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에서 발견한 새로운 미국의 희망

지난 6월 11일부터 16일까지 남가주 코로나시에 인접한 축구장에서 대통령컵 전국 주 대항 초등학교 남녀 축구 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각 주에서 초등학교 대항 시합에서 우승을 한 학교 팀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반세기 가까이 이곳에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그런 대회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필자의 둘째 딸 가족은 알래스카 주에 살고 있는데 외손자 Ryan은 초등학교 축구 선수입니다. 그가 속한 학교 팀이 알래스카 주 대항 축구 시합에서 지난 2018년 우승을 해서 금번 대회에 초청 받아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이를 위해서 그곳에 사는 딸 가족 다섯 명이 경기를 위해서 함께 왔습니다.

미국이 큰 나라 인 것은 4-5시간 비행기로 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첫 경기가 있는 날은 6 월 11일 오전 11시였습니다. 필자도 응원을 하기 위해서 이른 아침 집을 나섰습니다. 평소 가까이 지내는 두 분의 친구 목사님 부부도 함께 했습니다. 자동차로 한 시간 반을 달려서 운동장에 도착을 하고서 놀라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학생들의 운동경기라 규모가 그렇게 크리라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경기 규모가 컸습니다. 경기장에 참석한 사람들의 숫자도 많았을 뿐 아니라 더 놀라운 것은 경기장이 50여개나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한 장소에 그렇게 많은 축구 경기장이 있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을 듣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잘 준비된 엄청난 규모의 축구 경기장이 있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 전국의 50 개 주의 챔피언 학교 남녀 팀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각 경기장마다 경기를 진행하는 진행요원과 작은 본부석이 있었습니다.

경기하는 운동장에는 심판이 세 명씩 배당이 되어 시간별로 이어지는 경기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불과 10여 년 전 만 하더라도 미국은 축구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르러 미국도 축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고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미국 축구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속도로 계속 발전한다면 아마도 20년 이내에 미국의 축구가 세계를 지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운동장에서 경기에 임하는 어린 선수만 아니라 선수보다 더 많은 부모와 가족들의 부르짖는 함성에서 미국의 힘, 삶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 날은 남가주에 폭염이 있었던 날 이었습니다. 경기장은 110도의 열기로 지면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습니다. 알레스카의 그 날의 기온은 70도 였습니다. 알레스카에서 내려온 아이들이 남가주의 그런 날씨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 경기를 하기 위해서 운동장에 들어간 알래스카에서 온 선수들의 모습이 평소와 같지 않아 보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경기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모두 긴 시간 여행과 날씨 여파로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아는 선수 중에는 등번호 50번을 단 선수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선수라고 하기엔 너무나 뛰어난 기량을 가진 선수입니다. 같은 팀에서 뛰는 손자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50번 친구가 부럽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학교 축구팀 코치인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운동을 잘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자신은 부모로부터 좋은 운동 소질을 받지 못했다는 것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하길, 할아버지인 나도 초등학교 때 축구 선수였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지난 해 앵커리지를 방문했을 때 손자가 다니는 학교와 다른 학교가 시합을 하는 것을 두 번 본 일이 있습니다. 그 때마다 경기에서 두 세골씩을 넣는 선수가 50번 이었습니다. 그 선수가 꼴을 넣어야 팀이 이기는데 이번에는 한 꼴도 넣지를 못했습니다.

꼴을 넣지 못할뿐더러 전혀 다른 사람처럼 몸놀림이 둔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가만히 있어도 땀이 구슬처럼 솟아나는데 추운 지역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필자도 그 날의 더운 날씨 때문에 2 틀 동안 더위를 먹고 혼이 났었습니다. 어느 덧 필자의 3세가 이 땅에서 자랑스럽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자손을 축복하시는 주님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984

“참 좋으시겠습니다, 살 맛 나시겠습니다”

“목사님! 참 좋으시겠습니다. 살 맛 나시겠습니다. 감축 드립니다.” 위의 내용은 지난 주간에 동역자 친구 목사님이 필자에게 보내온 카톡 내용입니다. 매 주 화요일은 친구 목사 세 부부가 등산을 하는 날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건강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어 모두가 결심하고 건강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건강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저절로 주어지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건강이 내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느끼게 됩니다. 원한다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특별히 주변에서 가까운 동역자들이 쓰러져 가는 것을 보면서 더욱 건강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간해선 등산하는 그 날의 모임을 지키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일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을 할 수 없기에 그 이유를 카톡으로 전했습니다. 알라스카에 사는 둘째 딸 가족(다섯 식구가)이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딸 가족이 이곳을 방문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외손자 Ryan은 초등학교 5년입니다. 가을에 6학년이 됩니다. 손자가 그 학교의 축구 선수입니다. 그런데 2018년 알래스카 주에서 초등학교 대항 축구 시합에서 손자가 다니는 학교가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그로인하여 금년 봄에는 시애틀에 초청 받아 그곳 지역 챔피언 학교와 시합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남가주 코로나 시에서 미 50개 주 전국 초등학교 대항 축구시합이 있어 지역의 명예를 가지고 선수와 부모들이 함께 오는 것입니다. 딸의 가족만 기뻐하고 흥분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 사는 가족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곳에는 일가친척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기뻐하지만 필자도 다르지 않습니다.

근처에 사는 손자들은 자주 볼 수 있지만 멀리 있어 보고 싶을 때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6월 11일부터 한 주간동안 이어지는 경기가 기다려지는 것입니다. 달려가서 모처럼 큰 소리로 응원도 할 것입니다. 필자도 초등학교 시절 축구선수 주장을 해본 경험이 있어 그 시절의 자신을 보는 것처럼 기쁨이 벅차오릅니다.

오늘은 김밥 집을 들러 화요일 오전 11시부터 시작되는 경기를 위하여 알래스카에서 오는 손자 학교 축구 선수들과 부모들이 함께 먹을 깁밥과 떡을 기쁨으로 넉넉하게 주문했습니다. 음료수는 오렌지카운티에 사는 큰 딸 가족이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기쁨은 손주를 가지지 못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제게 “감축 한다며 살 맛 나시겠습니다”고 카톡을 보내온 친구 목사님은 당신도 필자와 같이 6명의 손 자녀들을 가지셨기 때문에 그 기쁨과 감동을 아시는 것입니다. 손 자녀들을 통하여 더욱 감사한 것은 다음 주 목요일에 큰 딸의 손녀가 중학교를 졸업을 합니다. 큰 손녀가 다니는 학교는 매그닛 학교입니다.

우수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인데 그 학교에서 MVP 상을 받고 졸업을 하게 됩니다. 지난 2년 동안 학업성적이 All A를 받았고 특별활동에서도 크게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자랑과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만도 감사 할 일인데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인 것을 알기에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손 자녀들을 축복하시는 것을 보면서 더 주님을 깊이 생각하게 되고 더 주님을 위하여 충성하여야 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되는 것은 시편 37편 25-26절의 말씀대로 자손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 도다” 6월의 둘째 주일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손자들의 자랑스러운 일로 분주하고도 기쁨이 넘치는 한 주간이 될 것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런 은혜와 복을 주셔서!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971

간 이식을 기다리는 목회자의 아픔을 보면서

수일 전 같은 교단을 섬기는 후배 목사님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자신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는 부탁의 내용이었습니다. 20 여 년 동안 교제 해 오면서 기도 요청을 받아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필자보다는 젊고 건강한 목사였으며 누구보다도 주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신실한 목회자로 인정받는 목사였습니다.

평소에 정직하고 경건한 목사였기에 기도를 부탁할 정도로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심각한 문제로 본인만 아니라 가정과 교회가 큰 시련에 처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간 이식을 받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전화를 받는 순간 귀를 의심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까운 주변 사람이 그런 일 당한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 마치 나의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니 본인과 가정은 얼마나 큰 충격을 당하셨겠습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것도 교회를 담임하시는 목사님에게!

간을 이식할 정도라면 건강이 대단히 중한 상태입니다. 다른 치료 방법으로는 회복이 되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치료지만 과정이 쉽지가 않습니다. 물론 현대 의학이 놀라우리만치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식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필자도 청소년 시절 어려운 병으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주님의 도우심으로 살아났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가족 중 하나가 어려운 병으로 오랫동안 고생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병과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고난이 당시는 힘들고 어려워 보여도 그것을 극복을 하고나면 복이 되지만 그러나 그 과정을 지나기까지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 하는데 보통 힘이 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병은 혼자서 싸워 이길 수 없는 병입니다. 가족이 하나가 되어야 하고, 주변이 한 마음이 되어야 하며, 교회가 하나가 되어서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간 이식은 단 기간에 치료가 끝나는 병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동안 기다림과 투쟁이 필요합니다. 자기와의 끝임 없는 싸움에서 이기고 또 이겨야만 합니다. 절대로 초조해 하거나 조급해 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K 목사님, 반드시 병과 싸워 이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우리를 놀라게 했던 것처럼 가까운 시일에 다시 우리를 놀라게 해 주시길 요청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와 여러분의 기도로 이렇게 어려운 병과 싸워 이겼습니다”라고 간증하는 날을 보게 해 주시길 소원합니다. 하나님은 감당할 시험만 허락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욥기 23장 10절의 말씀이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연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이 말씀이 목사님의 고백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드립니다. 지금까지 목사님의 가는 길을 지도하시고 이끌어 주셨던 주님이 그 날에도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존경하는 K 목사님! 두려워하지 마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무서워하지 마세요! 주님이 곁에 계시잖아요! 사모님! 염려하지 마세요! 두 아들도 근심하지 마세요! K 목사님의 아버지 장로님과 어머니 권사님도 힘내세요! 주님이 기도하심 같이 우리도 기도 하고 교회도 기도하니까요! 우리가 고난을 당하지만 낙심하지 아니하는 것은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1 장 10절의 말씀입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말씀으로 목사님이 반드시 병과 싸워 크게 이기실 것을 믿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951

보통 미국인들의 생활의 여유로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교회에 나와서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난 3개월 동안은 예배 처소가 없어서 집에서 교회 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39년 동안 한 교회를 섬겨오면서 지금까지 그런 경험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지난 달 교회가 새 장소로 이사 하므로 다시 사무실이 생겼습니다.

새 교회에서 필자가 사용하는 사무실은 창가에 있는 작은 방입니다. 33년 동안 교회로 사용했던 건물은 큰 대로변에 있었고 극장 건물이었기에 사무실로 사용하는 방에도 창문이 없어 항상 어둡고 답답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허락받은 공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조용하고 한가한 주택가 길 가에 있어 다른 느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창가로 오가는 차량은 물론이요 걷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만 걷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개를 앞세우고 한가롭게 시간을 즐기며 걷는 사람들도 자주 봅니다. 교회가 위치한 길가는 차량이 많은 분주한 도로가 아닙니다. 주택가 도로이기에 비교적 한산하고 오가는 사람들도 많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창가 도로 변에 차들이 2-30분씩 쉬어가는 것이 자주 목격이 되고 있습니다. 이상한 것은 차에서 내릴 때 그냥 내리지 않고 작은 가방들을 한 두 개씩 들고 내리는 것입니다. 돌아올 때는 빈 가방에 무언가를 채워가지고 돌아갑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반복해서 그런 광경을 보게 되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먼발치에서 차에서 내려 작은 가방을 들고 걸어가는 사람의 뒤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그 분들이 교회 옆 한가한 길에 차를 세우고 가는 곳은 마켓이었습니다.

Trader Joe’s 일명 유기농 제품을 전문적으로 파는 마켓입니다. 필자도 걸어서 5 분 거리에 있는 그 마켓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놀란 것은 규모가 크지 않은데 반하여 손님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늘 사용하는 대형 한인 마켓의 1/4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파킹장도 그리 넓지가 않아 손님들 중에는 주변 길가에 차를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생각이 되는 것은 마켓 근처에도 차를 세울 수 있는 공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불락 약 300여 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 우리 교회 앞 주차 공간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갈 때는 그렇다지만 물건을 사가지고 올 때는 무거운 것을 들고 옵니다. 나의 시선으로 바라 볼 때에 그런 미국인들의 일상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바쁜 시간에 왜 저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사람은 어깨에 가방을 메고 양손에 무거운 것을 들고 힘들게 걷는 모습을 보면서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필자가 Trader Joe’s를 방문해 보니 주차장이 좁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금 기다리면 차를 얼마든지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지 아니하고 먼 거리를 힘겹게 걷는 모습을 보면서 교회 주변에 사는 보통 사람들의 삶의 여유로움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처럼 시간에 쫓겨 사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즐기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 여유로움을 통하여 생활에 필요한 물건만 사는 것이 아니라 오고 가면서 건강도 챙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는 그런 여유로움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아니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항상 분주하게 살았습니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행동하려 했습니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늘 쫓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마켓을 갈 때도 할 수 있다면 가장 가까운 곳에 차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주차 공간이 생기면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먼저 세우려 했습니다. 속된 말로 빨리 빨리 그리고 나만 편하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잘 사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잘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서 세상을 사는 방법을 보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결심을 합니다. 주일 교회에 와서도 좋은 자리, 가까운 자리에 주차하는 것이 당연한 나의 권리로만 생각하던 것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아직은 다리에 힘이 있을 때 그렇지 못한 어르신들을 위하여 좋은 자리를 배려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937

새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의 감동

하나님의 은혜로 새 성전을 허락 받은 지 세 주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33년 동안 사용해 오더 교회 건물을 매각하고 새 성전을 물색할 때에 지난 3 개월 동안 20여 곳의 건물을 부동산 중개인의 안내로 방문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예배 처소를 준비하지 못해 약간의 어려움을 당해야 했습니다.

주일 오후 1시 반 예배를 빌려 주기로 한 이웃 교회에서 갑자기 보험 증서를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일 오후 예배를 사용하기로 한 곳은 오랜 기간이 아니었습니다. 수개월 이내 새 건물을 찾을 줄 알아서 수개월만 사용키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수개월 동안 보험을 들어주는 곳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단 기간 동안 보험을 드는 것도 쉽지 않지만 보험을 들려면 적어도 한두 주일은 샤핑을 하고 계약을 해야 하는데 당장 증서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결국 빌려 사용키로 한 교회와의 구두 계약은 취소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필자의 집 리빙룸에서 불편하지만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예배드린 지 3개월 만에 South Pasadena 중심에 위치한 지금의 교회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마음에 드는 건물이 3-4곳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한다고 매매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판매자가 원하는 조건과 우리가 원하는 조건이 일치하는 것이 생각대로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 중 한 곳은 양자의 조건이 일치하여 순조롭게 건물을 이양 받는 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건물을 팔길 원했던 미국교회 교인들이 매입자가 결정이 되었다는 말에 환영하는 교인들도 있었지만, 일부 교인들은 반대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계속되는 회의 결과로 팔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전갈을 받았을 때에 낙심이 되는 듯 했습니다.

3개월 동안 쉬지 않고 기도해 왔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교회당을 매입하는 것이 우리의 생각과 의지, 계획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방법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이러 이러한 건물과 어떤 지역의 건물을 주시길 위해서 기도하던 내용을 중단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기도대로가 아니라 주님의 도우심을 받겠습니다. 주님이 일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주님이 결정하시는 대로 순종하겠습니다. 꼭 성사 될 줄 알았던 교회 건물이 최종적으로 거부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두 시간 동안 맥이 풀린 상태로 지쳐 있을 때 지금의 교회 건물에 대한 연락을 받았습니다.

즉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25분 동안 운전을 하고서 생각 없이 달려갔습니다. 도착하고서 교회당 안을 들러보고 나서 놀라운 감동을 받았습니다. 꿈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 같은 아름다운 교회건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매입 금액도 그 동안 우리가 보아온 건물에 비하면 너무 좋은 값에 나왔습니다.

지체하지 아니하고 즉시 매입 절차를 시작했습니다. 판매가 보다 더 많은 돈을 더해서 오파를 넣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10일 만에 에스크로스가 오픈 되었고, 그로부터 18일 만에 모든 절차를 마치고 열쇠를 받았습니다. 통상적으로는 에스크로 기간이 40여일 이상 걸리는데 반하여 속히 끝날 수 있었던 것은 매입대금을 전액 현찰로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교회 건물 페이먼트가 없는 교회를 하나님께 선물 받은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하여 분명하게 안 것이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길을 예비하신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 처소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지금의 성전을 우리가 받게 된 것이 사람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에서 계획하시고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겁니다. 우리 중 누구도 이 교회당을 살 생각도 꿈도 계획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주님이 그 일을 지도하셨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대로 우리가 한 것은 순종뿐이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기에 주님에 대한 신뢰가 더하는 것입니다.

이전에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셨고 지금도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보다 앞서 가시어 일하시는 모습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지켜보면서 하나님이 우리 예배를 얼마나 기쁘게 받으실 뿐 아니라 매 시간 기다리심을 느낄 수 있어, 교회를 향하는 마음이 즐겁고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927

산에 오르고 나서 느끼는 상쾌한 기쁨!

지난 화요일 세 번째 산에 올랐다. 오후 3시에 약속한 장소에 동역자 3 목사님 부부가 모여서 함께 등산을 한 것이다. 두 분의 목사님은 일주일에 한 번씩 부부가 오래전부터 등산을 통하여 약해진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면서 제게도 동참할 것을 여러 차례 권하여 마지못해 참여하게 되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산에 오르는 횟수가 더하여 가면서 왜 이렇게 좋은 것을 지금까지 몰랐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두 목사님은 오래전부터 산을 오르셨기에 크게 힘들어 하는 것 같지 않았지만 처음 경험하는 나는 앞서가는 두 분을 따라가는 것이 힘에 부치지 않을 수 없었다.

올라가서 내려오는 시간을 합하면 3 – 4 시간이 소요 되는 것은 몇 번 쉬어 가기 때문인데 그래도 온 몸에 구슬땀이 촉촉이 흘러내리는 것이다. 올라가다 보면 중단하고 싶은 때도 있고 돌아가고 싶은 때도 있었지만 인내하면서 끝까지 산행을 마치고 나면 몸과 마음이 그렇게 가볍고 상쾌할 수가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등산을 하고 온 다음 날 아침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신선함과 그동안 자고 나도 몸이 무겁고 무기력했던 것이 사라지는 기쁨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다음 번 산행이 기다려지는 것이다. 우리가 택한 등산길은 로스앤젤레스 한 복판에 위치한 그리피스공원 동쪽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LA에서 50년 가까이 살기에 나름대로 LA에 대해서 제법 안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산에 오르면서 인생이 지렁이와 같다는 이사야 성경을 생각하게 되었다. 지렁이가 아무리 오래 살아도 흙을 다 먹지 못하고 죽는 것처럼 우리도 아무리 오래 살아도 세상을 다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직도 가보지 아니한 길이 셀 수 없이 많으며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 오르면 다운타운의 건물들이 더 선명하고 아름답게 보이며 멀리 서부 해안의 아름다운 바닷물이 햇살에 은빛으로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눈을 뒤로 돌리면 Glendale 시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산에 올라서 오랫동안 잊었던 45년 전의 기억이 되 살아나 오늘의 나를 있게 하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할 수 있었다. 미국에 온 것은 한국에서 치료할 수 없는 병을 고치기 위해서 였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나의 병을 치료할 병원은 없었다. 한국을 떠날 때에는 미네소타 주에 있는 병원으로 간다고 했다.

그런데 계획대로 되지 못했다. 나중에 안 것은 그 곳 병원에서도 치료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를 초청해준 미 선교본부가 UCLA 의과대학으로 보낸 것이다. 이곳에 머문 지 6-7개원 만에 혼자 시내버스를 타고 걸으며 처음 그리피스 공원 천문대에 올라서 광활하게 펼쳐진 LA 시를 내려다보게 된 것이다.

그 때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첫째는 저렇게 많은 집들 가운데 내가 들어갈 집이 없다는 생각이 서글프게 다가온 것이다. 두 번째는 사방으로 곧게 뻗은 차로를 따라 빠르게 달려가는 여러 가지 모양과 색깔의 크고 작은 많은 자동차들 가운데 나의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살아생전에 나도 자동차를 운전할 수는 있을 것인가? 그럴 수 없다고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나의 삶이 촌각에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평생 이루지 못할 것 같은 일들이 46년을 이곳에서 살아오면서 그 때 꿈꾸던 것 이상으로 모든 것을 이루게 하셨기 때문이다. 누가 나를 어떻게 이 자리까지 인도하셨는가?

나는 나의 노력으로, 나의 실력으로, 나의 수고로 지금 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축복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나도 나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알고 있었고, 누구도 나의 운명을 바꾸게 할 사람이 없을 것으로 생각을 했었다. 그런 나를 고치시고 살리셨다.

그리고 가정을 주시고 자녀를 주시고 차도 주시고 집도 주시고 주의 종으로 세우시며 섬길 교회도 주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주님을 무한 신뢰하며 주님의 말씀인 성경을 100% 믿게 되는 것이다. 나의 존재를 느끼는 순간마다 주님의 선한 인도하심을 느끼며 감사하는 것이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917

암 치료를 거부한 이어령 교수님의 간증을 듣고서

얼마 전 한국기독교 TV 방송국에서 방영한 “암치료를 거부한 이어령 교수님의 간증” 1편과 2편을 관심 있게 보고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되어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당하는 시련 가운데 가장 힘든 것이 죽음의 그림자라고 생각을 하는 것은 필자도 청소년 시절 그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는 이유는 세상이라는 징검다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것으로 죽음을 통하여 그 나라에 준비된 자가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죽어도 자신은 죽지 않을 것 같은 착각 속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죽음이 다가오면 어느 누구도 그것을 싸워 이길 사람이 없습니다. 자기를 향하여 무섭게 다가오는 죽음을 피하지 못합니다. 도망가지 못합니다. 나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죽음과 싸워 이긴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망을 이기시고 죽은 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사심은 천지창조에 버금가는 위대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놀라운 것은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미리 말씀하신 겁니다. 세상 어느 위대한 인물도 자신이 세상에 태어날 것을 수천 년부터 말하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언한 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다 이루고 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신 때와 장소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던 대로 사셨고 말씀하신 대로 죽으셨으며 말씀하신대로 죽은 지 3일 만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기독교가 세상 종교와 다른 것이 이것입니다. 기독교가 모든 종교보다 뛰어난 것은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이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부활이 축복인 것은 우리가 부활한 이후 다시 죽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 죽지 않을까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제한된 우리의 생명이 하늘의 천사들처럼 영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서 오라비의 죽음으로 크게 낙심하고 슬퍼하는 마르다의 집을 방문하시어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 말씀은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에게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물으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크게 감사드리는 것은 이 말씀을 믿어지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나의 지혜로 믿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상주하시어 이 말씀이 믿어지게 하셨습니다. 그 은혜로 성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심을 믿습니다. 천국을 장소적으로 믿습니다. 주님의 모든 말씀을 나는 다 믿습니다. 이어령 교수님의 간증이 내가 믿는 주님에 대한 고백이기에 감동이 되었습니다.

간증을 들으면서 마음에 작은 아쉬움을 가지게 되는 것은 이어령 교수님이 암을 극복하고 우리 곁에 오래도록 살아 계시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혼탁한 이 시대의 어두운 밤을 비추는 등대와 같은 삶으로 살아 오셨습니다. 87세의 나이면 살만큼 사셨다고 하셨지만 그렇다고 오는 죽음을 그대로 기다릴 수는 없으십니다.

이 교수님의 삶은 혼자만의 삶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교수님에게 많은 지혜와 지식을 주시고 지금까지 올곧은 삶을 살게 하신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더 큰 일을 하시게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주변에 이어령 교수님과 같은 고령의 나이에 죽음과 힘들게 싸우고 계시는 많은 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시기 바랍니다.

병원을 방문하여 한번 치료 받는 시간이 6-7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차라리 그 시간에 못 다한 일을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일반 사람은 생각지 못하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 교수님을 바라보는 많은 분들이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우리의 건강을 도울 지혜로운 의료인들과 시설을 예비하셨습니다.

나의 몸이 나의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령을 모신 성전이기에 건강을 지키는 것도 주의 일입니다.

이상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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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3)

기도원에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누구에게도 그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누구에게 말해도 그 말을 믿어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였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소중하게 간직하고서 이후부터 당당하게 아들의 문제를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즉시 병원 의사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지정해 주는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2주일 동안 반복해서 간 조직 검사를 했습니다. 학교에는 이 같은 사정을 알리고 학업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아들만 놀라는 것이 아니라 아들 친구와 학교에서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2달의 시간이 경과했습니다. 그 동안의 진료 결과를 마지막으로 듣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아들과 병든 아내 그리고 두 딸과 함께 간 전문의사의 진료실을 방문했습니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들의 담당 의사인 여자 의사와 눈을 마주쳤습니다. 인사를 하려고 하자 내게서 눈을 돌리고 그냥 자신의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틀렸구나! 한 가닥 기대했던 희망도 사라졌구나!

긴 탄식과 한숨이 터져 나왔습니다. 진료실 안에서 마주한 때도 의사는 우리에게 미소를 주지 않았습니다. 궂은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들을 눕히고 손으로 간 부위를 만지며 청진기로 심장의 박동을 들을 때 우리는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진찰이 마침과 동시에 그 의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죽고 살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치 오랜 시간처럼 침묵이 이어지는 듯 했습니다. 의사는 진료를 마치고 진료 차트를 읽고 나서 우리를 향하여 무거운 입을 드디어 떼었습니다. 그 때 의사의 말은 긴 말이 아니었습니다. “It’ normal”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죽을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제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소리를 들었는데도 전혀 기쁘지가 않았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아내는 땅 바닥에 주저앉아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의사가 고마운 것이 아니라 주먹을 의사의 얼굴에 날리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껴야 했습니다. 이유는 의사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처음 만날 때라든지 아니면 진료를 하기 전에라도 걱정하지 말라고 결과가 좋게 나왔다고 했다면 그렇게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의사는 너무 냉정했습니다. 환자의 입장을 조금도 배려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맙다는 인사도 의사에게 하지 아니하고 진료실을 나왔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기적이 있지만 우리 가정에 임한 이것이 기적 중 기적이 아닐까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요? 가족 중 누구도 이런 말을 들으리라고 기대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한 너무도 신기하고 놀라운 기쁨의 소리, 삶의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당신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깊은 터널에서 벗어난 아들은 다시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강력한 예방 주사를 맞은 아들은 죽음이 무엇임을 두 달 동안 깊이 알게 하셨습니다. 앞으로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큰 공부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때부터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대학 2학년의 학점 크레딧을 받고 졸업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California 내에 있는 어느 대학이든지 2년만 공부를 하면 졸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타주로 대학을 진학을 경우 6개월의 크레딧만 받게 됩니다. 대학을 입학하게 되었을 때에 여러 대학에서 입학 허가를 받았습니다.

그 중 그가 택한 곳은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동부 워싱턴에 위치한 Georgetown 대학이었습니다. 그 대학으로 가는 것을 동의하지 못했던 나를 향하여 얼마 전 어느 날 아들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아빠의 말을 듣고 가주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으면 아마도 자신의 지금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작은 진료실에서 몇 사람의 환자만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하지만 동부의 학교로 갔기 때문에 자신의 삶의 경계가 전 세계가 되어 하늘을 날라 다닌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연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는 욥기 22장 10절의 말씀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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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2)

갑작스럽게 닥친 아들의 질병 문제는 가족 모두를 큰 충격과 혼돈에 빠지게 했습니다. 정말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이러한 상황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이제 나의 목회는 끝이 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낮으로 강단에 설수가 있겠습니까? 무슨 면목으로 설교를 할 수 있습니까?

그때 내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아들의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내가 나아갈 길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부인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두 딸들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밖에 없었습니다.

차를 몰고 산으로 향했습니다. 평소 다니던 기도원으로 향한 것입니다. 얼마나 그곳에 머물지에 대한 생각도 없이 무작정 집을 떠난 것입니다. 기도원을 향하여 운전을 하고 가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이게 뭡니까? 하나님 이게 뭡니까? 지금까지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살아 왔는데 이게 뭡니까?

오래 전 Palmdale 기도원에서 40일 금식기도 할 때에도 장래에 대한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 때 이상으로 아들 때에도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기도원에 머문 기간은 3일 이었습니다. 3일 동안 금식을 했지만 기도가 되지 않았습니다. 성경도 읽혀지지가 않았습니다. 그 때 나의 입에서 쉬지 아니하고 반복해서 터져 나오는 탄식만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게 뭡니까” “주님 이게 뭡니까?”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이제 나는 더 이상 교회 사역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무슨 면목으로 내가 부름 받은 종이라 할 수 있습니까? 나의 목회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이 진정으로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십니까?

3일 동안 기도원 골방에서 밖으로 나오지 아니하고 그냥 모든 것을 체념한 채 넋 놓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곳에서 얼마나 더 머물지에 대한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 이게 뭡니까? 하나님 이게 뭡니까? 반복해서 이 탄식만 수도 없이 부르짖는 것뿐이었습니다.

주님도 나를 버리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나의 아버지가 아니시고 타인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제 나의 모든 것이 끝이 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 때의 절망감은 내가 살아 있는 것이 아픔이고 고통으로 느껴졌습니다. 다시는 내게 기쁨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다시는 나에게 웃을 일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에 나를 놀라게 한 소리가 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소리였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음성이었습니다. 잠자던 나의 영혼을 크게 흔들어 깨어나게 하는 세미한 음성이었습니다. 세상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너무나 분명하고 또렷한 음성이었습니다.

그 음성의 내용은 “데이비드가 누구의 아들이냐고 내게 조용하게 물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데이비드가 나의 아들인줄 알았습니다. 데이비드가 나의 아들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음성을 듣는 순간, 데이비드가 나의 아들이 아님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데이비드가 나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그것이 깨달아지는 순간 내 안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깊은 밤에 순간에 광명한 빛으로 변화는 것 같은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의 입에서 “이게 뭡니까?”라며 3 일 동안 부르짖었던 탄식이 이렇게 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데이비드가 내 아들이 아니고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그러니 알아서 하세요! 죽이시든 살리시든 주님 뜻대로 하세요! 그렇게 나의 소리가 바뀌면서 내 안에는 무거운 짐에서 벗은 것 같은 평안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의 문제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리를 정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에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기도원에서 내려오자마자 교회로 향했습니다. 그 시간이 수요 예배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으면 하산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영문도 모르고 수요예배 참석하셨던 교인들은 예배 인도자가 교회에 나타나지 아니하므로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기에 놀라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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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1)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연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기 22장 10절의 말씀입니다. 위의 말씀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말씀으로만 알았습니다. 그런 이 말씀을 이해하기 까지는 많은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나에게는 없을 줄 알았던 인생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제서 이 말씀의 의미를 조금은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가는 길을 내가 계획하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지난날들을 돌아보니 내가 나의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을 주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던 때는 내가 나의 삶을 사는 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못하고 자기 잘난 멋에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20살을 넘기지 못할 것이란 많은 의사들의 말에도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나의 수고와 노력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로 미국에 삶의 경계를 허락 받아 반세기 가까이 이 땅에서 가정을 이루며 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미국에 올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 나를 하나님의 강권적인 방법으로 이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짧지 않은 지난 삶을 살아오면서 여러 번의 위기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나의 삶에 결정적인 어려움을 주었던 것은 젊은 시절 죽음의 그림자에게 쫓김을 당하던 때였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42 년 동안 부부로 살아온 집 사람이 17년 동안 암으로 힘든 삶을 살아야 했던 때였습니다. 두 번 다 쉽지 않은 시련과 고통이었지만 이보다 더 심각하고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아들이 어려운 병으로 생사의 귀로에 놓이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에게 기쁨과 소망을 주던 아들이었습니다.

자라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아온 아들이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학교로부터 선별 교육을 받았습니다.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는 것도 학교의 지도로 부모인 우리도 알지 못하는 교육을 받게 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에 들어간 것이 Los Angeles County 안에 두 개의 교실 밖에 없는 특수반에 배정을 받았습니다.

일명 Medical Magnet 프로그램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 반에 속한 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선 대형 병원에서 500시간 이상 자원 봉사를 이수해야만 합니다. 학교는 학생이 봉사할 병원을 지정해 줍니다. 그러면 배정 받은 병원에서 자원 봉사자로 일하기 위해선 먼저 지정 받은 병원에서 건강 검진을 받아야 합니다.

건강에 이상이 없을 경우 봉사자의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한 번도 건강에 이상이 없었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건강 검진 과정에서 아들이 중한 병에 걸린 것이 발견 되었습니다.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아니하는 것이긴 하지만 아들의 간에 cooper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있으면 신경 계통의 심각한 문제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장 학업을 중단하라는 것입니다. 아들의 남은 생명이 수년 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가면서 뇌신경이 상처를 당하여 공부를 하지 못할뿐더러 온 몸이 굳어져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당장 간 전문 의사를 찾아서 상담을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은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천병력이라고 했던가요? 정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습니다.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의 가정에 부인도 말기 암 환자인데 하나 뿐인 아들도 치료가 되지 않는 불치병에 걸렸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정말로 내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목사이긴 한 건가?

나의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혹시 내가 하나님께 큰 죄를 범한 것은 아닌가? 의사로부터 아들이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들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부인의 얼굴도 볼 수가 없었고 두 딸의 얼굴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도 부끄럽고 너무도 당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가족이 서로 얼굴을 대하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겁고 힘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때부터 한 동안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이 일을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기만 했던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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