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시 – 한빛 되고 큰길 되게 /석정희

평강교회 42주년 기념 축시 – 오직 예수 이름으로(석정희)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  시편 9:10

 

다메섹으로 가던 바울

빛으로 오신 부활의 주 만나듯

우리도 주님의 그 빛 받아

세상일 모두 떨쳐버리고

어둠 속에 엎드려 기도하여

눈을 뜨는 믿음 주시고

이제는 오직 십자가만을 바라는

거룩한 백성되게 이끄소서

듣지 못하던 것 듣게

보지 못하던 것 보게 하셨으니

나 받은 것 나만 알고

나 얻은 것 나만 갖게 마시고

그 믿음 겨자씨 같더라도

온 땅에 뿌려져 뿌리 내려

믿음,소망,사랑의 열매되어

모든이들 깨닫고 뉘우쳐

세상 밝히는일 감당케 북돋우소서

여호와 닛씨 깃발 아래

큰 사역 이어가는

한빛되고 큰길되게 축복하소서

 

석정희 시인

Skokie Creative Writer Association 영시 등단
‘창조문학’ 시 등단, 미주시문학 백일장에서 “장원”
대한민국문학대상 수상, 한국농촌문학 특별대상,
세계시인대회 고려문학 본상, 유관순 문학대상,
독도문화제 문학대상, 글로벌최강문학명인대상,
탐미문학 본상, 대한민국예술문학세계대상,
제18회 대한민국통일 예술제 문학대상 외
시집<문 앞에서> <강>The River 영문
< 나 그리고 너 > <엄마 되어 엄마에게>
<아버지집은 따뜻했네>< 내 사랑은>

목양칼럼 # 286 귀를 의심케 한 놀라운 소식!

지난 8월 8일은 월요일 이었습니다.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위하여 필자가 다니는 병원에 들렀다가 오랫동안 교제를 이어오고 있는 분으로부터 자신의 교회에서 최근 있었던 은혜로운 이야기를 듣고서 이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L A 한인 타운에서 병원을 운영하시던 B 내과병원 원장님 가정에 대한 것입니다.

B 원장님은 금년 초 Covid 19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회복하지 못하시고 그곳에서 명을 달리하셨습니다. 당시 Covid 19 때문에 세상을 떠나신 B 원장님의 소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전문 의료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충분한 지식과 극복할 방법을 가진 것으로 생각을 했었습니다.

환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서 일하신 원장님이 다른 병도 아니고 Covid 19으로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B 원장님의 사망 소식을 듣고 나서 5-6개월 만에 가족에 대한 소식을 듣고 놀라움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망 보험금으로 받은 500만 불을 사모님이 교회에 헌금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귀를 의심해야 했습니다.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그래서 다시 확인했습니다. 50만 불이 아니고 500만 불이라구요? 그렇다고 하셨습니다. 그 일로 온 교회가 놀람과 동시에 큰 감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서 말을 전하시는 분께 몇 가지 궁금한 사항을 물어 보았습니다.

고인의 나이는 어느 정도이며 생전에 교회 생활에 대한 것과 고인이 남기신 자녀들은 몇이나 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B 원장님은 교회서 의료사역팀의 회원으로 매 주일 예배 후 교인들을 위하여 의료사역을 해 오셨다고 했습니다. 주일 오후에 무료로 진료 해 주시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쉼을 필요로 하는 전문 의료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자기를 드릴 수 있는 것은 정말로 주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아름다운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말대로 그런 믿음의 가장이었기에 남은 가족이 주변을 놀라게 하셨습니다.

자녀는 11살 된 아들이 하나라고 하셨습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남편을 갑자기 앞세우고 어린 아들과 함께 그 긴 세월 동안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힘든 일이 많을 것입니다. 왜 내일에 대한 불안함 마음과 두려움이 없으시겠습니까? 만일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다면 그렇게 많은 돈을 바치지 못했을 겁니다.

얼마나 큰 부자이면 사랑하는 남편의 이름으로 받은 사망 보험금으로 받은 큰돈을 바칠 수 있을까를 생각할 때 마가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이 칭찬하셨던 가난한 과부에 대한 말씀이 연상되었습니다. 사모님이 부자이기 때문에 큰돈을 바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모두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절대로 드릴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놓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저는 가끔 주님이 칭찬 하신 이 과부를 생각해 봅니다. 이후 가난한 과부의 남은 생애가 어떻게 되었을까? 주님이 두 손들어 크게 축복하심으로 그녀의 삶의 전부를 책임져주시고 형통하게 하셨을 것을 믿습니다. 우리에게 아름다운 큰 믿음의 자취를 남겨주신 B 원장님 가족을 축복합니다. 특별히 어린 아드님에게 복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85 의사가 좋은 직업은 아니죠!

지난 7월 20일은 수요일이었습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오른쪽 눈에 통증이 왔습니다. 즉시 거울 앞에 서서 눈을 살피니 오른쪽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으며 눈 위쪽으로는 다래끼가 났을 때처럼 불편함이 느껴졌습니다. 이럴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했지만 특별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불편함 몸을 이끌고 교회로 향하는 길에 10여 년째 다니는 안과병원에 운전하던 차를 길가에 세우고 전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필자가 가지고 있는 보험이 HMO이기에 먼저 주치의에게 전화해서 안과병원 방문 허락을 받으라고 해서 즉시 주치의에게 전화했습니다. 그러한 절차가 그렇게 빠르게 이루어지는 줄 몰랐습니다.

주치의 사무실 직원이 필자의 인적 사항을 확인하고 나서 곧 바로 안과병원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시간이 불과 5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안과병원에 그 같은 사실을 알리고 언제 의사를 만날 수 있느냐고 했더니 두 시간 후 진료실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단 예약 손님의 진료가 끝이 난 다음에 진료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11시 반까지 오라고 했지만, 진료실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 45분이었습니다. 진료실에는 언제나처럼 많은 환자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필자가 다니는 안과병원은 LA 한인 타운에서 환자를 사랑과 정성으로 잘 진료한다고 소문난 곳이기에 언제나 환자가 넘쳐났습니다. 환자들의 대부분은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들이었습니다.

통증을 견디기 어려운 환자 중에는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힘들다고 직원에게 호소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예약 환자들의 대부분이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하셨습니다. 그러니 필자도 의사를 만나기까지는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두 시간 이상 기다리는 동안에 의사 선생님이 분주하게 오가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필자의 마음에 의사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쉬운 직업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우리의 삶에서, 없어서는 아니 되는 고마운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이 밀려드는 환자들을 같은 사랑으로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의사라고 왜 피곤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왜 쉬고 싶은 마음이 없으시겠습니까? 그러나 정한 시간에 기다리는 환자들의 아픔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힘들어 쉬고 싶어도 마음대로 쉴 수가 없으신 겁니다. 그 생각을 하면서 의료인들에게 존경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을 더하게 되었습니다. 차례가 되어 2시간 여 만에 의사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의사 선생님을 뵈올 때마다 드리는 인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한 인사는 “의사가 힘든 직업이시네요, 얼마나 힘드세요, 쉼이 필요하시겠습니다”라고 했더니 그에 대한 답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의사가 좋은 직업은 아니죠” 그 말은 일반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직업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의사만이 가지는 아픔과 고통이 있으시다는 말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환자들이 만족한 치료를 받고 고통에서 벗어나 밝은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환자들의 아픔을 도와주기 위해서 쉼 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며 실행하시는 모습에서 크게 감사하는 마음과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누가 될 수 있는가? 미국에서 의사가 되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원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필자의 둘째 사위가 의사가 되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미국의 의료제도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의사를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의사가 되는 길은 너무 길고 어렵습니다.

그 어렵고 힘든 과정을 통하여 의과대학에 입학을 허락 받았다고 다 의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 내 모든 의과대학에서 1학년과 2학년이 지나는 동안 20%의 학생이 퇴교를 당합니다. 문제는 1년 다니다 퇴교를 다닐 때보다 2년 다니다가 퇴교를 당하면 평생 다른 직업을 가지고 살면서 수십 만 불의 학자금을 갚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학생이 미국 내에서 다시는 어느 의과대학에도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과대학생들이 공부할 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죽기 살기 식으로 공부에 전념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의 건강,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 지금도 일하시는 의료인들을 크게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이상기 목사

목양칼럼 # 284 골프를 치고 있어서 전화 받기가 그래요!

얼마 전 오래 된 교인에게 금요일 오전 11시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 전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 년에 한 두 차례 전화를 해서 가끔 안부를 묻곤 합니다. 창립 교인이셨습니다. 남편은 안수 집사도 받으셨었습니다. 그러나 30여 년 전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교회를 떠나셨습니다.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이 후론 한 번도 예배로 만나지 못하지만 가끔씩 안부를 주고받습니다. 가정에 어려운 일을 만나면 필자에게 기꺼이 도움을 요청하시곤 하십니다. 그럴 때면 위해서 기도로 주님께 간절하게 도움을 호소하곤 합니다. 교회를 떠나셨지만 목사와 성도의 관계는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부분 교회를 떠나간 교인들이 이전에 다니던 교회와 목회자의 관계를 이어가길 원치 않지만 L 집사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언제나 주고받는 안부를 통하여 서로에게 기쁨과 감사를 주고받습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처럼 한번 교인은 영원한 교인이라고 생각이 되기 때문입니다.

전화를 통하여 그 간의 지내온 내용과 가족의 근황 등을 묻고 전하기 때문에 쉽게 끊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언제나 반갑고 고마운 마음으로 받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몹시 불안해하며 어쩔 줄 몰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왜 그러시죠? 무슨 일이 있으시나요? 목사님!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골프를 치고 있어서 전화 받기가 그러네요, 나중에 전화 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상황을 판단하고 감사하며 통화를 마쳐야 했습니다. 특별히 감사하게 된 것은 남편 집사님이 지난 수년간 어려운 병으로 생사의 위기에 처하셨었습니다.

그런데 두 분이 골프하시는 것을 보니 어려운 병에서 죽음의 경계를 벗어나 건강을 회복 중에 있는 것으로 판단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인 타운의 올드 타이머로 누구보다 성실하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오셨습니다. 그런 삶을 알기에 주변의 많은 분들이 병으로 어려움 당하는 것을 보면서 안쓰러워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려움을 이기고 건강을 회복했으니 고맙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나서 골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필자는 골프장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연습장에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수개월후면 목회 일선에서 은퇴하는 것을 아는 후배 목사님들이 간절하게 권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제도 늦지 않으니 골프를 배우라는 것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하는 운동 중에 골프만한 것이 없다고도 강하게 추천하셨습니다. 한 두 분이 아니고 여러 분이 동시에 그런 권면을 하시기에 거절하기가 뭐래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지만 그렇게 말하고도 5 개월이 지나도록 실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30여전 전의 일입니다. 교회 청년 회장 Y 집사님이 담임목사님의 건강을 위해서 골프를 하셔야 한다며 골프채와 구두 장갑 책 공 등 필요한 운동기구 일체를 필자에게 선물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목사님들 중 골프를 하시는 분이 지금처럼 만치 않았을 때입니다. 주위에서 부러워 하신분도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 실행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선물을 받은 그 날 저녁 청년회장 부인이 자동차로 사람을 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 일이 필자에게 주님의 계시처럼 느껴졌습니다. 필자가 골프를 치는 것을 주님이 허락지 않으시는 것이라는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어떻게 할까? 생각이 여러 갈래로 나누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후배 동역자님들의 권유대로 골프를 배우기 시작할까? 아니면 그만 둘까? 쉽게 골프 배우는 것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70이 넘은 나이가 걱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말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결정이 쉽지가 않습니다.

이상기 목사

목양칼럼 # 283 큰 사랑 선교회를 아시나요?

큰 사랑 선교회(City of Refuge Mission Center)를 아시나요? 필자는 1973년에 Los Angeles에 정착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단체가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최근에 큰 사랑 선교회의 책임자로 세우심 받은 분을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이 단체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전도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수감되어 있는 분들 가운데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버림당하여 절망과 낙심 속에 어두운 삶을 살아가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기를 마치고 출소를 한 후 자립을 위해서 안간힘을 써보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가 않습니다. 사회적인 냉대와 도움 받을 만한 이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들을 돕기 위하여 큰 사랑 선교회는 재판에 계류 중인 수감자나 가족에게 필요한 법률 상식을 알려 주며 수감생활을 마치고 복국으로 추방 받게 되는 사람들에겐 한국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법률적인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소자들에게는 꼭 필요한 선교 단체인 것입니다.

이번에 C. O. R. Mission Center의 새로운 책임자로 필자가 아는 강평태선교사님이 세우심을 받으셨습니다. 강 선교사님을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2 년 전이었습니다. 저희 교회와 건물을 공유하고 있는 교회의 교인이십니다. 강 선교사님이 소속한 교회의 담임목사는 저와 절친한 동역자십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교제를 이어온 강 선교사님에 대한 말씀을 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강 선교사님이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지나온 삶을 고백하시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저 말고도 저희 교회 교인 서너 명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그 고백을 듣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아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두운 과거를 드러내면 이해가 부족한 주변 사람들로부터 경계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고백하시는 강 선교사님의 얼굴엔 그림자가 없어 보였습니다. 험한 세상을 살아온 분이라고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험한 삶을 살게 되면 자신의 과거를 숨기려 합니다.

그리고 주변을 원망합니다. 세상을 원망합니다. 자신을 원망합니다. 지옥 같은 죽지 못해 사는 기막힌 삶을 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강 선교사님은 자신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오래전에 적대 관계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는 강 선교사님이

출감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들이 저질렀던 지난날의 큰 잘못에 대한 무서운 보복이 있을 것을 두려워하여 이곳을 떠나 타주로 도망간 사람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옥에 있을 때는 자신을 깊은 낭떠러지로 떨어트린 사람들을 반드시 복수하려 했었지만 주님을 알고 나서는 그들을 모두 용서했다고 하셨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원수를 용서하기로 한 이후부터 자신의 마음에 알 수 없는 위로와 기쁨이 솟기 시작했고 앞으로의 삶을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에 대한 깨달음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몰랐을 때는 복수에 대한 날만 기다렸지만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나서 변하여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어떻게 35년이라고 하는 긴 세월동안 옥중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요? 20대 철모르는 나이에 범한 죄 때문에 너무나 가혹하고 힘든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35년의 옥중생활에서 25년 이상은 수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독방에서 사셨습니다. 얼마나 무거운 죄를 범했기에 그랬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말이나 행동에서 악한 죄인의 모습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조용하시고 겸손하시며 부드러운 분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단 말인가? 더 놀라운 것은 그 동안 교제를 1년 이상 이어 오면서 보여준 섬김 때문이었습니다. 새로 이전한 교회 건물은 많은 일손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보고서 가만히 있지를 않으셨습니다. 부탁을 하지도 않았는데 솔선수범하시어 교회 이곳저곳을 돌아보시며 일을 만들어 봉사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매주 토요일마다 선교단체에 소속한 두 세분을 모시고 와서 교회당 주변을 청소하셨습니다. 작은 일 하나를 하실 때도 허투루 하지 않으셨습니다.

온 정성과 힘을 다하여 일하시는 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런 자세로 선교회를 섬기시며 수감자들과 형기를 마치고 나와서 새 삶을 살아야 하는 출소자들을 뜨겁게 섬기시는 모습에서 그와 함께 일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C. O. R. Mission Center에 주의 은총이 넘치시길 축복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82 오랜만에 노방 전도를 하던 날!

한 동안 잊고 지내오던 노방전도를 지난 주 했습니다. 주보에 광고를 하고서 공개적으로 노방 전도를 한 것은 부끄럽지만 우리 교회 42년 역사에 처음 이었습니다. 이 일을 준비하면서 전도 사역에 필요한 전도지를 준비했습니다. 영어와 스페니스 그리고 한국어로 된 세 가지 종류의 전도지였습니다.

지난 7 월 6일 오전 10시에 6 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나서 세 팀으로 나누어 교회 근처로 나아갔습니다. 남자가 3 분 여자가 3 분이 전도에 참여했습니다. 남자 세분 가운데는 목사님이 2 분이고 장로님이 한분이셨습니다. 세 분의 여성분 가운데는 여자 목사님과 그리고 두 분은 사모님이셨습니다.

선교의 대상 지역으로 정한 곳은 교회가 위치한 South Pasadena 지역으로 교회 주변에 전철역이 있고 Von’s Market과 Papillon Market이 있습니다. 그래서 팀을 셋으로 나누어서 두 곳의 마켓은 남자 팀이 맡기로 하고 전철 역 아래쪽은 여성 팀이 맡으려 전철역 반대쪽은 필자가 맡았습니다.

마 10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전도를 보내시면서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명하시면서 전도자가 알아야 할 것에 대해서 “너희를 핍박하는 자들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전도는 우리가 받들어 야 할 주님의 지상 명령으로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시는 것이지만 쉬운 일이 아님을 말씀하신 겁니다.

대형 마켓에서 전도를 하시던 팀들이 2 곳 모두 마켓 직원에 의해서 제지를 당하고 쫓겨나셨습니다. 그래서 목표한 곳에서 전도를 하지 못하고 인근에 위치한 도서관 뜰에서 전도를 하셔야 했습니다. 필자는 전철역에서 홀로 전철을 타고 내리는 분들에게 다가가 반가운 인사와 함께 전도지를 전했습니다.

전도지를 전할 때 거절하는 사람도 있고 정중하게 받으며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해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받은 사람 중에는 몇 발자국 가지 않아서 쓰레기통에 버리는 사람도 있었는가하면 전철을 기다리는 동안 전도지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께 기도합니다.

주님! 오늘 저분들 가운데 한 영혼이라도 성령의 인도를 받고 주님의 나라에서 만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세요! 그 때 그 나라 주님 앞에 섰을 때 전도 받고 주님을 믿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간증을 듣기 원합니다고 기도를 반복해서 했습니다. 여성 전도 팀원 중에는 노방 전도에 은사를 가진 분이 계셨습니다.

필자처럼 조용하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와 문서로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율동과 찬양 그리고 큰 소리로 잠자는 영혼들을 흔들어 깨우치는 여자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함께 찬양하며 함께 율동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만 아니고 이런 모임이 또 있느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찬양하며 율동하는 모습을 지나가던 차들이 전철역 주변에서 잠시 서는 동안 창문을 열고 율동과 찬양에 환영하며 감사해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이지만 도전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도 모임을 시작하신 목사님이 대원들에게 매주 수요일에 노방 전도를 하기로 선포하셨습니다.

동참한 모두는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전도 대열에 첫 받을 내 디딜 때에는 약간의 망설임도 있었지만 마치고 나서는 주님의 명을 행했다는 뿌듯함이 일어났습니다. 일하지 않고는 경험할 수 없는 기쁨이요 성취감이었습니다. 우리만 아니라 주님도 크게 흡족해 하시고 기뻐하셨을 것을 믿습니다.

한 달에 한번은 한인 타운의 대형 마켓에서 전도하기로 하고 나머지는 교회 주변에서 지금처럼 하기로 했습니다. 노방 전도를 시작케하신 성령님이 다음에는 더 많은 전도자들을 참여케 하실 것이며 이 같은 사역이 교회 주변만 아니라 지역 사회와 더 넓은 곳으로 빠르게 확장되길 기대합니다. 노방전도 사역을 통하여 주님이 크게 기뻐하실 것을 믿습니다.

2022년 7월 6일 오후 3시 25분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81 삶의 큰 영향을 미치는 팬데믹의 공포!

Covid-19으로 말미암은 팬데믹이라는 단어는 2 년 전만 해도 쉽게 듣지 못하던 말이었는데 지금은 매우 익숙한 말이 되고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WHO가 선포하는 최고 등급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감염 병을 말하는 것으로 매우 빠르게 넓은 지역으로 퍼져나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만 2 년이 지나면서 끝이 보이지 아니할 것 같은 긴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지난 팬데믹 기간 동안 많은 사람이 어려움 당하는 것을 보면서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큰 어려움 당하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며 이제는 팬데믹의 시대가 끝나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져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대가 지난 두 주 사이에 뒤집어지고 말았습니다. 주변의 많은 교회들이 대면예배를 드리지 아니 할 때도 필자가 섬기는 교회는 전 교인이 참석하지는 못해도 계속되는 팬데믹 기간에도 예배를 중단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일에 이어 이번주일도(6월 26일) 예배를 중단하는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이유는 교회 안에 확진 자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했는데 생각처럼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은 확진자의 숫자가 많아지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사람으로 시작된 것이 한 주간이 지나가면서 예배에 참석했던 교인들 사이에 7명으로 퍼져 나갔기 때문입니다.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일을 당하고 보니까? 남의 일로만 여기던 일이 나의 일, 우리 교회에서도 발생하게 되어 사태의 심각성을 실감하게 된 것입니다. 이 같은 소식을 전해들은 주변의 어느 분은 Covid-19이 감기 정도이기에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며 가볍게 말을 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은 확진 받은 분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는 말이 아닙니다. 결코 가볍게 여기거나 쉽게 볼 질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확진 받은 교우님 중에는 심각한 투통이나 통증으로 고통당하시는 분들도 있으며 정상적인 직장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 하시는 분들도 계시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교인은 아니지만 주변에는 팬데믹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큰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왜 우리는 원하지 아니해도 질병을 당하게 됩니까?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은 당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천국이 아닙니다. 성경은 세상을 바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다에는 바람이 있습니다. 파도가 있습니다. 파도는 한번으로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반복해서 일어납니다. 바람도 한 방향으로만 부는 것이 아닙니다. 방향을 바꾸어가며 강도를 매번 달리하며 시도 때도 없이 불어옵니다. 뿐만 아니라 바다에는 암초가 있습니다. 배가 암초를 만나면 순식간에 파선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 주님의 사랑, 주님의 보호하심, 주님의 인도하심, 바람도 막아주시고 시도 때도 없이 파도처럼 인정사정없이 달려드는 사단의 공격도 물리쳐 주십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인생은 한 순간도 주님의 품을 떠나 안전한 삶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우리를 향하여 마 28장 20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축복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함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고 주님이 명하신 말씀을 지키시므로 주의 보호와 인도하심 속에 형통의 복을 받으시길 축복합니다.

2022년 6월 23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80 생활 속에 밀려오는 코로나-19의 위기!

지난 수년간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Covid-19의 위기가 한 동안 잠잠해 지는 가 싶더니만 다시 우리의 삶 속에 빠른 속도로 전파되고 있습니다. 필자는 지난 6 월 5 일 주일 교회서 예배 후 여러분의 교인들과 함께 Covid-19 검사를 했습니다. 검사료를 받지 아니하고 무료로 해주기에 참여했습니다.

그로부터 6 일 후인 지난 11일 토요일 오후에 검사 결과를 전화 메시지로 받았습니다. 결과는 Positive로 나왔습니다. 당시 여러분이 검사를 했지만 확진 자는 나 혼자였습니다. 그 결과를 받아들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유는 증상을 전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열이 난다든지 통증도 없었습니다.

즉시 집에 있는 자가 검진기를 사용하여 검사를 했습니다. 역시 Positive로 나왔습니다. 순간 어떻게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이 주일이고, 설교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인 중 전문 의료인에게 즉시 전화를 해 나의 상태를 알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전문 의료인은 제게 주일에 교회에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즉시 교회 사무실에 연락을 취했습니다. 확진 통보를 받았기에 내일 교회 갈 수가 없으니 다른 목사님으로 예배를 대신하도록 긴급 조치를 취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주일날 이른 아침에 자가 검진기로 다시 검사했습니다.

어제 Positive로 나왔던 것이 다음날 검사에는 Negative 나왔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날인 월요일 이른 아침에 다시 검사했더니 역시 Negative로 나왔습니다. 그래도 믿을 수가 없어 담당의사에게 전화로 상담을 드렸더니 즉시 약국으로 치료 약 처방을 해 주시어 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약사님께 자가 검진기로 음성이 나왔어도 약을 먹어야 하느냐고 말씀드렸더니 그래도 먹는 것이 좋겠다고 하시어 먹고 있습니다. 일요일부터 시작해서 목요일까지 5 일 동안 집에서 자가 검진기로 검사한 결과 계속해서 Negative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 혼자로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새로운 확진 자가 3 명이나 나타난 것입니다. 지난 화요일 세분이 자가 검진기로 검사를 했는데 Positive로 나온 것입니다. 이제까지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전문 의료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이번 주일 대면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즉시 전화로 긴급당회를 한 결과 6 월 19일 주일 대면 예배를 중단하고 유튜브로 설교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이번 일을 당하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조심해도 안 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실력만으론 우리를 공격하는 병마를 싸워 이길 수 없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 26장 40-41절에서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환란의 바다이기에 늘 파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항상 주변을 살피며 바람의 방향도 알고 그 강도도 알아야 하며 언제 폭풍우가 임할지도 살펴서 피할 것은 피하고 막을 것은 막으며 준비할 것은 철저하게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은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쉬지 말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정부의 지침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필자는 Covid-19 예방 접종을 4 차까지 받았습니다. 주변에서 반대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결과로 이번 확진에서 큰 고통과 어려움 없이 쉽게 넘어갈 수 있었음을 고백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2022년 6월 16일
이상기 목사

목양칼럼 # 279 어느 장로님의 장례 예배에서 받은 은혜!

지난 5월 28일 토요일 오전에 같은 지역에서 같은 교단을 섬기시는 존경하는 목사님이 섬기시는 교회의 신실하신 장로님이 젊은 나이에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시어 명을 달리하셨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안쓰러운 마음에 친구 목사님과 함께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예배는 장의사가 아닌 교회에서 드려졌습니다.

예배 시작 30분 전에 예배 장소에 도착해서 필자가 놀란 것은 그 넓은 교회당에 조문객들이 가득하게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조문객만 많은 것이 아니라 교회당 안과 밖으로는 셀 수 없이 많은 조화가 있었습니다. 코로나 시대임에도 고인을 사랑하며, 고인에게 사랑받았던 교인들과 친지들이 참석한 것입니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죽은 다음에 나타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유명한 삶을 살았더라도 그 사람의 장례식을 보면 잘 산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만을 위해 살았다면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없습니다. 예배 중간에 고인을 추모하며 흘리는 눈물 소리를 들으며 고인이 특별한 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인이 섬기시던 교회가 많은 동역자가 흠모하고 부러워하는 이 시대의 모범적 교회로 빠르게 성장하여 지역을 대표하는 큰 교회가 되어진 것이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인과 같은 훌륭한 인품과 재능을 가진 충성스러운 종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배 중 말씀을 전하시는 담임 목사님이 장로님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주셨습니다. 사업으로 바쁘신 중에도 교회에 일이 생기면 하시던 일을 중단하시고 교회로 달려 나와 그 일을 처리하셨답니다. 어느 날에는 장로님과 심방을 해야 할 곳이 있어서 함께 했는데 심방을 받는 분이 문을 열어주지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7시간을 닫힌 문밖에서 담임 목사님과 장로님이 인내하며 끝까지 기다렸다가 결국에는 상담자를 만났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필자도 42년째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로서 아! 하는 탄성과 함께 그 교회를 담임하시는 목사님과 장로님께 머리가 숙연해지는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담임 목사님의 설교를 마치고 나서 교인들이 영상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영상에 등장하는 분들마다 눈시울을 붉히며 장로님에 대한 사랑과 충성을 감사했으며 그동안 장로님이 보여주신 믿음과 섬김의 본을 따라 자신들도 교회를 더 크게 사랑하고 지키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영상에서 필자에게 감동이 되는 어느 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로님이 그 동안 교회를 섬겨오면서 자신의 생각과 뜻대로 되지 아니할 때도 그 일로 시험을 받지 아니하시고 도리어 담임목사님이 기도로 결정한 일에 대해선 끝까지 목사님 편에서 도우셨다고 하시며 그 일이 자신들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게 했다는 것입니다.

장례예배를 마치고 나서 함께 자리한 친구 목사님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작은 연못에는 작은 고기가 있고, 큰 호수에는 큰 고기가 있는 것처럼 훌륭한 거인 같은 큰 믿음의 신실한 장로님이 계셨기에 교회가 든든히 세우질 수 있었다고 하시며 그런 장로님을 모신 교회가 부럽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장로님과 함께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 교회와 성도들 그리고 유가족 위에 주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2022년 5월 27일

평강교회
이상기 목사

목양칼럼 # 278 목회에 힘이 되어준 아름다운 이름(5)!

목회에 힘이 되어준 아름다운 이름들에 대한 칼럼을 연재하면서 3 번째 칼럼에 소개된 Mrs. Moon 집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남기고 싶습니다. 집사님이 백혈병으로 베벌리힐스 지역에 있는 씨더스싸이나이 병원에 여러 번 입원을 하셨습니다. 결국 그 병으로 명을 달리하셨습니다. 집사님이 임종하시기 10여일 전이었습니다.

병원 입원실에서 필자를 향하여 침상에 누운 채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시면서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날 좀 살려주세요! 어린 두 아들을 두고서 이대로 죽을 수는 없습니다” 집사님은 그 동안 여러 번의 병원 방문에서도 항상 미소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약한 모습을 한 번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집사님은 전문 의료인 이셨기에 자신이 더 이상 생명을 이어갈 수 없음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필자의 마음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도대체 목사는 무엇인가? 왜 성도가 그토록 간절하게 살기를 소망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단 말인가? 자신을 위하여 사시길 원하는 것이 아니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맡기신 어린 두 아들을 양육하고 보호하기 위해서 더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생명의 주인 되신 하나님이 왜 집사님의 생명을 연장하지 않으십니까? 이러한 상황에서 주님의 종인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로서 도움을 호소하는 성도를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집사님의 간절한 눈물의 호소를 듣고서 그대로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무엇인가 도움을 드려야만 했습니다. 내가 집사님에게 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했습니다. 그 때 내가 그 상황에서 정말로 집사님에게 드릴 수 있는 것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즉시 주님께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나의 생명을 2 년만 끊어서 집사님에게 4-5년의 생명을 이어주세요” 반복해서 기도드렸습니다. 그런 기도는 지금까지 42년 동안 목회하면서 다시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 때가 처음이었고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 기도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집사님은 필자 앞에서 명을 달리하셨습니다.

집사님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가? 왜 우리는 병을 만나는 가? 왜 인생은 끊임없이 따라오는 죽음과 질병에서 피할 수 없단 말인가? 과연 우리 중 누가 이 문제들로부터 놓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이후부터 생로병사문제로 어려움 당하는 것을 볼 때마다 집사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는 것이 나의 수고와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와 허락하심이라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14장 7 – 8절에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사는 것이 자기를 위함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각 사람에게 주님이 맡기신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해서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주님의 계획과 섭리로 우리가 세상에 왔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는 것이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는 것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죽음을 만나는데 죽는 것도 주님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신비로운 말씀입니다.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우리의 삶, 생명이 주님의 장중에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 위해 죽으시고 우리 위해 부활하신 주님을 위해서 땅위에 사는 동안 각인의 삶이 주님께 감사와 영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는 것만이 아니라 불원간 우리 앞에 갑자기 다가올 죽음도 저주가 아니라 하늘의 은혜와 축복임을 알고서 그 날을 후회 없이 준비하며 당당하게 맞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2022년 5월 21일
이상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