였음을 장로님의 간증을 통하여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신만 장로가 된 것이 아니라 위로 두 분 형님도 장로님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더욱이 신기하고도 자랑스러운 것은 자신의 집안에선 처음으로 외사촌 동생이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 한분으로 가정만 아니라 일가친척이 구원에 동참하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자신을 날라리 장로라고 공적인 장소에서 말을 하는 것은 지금까지 교회를 섬겨오는 동안 교회 장로로서 말이나 행동에 조심하면서 실수하지 아니하고 교인의 의무와 행동을 해 왔다고 했습니다. 그것으로 교인의 사명을 다하는 것으로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 정도면 잘 믿어왔다고 자부했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감당할 때는 온 마음과 정성으로 감당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정도면 나는 멋있는 장로, 장로다운 장로라고 여겨 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잘 믿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그의 믿음이 진짜가 아니었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날 거듭나는 체험을 하게 되신 겁니다.

자신의 의지나 생각에도 없었던 성령을 체험하게 되셨습니다. 그 날 이후 자신의 믿음이 잘못된 믿음이었음을 깨닫게 되신 겁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세월 동안 교회를 섬기며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라고 하신 겁니다. 그러시면서 날라리 장로님은 우리를 향하여 이렇게 외치고 계셨습니다.

지난날의 어리석었던 자신처럼 이 자리에 함께하신 여러분도 나처럼 날라리 교인이 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름뿐인 교인이 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형식적인 교인이 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유는 교회 다닌다고 다 구원 받지 못하며 교회 다닌다고 다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은혜이며 축복이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의 결국은 천국을 상속 받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선 누구도 예외 없이 거듭나는 믿음, 성령의 사람이 되어서 구원의 주님을 바르게 믿고 증거하는 모두가 되어 달라고 주문하셨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405

알라스카에서 손 자녀들과 한국 축구 응원하기

월드컵의 열기가 시간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축구에 대해서 전문가는 아니지만 TV로 중계되는 경기를 보면서 이전과 달리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대륙과 나라별로 축구 실력이 비교적 평준화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한 팀도 우리나라가 상대할 만만한 팀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금번 월드컵에서 한국이 최초로 상대한 나라는 스웨덴이었습니다. 그 시간에 알라스카를 여행 중이었기에 그 경기를 보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LA 시간으로는 새벽 5시였지만 알라스카 시간으로는 새벽 4시에 경기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알라스카는 남한 땅의 15배나 되지만 인구는 백만이 조금 넘습니다.

그 중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앵커리지는 30만 명이 살고 있고 그 중에 한국인은 3천여 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LA처럼 장소를 정하고 모여서 함께 응원하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5년 째 살고 있는 사위와 딸도 미국에서 태어났고 손 자녀들은 이민 3세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 사는 딸 가족이 한국과 스웨덴과의 축구경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국과 스웨덴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서 전 날 밤 온 가족이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새벽 3시에 어린 손 자녀들이 잠에서 깨어나 TV 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큰 손녀는 13살이고 손자는 11살, 둘째 손녀는 9살입니다. 저들은 한국을 아직까지 방문해 보지 못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저들이 아는 것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나라라는 것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태어난 3세 손 자녀들이 이처럼 우리나라 선수들에 대하여 가지는 존경심과 경기를 이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마음을 조려야 하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두 나라간 객관적인 실력으로 보아서 우리가 이긴다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스웨덴에게 지게 될 경우 어린 손 자녀들이 가질 실망감에 대해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처럼 스웨덴은 우리가 상대하기에 버거운 팀인 것을 부인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자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기게 해 달라고 손 자녀들과 함께 기도할 수도 없는 것은 만일 기도했는데도 졌다면 아이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어 속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실수하지 않게 해 주세요! 최선을 다해서 경기에 임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래서인지 경기하는 시간이 평소보다 지루하고 길게 느껴졌습니다. 지더라도 크게 지지는 말아야 하는데! 하는 염려 속에서도 우리 선수들의 작은 움직임에 대해서 아이들의 연이은 감탄과 탄식이 번갈아 나오다가 결국 경기는 지고 말았습니다. 한 동안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아야 했습니다.

아! 하는 아쉬움과 긴 한숨이 이어졌습니다. 비록 경기는 졌지만 이번 경기를 통하여 얻은 것이 있습니다. 나를 기쁘고 행복케 한 것이 있었습니다. 자랑스러운 나의 이민 3세 손 자녀들이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알아주고 응원해 주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가르쳐서 한 일이 아닙니다.

만일 그날 경기에서 우리가 이겼다면 모두는 큰 소리로 환호하며 서로 부둥켜 앉고 춤을 추었을 것입니다.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이번 월드컵 경기가 아니었으면 알 수 없었던 나의 이민 3세 손 자녀들의 할아버지의 나라, 우리의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확인한 것이야 말로 큰 기쁨이며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385

세 번째 방문하는 알라스카 여행기

4년 만에 둘째 딸 가족이 살고 있는 알라스카를 방문했습니다. 처음과 두 번째는 Long Beach 공항에서 출발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LAX에서 지난 11일 밤 7시 밤에 출발하여 5 시간 만에 알라스카의 앵커리지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시간으로는 깊은 밤이지만 알라스카의 밤은 지역적 특성상 말 그래도 백야로 밤이 없는 날 이 되어 새벽 두세 시에도 비 오는 날처럼 먼 사방을 볼 수 있습니다. 10월부터는 반대로 극야가 되어 어둠속에 살아야 합니다. 공항에는 딸 가족 다섯이 마중을 나왔습니다. 지난 1 월에 이곳에 사는 딸이 비행기 표를 보내왔습니다.

이번에도 한 주일만 지나고 가려고 했는데 이곳에 사는 손 자녀들이 더 오래 머물기를 원해서 2 주일을 머물기로 했습니다. 4년 전에는 알라스카의 북부를 여행 했었는데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착한 날 이른 아침에 2박 3 일의 일정으로 현지 한인 관광회사의 도움으로 알라스카의 스위스라고 불리는 발데즈 항으로 떠났습니다.

앵커리지에서 300마일 이상 떨어진 발데즈는 차로 6-7시간 높고 험한 굽은 산길을 달려서 가는 길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여행을 해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다녀본 곳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었습니다. 유럽의 알프스 산도 넘어 보았지만 그 때의 감동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신비롭고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오고 가는 오랜 시간 동안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경이로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만년설로 덮인 끊임없이 이어지는 드높은 산과 봉우리들 그리고 수많은 빙하를 만나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을 통하여 빙하가 3 종류가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육지 빙하, 높은 산에 머무는 빙하, 그리고 바다 빙하인 것입니다.

그 세 가지 빙하를 다 볼 수 있었습니다. 긴 시간 여행에서 만난 프린스 윌리엄 사운드 해변의 그림 같은 아름다움은 감탄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름 모를 여러 가지의 아름다운 자연의 꽃들이 여행하는 사람들을 반가이 맞아주어 긴 여행의 피로를 잊게 했을 뿐 아니라 큰 감동과 행복을 느끼게 했습니다.

발데즈 항구에서 일박을 하고 다음 날 현존하는 빙하 중 세계에서 가장 큰 바다 빙하인 콜롬비아 빙하를 보기 위하여 배를 타고 왕복 6시간 반 동안 오고 가는 동안 대 자연의 신비를 품은 콜롬비아만의 경치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가는 동안 크고 작은 여러 종류의 고래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개들의 서식지도 보았습니다. 빙하가 쉬지 않고 깨어져 여러 조각들이 바다로 흘러내리는 것을 보면서 자연의 신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람만 수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빙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큰 덩어리에서 떨어져 굉음과 함께 바다로 녹아 사라지는 것이 생명을 다한 사람과 같다고 느껴졌습니다.

발데즈 항구에서 2 박을 한 후 앵커리지로 돌아오는 길에 육지 빙하를 체험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현존하는 육지 빙하중 세계에서 제일 큰 마타누스카 빙하를 3-40분 걷고 손으로 만져보는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조심스럽고 위험한 길이었지만 특별한 체험이기에 거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렇게 다양하고 아름다운데 이런 것을 보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한 채 살아온 삶이 후회가 될 정도로 우리가 사는 세계는 너무 아름답고 귀한 곳이라는 것을 새롭게 느끼고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세상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천국은 얼마나 더 신비로울까?

그 아름다움이 어느 정도일까를 생각한 것입니다. 잠시 사는 세상도 이렇게 큰 감동과 기쁨을 주는데 주님의 나라는 이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하며 영원한 감동과 기쁨 행복을 주는 곳임을 깨달아지게 했습니다. 주님께 부르심을 받는 날 그 영광의 나라에서 누릴 완전한 기쁨과 행복을 깊이 생각하며 더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살아 있기에 이 아름다운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것처럼 내가 세상에 오지 않았으면 천국도 없는 것이기에 우리가 사는 세상,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얼마나 존귀하신 분이심을 다시 확인하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사는 동안 가장 잘하는 일이 있다면 주님을 만나는 것이며 주님을 예배하는 삶인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363

14살 외동 딸 다은이 엄마의 큰 아픔

지난 주간 교회 사무실에 머무는 동안에 평소 알지 못하는 분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기의 발달로 요즘은 전화가 울림과 동시에 상대방의 전화번화가 나타나기에 알지 못하는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대부분 광고전화나 사기성 전화가 흔하기 때문입니다.

그 날도 망설임 끝에 통화를 거절 했지만 반복해서 오기에 마지못해서 받았습니다. 전화기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가냘픈 여성의 목소리였습니다. 그것도 한국인이었습니다. 다급한 목소리로 저를 찾는 전화였습니다. 전화를 하는 곳은 제가 사는 곳에서 자동차로 3시간 거리인 샌디에고에 사시는 분의 전화였습니다.

전화의 내용은 자신의 14살 난 외동딸이 2 년 전부터 재생불량성빈혈로 투병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치료를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하던 중 인터넷을 통하여 자신의 딸과 같은 병명에서 완전한 치료를 받은 필자의 기사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렵게 여러 경로를 통하여 전화번호를 알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전화를 받는 순간 잃었던 지난날의 암흑과 같은 시절, 죽음의 긴 터널에서 헤맸던 절망의 수많았던 날들이 기억에서 살아나면서 다은이 엄마와 어린 다은이가 당했을 고통과 앞으로 겪어야만 할 많은 시련과 역경을 생각하면서 그 일들이 남의 일로만 느껴지지 아니하여 매일 기도하는 기도 제목에 다은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래전에 필자가 그러했듯이 아직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죽음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어린 다은이가 자신 앞에 성큼 다가오고 있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를 의식한다는 것은 정말로 슬프고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주님의 도우심뿐임을 알기에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를 살리신 주님! 늘 주님께 감사하며 산다고 했지만 다은이를 생각하니 주님께 더 감사하지 못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은이를 살려 주세요! 죽을 수밖에 없었던 저를 주의 종으로 살게 하신 주님! 다은이 에게도 동일한 은혜와 복을 주셔서 가정과 이웃을 구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쓰임 받는 종이 되게 해 주세요”

4년 전인 어느 날 오랫동안 집 사람의 주치의였던 Dr. Han 암전문의사와 대화를 나누던 중에 지금도 재생불량성빈혈 환자가 있느냐고 질문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환자 중에도 몇 명이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 병에서 나음을 받았다고 했더니 그럴리가 없다고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4 년 전이긴 하지만 그 때 까지도 치료 방법이나 약이 없다고 말을 하면서 아마도 내가 앓았다는 병은 오진이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나의 주치의는 세브란스의과대학병원의 내과 과장이셨던 채응석 교수님이셨고, 미국에서의 주치의는 UCLA의과대학의 혈액과 주임교수인 DR. Nicolas Costea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Dr. Han은 그래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의아해 하셨습니다. 다은이 엄마와 긴 시간 통화를 하지 못했지만 지난 2 년 동안 온 가족이 당했을 절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어린 딸이 당하는 아픔을 보면서 대신 아파주지도 못하고 부모로서 치료할 병원과 의사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정말로 큰 슬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차라리 어린 딸을 대신해서 대신 아파 줄 수 있다면 백번 천 번 그리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전화로 대화를 나누던 중에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딸과 같은 어려운 병명에서 치료 받고 지금도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은이 엄마와 다은이 에게는 희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은이와 다은이 어머니를 한 번도 만나 본 일이 없지만 타인처럼 느껴지지 아니하고 오랫 동안 교제를 나누어 오던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은 저들을 통하여 잃었던 지난날의 나의 모습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며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회복하고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치료의 은사가 다은이 에게도 속히 나타나시길 축복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338

아빠! 아들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7 년 전으로 기억이 됩니다. 이곳에서 태어난 큰 딸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세 번째 아이를 임신하였을 때 필자에게 기도를 요청했었습니다. 세 번째 낳을 아기는 아들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2 살 아래의 여동생도 두 명의 딸과 아들 하나를 가졌기에 자신도 아들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딸이 목회자인 아빠에게 아들 얻기를 위하여 기도를 요청하는 것은 기도의 응답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자매간에 균형을 위해서 큰 딸의 가정도 아들이 하나 있어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기도를 해 오던 중이었습니다. 큰 딸 가정에 주실 손자를 위해서 반복적으로 열심히 기도를 했습니다.

매일 쉬지 않고 기도를 이어갔던 것입니다. 기도한대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수도 없이 체험했기에 이번에도 구한대로 반드시 응답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주실 줄 믿고 감사의 기도를 했습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다른 어느 기도보다 많은 정성으로 기도했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주실 것이란 믿음이 더해갔습니다. 그런 믿음은 나만이 아니었습니다. 딸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태어날 아기를 위한 의복도 남자 아이의 것으로 준비를 했습니다. 기다리던 해산의 날이 되어 드디어 병원에 갔습니다. 손자를 볼 생각으로 기대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남자 아이가 아니고 여아가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나에게 그 말을 전해 주는 사람이 반대로 말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농담으로 나를 웃기려고 하는 말인 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받은 선물이 손자가 아니고 손녀라는 것이 확인 되었습니다.

나만 실망한 것이 아닙니다. 딸도 실망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반드시 아들을 주실 것으로 딸도 믿었고 나도 믿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한 대로 손자를 주시지 아니하고 손녀를 주신 것입니다. 그 때 전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기도한 것은 손자가 아닙니까? 이번에도 손녀를 주시면 어떡하십니까?

이미 둘이나 있는데 또 손녀입니까? 아들을 주실 줄 믿었던 딸은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한복음 16장 23-24절의 말씀입니다. 예수님 그 말씀 믿고 기도했는데 어떻게 된 겁니까? 그렇게 많을 날, 오랫동안 수도 없이 반복해서 구한 기도가 왜 응답이 되지 않은 겁니까? 아빠 목사의 기도를 믿어왔던 딸이 이번 일로 실망했을 것을 무엇으로 보상하시겠습니까? 구한대로 주시지 아니한 응답에 대해서 항의하는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알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원하는 것을 위하여 간절하게 기도를 해도 하나님은 우리의 원대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우리가 구한 것 보다 더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축복의 섭리와 계획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하나님이 손자가 아니고 세 번째 손녀를 큰 딸의 가정에 왜 주셨는지 알게 하셨습니다. 더 큰 위로와 행복 기쁨을 딸의 가정에 주시기 위해서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고 하신 시편 127편 3 절의 말씀이 생각되는 5월 가정의 달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316

지칠 때 위로와 새 힘 얻는 동력된 신문

같은 지역에서 목회하면서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신문사의 성장과정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그동안 많은 역경을 기적같은 주님의 은혜로 극복하고 왕성한 청년기를 맞이한 크리스찬투데이의 축복과 성장에 경이로움을 느낌니다.

크리스찬투데이는 나의 목회에 있어서 큰 버팀목이며 등대였습니다. 지난 37년 간 한 교회를 섬겨오면서 때로는 지치고 힘이 없었을 때에 크리스찬투데이를 통하여 위로 받으며 새로운 힘을 얻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15년 이상 부족한 사람에게 금 같은 지면을 허락해 주시어 크리스찬투데이에 목양칼럼을 쓰면서 내 안의 다른 나를 발견하게 해 준것에 대해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때로는 부담을 느끼기도 해서 졸업시켜 달라고 몇번이나 부탁도 드렸으나 그때마다 용기를 주곤 했습니다.

근래에 크리스찬투데이에 관심을 가지며 감사하는 일이 있습니다. 종이신문에서 인터넷신문으로 바뀌어가면서 매일 새로운 기사를 빠르게 접할 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다른 어느 기독신문에서도 접할 수 없는 신속한 보도와 분석기사 그리고 미주 전 지역 교계를 이어가는 탐방 기사는 생동감이 있어 마치 독자가 현장에서 보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해서 아주 좋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TV 방송은 글로서는 전혀 맛볼 수 없는 또 다른 신선함과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암투병중인 가족이 있다보니 지난 20여년은 가정적으로 너무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목회를 허락하시지 않는 것처럼 느낀 때도 있어서 목회를 접으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낙심과 위기의 순간에도 다시 강단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장로님과 권사님들 때문이었습니다.

그 힘든 과정 중에도 특히 감사한 것은 32년 동안 사용해 오던 교회당 건물 페이먼트를 2년 전 완불한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288

꿈에서 만난 세상을 떠나신 K 장로님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설립자 되시는 K 장로님이 고령의 연세에 세상을 떠나 신 것은 지금으로부터 1 년 반년 전이었습니다. 설립 당시부터 36년 동안 함께 해온 장로님이 떠나고 난 후 오랫동안 병으로 고생을 해 오던 집 사람이 7 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K 장로님은 나의 삶의 큰 은인이시며 목회의 든든한 후원자 이셨습니다.

지금까지 한 교회를 섬기며 긴 세월 동안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도 K 장로님 때문이었습니다. K 장로님이 소천 하신 후 처음으로 꿈에서 뵈온 것은 집 사람이 세상을 떠나기 5일 전 이었습니다. 꿈에서 정장을 입으신 K 장로님이 후리웨이 교통사고로 현장에서 10년 전에 세상을 떠난 2살 아래의 남동생 집사와 함께 교회에 오신 겁니다.

반가운 마음에 웬일이시냐고 질문을 드렸습니다. 다시는 세상에서 만날 수 없는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밝게 웃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멀고 험한 길을 가야 하시기에 가시는 분을 에스코트” 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깨어나서도 그 꿈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도 생생하고 실제 상황과 같았습니다.

그 때 제 마음에 깨달음이 왔습니다. 장로님과 동생 집사가 집 사람이 천국 가는 길을 동행하기 위해서 오신 것으로 판단이 되었습니다. 2틀 후 주일 새벽 예배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선언했습니다. 이번 주간에 우리 교우 중 한 분이 소천하실 겁니다. 새벽 예배에 참석하신 많지 않은 성도님들이 그 말을 듣고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한 번도 그런 말을 강단에서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니 예배 참석하신 분들이 제게 다가와 묻는 것입니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이고 누가 돌아가신다는 말입니까? 누구일지는 확실하게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중 한 분이 이번 주간에 돌아가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꿈에 돌아가신 K장로님과 L집사님이 교회에 오셔서 제게 말씀을 하셨다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고개를 기울이면서 그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의심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일이 지나고 3일 째인 수요일 아침 이었습니다. 집 사람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 오전 9시에 도착을 했습니다.

집 사람을 담당하는 간호사님이 저를 병실 밖으로 불러내면서 말하길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집사람의 생명이 다하여 가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수 시간 후 이별을 한다는 것을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해 오고 있었습니다. 집 사람은 부르심을 받기 5 일전부터 계속되는 통증으로 2 시간마다 모르핀을 주사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주사를 맞지 않았습니다. 왜 주사를 맞지 않느냐고 했더니 통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떠나는 정오까지 모르핀 주사를 맞지 아니하고 너무도 평안하게 제 앞에서 눈을 감는 것이었습니다. 목회를 해 오면서 많은 임종을 지켜보았던 저로서는 집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큰 은혜를 주시는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미국에서 대부분의 가족들이 임종하는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임종 후 병원의 연락을 받고 급하게 가족들이 달려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집 사람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떠나가면서도 나를 살려 줘요! 나의 고통을 면하게 해 주세요! 더 살고 싶어요! 날 좀 도와주세요! 라고 애원하면서 떠나갔다면 마음이 아팠을 겁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도 아무런 고통도 없이 평안하게 숨을 거두는 것을 목격하면서 큰 구원과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주님께 감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직도 호흡이 남아 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데 담당 의사가 와서 청진기를 심장에 대고 나서 하는 말이 돌아가셨다고 해서 제 손으로 집 사람의 두 눈을 감겨 주었습니다.

집 사람을 보낸지 10개월이 되고 있습니다. 19 년 전 암 진단을 받고나서 했던 말이 생각이 납니다. “이 순간에 예수님을 믿지 아니했다면 얼마나 힘들고 당황했을까요? 주님이 내 안에 계심을 믿기에 그래도 희망이 되고 큰 위로가 됩니다” 세상을 떠나기까지 계획하시고 함께 하시는 모습을 꿈에서 까지 보여 주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275

태평양의 작은 물고기

필자에게는 Washington D.C.에 있는 Georgetown University를 졸업한 아들이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여러 대학으로부터 입학허락을 받았으나 서부에서 먼 동부를 택했을 때 필자는 반대했습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기에 방학 중 오가는 경비는 물론 학비가 비싼 사립학교이기에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년에 5-6만불의 학비를 감당할 수도 없지만 부유한 가정의 자녀들이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기에 행여나 돈을 마음대로 쓸수 없음으로 인해 학우들 사이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기죽어가며 공부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편한 곳에서 꼬리가 되는 것보다는 머리로 살아가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대학 2학년의 학점 크레딧을 받았기 때문에 캘피포니아에 있는 모든 대학은 2년만 다니면 졸업할수 있지만 다른 주에 있는 대학에서는 6개월의 학점 크레딧 밖에 받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4년 동한 전액 장학금을 받고서 원하는 대학으로 갔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1학년 전체 학생 2000명중 학생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는 소식에 놀라움을 당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첫 번 맞이하는 방학때 집에와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자신의 존재는 큰 호수에서 몇 안되는 큰 물고기 가운데 하나였는데, 대학에 가니 태평양의 작은 물고기 중 하나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놀라울 정도로 자기보다 뛰어난 학생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물고기만 아니라 괴물 같이 느껴지는 특별한 학생들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가장 크게 얻은 소득이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재학 중 여러 가지 다양한 경험을 한것중 두 번의 백악관 초청을 받았습니다. George Bush 대통령 때에는 Laur Bush 여사의 점심초대를 받고 1시간 40분동안 백악관을 방문했으며 2011년 9월에는 백악관 내 여성인권위원회의 초대로 미국무부 장관 등 여성위원들 앞에서 4년여 동안 UN 봉사단원으로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한 내용을 15분동안 브리핑하는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들의 선택이 옳았습니다.

대학교 선정을 앞두고 필자가 염려하던 모든 것이 기우에 지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대학에 대하여 이해가 부족한 필자는 어느 날 아들과의 대화에서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네가 다니는 학교가 명문이라고 하는데 어째서 해마다 발표되는 미 대학 평가순위에서 상위권에 들지 못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아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매해 미대학순위를 평가 발표하는 기준이 세가지랍니다. 그해에 지출된 학교 총 결산액과 학교 교수님들의 숫자와 그리고 재학생 수로 결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재학하교 있는 학교는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한 해에 8천명에서 1만명의 신입생들이 입학하고 졸업하는데 반하여 그 1/4에서 1/5 수준인 2천명만 입학을 하고 졸업을 하기 때문에 우수대학 평가 지준에서 자연히 밀려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식장에서 교장 선생님이 필자에게 다가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때가 교장선생님과의 만남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데이빗은 앞으로 좋은 대학에 가게 될것입니다”

좋은 중, 고등학교에 가게 될것이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먼 미래의 일을 말하시는 교장선생님을 향하여 고맙다는 말로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많은 학생 중 아들을 알아주고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장선생님의 말이 현실로 이루어질 것이라고는 당시는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 생각하니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사려깊은 교육자의 안목이 얼마나 정확했는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1년이 지난 후 지금은 Stanford 대학원에 입학허가를 받아(2013년) 학업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넉넉지 못한 목회자로선 감당할수 없는 학교지만 대학이 그러했던 것처럼 대학원도 그가 원하는 공부를 마음껏 할수 있도록 충분한 재정적 후원자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뜨거운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