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사모님이 그래도 살아 있는 것이 났습니다

3-4년 전의 일로 기억이 됩니다. 동일한 지역에서 사역하시는 목사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저보다는 연배가 거의 10년 이상 많으신 C 목사님이십니다. 지난 35여 연간 지척의 거리에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그 동안 목사님은 저보다 더 무거운 가족의 짐을 오래전부터 감당해 오셨습니다.

아들만 둘을 두셨는데 30여 년 전에 심장 수술을 했습니다. 미국이 아니면 생명을 보전할 수 없었는데 미국에 왔기에 여러 번의 심장 수술을 통하여 생명을 유지해 오다가 가정을 이뤘고 손자 손녀를 두었으나 수년 전 결국 심장병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먼저 보내야 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마음의 큰 짐을 지고 사셨습니다.

큰 아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둘째 아들이 대학 1 학년 때 집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학교 기숙사로 돌아가기 위하여 친구와 함께 가다가 그들이 탄 차가 앞에서 달리던 대형 트럭을 들이 받으므로 목뼈가 물어지는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여러 번의 수술을 했지만 그 사고로 평생을 하반신 마비로 살아야 합니다.

아들에게 도움을 받으셔야 할 노년의 나이 임에도 불구하시고 목사님은 평생을 불구자로 살아가야 하는 둘째 아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일만이 아니라 항상 곁에서 함께 살아야 하시며 소 대변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외출할 때마다 앉고 일어서는 일부터 휠체어를 밀어주는 일을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해오고 계십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사모님도 건강이 좋지 않아서 오랫동안 병을 가지고 있어서 그 뒷바라지를 감당 하시느라 많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결국 사모님은 5-6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지금은 70 중반의 연세에 둘째 아들을 돌보며 함께 살아가고 계십니다. 그 목사님이 제게 전화를 주신 겁니다.

이 목사님! 얼마나 힘드세요! 제가 경험을 해 봐서 목사님이 많이 힘든 것 잘 압니다. 많이 힘들어도 한 가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어서 전화를 했습니다. 이 사모님의 오랜 병원 생활로 심신이 매우 힘드시겠지만 그래도 살아서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이며 감사한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C 목사님은 사랑하는 아내가 너무 힘들게 살아왔기에 그럴 바에는 차라리 세상을 떠나 주님의 나라에서 안식을 누리는 것이 낫지 아니할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지만 막상 곁을 떠나고 나니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 가운데 떠나가는 것이 본인과 남은 가족에게 결코 좋은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서 옆에 있어 주는 것이 은혜요 축복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지난 수년 간 아내가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목사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래도 그 말의 의미를 체휼 적으로 느끼지는 못했는데 집 사람이 떠나고 나서 3개월이 지나는 지금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하셨는지 피부로 절실하게 느껴지고 있는 것입니다. 집 사람이 세상을 떠나기 일 년 여 전부터는 기도를 중단했습니다. 그런 몸의 상태로 더 산다는 것은 본인에게 더 고통을 주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마다 집 사람의 건강 회복을 위하여 기도하지 아니하고 주님 뜻대로 하시라고만 기도했습니다.

그 동안 몇 차례 집사람의 무덤을 방문했습니다. 갈 때마다 아무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홀로 돗자리를 펴고 앉았는데 내 마음의 생각과는 다르게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지? 아내가 내 앞에서 가파른 숨을 멈출 때도 그런 감정은 없었습니다.

장례식을 준비하고 진행하면서도 눈물이 없었습니다. 아내를 보내고 나서 그런 느낌을 받아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그 날의 눈물을 보면서 다시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이제는 내 품에서 떠난 것을 실감한 것입니다. 아마도 그 눈물은 나의 내면의 눈물이었음을 인정합니다.

병든 아내를 돌보는 것이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서 곁에 있는 것이 낫다고 하신 선배 목사님의 말씀의 의미가 깊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C 목사님 깊은 권면의 말씀을 이제서 알고서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나보다 더 몇 배가 넘는 무거운 가정의 짐을 지고 가실 때 변변한 위로가 되어 드리지 못했음을 진심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989

결혼 25주년 기념일에 목사님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결혼 25주년 기념일에 목사님과 사모님을 초대하고 싶다는 연락을 수일 전 전화로 받았다. 한 동안 잊고 지냈는데 C 집사님 부부를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서 결혼식을 행한지가 벌써 25년의 세월이 지난 것이다. 그랬다. 지금처럼 뜨거운 여름 날 이었다. 지금도 그 날을 잊을 수 없는 것은 너무 뜨거운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결혼식에 참석했던 하객들 가운데 가장 많았던 말은 이렇게 날씨가 뜨거운 것은 신랑과 신부의 사랑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라는 말을 했었던 것이다. 집사님의 가정은 세 아들을 두고 있다. 쌍둥이 두 아들은 대학을 졸업했고 막내는 아직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다. 집사님 가정이 필자에게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결혼식을 거행하기 전 몇 번의 만남을 통하여 결혼의 원리, 의무, 행복한 결혼 생활에 대해서 상담을 하면서 다짐을 받았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결혼 10주년 때마다 주례자와 만나서 그 동안의 결혼 생활에 대해서 보고를 하라는 것이었다. 특별히 결혼 10주년 기념일 때는 두 분이 신혼여행을 갔던 곳으로 필자도 여행을 보내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많은 결혼식을 주례했지만 결혼 10주년에 신혼부부가 여행을 갔던 곳으로 우리 내외도 여행을 보내 달라고 주문을 했던 것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물론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집사님과 스스럼없는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학습과 세례를 베풀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 말을 했던 것을 필자도 까맣게 잊고 지냈던 것이다. 그런데 10주년이 되는 해 여름 이었다. 집사님 부부로부터 본인들이 10년 전 신혼여행을 다녀온 하와이로 우리 부부를 여행 보낸 것이다. 당연히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 선물을 받고서 너무 놀랐던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에는 부모님을 비롯한 형제자매들이 알라스카 크루즈 여행을 할 때 우리 내외를 초대하여 함께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여러 번의 결혼식 주례를 해왔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데 C 집사님 부부는 변함없이 우리 부부를 기쁘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가끔씩 오가며 집사님을 생각할 때마다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되며 특별히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것은 귀한 만남을 허락하셨기 때문인 것이다. 지금은 한 교회를 섬기지 아니하지만 섬기는 교회는 달라도 교제는 계속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 위로하며 수시로 전화로 안부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즐거운 만남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25주년 결혼기념일을 남편과 아내 둘이서 보내지 아니하고 주례목사님을 좋은 식당으로 초대해서 함께 보낸 시간은 두 분 뿐 아니라 우리 내외에게도 특별한 날로 오래도록 기억이 될 것이다. 살아가면서 많은 대접을 하고 또 대접을 받기도 했지만 이렇게 기쁘고 즐거운 대접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주의 종으로 살아온 것에 대한 보너스라고 느껴지기에 더욱 뿌듯한 행복감에 젖어드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목회자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런 귀한 분들을 만날 수 있었겠는가? 이런 위로와 감사는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민 목회자로서 지나온 긴 세월 동안의 경험을 보아서 집사님 부부와의 만남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갈수록 더 귀한 만남으로 발전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지금까지 늘 그래왔었던 것처럼 또 다른 10년 후 더 멋진 장소에서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나게 될 것을 알기 때문인 것이다.

집사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더 건강하시고 행복하시며 이전보다 더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크게 돌리시는 가정의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957

37년 목회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

아들이 필자가 살고 있는 지역의 Medical magnet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안 것이 있었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내에는 두 곳 밖에 없는 특수학교인 것이다. 그 곳에 들어가고 나서 제일 먼저 통보 받은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학교에서 지정해준 대형 병원에서 500시간 이상의 자원 봉사를 해야만 졸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지정해준 종합병원에서 자원 봉사자가 되기 위해선 먼저 그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건강에 이상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절차에 따라 아들은 건강 검사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알았던 아들에게 건강상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 발견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병원으로 급하게 연락을 받고 가서 보니 아들의 간에서 cooper가 발견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병원 담당자의 설명에 의하면 아들의 수명이 몇 년 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뇌의 신경에 문제가 있어서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당장 학업을 중단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간 전문 의사를 소개하면서 속히 만나 보라는 것이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 가정에 있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아내의 유방암으로 인하여 온 가족이 힘들어 할 때에 아들에 대한 소식은 글자 그대로 청천병력이었다.

누구의 죄 때문인가? 내가 하나님께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 과연 나는 주님이 인정하시는 목사인가? 이러고도 내가 교회를 계속 시무할 수 있을까? 자신이 서지 않았다. 무슨 낯 무슨 명목으로 강단에서 설교 할 수 있단 말인가? 가족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기조차 민망해 했다. 특히 아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 볼 수가 없었다.

아들 또한 나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정말로 견딜 수 없는 아픔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기도가 되지 않았다. 기도해야 하는 것은 아는데 아무리 기도를 해려해도 기도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에게만 말하고 기도원으로 홀로 행했다. 언제 내려온다는 기약도 없이 그냥 무작정 떠난 것이다.

그러면서 작정하길 이제 나의 목회는 이것으로 끝이다. 그런 생각에 장로님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주일 예배를 마친 후 기도원으로 향했던 것이다. 그런데 기도원에 머무는 동안에도 기도가 되지 않았다. 성경도 읽혀지지가 않는 것이었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이게 뭡니까?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쉬지 않고 반복되는 탄식과 한탄만 나올 뿐이었다. 3일 째 되는 수요일 오후였다. 갑자기 세미한 음성이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David 가 누구의 아들이냐는 것이었다. 그 음성이 나의 뇌리를 강하게 충격을 주고 있었다.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David가 나의 아들이 아니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세미한 음성을 듣는 순간에 나의 아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말이 있었다. 내 아들이 아니니까? 알아서 하세요! 알아서 하세요! 알아서 하세요! 그 소리만 반복해서 부르짖고 있었다. 그 시간 이후 이상하게 마음의 평안이 찾아 왔다.

그래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산에서 내려와 수요 저녁 예배를 인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문 의사를 소개받고 진료를 시작하기 까지는 약 2개월의 시간이 소요 되었다. 그 동안 아들은 학교 수업을 중단해야 했다. 소개 받은 의사는 여자 의사였다. 의사의 지시로 곧 바로 병원에 2주간 동안 입원을 해서 간 조직 검사를 반복해서 해야 했다.

기가 막힌 것은 미국의 병원은 어린 환자에게도 병에 대해서 숨김없이 알려 주는 것이다, 그로인하여 아들은 자신의 죽음을 응시하고 있어야 했다. 자신의 병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이 나만 아니라 가족 모두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이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일주일 후 간 조직 검사 결과를 통보 받기 위해서 병원을 찾았다.

진료실 안으로 들어설 때 담당 의사를 만났을 때 허리를 굽혀서 인사를 했는데 그런 나의 인사를 받지 않았다. 그 순간 아! 틀렸구나! 아들이 살 희망이 없다고 낙심하며 기다려야 했다. 진료실 안으로 두 딸과 집 사람 그리고 아들이 함께 들어갔다. 그 때 까지도 의사는 굳은 표정으로 우리에게 미소를 주지 않고 있었다.

아들을 진료 대에 눕히고 진찰을 한 후 검사 결과 차드를 읽고 나서 의사는 우리를 향하여 간단하고 짧은 말로 이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It’s normal” 죽을병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지난 2달 동안 우리 가족을 두렵고 힘들게 했던 사망의 그림자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집 사람은 진료실 바다에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기쁘기보다도 너무 냉정하고 너무 침착한 의사를 향하여 주먹으로 세차게 치고 싶은 충동을 참아야 했던 것이다. 이유는 의사는 이미 검사 결과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대할 것이 아니라 환한 미소로 맞아 주었더라면 극도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예방 주사의 효과라고 할까? 아들은 그 과정을 통하여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가? 왜 살아야 하고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아들은 학교에 돌아가서 열심히 공부하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 아들이 George town 대학을 졸업하고 Stan Ford 대학원에서 국제정치경제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917

결혼 43년 만에 다시 끼어본 결혼반지

43년 동안 함께 살아온 집 사람이 한 달 전 세상을 떠나고 나서 집 사람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귀중품을 담아둔 작은 보석 상자를 열고서 결혼반지를 찾았습니다. 상자속의 다른 것들은 딸들에게 주고 그 중 하나만 내가 택했습니다. 결혼반지였습니다.

그 동안 아내의 요청으로 특별한 행사에 참석을 할 때 몇 번 끼웠던 기억이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와선 곧 바로 빼서 아내에게 돌려주곤 했습니다. 평소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는 것도 불편해하는 까닭에 반지를 끼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나의 결혼반지는 오랜 시간 동안 늘 상자 속에 있어왔습니다.

결혼 초창기에 반지를 끼지 아니한 것은 당시는 막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야 했기에 결혼반지를 끼고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작은 다이아가 박힌 백금반지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손가락에 잘 들어갔습니다. 기억하기로는 지금까지 결혼반지를 3주간 이상 계속 끼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마음 같아선 3-4년은 끼고 싶은데 앞으로 얼마나 오래 동안 간직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도 나는 당신의 사람이라는 것을 나 스스로만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가까운 주변 분들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동안 고생하셨으니 이제는 좋은 분 만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한두 분이 아니어서 그럴 때마다 일일이 대꾸하기도 그래서 손에 낀 결혼 바지를 보여주며 미소로 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소에 끼지 아니하던 결혼반지를 끼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돌이켜 보니 지나온 43여년의 결혼 생활이 얼마나 큰 은혜였고 축복이며 행복이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집 사람을 사랑한 것보다도 집 사람에게 받은 사랑이 너무도 컸습니다. 집 사람과의 행복했던 수많은 기억들이 너무 크게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어서 쉽게 지워지지 아니할 것 같습니다. 다시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랑을 할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당분간은 그 아름다운 추억들로 오는 세월을 견뎌 나갈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아내는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분에 넘치는 은혜의 선물이었습니다. 아내의 희생, 헌신 그리고 기도로 오늘의 내가 있었으며 자녀들이 복을 받았습니다. 부족하지만 주의 종으로 지금까지 사역을 지속할 수 있는 것도 아내의 내조 때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내가 소유하고 누리는 모든 것은 다 아내로 말미암은 선물이며 축복인 것입니다. 집 사람이 남긴 흔적을 지난 한달 동안 정리하면서 안 것이 있습니다.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아니한 것을 알고서 두고 가는 나를 위하여 크고 작은 일을 다 정리하고서 떠난 것입니다.

그런 당신에게 미안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당신의 결혼반지를 내가 해 주지 못했습니다. 나의 결혼반지도 당신이 해온 것이고 당신이 지금까지 간직하던 결혼반지도 내가 선물한 것이 아니고 당신이 직장 생활을 해서 번 돈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당신과 나만이 아는 것으로 아이들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약속을 하지 않았습니까? 먼 훗날 큰 다이아가 박힌 반지를 선물 하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지 못했습니다. 무능한 남편을 용서하기 바랍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나를 용서하기 바랍니다. 당신의 몫까지 살아서 다시 주님의 나라에서 기쁨으로 만날 날을 고대하겠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854

어느 목사 사모님의 아름다운 고백

얼마 전 집사람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어느 목사님의 사모가 방문을 했었습니다. 그 사모님과 같은 지역에서 인연을 맺어온 지는 30여년의 세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넉넉지 못한 이민교회의 설립 목회자로 살아오신 C 목사님과 사모님은 동역 자들 사이에서도 신실한 목회자로 인정받으시는 이 시대에 보석같이 귀하신 목사님 가정이십니다.

같은 이민교회 동역자로서 그 동안 서로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만날 때마다 꾸밈이 없는 솔직한 대화를 나누곤 합니다. 그런데 그 날 만난 사모님은 우리가 알았던 이전의 사모님의 모습이 아니셨습니다. 지금까지 그런 사모님의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우리가 당황해 하는 것을 눈치 채신 사모님이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딸하고 좀 놀았습니다”라고 하시며 큰 소리로 객쩍은 웃음을 지어 보이셨습니다. 사모님은 아들과 딸을 두고 있으십니다. 모두 다 이곳에서 좋은 대학을 나왔고 딸은 명문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장래가 촉망되는 유망주입니다. 그런 딸의 성품도 어려서부터 보아왔기에 ‘사모님과 딸이 좀 놀았다’는 말이 우리에게 통할 리가 없습니다.

결국 사모님은 묻지도 않았는데 우리 앞에 이런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신실한 권사님 중 한 분이 시간을 정하고 어느 장소에서 꼭 만나길 원한다고 하셔서 아무런 생각 없이 약속 장소에 가셨습니다. 그곳은 쇼핑센터 내에 자리하고 있는 네일 삽이었습니다. “왜 이곳에서 만나자고 하셨어요” 초청하신 권사님은 그제서 말을 하셨습니다.

사모님에게 작은 선물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네일 값을 지불했으니 자리에 앉아서 서비스를 받으시라는 것입니다. 극구 사양을 했지만 통할 리가 없었습니다. 나는 이것보다도 정말로 나를 기쁘시게 해 주시려면 같은 건물 내에 있는 식당에 가서 맛있는 식사나 사달라고 했지만 그것 역시 거절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마음에도 없는 네일 서비스를 생에 처음 받아 보신 것입니다. 그렇게 강권적이지 않으면 사모님께 그런 선물을 드릴 수 없기 때문에 사전에 네일을 선물하는 것을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사모님이 받으신 네일은 빛이 나는 은빛 색깔이었습니다. 일반적인 네일은 마음에 들지 않지 않으면 씻어 지을 수 있지만 사모님이 받으신 네일은 70불짜리 고급 네일 이기에 씻기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손톱이 자라서 깎아 버리기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 일로 교회 성도들과 만날 때마다 “사모님 웬일이세요!” 지금까지 보지 못하던 사모님의 돌발적인 행동에 모든 교인들이 놀라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교인들이 “어떤 연유로 그렇게 하셨어요?”라고 물을 때마다 어느 권사님이 해 주셨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 “딸과 좀 놀았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사모님의 열 손가락을 다시 보니 처음보다 더 아름답고 예뻐 보였습니다. 은빛으로 빛나는 사모님의 열 손가락보다 더 아름다운 감동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은 그런 선물을 하신 무명의 권사님의 아름다운 헌신 때문이었습니다.

사모님은 이렇게 말을 이어 가셨습니다. 네일 값이 그렇게 비싼 줄 모르셨다는 것입니다. 팁까지 포함하면 그 이상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보다 나에게 더 필요한 것은 Cash를 선물 받는 것인데 하면서 웃음을 지어 보이셨습니다.

선물하신 권사님이 왜 그런 사모님의 마음을 모르셨겠습니까? 누구보다도 사모님의 그런 마음을 다 아시면서도 그 선물을 하신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면 평생 한 번도 그런 서비스를 받아 보시지 못하실 것을 알기에 그리하신 것입니다. 사모님은 목회하시는 목사님을 돕기 위해 환갑을 바라보시는 지금까지도 직장을 계속해서 다니고 계십니다. 사모님의 고정 수입이 없으면 가정 뿐 아니라 교회에도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피고한 몸이지만 주중에는 직장에 매이고 주말이면 교회를 섬기느라 잠시도 쉴 시간이 없으셨습니다. 그런 사모님에게 작은 위로를 드리기 위해서 무명의 권사님은 특단의 조치를 취하신 것입니다.

그 일로 사모님은 주변으로부터 많은 인사를 받으며 그럴 때마다 웃음을 지어 보이시는 것이었습니다. 병석에 누워서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집 사람도 잠시 아픔을 잊고 그 말에 감동을 받아 말하길 “아니 그렇게 사려 깊으시고 훌륭하신 권사님이 사모님 교회에 계셨군요” 하면서 함께 기뻐했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775

“좋은 강사님이 계신데 부흥회를 하시겠습니까!”

동일한 지역에서 목회하는 G 목사님이 십 수 년 전에 어느 모임에서 필자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목사님이 섬기시는 P K 교회는 가까운 시일에 부흥회를 할 계획이 없으신가요? 금번에 한국에서 이름 있는 부흥사가 미국을 방문하게 되는데 이번 기회에 부흥회를 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이민 교회의 형편상 이름 있는 한국의 부흥강사를 섭외하려면 여러 가지 조건 때문에 쉽지 않은데 이번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부흥 강사가 방문하는 시기에 일정만 조정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금번에 오시는 강사님의 명성이 크기에 많은 교회들이 부흥회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저를 위하여 특혜를 주는 것처럼 말을 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 분의 제의를 받고 허락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생각해 보겠다고 말을 하지도 않고 단번에 그럴 계획이 없다고 거절한 것이다. 그러자 이런 내용의 질문을 하셨다. 지금까지 수십 년을 한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얼마나 많은 부흥회를 해 보았느냐는 것이었다.

또 어느 부흥사를 모셨는가에 대해서 물어 오셨다. 아직까지 부흥회다운 부흥회를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고 말을 했더니 그러고도 어떡케 지금까지 교회를 이끌 수 있었느냐고 반문을 하시는 것이었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목사님은 연중행사로 매년 한국에서 부흥사를 초청하여 부흥회를 해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부흥회를 개최하는 것이 목회에 좋은 점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부흥회를 개최하고 나면 부흥사로 초청받은 강사 목사님이 답례로 한국에 부흥회를 할 수 있도록 주선해 준다는 것이었다. 가는 것이 있어야 오는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목사님도 한국에 매년 나가 부흥회를 하고 온 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왜 나는 지금까지 36년 이상 한 교회를 섬겨오면서 부흥회를 시도해 보지 않았나 하는 것이었다. 그 분의 말처럼 내가 부흥강사가 되지 아니한 것도 그런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부흥사가 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70년대 후반부터 이민교회에 부흥회가 성황을 이루던 때가 있었다. 당시 명성을 떨치던 부흥사로는 한국에서 온 K목사 L목사 C목사 등이 크게 활동을 하셨다. 필자도 그분들의 부흥회를 빼놓지 않고 따라 다녔다. 한때는 그분들처럼 부흥사가 되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산 기도를 하면서 소나무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해서 그런 기도도 해 보았다.

그러다가 부흥사를 하지 않기로 한 동기가 있었다. 1980년 7 월 팜데일 기도원에서 기도를 할 때였다. 필자가 사용하던 방 맞은편에 당시 400여명의 성도가 모이는 감리교회의 P목사님 부부가 일주일 동안 금식 기도를 하고 계셨다. P 목사님은 40년 동안 사역을 해 오시면서 늘 마음에 부족한 것이 있어 채움 받고자 오셨다고 하셨다.

은퇴를 앞두고 이번이 아니면 다시 기회가 없을 것 같아 마지막으로 결단을 하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뜨거운 기도의 체험과 성령의 은사를 받고 싶다고 하셨다” 신유의 은사도 받고 싶고, 방언의 은사도 받고 싶다고 하신 것이다. 일주일 동안 금식을 하면서 기도 했는데도 원하는 은사를 받지 못하셨다.

그런데 마지막 날 이른 새벽에 P 목사님이 떨리는 음성으로 방문을 두드리시며 “나 기도 응답 받았습니다”라며 제 방으로 오셨다. 그리곤 받은 기도의 응답을 이렇게 간증하고 계셨던 것이다. 오늘 새벽에 기도하는데 비몽사몽간에 예수님이 나타나시어 네가 평생 원하던 것을 받으라고 하시어 두 손을 벌려 내밀었다.

주님이 직접 나타나시어 기도의 응답을 주시리라곤 기대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너무도 놀랍고 기뻐서 주님께 받은 선물을 펴 보는 순간 크게 실망을 하고 말았다. 예수님이 주신 선물은 목사님이 원하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두 손안에 있는 것은 공사판에서 쓰다가 버린 녹이 슬어 휘어지고 부러진 몇 개의 못이었다.

이것은 내가 원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원하는 것은 여의도 순복음교회 C 목사님처럼 기도할 때마다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설교할 때 아멘 할렐루야로 화답 받는 것이며 능력 있는 설교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그동안 구한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이미 너는 복을 받았느니라! 네가 구하던 것들은 지금까지 전하고 설교한 내용들에 비하면 이처럼 쓸모가 없는 것들이니라! 고 하신 것이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지금까지 잘못 구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주님을 만난 기쁨이 크게 교차하면서 충만한 기쁨 속에 하산을 하셨던 것이다. 그 간증을 들은 필자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큰 은사가 병 고치는 은사가 아니요 능력 행하는 은사가 아니며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환영 받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어 기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목사가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는 종이 되게 해 달라고 구한 것이다. 사는 동안 복음만 전하는 종 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것이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762

사모 장례식에도 참석했는데 날 모르십니까?

살아가다 보면 가끔 웃지 못 할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십여 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어느 모임에 집 사람과 함께 참석을 했을 때였습니다. 평소 친분은 없었지만 그 장소에서 마주 친 분이 목사라는 것을 알았지만 목회를 하지 않은 분이셨습니다. 특정지역의 선교사로 알려진 분이셨습니다.

마주하게 되어 간단히 목례만 하고 옆으로 지나가려는데 앉은 자리에서 급하게 일어서더니 필자를 향하여 큰 소리로 화를 내면서 손을 들고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목사님! 그럴 수가 있습니까? 사모 장례식에도 참석을 했는데 날 모르십니까? 왜 날 모른 척 하십니까? 참으로 기가 막히고 화가 나는 일이었습니다.

그 자리는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집 사람도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분이 저를 아는 분이라면 그런 인사를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내가 그 분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처럼 그 분도 저를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만 당황한 것이 아니라 곁에 있던 집 사람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마도 그 분은 집 사람이 어려운 병으로 오랜 시간 동안 투병 중인 것을 어디선가 듣고 알고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 생각하길 이 목사의 부인은 더 이상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판단을 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옆에서 다정하게 자리하고 있는 집 사람을 향하여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공적인 자리에서 그런 돌발적인 행동을 할 수 있습니까? 그로인하여 상대방이 얼마나 난처한 입장에 처한다는 것을 알면서 말입니다. 홀로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렇게 공적인 장소에 부끄럼 없이 새 여인을 동반하여 나타났냐며 여러 사람들 앞에서 부도덕한 목사로 망신을 줄 각오로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이라고 판단되었습니다. 이럴 때 상대방을 향하여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떻게 상황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잘 아는 분도 아니고 알고 지내는 사람도 아닙니다. 형제도 아니고 일가친척도 아닙니다. 선후배도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있습니까? 설령 주변에 그런 사람을 알고 있어서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더라면 조용한 자리로 따로 불러서 말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생각이 있는 사는 사람이라면 나에게만 말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 부인 앞에서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 말을 듣고 너무 화가 났습니다. 세상에 별일도 다 보게 되었습니다.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몰상식한 사람에게 면박을 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사실 확인도 아니 하고 분명하지도 않은 일에 대하여 그토록 분을 발하는 것은 최소한의 인격을 갖추어야할 목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말로 어떻게 상대방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겠습니까? 바른 자세로 정색을 하고서 그렇게 말하는 분을 향하여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저희 집 사람인데요! 집 사람의 장례식에 참석을 하셨다고요! “언제 어디에서! 이렇게 살아있는 사람 앞에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물론 그 말까지는 하지 않았습니다. 공적인 자리에서 터무니없는 말로 무모한 공격을 가하는 상대방을 향하여 반격하자 양심에 찔림을 받았는지 상대방의 얼굴이 금방 빨개졌습니다.

기본 소양을 갖춘 사람이라면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부끄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제게만 아니라 옆에 있는 집 사람에게도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그 분은 그런 인사도 없이 걸음아 날 살려라 하는 동작으로 사과의 말 한마디도 없이 급하게 자리를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인사를 받은 일도 있습니다. 저와 같은 이름의 목사님이 같은 지역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동명이인입니다. 그 목사님의 사모님이 오랜 투병을 하시다가 수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 부고가 필자와 같은 이름으로 일간 신문 광고란에 올랐습니다. 이를 본 저를 아는 많은 분들이 사방에서 전화로 위로의 인사를 주셨습니다. 전화뿐 아니라 카톡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는 내용을 여러 개 받았습니다.

그 일이 있고나서 집 사람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황당한 인사를 받는 것을 보니 당신은 오래 살 것 같아요!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704

뒤뜰에 핀 아름다운 호박꽃

지난 해 집 뜰에서 딴 늙은 여러 개의 호박 가운데 잘 생긴 것 하나를 깨트려 씨앗을 꺼내 말렸다가 이른 봄에 여러 곳에 심고 이 중에 과연 몇 개나 싹을 피울수 있을까 염려 반 기대반 고대하면서 아침과 저녁으로 물을 뿌리곤 했었다. 놀랍게도 뿌려 진 씨앗 가운데 나지 않은 것은 없었다. 호박씨앗의 강한 생명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뜰에는 여러 종류의 꽃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호박꽃을 특별히 사랑하는 것은 나에게 창조의 원리를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매년 반복해서 호박꽃을 볼 때마다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은 암꽃이 아니다. 수꽃이 먼저 피어나는 것이다. 암꽃보다도 수꽃의 숫자가 현저하게 더 많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셨을 때도 여자를 먼저 만드시지 않으셨다. 남자 아담을 만드셨다.

그렇기 때문에 호박꽃이 피어날 때에 암꽃부터 피지 아니하고 창조의 질서대로 수꽃이 먼저 피어난 후에 암꽃이 따라 피어나게 되는 것이다. 뜰에 호박의 수꽃이 피기 시작했으니 이제 한 주일이 지나면 암꽃이 피어날 것이고 그 꽃이 피기 시작하면 겨울 내내 볼 수 없었던 벌들이 날아들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또 한두 주일이 지나면 기다리던 금년의 호박을 수확할 것이고 계절 탓에 한 동안 잃었던 입맛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날마다 빠르게 성장하는 호박을 바라보면서 고전 3장 6-8절을 생각하게 된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가 주님의 교회를 향하여 씨앗을 심는 심정으로 충성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기 때문이다.

기도한대로 응답받게 하신다. 우리가 심는 것은 작은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통하여 우리에게 30배 60배 100배의 결실로 축복하시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지나온 삶을 돌아 볼 때에 나의 수고와 노력으로 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복된 가정, 성공한 자녀들로 자라나게 하셨다.

생각하고 계획한 것 이상으로 복에 복을 더하셨다. 60중반을 넘어 70을 향하여 달려가는 나의 삶을 돌아 볼 때에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선하신 주님의 은혜이심을 생각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를 광야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주의 뜰, 좋은 땅에서 뿌리 내릴 수 있도록 허락하시고 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끊임없이 공급하시는 나의 주님을 그래서 오늘도 변함없이 힘써 찬송 드리길 원하는 것이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669

바자회를 통한 기쁨과 위로 그리고 은혜

그 동안 교회는 일 년에 두세 번 주기적으로 여전도회가 주최하는 바자회를 가져 왔습니다.

바자회를 개최하기 위해선 준비 기간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여전도회는 한두 달 전부터 판매할 물품을 모으고 판매할 목표액을 정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며 교우들에게 동참을 호소합니다.

바자회를 개최하는 날은 토요일 오전 교회 앞마당입니다. 큰길가에 교회가 자리하고 있어서 장터를 마련하면 오가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바자회가 있는 날은 잔치하는 날과 같아서 봉사할 교우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자회를 통하여 그 동안 받은 기쁨과 위로뿐 아니라 은혜가 많았습니다.

평소 교회에선 볼 수 없는 성도들의 진면모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자회를 하는 동안 동참한 모든 교우님들은 한 마음이 됩니다. 나이를 잊고 동심으로 돌아갑니다. 처음부터 마치는 때까지 웃음꽃이 떠나지 않습니다. 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필자도 기쁨으로 봉사하는 교우님들의 손길을 보면서 행복을 느낍니다.

바자회가 모두에게 위로와 기쁨이 되는 것은 평소에 보지 못하던 특별한 음식들이 제공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필자가 바자회를 좋아하는 것은 함께 수고하며 음식을 나무면서 오가는 대화 속에서 다른 곳에선 들을 수 없고 만날 수 없는 성도들의 참 모습과 은혜로운 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개최한 바자회를 통하여 M집사님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큰 기쁨이었습니다. M집사님은 50 중반의 나이에 금년에 생에 처음으로 집사 임명을 받으셨습니다. 바자회를 개최하는 기간에 여행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자회에 동참하기 위해서 여행일정을 며칠 늦춘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비행사에 170불의 추가비용을 지불하셔야 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권한 것도 아닙니다. 본인 스스로 결정을 하신 겁니다. 그래서 집사님의 헌신과 희생이 더 귀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집사님을 교회로 인도하신 권사님이 함께 맛있는 음식을 나누면서 들려주신 M집사님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은 가정의 달 5 월의 큰 수확이었습니다.

집사님은 5남매의 장녀로 홀어머니 아래서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함께 생활전선에 뛰어 들어야 했습니다. 40에 홀로되신 어머니가 어린 자녀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너무도 험하고 힘든 세월을 살아야 했습니다. 각종 궂은일을 하시는 어머니를 곁에서 도우며 눈물겨운 고난의 삶을 온 몸으로 격어야 했던 것입니다. 다행이 어머니와 집사님의 큰 희생으로 4명의 동생들은 학교도 다니며 잘 성장했습니다. 집사님의 어머니는 평생 몸으로 일하며 사셨기에 건강이 많이 약해지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머니는 너무나 행복하고 꿈같은 삶을 사시고 계시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홀로되신 어머니에게 30여 년 전에 재혼을 청혼한 분이 계셨답니다. 어머니의 사정과 형편을 잘 아는 분의 청혼이었음에도 당시 쉽게 허락하지 못한 것은 5 자녀들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렵게 청혼을 거절하고 자녀들만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오셨습니다.

그러다가 70살이 되시던 해였습니다. 어느 가정에서 가정부를 구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일하러 가셨다가 30여 년 전에 청혼을 하셨던 분을 극적으로 다시 만나신 겁니다. 다시 강력한 청혼을 받으시고 더 이상 거절하실 이유가 없으셨습니다. 늦었지만 자녀들의 축하 속에 새 가정을 이루신 겁니다.

그런데 새 아버님의 어머니 사랑은 정말로 흔히 볼 수 없는 그런 사랑이셨습니다. 평생을 몸으로 살아오셨는데 재혼하신 이후로는 손에 물을 대지 못하게 새 아버지가 하신다는 겁니다. 그 동안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부터는 편하게 살라며 젊은이 부럽지 않는 남편의 꿀 같은 사랑을 받고 계시다는 겁니다.

그래서 요즘 고국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를 할 때면 가끔 어머니로부터 이런 말을 들으신다는 겁니다. “이런 줄 알았으면 진작 재혼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행복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새 아버지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존경을 가지게 되며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부모님을 모신 것에 늘 기뻐하시며 감사하면서 인생 후반기에 비록 늦기는 했지만 돌고 돌아 만난 주님의 교회 안에서 성실한 믿음으로 이민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시는 M집사님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에서 우리 모두의 어머니, 아버지를 생각하게 하는 가정의 달 5 월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641

주일에 행한 어느 특별한 결혼식 주례

지난 4월 9일은 종려주일이었다. 주일 오전 오후 예배를 마치고 교회에서 한 시간 반 거리에 떨어진 야외 예식장에서 오후 4시에 개최되는 결혼식 주례를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목회를 해오면서 여러 번의 결혼식 주례를 해 왔었다. 그러는 동안 결혼식을 요청하는 예비 신랑 신부들에게 주례자로서 지켜온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첫째로 주일에는 결혼식을 주례하지 않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세례 받지 않은 자의 주례는 사양하는 것이며, 세 번째로는 결혼식을 하기 전 적어도 두 세 번의 만남을 통하여 결혼의 중요성과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는 방법에 대해서 성경이 제시하는 비결을 나누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리허설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금번의 결혼식 주례는 이러한 원칙에도 없는 특별한 결혼식이 되고 말았다. 결혼하는 신부를 결혼식 전에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보지 못했을 뿐더러 신부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세례는 받았는지 묻지도 못했다. 사진으로도 보지 못했다. 보통 결혼식을 하는 주간에 가지는 리허설도 하지 못했다.

예비 신랑과 신부가 한국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간의 경험으로 주례요청을 받으면 일자와 시간 그리고 장소를 의논하게 되는데 이번 경우는 그러지 못했다. 집례자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못한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주례를 부탁하기 전 이미 일자와 장소 시간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그런 예는 없었기에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례를 허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신랑이 될 청년이 옛 교인이었으며 생애 처음으로 필자에게 하는 부탁이었기 때문이었다. 청년 시절 수년 동안 교회에 다녔다가 대학을 타 도시로 가면서 교회를 떠난 지가 벌써 십 수 년이 지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번 직장을 구한 것이 서울의 대형 은행이어서 6-7년 전에 미국을 떠난 것이다. 그러는 동안 한 번도 소식을 주고받은 적이 없었다. 그렇게 잊혀 가는 줄만 알았던 K 군이 약 두 달 전 결혼식 주례를 요청하는 국제 전화를 받고서 망설임이 있었던 것은 고난 주일 오후에 결혼식 주례를 요청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거절하지 않고 주례를 허락한 것은 청년의 인품과 신앙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갑자기 주례를 부탁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한국에서 결혼을 하면 미국의 가족들이 참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더구나 신랑 신부도 결혼식을 위해 정해진 날짜 이틀 전에 미국에 들어오게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결혼식을 마치면 곧 바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례를 허락하긴 했지만 지난 두 달여 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그것은 지금까지 목회자로서 주님 앞에 지켜오던 주님의 날에 대한 예배와 주님을 섬김에 대한 나의 원칙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오랜 동안 목회를 해 오면서 내가 정한 원칙을 스스로 포기해 버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주님 앞에 죄송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이번이 내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일에 주례하는 결혼예식이 될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식장을 향하여 달려간 것이다.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된 결혼예식이었지만 온 마음과 정성으로 혼인예식을 인도하며 복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새 가정을 크게 축복하시길 진심으로 기도를 했던 것이다.

혼인예식을 진행하는 동안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마음에 샘솟길 시작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결혼식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기뻤던 것은 신부의 가족 모두가 예수를 잘 믿는 신실한 믿음의 가정이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하객이 모인 성대한 결혼식은 아니었지만 혼인식을 통하여 신랑신부가 크게 기뻐하고 양가의 부모님들과 가족 그리고 모인 축하객들이 하나 같이 축하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K 군의 결혼 주례를 허락하길 잘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식장을 떠나 먼 길을 운전하면서 주님께 감사드리는 기도를 이렇게 드렸다. 주님! K 군의 결혼예식을 축복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목회자로서 주님께 지켜온 예배와 주일 섬김에서 다시는 이 같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례한 주일의 혼인예식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부족한 종을 도우시고 축복하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립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