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놀라게 한 코로라 19로 교회가 예배를 중단한지 4개월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예배는 중단이 되지 않고 계속되었지만 정부 지침에 따라 이전 같은 정상적인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10명 이내로 예배 참석자들의 수를 제한하므로 그 범위 안에서 소수의 교인들만 모여서 예배를 드려오고 있습니다.
매 주일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교인들을 위해선 유튜브 방송설교 촬영 팀들이 예배 영상을 녹화하여 영상으로 송출해 가정에서 예배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영상 예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에 대하여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시대에 이런 일을 경험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출석해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시는 교우님들 중에는 헌금을 정성으로 준비해서 인편으로 보내오시는 교우님들이 계십니다. 매 주일 헌금을 보내오시는 분도 계시고, 한 달에 한번 씩 헌금을 모았다가 보내오시는 분들도 있으십니다. 그런데 오늘 어느 권사님으로부터 4 개월 치의 십일조 헌금을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 중에 전화가 없는 유일하신 권사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권사님과 통화를 하려면 함께 사는 딸이 일터에서 돌아와 집에 있는 동안에 딸의 전화를 통하여 어머니의 근황을 묻고 어머니와 전화가 가능한지 여부를 물은 다음에 곁에 계실 때만 통화가 가능해 전화 심방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필자가 지난 한 달 동안 병상에 있을 동안에 누구보다도 필자를 위하여 마음 졸이시며 기도하신다는 말을 전해 듣고 권사님 댁을 방문했습니다. 방문하기 전 딸을 통하여 심방 허락을 받고 사전에 말한 것이 있습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은 잠시로 기도한 후 물 한 잔도 준비하지 말라고 했으며 악수도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심방 기도를 마치고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그 동안 하나님께 바치지 못했던 4 개월분의 십일조 헌금 봉투를 건네 주셨습니다. 그것을 받아들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것을 들고 돌아오는 길에 헌금 봉투 안에는 얼마의 돈이 들어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헌금 봉투를 열어보려고 했더니 봉합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포기를 하고 교회로 가져와 필자의 책상 옆에 두었는데 다시 생각이 났습니다. 권사님이 그 동안 모아서 바친 헌금의 액수가 얼마나 될까? 열어 보고서 다시 봉합을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불 같은 성령의 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네가 그것을 알아서 무엇하려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네가 알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네가 알 필요가 없는 주님만이 아셔야 하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음성을 듣는 순간!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네! 주님 맞습니다. 주님의 것을 내가 알 필요가 없지요!
주님! 잘못했습니다. 잠시 종이 본분을 망각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지금까지 교회를 섬겨오면서 이런 성령의 음성을 들어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정성으로 준비하여 하나님께 드려지는 헌금을 주님이 얼마나 귀히 여기시고 축복하심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기뻐 받으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받으십니다. 우리의 찬양을 받으십니다. 우리의 희생과 감사를 받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것을 받으심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타인이 아니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며, 구원자시며,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죄악에서 선택하시어 자녀 삼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감사하며 생명이 허락되는 마지막까지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병원에서 11일 만에 퇴원을 해서 2주일 집에 머무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와 많은 기도 동역자님들의 도우심으로 빠르게 건강을 회복하고 오늘부터 일상의 삶으로 돌아왔습니다. 25일 만에 자동차 운전을 하고서 교회로 향하는 길이 전과 다르지 아니한데 전에 느끼지 못하던 여러 가지 감회가 밀려왔습니다.
살아오면서 내가 사는 것이 나의 건강 때문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건강이 나의 것이며 당연한 것처럼 생각을 해 오다가 이번 병상을 통하여 건강이 나의 소유가 아니며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 동안 큰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살아온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14장 7절 이하에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주를 위한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병의 근원이 밝혀지고 나서 치료에 대한 계획이 전해 졌습니다. 담도 관과 담낭주머니(쓸개)에 돌이 있어서 그것이 움직일 때마다 상처를 내 염증을 일으켜 몸에 고열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치료의 방법으로는 위장내과 의사가 담도 관에 있는 돌을 1 차로 제거한 후 이어서 외과 의사가 담낭 제거 수술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치료 계획을 듣고 나서 제일 먼저 생각이 떠 오른 것은 “아! 이제부터 나도 쓸개 빠진 놈이 되는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 한국 간호사 분이 오셨기에 질문을 드렸습니다. “왜 담낭 제거한 사람을 쓸게 빠진 사람이라 하지 않고 놈이라고 말을 하죠?” 간호사님은 손으로 입을 가리시면서 미소를 지으며 “글쎄요?” 라고 답을 피하셨습니다. 그 때부터 “아! 나도 이제부터 쓸개 없는 사람이 되는데 그렇다면 나도 어쩔 수 없이 쓸개 빠진 놈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서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쓸개 빠진 사람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여러 사람에게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목사님! 나도 쓸개 빠진 사람입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여러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들의 말에 의하면 요즘 주변에 쓸개 빠진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쓸개 빠진 놈이라는 말을 함부로 했다간 크게 망신을 당할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의학적으로는 담낭을 제거해도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은 없다는 것입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어쩌면 암 일수도 있겠다는 두려움과 공포에서 피하게 하시고 다시 감사하며 사는 삶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감사하고 또 감사 드려야 할 터인데 부족한 종을 사랑하셔서 최선의 방법으로 치료의 길을 열어주시고 회복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새 사명의 삶을 주신 주님을 향하여 이전보다 더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을 살아 드릴 것을 약속드렸습니다.
https://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s://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20-06-27 23:46:502020-06-27 23:46:50이제부터 쓸개 빠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한지 3일째 되는 날 MRI 촬영 결과를 듣고서 두 번째로 하나님께 큰 감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결과를 듣기 전 까지는 여러 가지 생각이 끊이지 아니하고 이어지면서 어쩌면 수많은 종류의 암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암에서 자유롭기를 원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만에 하나 암으로 진단이 나와도 내가 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부정할 수도 없고 거부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주님을 향하여 감사해야 할 터인데 암이 아니고 몸에 돌이 박혀 있는 것이라는 말에 감사를 하게 되는 것은 수술로 치료가 되지만 암이면 치료 과정이 너무도 힘들고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수술 일정이 잡히면서 수요일과 목요일 두 차례에 걸쳐서 수술을 집도할 위장내과 의사와 외과 의사가 병실을 방문하시어 수술하는 과정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때 1 차 시술을 담당하는 위장 내과 의사님께 질문했습니다. 입원하기 2년 전부터 위장 내과진료소를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 곳에선 이 같은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몸에 돌을 지니고 사는 사람의 80퍼센트는 아무런 증상을 느끼지 못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 20퍼센트의 환자만이 통증을 호소하게 되어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목요일에 병원직원이 병실을 방문해서 수술 동의서류를 준비해 가지고 와사 싸인을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서류에는 1차와 2차 수술로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 3차 수술도 할 수 있다는 내용의 서류에 싸인을 해야 한다고 해서 싸인을 했지만 처음 듣는 말이라 궁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잠시 후 2차 수술 의사가 방문 하셨기에 3차 수술에 대하여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말을 하셨습니다. 담낭(쓸게) 제거하는 환자의 경우 95퍼센트는 복강경을 통하여 배에 서너 군데 작은 구멍을 뚫고 시술 기구를 삽입하여 제거를 하는데 그 중 5퍼센트의 환자는 개복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경우는 3차 수술 까지는 가지 아니할 것 같다고 말하면서 그에 대한 걱정과 염려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수술실에서 시술을 하다가 간단하게 복강경을 통하여 담당을 쉽게 제거하려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즉시 배를 열고 3차 수술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수술실에 들어가서 마취에서 깨어난 것은 22시간이 지나서였습니다. 눈을 떠보니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는데 몸이 너무 불편하고 힘이 들었습니다. 특별히 힘들게 했던 것은 입 안에 Intubation을 삽입하여 Ventilator를 이용하여 인공호흡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게 했습니다.
의식에서 깨어나고도 입에서 intubation을 제거하기 까지는 3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습니다. 그 순간마다 호흡하는 것이 매우 힘들고 고통 스러웠습니다. 마음 같아선 손으로 뽑아내고 싶었지만 이미 손이 묵인 상태라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가는데 하루 반이 지난 후 였습니다.
그 때부터 통증을 느끼지 시작했습니다. 그중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다가 목에 상처를 당한 것이 헛기침으로 이어지면서 그럴 때마다 수술 부위에 통증이 배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안 할머니 중 90평생을 마취의사로 살아오신 할머니가 방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따듯한 소금물로 2-3 분 간격으로 가글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전문 의료인 마취의사의 권유였기에 즉시 시행하여 하루 반 만에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이번 병원 입원을 경험하면서 세 번째로 하나님께 감사드린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도 나를 위하여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나의 연약한 육체를 위하여 수많은 우수한 전문 인력들을 오래전부터 완벽하게 훈련케하시고 좋은 기구와 여러 중류의 약들을 준비하시고 곳곳에 병원을 세우시어 우리가 당할 어려움에서 필요할 때마다 회복케 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죽음의 위기에서 생명을 지켜준 Hollywood Presbyterian Hospital 임직원 여러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코로라 19시대의 목회 일기
/in 목양칼럼 /by pyongkang모두를 놀라게 한 코로라 19로 교회가 예배를 중단한지 4개월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예배는 중단이 되지 않고 계속되었지만 정부 지침에 따라 이전 같은 정상적인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10명 이내로 예배 참석자들의 수를 제한하므로 그 범위 안에서 소수의 교인들만 모여서 예배를 드려오고 있습니다.
매 주일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교인들을 위해선 유튜브 방송설교 촬영 팀들이 예배 영상을 녹화하여 영상으로 송출해 가정에서 예배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영상 예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에 대하여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시대에 이런 일을 경험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출석해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시는 교우님들 중에는 헌금을 정성으로 준비해서 인편으로 보내오시는 교우님들이 계십니다. 매 주일 헌금을 보내오시는 분도 계시고, 한 달에 한번 씩 헌금을 모았다가 보내오시는 분들도 있으십니다. 그런데 오늘 어느 권사님으로부터 4 개월 치의 십일조 헌금을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 중에 전화가 없는 유일하신 권사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권사님과 통화를 하려면 함께 사는 딸이 일터에서 돌아와 집에 있는 동안에 딸의 전화를 통하여 어머니의 근황을 묻고 어머니와 전화가 가능한지 여부를 물은 다음에 곁에 계실 때만 통화가 가능해 전화 심방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필자가 지난 한 달 동안 병상에 있을 동안에 누구보다도 필자를 위하여 마음 졸이시며 기도하신다는 말을 전해 듣고 권사님 댁을 방문했습니다. 방문하기 전 딸을 통하여 심방 허락을 받고 사전에 말한 것이 있습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은 잠시로 기도한 후 물 한 잔도 준비하지 말라고 했으며 악수도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심방 기도를 마치고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그 동안 하나님께 바치지 못했던 4 개월분의 십일조 헌금 봉투를 건네 주셨습니다. 그것을 받아들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것을 들고 돌아오는 길에 헌금 봉투 안에는 얼마의 돈이 들어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헌금 봉투를 열어보려고 했더니 봉합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포기를 하고 교회로 가져와 필자의 책상 옆에 두었는데 다시 생각이 났습니다. 권사님이 그 동안 모아서 바친 헌금의 액수가 얼마나 될까? 열어 보고서 다시 봉합을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불 같은 성령의 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네가 그것을 알아서 무엇하려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네가 알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네가 알 필요가 없는 주님만이 아셔야 하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음성을 듣는 순간!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네! 주님 맞습니다. 주님의 것을 내가 알 필요가 없지요!
주님! 잘못했습니다. 잠시 종이 본분을 망각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지금까지 교회를 섬겨오면서 이런 성령의 음성을 들어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정성으로 준비하여 하나님께 드려지는 헌금을 주님이 얼마나 귀히 여기시고 축복하심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기뻐 받으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받으십니다. 우리의 찬양을 받으십니다. 우리의 희생과 감사를 받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것을 받으심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타인이 아니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며, 구원자시며,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죄악에서 선택하시어 자녀 삼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감사하며 생명이 허락되는 마지막까지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sub_read.html?uid=26606§ion=section3§ion2=
이제부터 쓸개 빠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in 목양칼럼 /by pyongkang병원에서 11일 만에 퇴원을 해서 2주일 집에 머무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와 많은 기도 동역자님들의 도우심으로 빠르게 건강을 회복하고 오늘부터 일상의 삶으로 돌아왔습니다. 25일 만에 자동차 운전을 하고서 교회로 향하는 길이 전과 다르지 아니한데 전에 느끼지 못하던 여러 가지 감회가 밀려왔습니다.
살아오면서 내가 사는 것이 나의 건강 때문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건강이 나의 것이며 당연한 것처럼 생각을 해 오다가 이번 병상을 통하여 건강이 나의 소유가 아니며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 동안 큰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살아온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14장 7절 이하에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주를 위한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병의 근원이 밝혀지고 나서 치료에 대한 계획이 전해 졌습니다. 담도 관과 담낭주머니(쓸개)에 돌이 있어서 그것이 움직일 때마다 상처를 내 염증을 일으켜 몸에 고열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치료의 방법으로는 위장내과 의사가 담도 관에 있는 돌을 1 차로 제거한 후 이어서 외과 의사가 담낭 제거 수술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치료 계획을 듣고 나서 제일 먼저 생각이 떠 오른 것은 “아! 이제부터 나도 쓸개 빠진 놈이 되는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 한국 간호사 분이 오셨기에 질문을 드렸습니다. “왜 담낭 제거한 사람을 쓸게 빠진 사람이라 하지 않고 놈이라고 말을 하죠?” 간호사님은 손으로 입을 가리시면서 미소를 지으며 “글쎄요?” 라고 답을 피하셨습니다. 그 때부터 “아! 나도 이제부터 쓸개 없는 사람이 되는데 그렇다면 나도 어쩔 수 없이 쓸개 빠진 놈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서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쓸개 빠진 사람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여러 사람에게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목사님! 나도 쓸개 빠진 사람입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여러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들의 말에 의하면 요즘 주변에 쓸개 빠진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쓸개 빠진 놈이라는 말을 함부로 했다간 크게 망신을 당할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의학적으로는 담낭을 제거해도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은 없다는 것입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어쩌면 암 일수도 있겠다는 두려움과 공포에서 피하게 하시고 다시 감사하며 사는 삶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감사하고 또 감사 드려야 할 터인데 부족한 종을 사랑하셔서 최선의 방법으로 치료의 길을 열어주시고 회복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새 사명의 삶을 주신 주님을 향하여 이전보다 더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을 살아 드릴 것을 약속드렸습니다.
2020년 6 월 24일
정오에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594
코로나19 시대의 병원입원 투병기(2)
/in 목양칼럼 /by pyongkang병원에 입원한지 3일째 되는 날 MRI 촬영 결과를 듣고서 두 번째로 하나님께 큰 감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결과를 듣기 전 까지는 여러 가지 생각이 끊이지 아니하고 이어지면서 어쩌면 수많은 종류의 암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암에서 자유롭기를 원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만에 하나 암으로 진단이 나와도 내가 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부정할 수도 없고 거부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주님을 향하여 감사해야 할 터인데 암이 아니고 몸에 돌이 박혀 있는 것이라는 말에 감사를 하게 되는 것은 수술로 치료가 되지만 암이면 치료 과정이 너무도 힘들고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수술 일정이 잡히면서 수요일과 목요일 두 차례에 걸쳐서 수술을 집도할 위장내과 의사와 외과 의사가 병실을 방문하시어 수술하는 과정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때 1 차 시술을 담당하는 위장 내과 의사님께 질문했습니다. 입원하기 2년 전부터 위장 내과진료소를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 곳에선 이 같은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몸에 돌을 지니고 사는 사람의 80퍼센트는 아무런 증상을 느끼지 못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 20퍼센트의 환자만이 통증을 호소하게 되어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목요일에 병원직원이 병실을 방문해서 수술 동의서류를 준비해 가지고 와사 싸인을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서류에는 1차와 2차 수술로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 3차 수술도 할 수 있다는 내용의 서류에 싸인을 해야 한다고 해서 싸인을 했지만 처음 듣는 말이라 궁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잠시 후 2차 수술 의사가 방문 하셨기에 3차 수술에 대하여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말을 하셨습니다. 담낭(쓸게) 제거하는 환자의 경우 95퍼센트는 복강경을 통하여 배에 서너 군데 작은 구멍을 뚫고 시술 기구를 삽입하여 제거를 하는데 그 중 5퍼센트의 환자는 개복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경우는 3차 수술 까지는 가지 아니할 것 같다고 말하면서 그에 대한 걱정과 염려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수술실에서 시술을 하다가 간단하게 복강경을 통하여 담당을 쉽게 제거하려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즉시 배를 열고 3차 수술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수술실에 들어가서 마취에서 깨어난 것은 22시간이 지나서였습니다. 눈을 떠보니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는데 몸이 너무 불편하고 힘이 들었습니다. 특별히 힘들게 했던 것은 입 안에 Intubation을 삽입하여 Ventilator를 이용하여 인공호흡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게 했습니다.
의식에서 깨어나고도 입에서 intubation을 제거하기 까지는 3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습니다. 그 순간마다 호흡하는 것이 매우 힘들고 고통 스러웠습니다. 마음 같아선 손으로 뽑아내고 싶었지만 이미 손이 묵인 상태라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가는데 하루 반이 지난 후 였습니다.
그 때부터 통증을 느끼지 시작했습니다. 그중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다가 목에 상처를 당한 것이 헛기침으로 이어지면서 그럴 때마다 수술 부위에 통증이 배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안 할머니 중 90평생을 마취의사로 살아오신 할머니가 방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따듯한 소금물로 2-3 분 간격으로 가글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전문 의료인 마취의사의 권유였기에 즉시 시행하여 하루 반 만에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이번 병원 입원을 경험하면서 세 번째로 하나님께 감사드린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도 나를 위하여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나의 연약한 육체를 위하여 수많은 우수한 전문 인력들을 오래전부터 완벽하게 훈련케하시고 좋은 기구와 여러 중류의 약들을 준비하시고 곳곳에 병원을 세우시어 우리가 당할 어려움에서 필요할 때마다 회복케 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죽음의 위기에서 생명을 지켜준 Hollywood Presbyterian Hospital 임직원 여러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2020년 6월 11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5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