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만이 가지는 갈등과 고민

지난 주간 같은 교단을 섬기는 존경하는 두 분의 목사님으로부터 전화 부탁을 받았습니다. 평소에는 전화를 자주 않는 분들이셨습니다. 내용은 한국에서 유명한 신학자시며 신학대학 총장을 역임하신 목사님이 Los Angeles를 짧게 방문하시는데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 모시고 은혜를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금번에 이곳을 방문하신 목사님은 필자도 크게 존경하는 어르신이십니다. 예전에는 그 분이 이곳을 방문하시면 서로 모셔가려고 해서 작은 교회는 모실 생각도 하지 못하던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번에 오셨을 때는 모셔가는 교회가 없어서 저희 교회에 모시라는 요청을 받은 것입니다.

한 두 주일 전에 연락을 받았다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련만 주일을 앞두고 받은 부탁이기에 응할 수 없었습니다. 설교 부탁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종종 그런 부탁을 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쉽게 허락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나름대로 정해 놓은 원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 년에 두세 번 정도는 외부 강사를 허락하되 그것도 매 달은 안 되고 서너 달에 한 번 정도 모시는 것을 원칙으로 해 왔습니다. 교회를 섬기다 보면 때로는 설교하기가 힘이 들어서 한두 주일 쉬고 싶은 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쉴 수가 없는 것은 마음대로 강단을 비울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 때는 주변의 이름난 목사님들이 매 여름이면 정기적으로 휴가를 다녀오는 것을 보면서 부러워 한 적도 있었습니다. 안식년을 다녀오신 목사님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와는 너무 먼 다른 세계의 목회자로 느껴지기도 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39년 동안 교회를 섬겨오면서 한 번도 휴가를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그뿐이 아니라 이름난 부흥사나 소문난 강사님을 교회에 모시지도 못했습니다. 교회 설립 10주년 때 친구 목사님의 장인이신 서울의 성일교회 고 배순조 목사님이 이곳을 방문하셨을 때 처음으로 3일 동안 집회를 했을 뿐입니다. 그것도 우리 교회가 원해서 계획을 하고 집회 강사로 모신 것이 아닙니다.

친구 목사의 요청으로 급하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위 목사의 집 방문차 오신 목사님을 친구 목사의 권유로 모시고 처음으로 집회를 통하여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 때 강사로 모셨던 고 배순조 목사님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이 목사 혼자 다 해먹네!” 물론 웃자고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부흥회가 좋은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욕심이 많아서 혼자 해 먹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혼자 먹기에도 부족하기에 다른 이에게 나누어 줄 것이 없어서 그리한 것입니다. 고 배 순조 목사님이 필자에게 하신 말씀은 교회를 부흥시키려면 좋은 강사를 모시고 정기적으로 부흥회를 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실행하지 못한 이유가 있습니다. 작은 교회가 부흥회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강사비에 대한 부담과 집회 비용 때문입니다. 부흥회를 하려면 신문광고비와 강사 접대비 강사료, 비행기표 등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부담이 되었습니다. 물론 교회가 재정적으로 집회를 감당할 능력이 충분했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니 멀고도 험한 길, 나의 힘으로는 갈 수 없는 그 길을 주님이 동행해 주셨음을 고백 드리며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흔한 집회 없이 교회를 여기까지 이끌어 온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라고 말했던 친구 목사님의 말이 생각납니다.

이제는 음악을 담당하는 목사님도 교회 안에 계시고, 행정을 돕는 목사님도 계시어 한 팀을 이루며 교회를 섬기기에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힘이 되기도 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종을 지금도 이끌어 주시어 말씀을 전할 강단을 주시고 쓰임 받게 해 주셨습니다.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그 은혜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119

결심하고 한국 자동차를 사게 된 이유

지난 주간에 자동차를 새로 사야 될 상황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4 년 전에 새 차를 살 때도 한국 차를 사고 싶었는데 주변 지인들의 만류로 한국 차를 사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차를 사기로 결정을 하게 되었을 때 지체하지 아니하고 한국 차를 사기로 한 것입니다.

고국을 떠나 46년 동안 Los Angeles에서 이민자로 살아오면서 다른 도시와 달리 이곳은 자동차가 없이는 살아가기가 힘든 곳입니다. 지금까지 필자가 사용해 왔던 자동차를 세어보았습니다. 40여 년 전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구입한 차는 연한 그린색의 독일제 Opel 이라는 중고차였습니다.

차를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는 분의 소개로 주유소를 경영하시던 분이 타던 차를 샀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독일제 차가 좋다고들 말했지만 좋은 것은 새 차가 좋은 것이지 중고차는 좋지 않았습니다. 결국 차 값보다도 수리하는 데 들어간 비용과 시간이 많아 헐값에 팔아야 했습니다.

다음으로 탄 차도 역시 중고차로 미제 승용차였습니다. 그 차 역시 잦은 고장으로 정비소를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어야 했습니다. 이후 계속해서 중고차를 사용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매월 지불해야 하는 페이먼트의 부담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새 차를 처음 사게 된 것은 미국생활 20여 년 만인 30대 후반의 나이 때였습니다.

이민 초창기에 중고차로 인해서 너무나 많은 아픔을 경험했기에 이후로는 중고차를 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미제 새 차를 타면서 미국 차에 대한 불만이 생겼습니다. 수년만 지나면 여기 저기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50이 넘어가면서 부터는 일제차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20여년 가까이 일제차를 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일제차를 사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최근 한국과 일본과의 문제로 고국에서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 일에 작은 힘이나마 동참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20여년 가까이 일본차를 타 오면서 한국 차에 대한 미안함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제품을 우리가 팔아주지 아니하면 누가 사 주겠는가 라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었습니다. 1985년 초로 기억이 됩니다. 현대자동차의 Pony란 이름을 단 소형차가 미국에 상륙 했습니다.

한국 차가 이곳에 처음 들어왔을 때 너무도 신기하고 반가웠습니다. Pony가 후리웨이를 달리는 것을 보면서 한편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조마조마했었습니다. 행여 달리던 차가 고장이 나서 서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포니가 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 때의 자랑과 기쁨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길을 운전하고 가다가 고국에서 만든 차를 타고 가는 외국 사람들을 보면서 고마운 마음과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보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은 오랫동안 한국 차를 타지 않았던 것입니다. 필자가 이번에 산 차는 기아 세도나 8인승 미니밴입니다.

생애 처음으로 한국 차를 산 것입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새 차를 운전하면서 일본차를 사지 않고 한국 차를 사기로 한 결정이 얼마나 잘한 일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일본차에 비하여 한국에서 만들어진 우리 차가 조금도 부족하거나 손색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 사랑이 가고 더 잘 만들어 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훌륭하게 만들어진 우리의 차를 진작 사용하지 아니 했던 것이 못내 후회가 되었습니다. 나의 생애에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새 차를 사게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번을 계기로 이제 후로는 나의 삶에서 다시는 일본차를 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차로도 만족하고 충분한 삶을 즐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차 만세!”

“현대 자동차 만세!”

“기아 자동차 만만세!” 라고 크게 박수하고 싶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108

적게 주고 크게 받는 선물의 감동

지난주 집 뜰에 있는 대추나무에 올라 땀 흘려 수확을 해 교회에 가지고 가서 교우님들에게 나누어 드리고 남은 것 중 일부를 몇 분의 지인들에게 작은 비밀 봉지에 담아서 가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인사를 받자고 드린 것은 아닌데 너무 고마워 하셨습니다. 그 중 한 분이 답례로 큰 선물을 보내오셨습니다.

산삼녹용대보탕 한재를 보내온 것입니다. 필자와 같은 서민은 돈을 주고 사 먹을 수 없는 고가의 보약입니다. 아직도 그런 보약이 있는 줄도 몰랐고, 알아도 값을 주고 사 먹을 수 없는 귀한 보약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더 정성스럽게 구별하여 많이 드릴 것을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선물을 받고나서 들은 말입니다. 한국에 사시는 어머님이 L A에서 10년 째 한의원을 운영하는 외동딸의 건강을 위해서 어렵게 구한 진귀한 고가의 산삼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에도 산삼이 있지만 한국에서 어머니가 보내온 산삼으로 만들었습니다. 자신이 먹기 위해서 만든 보약이기에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 그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 일로 선물을 주신 분에게 미안함 마음도 있고 황송한 마음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속담에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이 있지만 이런 경우는 작은 것을 드리고 은금보화를 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선물을 받아들고 가장 먼저 생각이 드는 것은 이것을 내가 먹기엔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야 앞으로도 이런 보약을 먹을 기회가 얼마든지 있지만 나이 드신 연로하신 집안의 어른은 누가 선물하기 전에는 스스로 사서 먹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안의 가장 높으신 어른에게 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시 받은 선물을 곱게 포장하여 선물을 하기로 했습니다.

받는 기쁨도 크고 좋지만 소중한 것을 사랑하는 이웃에게 나누는 기쁨도 귀한 것은 그런 행동을 통하여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필자에게 분에 넘치는 선물을 하신 분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연하게 만나서 10여 년 동안 교제를 이어오는 동안 받은 사랑을 세어보니 너무 크고 많았습니다.

한 교회를 섬기는 교인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만나지 않았습니다. 섬기는 교회는 다르지만 특별한 인연으로 교회 밖에서 만남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진실한 믿음의 사람을 친구로 가진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같은 하늘아래 동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의 충분한 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 중에는 만날수록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시간이 갈수록 더 깊이를 더하는 만남도 있습니다. 만나서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서로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위로와 소망 기쁨과 행복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게 큰 선물을 하신 분은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내게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한결 같은 사랑을 베푸시므로 주변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을 통하여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어떻게 사는 것이 소금과 빛처럼 사는 것인지를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한 때는 한국에서 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로 높은 학문과 권세, 부귀와 명성을 누리시던 귀족 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그런데 자녀들을 위해서 미국에 이민을 오신 후 갖은 시련과 고통으로 눈물로 사셔야 했습니다. 그래도 인내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두 아들이 동부 명문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큰 아들은 의사가 되었고, 작은 아들은 아직 대학원에서 학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민의 고된 삶에서 주님을 만나 새 삶을 사시는 집사님의 신앙 연륜이 깊지는 않지만 그 누구보다도 뒤지지 않는 신실한 믿음의 본을 보이시며 등불 같은 삶을 사시는 모습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계십니다.

집사님!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훌륭하십니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처럼 평생 동안 집안 대대로 교회를 모르고 살아오셨지만 주님을 만나고 나서 뿌리 깊었던 종교와의 과감한 단절을 하고 주변과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만 아니라 영생으로 나아가는 주님의 품에 안착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094

8월 하순은 대추를 수확하는 날

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여름의 끝자락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필자의 집 뜰에는 대추나무가 한 구루 있습니다. 27년 전 집을 사고 이사를 했을 때 교회 권사님 한분이 기념수를 선물하셨습니다. 당시는 그것이 그렇게 고마운 선물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대추나무를 선물하신 권사님의 사랑이 커가는 것입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과실수를 통한 수확의 기쁨을 알기에 4개월 전 교회당을 새로 구입하고 나서 교회 건물 주변에 20여개의 여러 종류의 과실 수를 심었습니다. 수년이 지나면 수확의 기쁨을 온 교우들이 함께 느껴 볼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대추나무를 심고 수년이 지난 후부터 여름마다 결실하기 시작했습니다.

20여년을 자란 작은 나무가 지금은 2층 지붕을 넘어 무성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나무가 커 가면서 해 마다 수확의 양도 불어갑니다. 금년에도 대추나무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가지가 휘어지고 꺾어질 정도로 많은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8월 하순이면 대추를 수확해서 교회에 가지고 갑니다.

대추를 딸 때는 항상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대추나무에는 크고 작은 가시가 많기 때문입니다. 조심을 한다고 하는데도 일을 마치고 나면 이곳저곳에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기 때문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대추를 따기 위해선 두 개의 사다리가 필요합니다. A 형 사다리와 긴 사다리가 필요합니다.

전에는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것에 겁이 없었는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몸이 둔해져서 인지 이제는 겁이 납니다. 그래서 오늘도 사다리에 오르기 전 주님께 먼저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려움 당하지 아니하고 대추를 딸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의 은혜로큰 상처 없이 일을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긴 사다리를 장소를 이리 저리 옮기며 대추를 따는 동안 이마엔 구슬 같은 땀이 안경으로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이것을 받아 들고 기뻐하실 교우님들을 생각하면 절로 기쁨이 더합니다. 그러면서 작은 걱정이 되는 것은 행여나 대추를 나누는 과정에서 소외를 느끼는 분이 없기를 염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은 교회 여전도회 회장 권사님이 다른 것도 잘 하시지만 몫을 각 사람별로 나누는 것을 특별히 잘 하시기 때문에 나누는 것을 권사님께 맡기면 되기 때문입니다. 대추는 먹는 기쁨보다 보는 기쁨이 더 크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작은 봉지에 하나씩 담아 드리면 그렇게 기뻐하십니다.

수확의 기쁨도 즐겁지만 나누는 기쁨 또한 기쁨이 배가 됩니다. 대추가 영글기 위해선 9 월 중순은 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8월 하순에 수확을 하는 것은 수확의 양을 늘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잘 익은 대추를 빼앗겨 버리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 빼앗기느냐고요? 참세보다 더 작은 새들이 먹습니다.

그것도 잘 익은 부분만을 먹고 버립니다. 그럴 때면 마음이 상합니다. 이른 봄부터 거름을 주고 아침저녁으로 정성스럽게 물을 뿌리며 수확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반복되는 많은 수고를 햇것만 저들은 도적과 같아서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아니하고 때가되면 날아와서 주인의 허락 없이 농사를 망처 버리기 때문입니다.

새뿐이 아닙니다. 다람쥐도 먹습니다. 어떻게 알고 어디에서 오는지 평소에는 눈에 뜨이지 아니하던 다람쥐가 대추가 익으면 어김없이 나타납니다. 그 외에도 덩치 큰 풍뎅이들이 날아와 대추나무를 점령합니다. 그래서 저들에게 한 해 농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덜 익은 대추지만 무르익기 전에 수확을 하는 것입니다.

대추나무를 통하여 농부의 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수확의 기쁨을 알게 하셨습니다. 나누는 기쁨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해가 바뀔 때마다 또 다른 수확의 기쁨을 기대하게 하셨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열매의 법칙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이 땅에서 뿌린 희생의 씨앗이 하늘에서 큰 결실로 되돌아 올 것을 기대하게 하셨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076

정우선 집사님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하면서

얼마 전 Los Angeles 시 한 중간을 자동차로 운전을 하고 지나다가 7가와 8가 사이의 Beacon Ave에 위치한 붉은 색 높은 아파트를 발견하고서 차를 멈추어 세워야만 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에서 가장 어둡고 절망적이었던 때가 생각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974년 7 월 UCLA 의과대학의 혈액학 주임교수 Nicola Costea 박사로부터 완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미국에 온지 9 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머무는 두 달 동안 병에 대한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처음 비자를 발급해준 미 영사관 담당 영사님께 편지를 올렸습니다.

병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미국을 방문해서 치료를 담당해준 병원 의사에게 더 치료의 경과를 지켜보게 해 달라는 간청이었습니다. 편지에 대한 회답이 2 주일 만에 왔습니다. 즉시 그 편지를 들고 비자 신청을 해서 당시로는 받기 어려운 Multiple Visa를 받고 미국에 왔습니다.

그러나 처음 미국을 방문할 때와는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처음 미국을 방문할 때는 초청해준 미국의 선교본부에서 병원치료비를 포함하여 일체의 체제 경비를 지불해 주었지만 두 번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비자를 받고나서 미 선교본부 한국 책임자에게 감사 인사차 방문을 했습니다.

서소문에 사무소를 둔 십자군연맹의 책임자는 내무부차관을 지낸 김득황 장로님이셨습니다. 다시 미국을 간다는 말에 어떻게 어려운 비자를 받았느냐고 물으면서 여권을 보자고 하셔서 여권을 드렸습니다. 김 장로님은 비자 상태를 확인한 후 자신의 책상 서랍을 열고서 나의 여권을 그곳에 넣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권은 압수한다고 하시며 미국에 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유를 묻자 “네가 미국에 다시 가면 한국에 지원되는 선교헌금의 내용이 줄어들기 때문이다”고 하셨습니다. 1970년대 여권법은 외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면 공항에서 여권을 회수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의 여권은 회수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미 영사님께 편지 할 때 여권도 함께 보낼 수 있었습니다. 당시 나의 여권은 일반 여권으로 다시 사용할 수 없는 여권이었습니다. 비자를 받고나서 김포공항으로 달려가 담당자에게 출국을 문의 했더니 이 여권으로는 미국을 갈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비자는 살았지만 여권은 죽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시 가까운 우체국을 찾아가 청와대 육영수여사님께 그간의 내용을 기록한 속달 편지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수원 집으로 3 시간에 걸쳐서 완행버스를 타고 왔더니 청와대로부터 전보가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일 아침 8시 반까지 외무부 제2 여권과장을 만나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중앙청을 방문했습니다. 문 앞에는 여권과 여자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즉시 여권과장님께 인도되었고 나의 죽은 여권을 달라고 하시더니 아무런 질문도 없이 여권 두 번째 페이지에 4 각 도장을 찍어 주었습니다. 도장의 내용은 ‘이 여권은 유효함’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여권과장님은 미국을 잘 다녀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내용을 여권을 압수하고 미국에 갈 수 없다고 하신 김득황 장로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 말을 들이신 김 장로님이 제게 여권을 돌려주시면서 한 가지 약속을 해 주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지켜야 할 약속의 내용이 무엇이냐고 했습니다.

이번에 미국에 들어가면 처음 초청해준 미 선교본부에 연락을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을 도착하고서 4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 선교본부에는 나의 존재를 알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번째 미국에 오고부터는 자력의 힘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 때 큰 도움을 주셨던 고마운 분이 계셨습니다. 당시 같은 교회에 출석하셨던 정우선 집사님이십니다. 그 분이 사시던 방은 Single Room이었는데 저에게 업혀 살 기회를 제공하신 겁니다. 당시의 제게는 희망이 없을 때입니다. 직장도 돈도 기댈 언덕도 없었던 가장 암울하고 힘들었던 때였습니다.

먹여주시고 재워주시고 머물게 해 주셨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니 당시의 내가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뻔뻔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는 청소도 할 줄 몰랐습니다. 고맙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지나놓고 생각하니 정말로 큰 은혜와 사랑을 받았습니다. 정말로 머리 숙여 늦었지만 큰 감사를 드립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066

15살 외동 딸 다은이 엄마의 큰 슬픔(2)

같은 제목의 칼럼을 1년 3개월 전에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으로 기고한 일이 있습니다. 다은이나 다은이 엄마를 한 번도 만난 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다은이를 위해서 기도하고 종종 카톡으로 안부를 주고받는 것은 필자와 특별한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은이는 지금 오래 전 필자가 앓았던 어려운 병으로 큰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 뿐인 외동딸이 병에 걸리고 나서 사랑하는 딸을 죽음에서 구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수소문 하다가 인터넷에서 필자의 투병기를 우연하게 보고서 어렵게 여러 경로를 통하여 전화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서로 얼굴을 볼 수가 없는 것은 사는 곳이 같은 지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화를 받고서 다은이가 남이 아니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고 만나보지는 못했어도 한 동안 잊고 지내던 지난날의 나를 힘들게 했던 질병을 다은이가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은이의 투병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내가 겪어야 했던 길고도 어두운 죽음의 터널에서 절망하며 눈물로 부르짖었던 지난날의 모습이 생각이 되면서 그 힘들고 험한 고난의 여정을 다은이 가족이 당해야 할 모습이 영화의 장면처럼 연상이 되었습니다.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병을 앓는 사람들이 서로 불쌍히 여긴다는 뜻의 말처럼 다은이를 통하여 잊었던 지난들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살아나며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다은이도 무사하게 절망의 늪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다행이도 다은이는 현대 의학의 발달도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5-6개월 전에 골수 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쉬운 수술이 아닙니다. 과정이 힘들고 어려운 것이지만 그래도 그런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수술 결과가 예상했던 대로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골수에서 새로운 피를 왕성하게 만들어 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병원에 갈 때마다 반복해서 수혈을 받고 있습니다.

그로인하여 환자인 다은이만 지치는 것이 아니라 곁에서 지켜보는 부모도 낙심을 하게 되는 겁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어머니는 우울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염려와 걱정이 되신다는 말이죠,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은 자식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닙니다. 자녀가 어려운 병을 가진 부모도 다르지 않습니다.

더구나 시간이 지나면서 치료의 효과가 희망적이지 아니할 때에 부모들이 갖는 낙심과 좌절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필자는 불효자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른 것으로는 부모님께 실망을 드리지 않았지만 난치병으로 어머니의 가슴을 병들게 했기 때문입니다.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4번째 입원 했을 때는 40일간 중환자실에 입원을 했습니다. 그 때 어머니는 40일 동안 집에 가시지 않았습니다. 필자와 함께 병상을 지키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어머니께 너무 큰 죄를 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40일 동안 어머니는 침대 밑 시멘트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주무셨습니다.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기에 잠시도 제 곁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식사도 거르셨습니다. 병원에서 환자를 위해서 주는 식사를 제가 먹고 남으면 그것을 드시는 것으로 끼니를 대신하셨습니다. 이제서 생각하니 어머니가 나를 위해서 아파하시고 흘리셨던 눈물이 얼마나 크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이 불효자를 용서해 주세요! 하나뿐인 외동딸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고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애 쓰시는 다은이 엄마와 아빠의 마음이 제게도 느껴지고 있기에 더욱 주님께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나를 살리셨던 주님! 다은이에게도 기적을 베풀어 주세요!

반복적인 수혈 밖에는 생명을 연명할 방법이 없었던 저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료하시어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의 피를 수혈 받지 아니하고 골수에서 왕성한 피를 조성케 하신 주님의 능력이 다은이에게도 역사하여 주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055

어느 목회자 부부의 눈물겨운 병상일기

어느 목사님 부부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얼마 전 어느 모임에 참가했다가 듣고서 감동 받은 이야기입니다. K 목사님은 60 중반의 나이를 맞고 계십니다. 지금으로부터 5-6년 전 사모님이 간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간에 1 센티미터의 암이 발견된 것입니다. 자신의 건강은 돌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오셨습니다.

주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동안 다른 것은 몰라도 부부의 건강만은 주님이 책임져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사모님이 어려운 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그 일로 사모님만 충격을 받은 것이 아니라 남편 목사님이 더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2-3년 동안 사모님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부인을 위해서 미친 듯이 기도하셨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아내가 중한 병에 걸린 것은 다 나의 잘못입니다. 나의 죄 때문입니다. 나의 무능함 때문입니다. 남편을 잘못 만나 아내가 이렇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민 목회자의 아내에게 너무 큰 고생을 감당케 해서 중한 병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아내의 병 소식을 들은 날부터 목사님은 특별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내에게 임한 간암을 나에게 옮겨 주시고 아내는 암에서 놓임을 받게 해 주세요! 아내가 나보다 먼저 주님께 가면 나는 아내의 도움 없이 주의 종으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내가 죽고 아내는 살아야 합니다”

그런 기도를 수년 동안 반복해서 눈물로 해 오셨습니다. 어느 날 사모님이 남편 목사님이 눈물로 부르짖으며 기도하시는 내용을 듣게 되셨습니다. 기도의 내용을 듣자마자 즉시 남편 목사님의 기도를 중단시키신 겁니다. 여보! 그런 기도가 어디 있습니까? 당신이 죽고 나만 살면 어쩌란 말입니까?

당신 없이 내가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하지 않습니까? 당신도 살고 나도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런 기도를 당장 취소하세요! 부인의 강한 권고에 남편 목사님은 그동안 아내에게 임한 간암을 자신에게 옮겨 달라고 구한 기도를 취소해 주시길 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인과 함께 새로운 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당신과 내가 함께 살아서 주의 일을 더 아름답게 감당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시작하신 겁니다. 그 기도도 광적으로 해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는 동안 병원에서 여러 번의 진찰을 통하여 몸에 이상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순간마다 죽음의 공포로 짓눌려야 했던 1 센티미터의 간에 깊이 자리 잡고 성장하던 암이 거짓말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입니다. 다른 병과 달리 간암으로 매일 피곤해서 몸을 가누지 못하던 연약한 몸이 건강한 몸으로 변화 받은 것입니다.

6년이 지난 지금 더 이상 간 문제로 병원에 갈 필요가 없게 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간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부부의 기도를 받으셨습니다. 우리에게 회복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구한대로 응답해 주시는 것을 체험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남은 생명 기간 동안 받은 은혜를 크게 감사하면서 우리 부부처럼 주변에서 뜻하지 않은 깊은 질병으로 고통과 신음에서 살아가는 불쌍한 이웃들을 위해서 이름 없이 기도하는 종으로 살고 싶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존경하는 K 목사님 부부의 건강과 가정 그리고 섬기시는 교회위에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늘 함께 하시길 진심으로 기도 드립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036

열심만 가지고 되지 않는 노방 전도의 부작용

얼마 전 필자가 사는 지역의 한인 마켓을 잠시 들릴 일이 있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차를 타기 위하여 주차장으로 가는데 출입구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50대 후반의 단정하게 차려 입은 여인이 필자에게 다가와 전도지와 설교 CD를 전해 주려고 하기에, 그 분을 향하여 공손하게 수고하신다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노방 전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확신과 복음에 대한 열정이 없이는 공적인 장소에서 여러 사람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름대로 정중하게 예의를 표하며 수고하신다는 말씀을 드렸던 것입니다. 인사를 받은 전도인은 더 적극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당신은 Valley 지역의 어느 감리교회에 속해 있으며 드리려고 하는 설교 CD는 자신이 섬기는 교회의 목사님의 것이라고 하면서 너무 좋은 내용이 들어있으니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신분을 조용하게 그분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목사입니다. 그러니 저에게는 그런 수고를 안 하셔도 됩니다.

좋은 의도로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목사이기에 더 자기 교회 목사님의 설교 CD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과 그런 일로 나쁜 감정을 가지고 큰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아 다시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라고 말하고 떠나려 하자 그래도 자신이 전하는 전도지와 설교 CD를 받아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사태가 이 정도까지 되다보니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노방 전도하는 분을 귀하게 여겨 처음부터 정중하게 대한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말을 섞지 않았으면 마음이 상할 일도 없었을 것을 너무 다정하게 인사를 했다가 차문을 열어 놓은 채 실랑이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나의 신분을 밝힌 것은 그 시간에 다른 사람, 복음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도의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나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은 목사이기에 더 전도지를 받아야 하고, 목회자이기에 자기 교회 목사님의 설교를 반드시 들어야 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설교 내용에는 이러 이러한 내용들이 들어 있다면서 당신이 섬기는 교회의 목사님이 모든 목사님들의 선생의 위치에 있는 것처럼 강하게 주장을 했던 것입니다. 순간! 내가 목사입니다. 내가 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입니다! 라고 말한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들을 마음에 준비가 없는 사람이나 상대방의 말을 받을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는 어떤 소리도 들어갈 틈이 없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배려할 줄 모르면서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그런 자신의 행동이 주님을 위한 열심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일로 상대방이 마음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왜 알지 못할까?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복음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 저런 강압적인 자세로 복음을 전하면 전도의 효과가 있기는 할까? 좀 더 부드러운 자세로 전할 수는 없을까? 교회 이름으로 노방 전도를 할 정도면 준비 없이는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도인의 자세와 전도를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을 훈련 받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겸손한 자세로 하지 아니하고 자기 열심만으로 한다면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전도가 될 수 있을까? 복음을 전하는 것은 강요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전하는 복음을 당신이 받아야 한다고 강요하거나 명령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2 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여 권하라” 바른 전도인의 자세는 말씀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내가 전하는 복음을 통하여 상대방이 구원을 받든지 안 받든지 우리는 속단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책임은 힘을 다하여 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가워야 할 전도인과의 만남이 상처로 남지 않기 위해선 주님이 우리에게 본을 보이신 것처럼 먼저 사랑으로 상대를 향하여 겸손과 희생으로 섬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희생과 사랑, 섬김이 수반하지 않는 전도는 돌짝밭에 뿌려진 씨앗과 같아서 믿음의 뿌리를 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상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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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교회는 왜 성전 봉헌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까?

33년 동안 사용하던 예배 처소를 매각하고 새로 하나님께 선물 받은 교회 건물로 이사 온 지 3개월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새 건물 열쇠를 받고 첫 예배를 드리는 주일 날 성전 이전 감사예배를 드리긴 했지만 우리 교회 사정을 아는 주변의 동역자들이 “언제 봉헌예배를 드리십니까?” 라는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페이먼트가 없는 성전 건물을 받았기에 처음부터 이전 감사가 아닌 봉헌예배를 드리려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성전봉헌감사예배] 순서지를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봉헌예배를 취소한 이유가 있습니다. 목회자에게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 있다면 성전 봉헌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는 원한다고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전을 허락 받아도 건물 빚을 다 갚기 전에는 하나님께 봉헌을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필자가 섬기는 교회가 받은 성전은 전액 현찰을 지불하고 샀기에 빚이 없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봉헌 예배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봉헌예배 일자를 정했습니다. 예배 순서자를 정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음에 특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봉헌예배를 드리기에는 뭔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이 봉헌 예배를 기뻐하지 않으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중 새 성전 구입을 위해서 특별 헌금을 한 분이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성전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장소와 건물을 선정하지 않았습니다. 성전 구입 특별헌금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주님이 강권적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로 받은 건물을 가지고 마치 우리가 땀과 정성을 드려서 이룬 것처럼 하나님께 봉헌 한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 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봉헌 예배를 드리라는 가까운 친구 목사님들의 권면이 있었지만 나의 마음이 허락지 않았습니다. 이런 마음은 당분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받은 선물을 감사함으로 사용하는 것을 주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새 장소로 이사를 오고 나서 주일 예배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전에는 두 교회가 한 지붕 아래 예배를 드렸습니다. 25-6년 동안 스페니시교회가 우리가 사용하고 난 주일 오후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새 장소로 오고 나서 두 교회가 더 늘었습니다. 20년 동안 미국교회를 빌려서 사용해 오던 친구 목사님이 갑자기 예배 처소를 옮겨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처소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로인하여 교회를 문 닫아야 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드리는 오후 1시 예배를 중단하고 그 시간 친구 목사님 교회가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배려해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교회는 우리가 이사 오기 전부터 현재의 교회당에서 예배를 드려왔었습니다. 그 교회까지 예배를 허락했습니다. 그래서 오전 11시는 평강교회가 사용하고, 오후 1시는 부활교회가 사용하며, 오후 3시는 갓피플교회가 사용하고, 오후 5시는 스페니시교회가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나서 5년 만에 처음으로 교회당 건물을 구입했을 때입니다. 어느 날 스페니시 교회 목사님이 교회를 방문하셨습니다. 예배 처소를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벌써 25-6년 전의 일입니다. 그 때 염려 속에서도 교회당을 스페니시교회에 거절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서 예배 처소가 없어 두 달 동안 다저스 야구장이 있는 엘리시안 공원에서 야외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두 달 동안 예배 처소를 빌리기 위해서 K 장로님과 수십 곳을 방문했었습니다. 그러나 쉽게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허락받은 곳이 흑인 침례교회당으로 주일 예배를 오후 1시 반에 허락 받았습니다.

그 때의 어려움을 경험했기에 스페니시교회를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25-6년 동안 그 때의 결정으로 스페니시교회를 통하여 우리가 큰 은혜와 감동을 지금도 계속해서 받아오고 있습니다. 언어는 다르지만 예수 안에서 한 형제요 참 믿음의 본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지붕아래 4교회 예배를 주님이 기뻐 받으실 것을 믿습니다.

이상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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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이전 기념 과실수 묘목하는 날!

새 성전으로 이사한지 2달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아름다운 곳에 성전을 허락 받았습니다. 성전을 이전하고 나서 여전도회 회원 중심으로 과일 나무를 심자는 운동이 일어나 모금을 했습니다. 그래서 모아진 돈으로 감나무 4 구루, 복숭아나무 3 구루, 체리나무 2 구루, 대추나무 2 구루, 사과나무 2 구루, 블루베리 2 구루, 살구나무 2 구루, 그리고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이사 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던 오렌지 나무까지 합하여 교회당 건물을 완전히 과일나무로 두르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많은 나무를 한 번에 심어보기는 처음입니다. 물론 제가 심은 것은 아닙니다.

나에겐 과실 수를 관리할 만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과실 수를 파는 정원을 방문해서 원하는 나무를 골라 실어오는 것만이 아니라 땅을 깊게 파고 심는 것까지 부탁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나무 하나 당 심어주는 값으로 25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과일나무 한 구루 값의 1/4의 됩니다.

이번에 교회 뜰에 심기어진 과일 나무마다 모금에 동참해 주신 교우님들의 명찰을 매어 달려고 합니다. 물과 걸음을 주는 것도 가급적이면 각자가 관심을 가지고 자기 나무를 키우게 하고 싶어서입니다. 철마다 잎이 피고 꽃이 피고지면서 각각의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지는 것을 보면서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그랬더니 교인들의 반응이 너무 좋습니다. 과일 나무를 심기 전에는 교회 주변의 정원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이제는 교회당을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새롭게 심기어진 나무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냥 지나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 한 주간 동안 얼마나 성장했나를 확인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나무를 향하여 예쁘게 자라다오! 이렇게 자리를 잘 지키며 성장해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과일나무들과 교감을 가지게 됩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 안에 새로운 것들을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와 의미를 이해하게 됩니다. 세상에 존재의 가치가 없는 것은 없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을 위하여 주신 것들입니다. 보이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늘의 구름과 바람까지도 다 나를 위하고 우리를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흙과 크고 작은 돌 하나도 의미가 없는 것이 없습니다. 그 중에도 과일 나무를 우리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건강과 생명에 도움을 주시기 위해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무들을 가까이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잘 관리를 해 주어야 합니다. 이 같은 행위를 주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예배 처소로 사용했던 건물은 극장 건물이었기에 나무를 심을 공간도 없었고 잔디를 깎아야 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선물 받은 교회당은 교회 건물 앞과 뒤 옆 등 사방이 나무와 잔디로 둘려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나무들을 관리해주고 시도 때도 없이 빠르게 자라나는 잔디를 관리해 주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가드너를 고용했습니다. 2주일에 한 번씩 가드너가 와서 정원 잔디와 나무를 관리해 줍니다.

이를 위해서 미처 생각지 못한 교회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생겼습니다. 매달 350불을 정원 관리비로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작은 돈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정원 관리비로 이렇게 많은 돈을 사용해 보기는 처음입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정원의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시편 1편 3절에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나무의 복은 종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에 심겨지는가에 따라서 복과 저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나무라도 사막이나 마른 땅에 심겨지면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좋은 땅에 심겨질 때 철을 따라 성장하고 꽃이 피며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면 나무에게 좋은 땅은 어떤 땅입니까? 항상 마르지 아니하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입니다. 인생도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 안에 믿음의 뿌리를 내린 사람은 만사가 형통하게 하십니다. 기쁨이 마르지 않게 하십니다. 행복이 마르지 않게 하십니다. 가정에 물질이 마르지 않게 하십니다. 이 복을 누리시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상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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