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으로 돌아간 2박 3일의 아름다운 여행!

필자가 12년 째 섬기고 있는 남가주목사장로부부찬양단이 제11회 정기 공연을 지난 10월 27일 저녁 6시에 아가페세계선교교회에서 은혜 가운데 마치고 난 다음인 지난 11월 5일 출발하여 2박 3일 동안 그랜드캐년으로 50명의 합창단원이 수양회를 다녀왔습니다. 이번이 3 번째 연속해서 맞이하는 수양회였지만 필자는 처음으로 참여했습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망설임 가운데 수양회에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통하여 생각지 못한 은혜와 아름다운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합창단원으로 오랫동안 함께 해 왔지만 사실 단원들 간에 한 자리에서 진지한 대화의 시간을 가지지 못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찬양 연습을 위해서 정해진 장소와 시간 속에서 단원들이 잠시 만난 후 찬양이 끝나면 곧 바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기에 바빴기 때문에 서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금번 여행을 통하여 멀었던 우리의 관계가 가까워진 것입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우리 모두가 이처럼 한 마음이 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한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는 시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남이 아닌 가까운 이웃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여행사를 통하여 전세낸 대형버스를 타고 긴 시간 오고가는 동안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를 통하여 서로를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감사한 것은 우리의 모습은 늘 경직되어 있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로서 목사와 장로 그리고 그 가족이라는 부담에 눌려 말과 행동에 늘 조심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비단 합창단 안에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금번 여행에서 우리 모두는 그런 부담에서 탈출을 하게 된 것입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다 동심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긴 시간 차로 이동하는 동안 오래도록 불러보지 못했던 기억에서 희미해진 옛날의 동요들과 우리의 귀에 익숙한 고향의 노래들이 들려질 때마다 우리는 한마음이 되어 큰 소리로 합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잊었던 어린 시절 고향의 뒷동산에서 뛰놀던 친구들의 얼굴들이 떠오르기도 해 우리를 먼 기억속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금번 수양회가 아니었으면 느낄 수 없었던 아름다운 순간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대화는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대화로 이어졌습니다. 가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마음으로 주고받는 따뜻한 인사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만날수록 더 따듯해지고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내가 만나고 있는 분들이 이렇게 귀하고 아름다운 분들이심을 왜 그동안 모르고 살아왔는지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합창단원들의 평균연령이 70세 정도로 추정이 됩니다. 이번 여행에도 건강상의 이유로 10여분이 참석을 하지 못하셨습니다. 놀라운 것은 녹녹치 않은 연세임에도 불구하시고 누구하나 실족하지 않으시고 건강하게 여행을 즐기셨습니다.

여행 마지막 날 아침에는 콜로라도 맑은 강물에 띠운 배에 일행이 올랐습니다. 한 시간 반 이상 되는 배 안에서의 모임은 선상 무도회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누구하나 빠짐없이 모두가 어린 아이가 되어 손에 손을 맞잡고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은 더 이상 나이든 어른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긴 세월 살아오는 동안 가면 속에 가려진 우리의 본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이번 여행이 그래서 오래도록 기억이 될 것입니다. 여행을 통하여 하나님이 찬양 받으시길 좋아하실 뿐 아니라 찬양하는 우리에게 큰 위로를 주시는 분이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목사장로부부찬양단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631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선물한 백정숙 권사님

큰 아빠 어떻게 하면 좋아요? 다은이 아빠의 생명이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답니다. 11월 12일 월요일 아침에 북가주에 살고 있는 동생 부인이 전화로 알려온 내용이었다. 다은이 아빠는 북가주 지역의 KCCC 간사로 사역을 하고 있는 37세의 젊은 목사로 8살 5살의 어린 두 딸을 두고 있습니다.

3년 여 전부터 뜻하지 아니한 갑작스런 질병으로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었습니다. 영어 병명으로는 ALS, 한국 병명으로는 루케릭으로 온 몸의 신경이 죽어가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는 손발을 움직이지 못할 뿐 아니라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혀도 움직일 수가 없어 음식도 넘기지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에 아버지 선교사를 따라 루마니아로 떠나서 지금까지 타향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평생을 선교사로 사역하시는 목사님의 아들 목사이기에 하나님이 그대로는 이 목사님을 데려가지 않으실 것으로 생각하고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기도의 이적을 위해서 쉬지 아니하고 기도해 왔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와는 달리 이 목사님의 건강은 날로 쇠약해져 가더니 결국에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것도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고 선고 받았던 날을 다 채우지 못하고 3일만 인 지난 11월 14일 수요일 저녁에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걱정하던 일이 현실로 다가온 것입니다.

떠나간 사람을 위해서 남은 가족이 해야 할 일은 장례식을 치르는 것입니다. 가난한 목사의 삶이기에 장례식을 위해서 준비해둔 것은 없었습니다. 전화로 장례절차를 물었더니 필자가 살고 있는 LA와 달리 북가주는 최소 5만 불의 비용이 든 다는 것이었습니다. 묘지 값이 2 만 불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로서 장례식의 경험이 많은 필자는 동생 부인에게 강력하게 권고했습니다. 장례식을 위해서 그렇게 많은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할 수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한 재정 형평으로 무리해 가면서 장례식을 할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차라리 어린 두 딸의 장래를 위하여 단돈 얼마라도 절약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두 가지로 제안을 했습니다. 첫째는 시신을 화장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부활을 믿는 우리들에 게는 매장이나 화장의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화장을 하면 장례식 경비를 1/3 수준으로 절약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여의치 아니할 때는 북가주에서 장례식을 행한 후 필자가 있는 이곳으로 시신을 옮겨와 매장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경우 북가주에서의 장례 경비의 1/2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감동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고인이 생전에 섬기고 출석하던 리치몬트침례교회 백정숙 권사님이 모두를 놀라게 하셨습니다.

젊고 신실했던 목회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위해서 평소 자신이 죽으면 사용하시려고 준비해 두신 묘지를 고 이준은 목사님을 위해서 아무런 조건 없이 기쁜 마음으로 기증해 주신 것입니다. 자신의 묘지를 기증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화장을 해 달라고 하시면서 기증을 하신 것입니다.

전화로 그 소식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시대에 어떻게 이런 귀한 희생과 사랑을 만날 수 있습니까? 백정숙 권사님의 크신 사랑을 통하여 고 이준은 목사의 짧은 생애가 실패한 사역, 기억에서 잊혀져간 인생이 아니며 헛되게 산 것이 아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고인이 그토록 사랑했던 남기고 간 어린 두 딸에 대해서 염려하던 필자의 마음에 주의 음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시편 37편 25-26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 도다”

세상은 말하길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에 와서 천국을 얻고 돌아갑니다. 홀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을 얻고 갑니다. 천하보다 귀한 자녀들을 얻고 돌아갑니다. 축복의 믿음의 씨앗을 만대로 뿌리 내리고 주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618

주연희 선생님의 춤 공연을 보고서

지난 10월 18일 저녁 7시 한인 타운에 위치한 윌셔 이벨 극장에서 주연희 선생님의 무용 인생 6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공연이 있었습니다. 필자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세계가 있다는 것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왔기에 생애 처음으로 무용 공연을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자원해서 공연장에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평소 가까이 지내는 존경하는 목사님이 정중하게 공연에 와 주시길 바라시는 초청을 하시기에 그 분을 생각해서 마지못해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연희 선생님이 누구시고 어떤 실력의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의 관람을 통하여 뜻밖에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주연희 선생님이 무용계에 입문하신지 60주년을 맞이하는 공연이었습니다. 80세 고령의 어르신이 극장 무대에 오르시어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공연을 하신 것입니다. 순서지를 보고서 정말로 주 선생님의 나이가 맞는가?

공연을 실수 없이 마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염려가 되면서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행여 과격한 동작을 하시다가 넘어지시거나 다치는 것은 아닐 지 걱정이 되어서였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조금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아니하고 마치 신들린 듯 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80 고령의 노인 무용수라고 보이지 아니할 정도로 빠르고 정교하게 무대를 즐기고 계셨습니다. 무용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음에도 그저 감탄이 입에서 절로 나왔습니다. 어떻게 저러실 수가 있으실까? 할 정도로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공연을 통하여 정말로 큰 은혜가 된 것은 그분의 신앙 고백 이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객석을 향하여 인사하는 시간에 청중들을 향하여 이런 고백을 하셨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건강을 유지하고 이렇게 큰 무대에서 공연을 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도 나와 같이 건강한 삶을 사시기 원하시면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간증은 아무나 하지 못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 선생님의 무용도 보기에 좋았습니다만 목회자인 필자에게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 것은 주 선생님의 용기 있는 신앙 고백 때문이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교회 다니는 사람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 선생님은 평생 무용을 하면서 외길 인생을 살아 오셨습니다. 주연희 선생님을 보면서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복음을 증거하며 살아왔는데 나의 남은 날은 어떤 모습일까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2년 후면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 근속한지 40주년이 됩니다.
그 때를 기하여 이제는 명예로운 은퇴를 준비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70세에 할까? 그런 생각을 반복해서 해 오고 있었는데 주연희 선생님의 공연을 보면서 하나님이 건강을 주시면 스스로 자원해서 은퇴하는 것을 다시 심각하게 고민을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공연에 참여한 젊은 무용수들의 힘 있고 아름다운 공연도 보기에 좋았지만 고령의 노인의 절도 있고 완숙한 무용도 보기에 너무 좋았던 것처럼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는 나이의 많고 적음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행사 사회를 맡은 아나운서가 “주 선생님의 90세 공연을 기대해도 좋을까요?”라는 물음에 “하나님이 은혜 주시면 다시 이 자리에 서고 싶다”고 힘주어 말씀하시는 낭랑한 어르신의 말씀이 뇌리에 깊이 각인이 되었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614

목사님! 제 친구를 제발 말려 주세요!

지금으로부터 십 사오 년 전의 일입니다. 남편을 앞세우고 하나 뿐인 딸과 힘들게 살아가는 K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남편은 치료가 되지 아니하는 어려운 병으로 오랫동안 투병을 했기에 부인 집사님이 남편의 병수발을 돕느라 많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홀로 되고 수년이 지났을 때의 어느 날 이었습니다.

K 집사님과 오랫동안 교제를 이어오던 주변의 친구 분이 전화로 상담을 요청을 했습니다. 상담을 원하는 내용은 K 집사님이 요즘 공개적으로 한 남자를 만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비롯한 다른 친구들의 안목으로 볼 때에 K 집사님이 만나서는 아니 될 사람인 것 같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병든 남편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는데 다시 남자 문제로 상처 당하는 것을 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전화로 상담할 내용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주중에 교회 사무실로 오셔서 자세한 내용을 이야기 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서 수일 후 만났습니다. 그 분을 뵙고서 K 집사님이 좋은 친구를 가졌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로 친구를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이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친구는 K 집사님이 그 남자를 만나면 아니 되는 이유를 여러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남자의 직업과 성품, 가족 관계 등에 대해서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친구의 염려가 얼마나 걱정스러운 것인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친구의 말을 다 듣고 나서 나는 정중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 분에게 다음과 같이 말을 했습니다. 왜 필자에게 오기 전에 이러한 내용으로 본인에게 직접 권하지 않았느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친구들과 함께 몇 번 진지하게 권면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급한 마음에 실례인 것을 알면서 용기를 내어 K 집사님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인 필자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저는 두 가지 이유로 K 집사님에게 권면을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첫째 이유는 지난 십여 년 동안 집사님이 교회 안에서 보여준 믿음과 봉사의 삶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K 집사님은 자신의 삶에 대해서 주변의 친구들이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처럼 생각 없이 잘못된 결정을 내리실 분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확실하게 믿는다고 했습니다. 만일 K 집사님이 여러 사람이 반대하는 그 남자를 반려자로 택하셨다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로 집사님에게 이런 문제로 권면을 드리지 않기로 한 것은 K 집사님은 기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기도로 주님께 쉬지 않고 구하시기에 자신의 삶을 아무렇게나 결정할 분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주변의 친구 분들도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집사님의 선택과 결정을 믿고 기다려 주시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상하다는 듯 필자의 말을 수긍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상담을 마치고 돌아가는 친구의 발걸음이 한 없이 무거워 보였습니다. 이후 지금까지도 K 집사님의 친구와 대화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우연히도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물론 십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K 집사님에게 한 번도 그 남자에게 대하여 묻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만나셨습니까? 왜 그 분과 가정을 이루지 않으셨습니까? 무슨 연유로 그분과 헤어지셨습니까? 물을 필요도 없습니다. 집사님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지 나는 그 결정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집사님은 권사님이 되셨습니다. 남편을 앞세운 지 20년을 바라보지만 딸의 가족을 돌보며 믿음으로 살아가고 계십니다.

어느 날 권사님은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누구보다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시는 것을 알기에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권사님은 “과부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한마디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남편이 남기고 간 십자가를 오늘도 힘들게 지고 가는 권사님을 응원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601

제11회 목사장로부부찬양단 정기공연을 준비하면서

정해진 날짜와 시간은 반드시 만나게 되는 것을 다시 경험하게 됩니다. 지난 해 11월에 제10회 정기공연을 큰 성황리에 잘 마치고 나서 두 달 동안의 긴 휴식을 끝내고 금년 2 월부터 새로운 마음과 각오로 출발했던 남가주목사부부찬양단이 다시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을 만나고 있습니다.

매주 월요일 저녁 7시에서 9시까지 이어지는 찬양의 시간을 가질 때마다 멀고도 길게만 느껴지던 제11회 정기공연의 날짜가 드디어 이번 주말로 다가왔습니다. 오는 10월 27일 저녁 6시 한인 타운 중심에 있는 세계아가페선교교회당에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 속에 은혜와 감사가 넘치는 공연이 개최됩니다.

남가주목사부부찬양단이 창단이 된 것은 12년 전이었습니다. 창단 당시의 목표는 단 시일에 단원 50명을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만 계획한 대로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단원 50명을 확보하기까지는 10여 년의 긴 세월이 지나야 했습니다. 어느 단체와 마찬가지로 지난 세월 동안 성장을 위한 진통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시련을 극복하고 지역 사회에서 인정받는 찬양단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찬양 받으시길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축복 속에 남가주목사장로부부찬양단은 성장의 궤도에 올라섰습니다. 예전처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강권하고 권하지 아니할 정도로 단원들의 숫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금번 공연에 참여하는 찬양단원들이 70명에 이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큰 행사를 앞두고 우리의 마음이 무거운 것이 있습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열심히 공연을 준비해 오시던 단원 가운데 얼마 전 큰 수술을 받으시므로 이번 공연에 참여하지 못하시는 K 사모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수년 동안 어려운 질명으로 힘든 투병을 해 오시면서도 그 아픈 몸을 이끄시고 찬양을 하시므로 함께 연습하는 우리를 향하여 늘 아름다운 미소와 사랑으로 대해 주셨던 모습은 우리 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으며 큰 감동이었습니다. K 사모님 뿐 아니라 우리에게 또 다른 감사와 기쁨이 되는 것은 합창단 반주를 위해서 수고하시는

이 샤론 사모님의 건강이 놀라울 정도로 회복되어 가시는 것 같아서입니다. 지난 해 말 사모님의 건강은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할 정도로 심각하고도 어려운 상황이어서 다시 반주하시는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으로 알았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일 년 동안 그 연약하신 몸으로 한 번도 거르지 아니하시고 은혜로운 반주를

감당해 오시므로 우리 모두를 기쁘고 행복하게 하셨습니다. 찬양 속에 함께 하시는 주님의 위로와 역사하심을 우리로 느끼고 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었습니다. 이러한 역사하심을 보면서 우리가 섬기는 합창단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한창단이며 주님이 함께 하시는 합창단임을 고백하게 하십니다.

이번 공연도 우리가 준비한 것 이상으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 속에 큰 영감이 넘치는 복된 찬양이 울려 퍼지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이를 위해서 지난 일 년 동안 혼신의 힘으로 합창단을 섬겨주신 엄규서 단장님을 비롯한 임원 여러분들과 지휘로 수고해 주신 이재경 목사님과 반주로 힘써주신 이샤론 사모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왕복 5-6시간씩 먼 길을 달려서 연습에 임해주신 여러 단원님들께 머리 숙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합창단을 사랑하시고 찬양을 기뻐하시는 많은 분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에 남가주목사부부찬양단이 오늘에 이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특별히 합창단의 성장을 위해서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셨던 역대 단장님들의 노고도 기억하고 싶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580

너는 하지 마, 이것을 하려면 많이 울어야 해

“너는 하지 마! 이것을 하려면 많이 울어야 해” 이 말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필자의 손녀가 두 살 아래 동생에게 오래 전에 한 말입니다. 큰 딸의 세 손녀들이 지금은 8학년 5학년 3 학년 학생이 되었습니다. 셋 모두 방과 후 특별활동으로 무용을 배우고 있습니다. 일 년에 두 번 정기적으로 발표회를 하고 있습니다.

셋째 손녀가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않았을 때 둘째 손녀가 극장에서 발표회를 했을 때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공연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어린 셋째 손녀가 두 살 위 언니에게 나도 언니가 하는 그 무용을 배우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둘째가 동생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는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배우려면 많이 울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곁에서 듣고 있던 필자는 많은 것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둘째 손녀가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마지막 경선에 올라 정해진 장소에서 실수 없이 공연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재능이 뛰어났기 때문이 아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인 나도 알지 못하는 수많은 시간 속에서 구술 같은 땀만 흘린 것이 아니라 여러 번의 좌절과 절망을 극복하고 이겨온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지도하시는 선생님으로부터 감당하기 어려운 책망을 받았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넘어져 몸에 일부가 손상을 당했던 때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지난해에는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전국 경연대회에서 둘째 손녀가 4등을 했을 때 같은 지역, 같은 학원에서 손녀보다 2년 이상 더 무용을 연습해 왔던 언니들이 크게 울었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어떤 일도 다르지 않습니다. 저절로 되거나 거저 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비단 어른의 세계만이 아니라 어린 아이들의 세계도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음악에 맞추어 몸을 뒤집고 구르고 높이 솟아오르며 쉬지 아니하고 이어지며 반복되는 여러 가지 동작들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반복되는 훈련과 연습 그리고 이어지는

경연에서 수많은 도전자들을 이기지 아니하면 그 자리에 오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남이 하지 아니하는 아픔을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다른 아이들처럼 놀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편하게 쉬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악물고 계속되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지 아니하면 다른 경쟁자들과 싸울 수 없는 것입니다.

어린 손녀이지만 그런 모습이 너무나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랜 동안 언니가 어떻게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계속해서 무용을 해 온 것을 지켜본 셋째 손녀는 언니의 충고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뒤를 따라 같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지난여름 방학 때 다우니 시립 극장에서 처음으로 셋째 손녀의 무용 발표회가 있던 날 응원과 격려차 발표장을 방문했습니다. 모든 학원생들이 다 발표회에 참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정한 수준과 경지에 이른 자만이 발표회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어린 막내 손녀가 큰 단상에 오르게 되었을 때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행여 실수를 하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그 동안 여러 차례 첫째와 둘째 손녀들의 발표회 장에 참여했을 때에는 그런 느낌과 감정을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셋째 손녀가 발표하는 때에는 긴장이 되었습니다. 실수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가 절로 되었습니다. 발표가 끝났을 때 셋째는 위 두 언니들보다 더 많은 박수를 받았으며 더 큰 상을 받았습니다. 염려가 기우에 지난 것입니다. 이제 세 손녀들은 이전 보다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하여 강도 높은 훈련 과정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연말이 되면 다시 저들의 명단이 공연 순서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어린 손녀들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570

전나무 숲에 둘러싸인 아카시아 나무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생애 처음으로 강원도 오대산의 전나무 숲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길로 알려진 산책로를 걸을 때 다른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신선함과 상쾌함이 눈으로 보는 즐거움 이상으로 기쁨을 더해 주었습니다. 아마도 전나무에서 뿜어내는 아름다운 향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사계절 늘 푸른 잎을 자랑하는 전나무를 한 장소에서 그렇게 많이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마침 큰 비가 오고 난 후라 골짜기에는 맑은 물줄기가 세차게 흐르고 있어서 듣는 즐거움 속에 전나무 숲길을 걷는 행복을 더해주었습니다. 등산길 좌우로는 40여 미타 이상 되어 보이는 전나무들이 곧게 하늘로 치솟아 해를 가리고 있었습니다.

콧노래를 부르며 전나무 숲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내리막길 왼편에서 외롭게 자리하고 있는 아카시아 나무 한 구루를 발견했습니다. 함께 동행한 친구 목사님과 그 나무 앞에서 우리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전나무 숲에 둘러싸인 곳에서 아카시아 나무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방이 전나무로 둘러싸인 곳이지만 아카시아 나무는 조금도 위축되지 아니하고 자기 자리를 당당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서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아는 아카시아 나무가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흔히 마을 뒷산에서 보아오던 아카시아 나무는 크기가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아오던 아카시아 나무는 곧게 자라지 않았고 휘어지거나 삐뚤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기에 좋지도 않고 사용되는 용도도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오대산의 전나무 숲에 홀로 선 아카시아 나무는 자기의 본분을 잃은 듯 모양은 아카시아 나무가 분명한데 외모는 전나무를 닮았습니다.

선 자태가 전나무처럼 보기에 좋을 정도로 하늘을 향하여 곧게 뻗었고 조금도 휘어지거나 삐뚤어지지 않았습니다. 크기도 일반 아카시아 나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컸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요? 지금까지 그런 아카시아 나무를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이유를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은 이러했습니다. 나무도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카시아 나무가 전나무를 닮아서 하늘을 향하여 바르고 곧게 그리고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전나무 숲에 둘러 싸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다른 장소에서 다른 나무들 틈에서 자라났다면 전나무를 닮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카시아 나무가 전나무처럼 성장하여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전나무들과 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나무들이 자리한 자리에 심겨졌기 때문에 아카시아 나무가 전나무의 특권과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전나무들의 영향을 알게 모르게 받고 닮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예수를 믿어야 하고 예수 안에서 생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랑할 것 없고 보기에 흠모할 것 없는 죄인 된 우리지만 주님과 동거하며 동행하는 삶을 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본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주님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아카시아 나무를 변하게 한 것은 주변의 전나무인 것처럼 주님이 우리를 변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복을 말할 때에 만남의 복을 말합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세 가지를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을 아시지요? 첫째는 부모를 잘 만나야 합니다. 좋은 부모를 만나면 인생의 반은 성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배우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잘 만나야 하는 것은 종교와의 만남입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어느 종교와 만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주님을 만나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며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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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기봉 목사님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다 보면 가끔은 지난날을 되돌아보면서 기억에 새로워지는 분들이 계십니다.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분도 있는가하면 생각이 될 때마다 나쁜 감정을 가지게 하는 분도 있습니다. 표기봉 목사님은 전자에 해당하는 분이십니다. 표 목사님과는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지는 못했습니다.

같은 지역에 살면서 한 교단에 속해있기에 서로 이름 정도는 알고 있으며 매년 총회 때가 되면 만나서 인사를 주고받는 정도로 지내는 사이였습니다. 그런대도 그 분의 이름이 가끔 뇌리에 반복이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래 전에 교단 개혁을 위하여 함께 일하던 지역 노회 대표들이 집단으로 소송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교단 신학교문제로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교단 산하 5개 노회가 본국 총회에 신학교 책임자를 처벌해 달라는 헌의안을 올리게 되자 당사자인 C 목사가 해임 안을 총회에 상정한 5개 노회의 노회장과 서기 10인을 상대로 4천만 불의 손해배상 소송을 한 것입니다. 소송을 당한 10분의 목사님들은 처음으로 경험하는 일이었습니다.

소송을 당한 10명 중에 필자도 속해 있었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그러한 문제로 세상 법정에서 그렇게 엄청난 액수인 4천만불짜리 소송을 당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생전 처음 당해본 일이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몰라서 우왕좌왕하며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러한 때에 표기봉 목사님이 소송 당한 10분을 좋은 식당으로 초대했습니다. 한두 사람도 아니고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고급 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시만 해도 그런 비싼 음식을 접하기 어려운 때였습니다. 귀한 식사를 대접한 후 같은 자리에서 표 목사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교단을 위한 일로 어려운 문제를 당한 것을 진심으로 위로 하신 후 이어서 하는 말이 우리 모두를 놀라고 화나게 했습니다. 이어지는 말은 이러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번 소송에서 여러분은 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드시 집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맛있게 먹었던 입맛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놀란 눈으로 표 목사님을 응시하면서 왜 우리가 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유를 듣기 위해 귀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금번 소송에서 여러분이 질수 박에 없는 이유는 여러분은 거짓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은 거짓말을 능사로 하는 것만 아니라 재판에 필요한 가짜 서류도 얼마든지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가 당한 일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싸워서 이기지 아니하면 죽을 수도 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당한 소송은 다른 사람이 대신 싸워주지도 아니하며 우리 스스로 싸워 이기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는 각오를 가지게 했습니다.

이상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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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주에 사시는 L 장로님과의 오래된 인연

아틀란타에 사시는 L 장로님과의 교제가 20여 년째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먼 타주에 사시지만 가끔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하실 때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를 방문하시곤 하십니다. L 장로님을 알게 된 것은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신실하신 권사님 중 한분이신 P 권사님의 막내 사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L 장로님의 가족과 장모님 사랑은 특별하셨습니다. 10여 년 전에는 장모님과 필자 내외를 아틀란타로 초청해서 일주일 동안 그 일대 관광명소를 방문하는 분에 넘치는 사랑으로 섬겨주셨습니다. 그 때 받은 감동과 사랑은 삶에 활기가 되고 있으며 시간이 갈수록 기억이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P 권사님 때문에 귀한 대접을 받은 것입니다. 이에 지나지 않고 L 장로님은 추수 감사절이나 특별한 때가 되면 교회 앞으로 특별헌금도 매년 보내주시고 계십니다. 그 장로님 내외분이 지난 주간에 갑자기 LA를 방문하셨습니다. 갑작스런 방문 소식을 듣고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L 장로님의 형님은 40년 전에 이민을 오셨습니다.

형님 장로님은 이곳 NH 교회 장로님이신데 금번에 일본으로 단기선교 여행을 가셨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10여명의 선교단원을 이끌고 단장으로 일본에서 사역을 하던 중 심근경색으로 병원에 실려 가신지 30분만인 지난 7월 28일 소천하신 겁니다. 평소 건강하셨던 형님 장로님이셨습니다.

선교 여행을 떠나시기 전에도 3번이나 건강검진을 받으셨을 때도 아무런 문제가 발견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과 형제들이 받는 충격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타국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시신을 이곳으로 모셔와서 장례식을 마치기까지는 20일의 시간이 소요되어 지난 8월 17일 로스앤젤레스 인근 공원묘지에 모시게 된 것입니다.

아틀란타로 돌아가시기 전 날 L 장로님과 부인 권사님을 식당에서 만났습니다. 반가운 만남이었지만 형님을 앞세우신 장로님을 웃음으로 맞이할 수가 없었습니다. 큰 슬픔을 당하신 장로님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무슨 말로 어떻게 위로를 드릴 수 있을까? 생각을 거듭하다가 얻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축하의 말씀을 드리기로 한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생각하면 갑자기 형님이 돌아가신 것은 충격이며 큰 아픔이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죽음의 복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죽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죽을 때는 죽을 만큼 아프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그런데 장로님은 오랫동안 병원에서 아프다가 가신 것이 아니십니다.

중병으로 고생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가슴에 통증을 느끼시고 병원에 가신지 30분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미국사람들이 죽음의 복을 말할 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가족에게는 충격이지만 떠나는 본인에게는 복이라는 것입니다.

죽음의 공포나 아픔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필자의 동생이 10여 년 전에 프리웨이 사고로 현장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집에서 두 시간 거리인 현장으로 소식을 듣고 달려가던 중 운명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차 안에는 둘째 딸 내외가 함께 있었습니다. 사위가 의사이기에 그 때 그런 질문을 했습니다.

차 사고로 현장에서 운명할 때 죽음의 공포를 느끼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육체의 고통을 느끼느냐고 물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픔도 죽음의 공포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장로님의 죽음이 복이 되는 것은 이것 때문이 아닙니다. 장로님의 죽으심은 일반적인 죽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시다가 선교현장에서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말하자면 순교적인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주 안에서 죽는 죽음이 복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고 죽는 것이 복이 되는 것은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귀한 죽음은 주를 위하여 살다가 장로님처럼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순교자의 상급이 하늘에서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순교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모한다고 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자만 순교자의 면류관을 쟁취할 수 있습니다. 장로님이 이런 죽음을 받으신 것은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뿌리신 복음의 씨앗이 열매 맺은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이상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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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동안 키운 대추를 수확하는 기쁨의 날

30여 년 전에 동일한 지역에서 목회하시는 7 명의 목사님들이 월요일마다 모여서 기도회를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임에서 벨리 지역에서 목회하시던 O 목사님이 지난 주간에 섬기시는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신 후 강사님이 전해 주셨던 은혜 받았던 간증을 모두에게 들려 주셨습니다.

인천에서 목회하시는 장원모 목사님의 간증이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재정형편이 어려워 가난하게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가족 식구가 살아가기에 너무 협소한 공간에서 사시기에 아침마다 학교에 등교해야 하는 아이들과 화장실 문제로 어려움을 당해야 했습니다. 가까운 시일에 문제가 해결될 방법이 없는 것을 아시는 목사님은 특별 기도를 해 오셨습니다.

매일 새벽 기도회가 끝나면 교인들이 집으로 돌아간 것을 확인한 후 강단에 홀로 남아서 특별한 기도를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장 목사님이 기도한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에게도 집을 주세요! 어린 자녀들과 생활하기에 불편하지 아니한 넉넉한 공간의 집을 주시길 기도한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해 오던 어느 날 강단 아래에서 여인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무도 없는 줄 알고 기도했는데 누군가가 장목사님의 기도를 듣고 있었습니다. 목사가 집을 달라고 기도하는 내용을 다른 사람이 들은 것에 대하여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기도를 들은 사람이 누구인가를 확인했습니다.

그 사람은 장목사님이 섬기는 교회의 BMW(Big Mouth Woman)이었습니다. 수석 장로님의 부인이며 여전도회 책임을 맡고 있는 분으로 교회 안에서 큰 소리를 내는 분이셨습니다. 순간적으로 장목사님은 더 이상 그 교회에서 목회 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 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분의 능력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수일 후 토요일에 수석 장로님이 전화로 주일 예배 후 당회를 소집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생각하고서 사표를 써서 품안에 넣고서 당회에 제출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회를 시작하자마자 수석 장로님이 당회원들 앞에서 무릎을 꿇으시고서 하시는 말이 목사님 잘못 했다고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가난하게 사셔도 되는 줄 알았다면서 목사님의 사택을 구입하기 위한 특별헌금을 수석장로님이 내시는데 당시 목사님이 구인한 집값의 절반을 내어 놓으시어 나머지 반은 교회가 부담을 해서 즉시 이사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간증을 듣는데 나의 마음에 큰 감동이 되었습니다.

다른 목사님들은 그 간증을 듣고 웃고 말았는데 나는 즉시 나도 그 기도를 해야 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그래서 다음날부터 장원모 목사님의 기도를 들으신 주님 나의 기도도 들어주시길 기도했습니다. 당시 다섯 식구가 2 베드룸에서 살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부인과도 상의하지 아니하고 혼자 매일 새벽마다 집을 주시기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2 년을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지금의 집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2층짜리로 방이 4개인 집을 주셨습니다. 집으로 이사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큰 지진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화가 복이 되었습니다. 보험회사로부터 23,000불의 돈을 받았습니다. FEMA에서 수천불의 정부 지원을 받았습니다.

보험회사가 집 안과 밖 페인트 및 카펫트까지 새로 교환해 주었습니다. 그 돈으로 2년 반 이상의 집 페이먼트를 지불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기도의 은혜, 응답이 기적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때 그 기도를 하지 않았으면 아직도 아파트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25년 전 집을 구입하고 이사 했을 때 S 권사님이 작은 대추나무 한 구루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나무를 심고 수년 동안 잘 키웠더니 지금은 큰 나무로 자랐습니다. 그래서 매년 8 월 중순이면 대추를 따서 교회성도님들과 나누어 먹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도 한 해 동안 열심히 키웠던 대추나무에 올라 기쁜 마음으로 수확했습니다.

수확을 할 때마다 결실을 얻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농부의 심정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누는 기쁨을 알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년을 계획하고 기대하게 하는 것입니다. 대추나무를 선물하신 권사님의 사랑이 한 순간으로 그치고 만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매해 큰 사랑의 선물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집을 주시기 위해서 기도한 것에 대한 보너스를 지금도 받고 있는 것처럼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도 장원모 목사님의 기도를 이어 받는 은혜와 응답을 받으시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4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