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 교회 목양 칼럼입니다

목양칼럼 # 225 제46대 미 대통령 취임식을 생각하면서!

지난 해 11 월 3 일에 실시된 제 46대 미 대통령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관심 속에 치러졌습니다. 그로인하여 역대 선거중 가장 많은 사람이 투표에 참가하는 이변을 낳았습니다. 선거 과정이 치열했던 것만큼 개표 과정이나 선거 결과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로인하여 이전에 보지 못한 불미스러운 일이 미 국회의사당에서 벌어지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모두가 이성을 찾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더 이상의 선거 결과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제는 갈라진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치유가 필요한 때입니다.

누가 상처 입은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습니까? 진 자는 스스로를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승자가 패자를 이해하고 관용하며 사랑으로 품어줄 때 상대방이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일로 미국의 장래에 대해서 염려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둘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가정에서도 부부간이나 형제간, 혹은 부모와 자식 간에 다투기도 합니다. 다툼이 없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삶이 우리의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30여 년 전에 교회에서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있을 때 였습니다. 어느 여 학생이 돌발적인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도 부부 싸움을 하시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때도 아니고 토요일 오후 교회에서 성경 공부하는 시간에 갑작스런 질문에 학생들은 물론이요 필자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그 질문을 예사롭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잘못 대답을 하거나 질문한 학생에게 원하는 답변을 주지 못한다면 실망할 것이 염려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학생의 어머니는 난치병으로 생사의 위기에 처해 있었기에 부부간에 사이가 멀어져 있었나 봅니다. 자녀의 입장에서 부모님들이 사이좋게 싸우지 아니하며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그때 질문하는 여학생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내가 산 사람입니까? 죽은 사람입니까?” 질문한 학생은 분명한 목소리로 이렇게 답했습니다. 목사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 말을 듣고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죽은 사람은 가까운 사람과 싸우지 못하지만 산 사람이기 때문에 나도 싸운다고 했습니다. 학생의 부모님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나도 가정에서 싸운다고 했습니다.

싸워도 화나는 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것은 주님이 보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국가도 가정과 다르지 않습니다. 내 가정의 행복은 내가 지키지 아니하면 다른 사람이 지켜주지 못합니다. 미국을 누가 지켜야 합니까? 우리가 지키지 아니하면 나의 행복, 가정의 행복, 자손들의 행복을 보장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편에 있는 사람을 원수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나라를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상대편에 있는 분들도 나라의 미래와 장래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에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살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17절 이하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은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선거가 이번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4년 마다 다시 투표 합니다. 이번에 이겼다고 다음에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이번에 졌다고 다음에도 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넓은 마음으로 승자를 축하하고 이긴 편에서는 국민의 절반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주어진 4 년 동안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크게 충성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2021 년 1 월 15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24 팬데믹 기간에 부름 받으신 권사님을 생각하면서…

지난 12 월 30일 밤 10시 30분에 오랜 기간 동안 양로병원에서 입원해 계시던 92세의 L 권사님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소천 하셨다는 소식을 아들에게서 전화로 듣고 그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를 33년 동안 섬기셨던 아름다운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운명하시는 날 오전에 양로병원 담당자가 아들에게 전화로 오늘을 넘기시지 못하실 것 같다는 전갈을 받고 필자에게 바로 알려와 마음에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명을 달리하셨다는 소식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누구보다도 교회를 남달리 크게 사랑하셨던 권사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어머님의 운명 소식을 전하면서 손자 손녀를 두신 외아들은 임종하시는 어머니를 곁에서 지키지 못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울먹이는 소리로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홀로 고통 가운데 떠나시는 어머니를 지켜주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하시면서 장례식날 어머니를 뵈울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문제는 장의사에서 장례 절차를 의논할 때 만나서 물어보자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아들은 지난 10개월 동안 팬데믹으로 어머니를 방문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전에 전화로 예약을 하고서 1 시간을 자동차로 달려와야 어머니를 2 층 닫힌 유리창 밖으로 먼발치에서 수인사로 바라만 볼 뿐이었습니다.

다음 날 장의사에 장례절차를 의논하기 위해서 묘지 서류를 준비해 가지고 방문했습니다. 1시간 반에 걸쳐서 장례절차가 서류상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팬데믹 이전에는 유가족이 원하는 날짜에 장례식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많은 사망자가 대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3일장이나 5 일장은 꿈도 꿀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장례일정은 장지의 스케줄에 따라서 지정해 주는 날짜라야 가능합니다. 예상되는 날짜는 언제쯤 가능하겠는가고 물었더니 20일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많은 사람이 코로나 19로 명을 달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장례식 당일 유가족이 장의사에서 고인을 뵈올 수 있다는 약속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팬데믹 이전에는 장례식에 많은 조문객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상을 당해도 이웃에게 알리는 것도 부담이 되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용하게 가족장으로 장례를 하게 됩니다.

권사님의 장례를 준비하면서 마음에 다가오는 큰 감동이 있었습니다. L 권사님은 큰 복을 받으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다 효자 효녀시며 손자녀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큰 복을 받아 많은 사람에게 자랑이 되며 칭찬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큰 복을 받으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영생을 선물 받은 천국의 시민이 되신 것입니다. 한국에 계실 때는 교회를 모르고 사셨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이민 오셔서 주님을 만나신 것입니다. 인생이 세상을 사는 동안 가장 귀하고 복된 것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큰 이름을 떨치는 사람이 되어도 주님을 영접하지 아니한 인생은 성공한 것 같으나 실패한 인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6장에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내가 천국의 사람이 되느냐 못 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천국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L 권사님은 주님의 선택을 받아 이 땅에 오셔서 주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크게 충성 하시므로 하늘에 빛나는 상을 받게 하셨을 뿐 아니라 주님의 교회와 우리에게 아름다음 믿음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L 권사님을 사랑합니다.

그동안 너무 많은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제 다시 질병의 아픔이 없는 주님 안에서 영원한 위로와 평강의 복을 누리심을 믿습니다. 우리도 권사님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 다시 만날 영광의 만남을 기다리겠습니다.

2021년 1 월 2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23 목회자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는 성도!

이민 교회를 40년 동안 한 교회만을 섬겨오면서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그 동안 필자에게 큰 위로와 끊임없는 감동을 선물한 자랑스럽고 훌륭하신 믿음의 성도님들을 만나게 하신 주님의 은혜를 크게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족한 종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실력과 노력의 결과가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고 다음으로는 부족한 종을 때마다 도우시기 위하여 좋은 교인, 성도님들을 만나게 하시고 보내 주셨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고 다양한 재능이 많아도 교회는 목사 혼자서 이끌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웃 교회들에서 이러한 현상을 자주 그리고 많이 보아 왔습니다.

모두가 부러워할 정도로 탁월한 실력과 재능을 가지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시고 목회 사역에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필자의 주변에는 한국에서 부러움을 살 정도로 교회를 섬기시다가 이민 오셔서 교회를 담임하시는 목사님들도 여러분 계십니다.

그 분들이 목회자들의 모임에서 가끔 하시는 말씀 중 한국과 미국교회는 다르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한국의 교인들은 교회도 잘 섬기고 목사님도 잘 섬긴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이민 교회는 한국 교회와 같지 않다는 말이며 이민교회 성도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처럼 들려졌습니다.

한국에서의 목회 경험이 없는 저에게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제 마음에 와 닿지를 않았습니다.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말로 들렸습니다. 왜냐하면 내게는 보배보다 더 귀하고 아름다우시며 귀하고 훌륭한 성도님들이 주위에 여러분 계셨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민교회를 광야와 같다고 말을 하십니다.

정든 고국을 떠나 낮선 땅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삶이 안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마음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피곤한 삶을 사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고 하신 말씀처럼 광야 같은 삶이 나쁘지마는 않습니다. 우리를 정금 같은 신앙인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 하나님이 보내주신 정말로 귀한 성도님 가정이 있으십니다. 코로나 19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보배 같으신 믿음의 사람들이십니다. 코로나 때문에 지난 8개월 동안 예배를 드리지 못해서 힘들어 하시다가 친구의 소개로 현장 예배드리는 교회를 소개받고 출석을 하셨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도 정상적인 예배는 드리지 못하지만 주일 낮 예배는 교역자 중심으로 소수의 제한된 인원만 모여서 예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나면 재정을 담당하는 장로님이 계수된 헌금자 명단과 내역, 그리고 헌금봉투에 기록된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필자의 책상에 올리십니다.

그러면 헌금 봉투에 기재된 기도제목을 위하여 기도하고 저들의 가정과 생업 그리고 자손들을 위해서 기도를 합니다. 그럴 때마다 감동을 받는 때가 있습니다. 형편과 사정을 아는데 힘에 지나칠 정도로 정성된 헌금을 바치는 것이 느껴질 때입니다. 이는 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만이 경험하는 특별한 것입니다.

이번에 만난 L 집사님과 권사님을 귀하게 여기고 예배로 만나게 해 주신 은혜를 주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주일마다 헌금자 명단과 내역을 받을 때마다 교회를 담임하는 필자에게 큰 감동과 감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드려진 헌금이 단순한 헌금이 아니라 생명의 한 부분처럼 느껴질 정도로 힘을 다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자이기 때문에 헌금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가 힘들게 일하고 계십니다. 그런 가운데서 드리는 헌금이기에 더 귀하고 빛이 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L 집사님 부부의 믿음을 기쁘게 받으시고 크게 축복하실 것을 믿습니다. 두 분에게 보배로운 믿음을 허락 하신 주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2021년 1월 1일
이상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