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지역에서 목회하면서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신문사의 성장과정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그동안 많은 역경을 기적같은 주님의 은혜로 극복하고 왕성한 청년기를 맞이한 크리스찬투데이의 축복과 성장에 경이로움을 느낌니다.
크리스찬투데이는 나의 목회에 있어서 큰 버팀목이며 등대였습니다. 지난 37년 간 한 교회를 섬겨오면서 때로는 지치고 힘이 없었을 때에 크리스찬투데이를 통하여 위로 받으며 새로운 힘을 얻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15년 이상 부족한 사람에게 금 같은 지면을 허락해 주시어 크리스찬투데이에 목양칼럼을 쓰면서 내 안의 다른 나를 발견하게 해 준것에 대해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때로는 부담을 느끼기도 해서 졸업시켜 달라고 몇번이나 부탁도 드렸으나 그때마다 용기를 주곤 했습니다.
근래에 크리스찬투데이에 관심을 가지며 감사하는 일이 있습니다. 종이신문에서 인터넷신문으로 바뀌어가면서 매일 새로운 기사를 빠르게 접할 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다른 어느 기독신문에서도 접할 수 없는 신속한 보도와 분석기사 그리고 미주 전 지역 교계를 이어가는 탐방 기사는 생동감이 있어 마치 독자가 현장에서 보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해서 아주 좋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TV 방송은 글로서는 전혀 맛볼 수 없는 또 다른 신선함과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암투병중인 가족이 있다보니 지난 20여년은 가정적으로 너무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목회를 허락하시지 않는 것처럼 느낀 때도 있어서 목회를 접으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낙심과 위기의 순간에도 다시 강단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장로님과 권사님들 때문이었습니다.
그 힘든 과정 중에도 특히 감사한 것은 32년 동안 사용해 오던 교회당 건물 페이먼트를 2년 전 완불한 것입니다.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20-02-03 23:35:052020-02-03 23:35:48지칠 때 위로와 새 힘 얻는 동력된 신문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설립자 되시는 K 장로님이 고령의 연세에 세상을 떠나 신 것은 지금으로부터 1 년 반년 전이었습니다. 설립 당시부터 36년 동안 함께 해온 장로님이 떠나고 난 후 오랫동안 병으로 고생을 해 오던 집 사람이 7 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K 장로님은 나의 삶의 큰 은인이시며 목회의 든든한 후원자 이셨습니다.
지금까지 한 교회를 섬기며 긴 세월 동안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도 K 장로님 때문이었습니다. K 장로님이 소천 하신 후 처음으로 꿈에서 뵈온 것은 집 사람이 세상을 떠나기 5일 전 이었습니다. 꿈에서 정장을 입으신 K 장로님이 후리웨이 교통사고로 현장에서 10년 전에 세상을 떠난 2살 아래의 남동생 집사와 함께 교회에 오신 겁니다.
반가운 마음에 웬일이시냐고 질문을 드렸습니다. 다시는 세상에서 만날 수 없는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밝게 웃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멀고 험한 길을 가야 하시기에 가시는 분을 에스코트” 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깨어나서도 그 꿈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도 생생하고 실제 상황과 같았습니다.
그 때 제 마음에 깨달음이 왔습니다. 장로님과 동생 집사가 집 사람이 천국 가는 길을 동행하기 위해서 오신 것으로 판단이 되었습니다. 2틀 후 주일 새벽 예배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선언했습니다. 이번 주간에 우리 교우 중 한 분이 소천하실 겁니다. 새벽 예배에 참석하신 많지 않은 성도님들이 그 말을 듣고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한 번도 그런 말을 강단에서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니 예배 참석하신 분들이 제게 다가와 묻는 것입니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이고 누가 돌아가신다는 말입니까? 누구일지는 확실하게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중 한 분이 이번 주간에 돌아가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꿈에 돌아가신 K장로님과 L집사님이 교회에 오셔서 제게 말씀을 하셨다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고개를 기울이면서 그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의심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일이 지나고 3일 째인 수요일 아침 이었습니다. 집 사람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 오전 9시에 도착을 했습니다.
집 사람을 담당하는 간호사님이 저를 병실 밖으로 불러내면서 말하길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집사람의 생명이 다하여 가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수 시간 후 이별을 한다는 것을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해 오고 있었습니다. 집 사람은 부르심을 받기 5 일전부터 계속되는 통증으로 2 시간마다 모르핀을 주사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주사를 맞지 않았습니다. 왜 주사를 맞지 않느냐고 했더니 통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떠나는 정오까지 모르핀 주사를 맞지 아니하고 너무도 평안하게 제 앞에서 눈을 감는 것이었습니다. 목회를 해 오면서 많은 임종을 지켜보았던 저로서는 집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큰 은혜를 주시는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미국에서 대부분의 가족들이 임종하는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임종 후 병원의 연락을 받고 급하게 가족들이 달려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집 사람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떠나가면서도 나를 살려 줘요! 나의 고통을 면하게 해 주세요! 더 살고 싶어요! 날 좀 도와주세요! 라고 애원하면서 떠나갔다면 마음이 아팠을 겁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도 아무런 고통도 없이 평안하게 숨을 거두는 것을 목격하면서 큰 구원과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주님께 감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직도 호흡이 남아 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데 담당 의사가 와서 청진기를 심장에 대고 나서 하는 말이 돌아가셨다고 해서 제 손으로 집 사람의 두 눈을 감겨 주었습니다.
집 사람을 보낸지 10개월이 되고 있습니다. 19 년 전 암 진단을 받고나서 했던 말이 생각이 납니다. “이 순간에 예수님을 믿지 아니했다면 얼마나 힘들고 당황했을까요? 주님이 내 안에 계심을 믿기에 그래도 희망이 되고 큰 위로가 됩니다” 세상을 떠나기까지 계획하시고 함께 하시는 모습을 꿈에서 까지 보여 주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20-02-03 23:31:022020-02-03 23:31:02꿈에서 만난 세상을 떠나신 K 장로님
필자에게는 Washington D.C.에 있는 Georgetown University를 졸업한 아들이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여러 대학으로부터 입학허락을 받았으나 서부에서 먼 동부를 택했을 때 필자는 반대했습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기에 방학 중 오가는 경비는 물론 학비가 비싼 사립학교이기에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년에 5-6만불의 학비를 감당할 수도 없지만 부유한 가정의 자녀들이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기에 행여나 돈을 마음대로 쓸수 없음으로 인해 학우들 사이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기죽어가며 공부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편한 곳에서 꼬리가 되는 것보다는 머리로 살아가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대학 2학년의 학점 크레딧을 받았기 때문에 캘피포니아에 있는 모든 대학은 2년만 다니면 졸업할수 있지만 다른 주에 있는 대학에서는 6개월의 학점 크레딧 밖에 받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4년 동한 전액 장학금을 받고서 원하는 대학으로 갔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1학년 전체 학생 2000명중 학생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는 소식에 놀라움을 당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첫 번 맞이하는 방학때 집에와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자신의 존재는 큰 호수에서 몇 안되는 큰 물고기 가운데 하나였는데, 대학에 가니 태평양의 작은 물고기 중 하나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놀라울 정도로 자기보다 뛰어난 학생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물고기만 아니라 괴물 같이 느껴지는 특별한 학생들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가장 크게 얻은 소득이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재학 중 여러 가지 다양한 경험을 한것중 두 번의 백악관 초청을 받았습니다. George Bush 대통령 때에는 Laur Bush 여사의 점심초대를 받고 1시간 40분동안 백악관을 방문했으며 2011년 9월에는 백악관 내 여성인권위원회의 초대로 미국무부 장관 등 여성위원들 앞에서 4년여 동안 UN 봉사단원으로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한 내용을 15분동안 브리핑하는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들의 선택이 옳았습니다.
대학교 선정을 앞두고 필자가 염려하던 모든 것이 기우에 지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대학에 대하여 이해가 부족한 필자는 어느 날 아들과의 대화에서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네가 다니는 학교가 명문이라고 하는데 어째서 해마다 발표되는 미 대학 평가순위에서 상위권에 들지 못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아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매해 미대학순위를 평가 발표하는 기준이 세가지랍니다. 그해에 지출된 학교 총 결산액과 학교 교수님들의 숫자와 그리고 재학생 수로 결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재학하교 있는 학교는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한 해에 8천명에서 1만명의 신입생들이 입학하고 졸업하는데 반하여 그 1/4에서 1/5 수준인 2천명만 입학을 하고 졸업을 하기 때문에 우수대학 평가 지준에서 자연히 밀려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식장에서 교장 선생님이 필자에게 다가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때가 교장선생님과의 만남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데이빗은 앞으로 좋은 대학에 가게 될것입니다”
좋은 중, 고등학교에 가게 될것이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먼 미래의 일을 말하시는 교장선생님을 향하여 고맙다는 말로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많은 학생 중 아들을 알아주고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장선생님의 말이 현실로 이루어질 것이라고는 당시는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 생각하니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사려깊은 교육자의 안목이 얼마나 정확했는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1년이 지난 후 지금은 Stanford 대학원에 입학허가를 받아(2013년) 학업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넉넉지 못한 목회자로선 감당할수 없는 학교지만 대학이 그러했던 것처럼 대학원도 그가 원하는 공부를 마음껏 할수 있도록 충분한 재정적 후원자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뜨거운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00pyongkanghttp://pyongkang.com/wp-content/uploads/2022/08/평강로고-3-1030x683.jpgpyongkang2020-02-01 00:10:052020-02-01 00:10:05태평양의 작은 물고기
지칠 때 위로와 새 힘 얻는 동력된 신문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같은 지역에서 목회하면서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신문사의 성장과정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그동안 많은 역경을 기적같은 주님의 은혜로 극복하고 왕성한 청년기를 맞이한 크리스찬투데이의 축복과 성장에 경이로움을 느낌니다.
크리스찬투데이는 나의 목회에 있어서 큰 버팀목이며 등대였습니다. 지난 37년 간 한 교회를 섬겨오면서 때로는 지치고 힘이 없었을 때에 크리스찬투데이를 통하여 위로 받으며 새로운 힘을 얻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15년 이상 부족한 사람에게 금 같은 지면을 허락해 주시어 크리스찬투데이에 목양칼럼을 쓰면서 내 안의 다른 나를 발견하게 해 준것에 대해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때로는 부담을 느끼기도 해서 졸업시켜 달라고 몇번이나 부탁도 드렸으나 그때마다 용기를 주곤 했습니다.
근래에 크리스찬투데이에 관심을 가지며 감사하는 일이 있습니다. 종이신문에서 인터넷신문으로 바뀌어가면서 매일 새로운 기사를 빠르게 접할 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다른 어느 기독신문에서도 접할 수 없는 신속한 보도와 분석기사 그리고 미주 전 지역 교계를 이어가는 탐방 기사는 생동감이 있어 마치 독자가 현장에서 보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해서 아주 좋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TV 방송은 글로서는 전혀 맛볼 수 없는 또 다른 신선함과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암투병중인 가족이 있다보니 지난 20여년은 가정적으로 너무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목회를 허락하시지 않는 것처럼 느낀 때도 있어서 목회를 접으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낙심과 위기의 순간에도 다시 강단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장로님과 권사님들 때문이었습니다.
그 힘든 과정 중에도 특히 감사한 것은 32년 동안 사용해 오던 교회당 건물 페이먼트를 2년 전 완불한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288
꿈에서 만난 세상을 떠나신 K 장로님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설립자 되시는 K 장로님이 고령의 연세에 세상을 떠나 신 것은 지금으로부터 1 년 반년 전이었습니다. 설립 당시부터 36년 동안 함께 해온 장로님이 떠나고 난 후 오랫동안 병으로 고생을 해 오던 집 사람이 7 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K 장로님은 나의 삶의 큰 은인이시며 목회의 든든한 후원자 이셨습니다.
지금까지 한 교회를 섬기며 긴 세월 동안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도 K 장로님 때문이었습니다. K 장로님이 소천 하신 후 처음으로 꿈에서 뵈온 것은 집 사람이 세상을 떠나기 5일 전 이었습니다. 꿈에서 정장을 입으신 K 장로님이 후리웨이 교통사고로 현장에서 10년 전에 세상을 떠난 2살 아래의 남동생 집사와 함께 교회에 오신 겁니다.
반가운 마음에 웬일이시냐고 질문을 드렸습니다. 다시는 세상에서 만날 수 없는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밝게 웃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멀고 험한 길을 가야 하시기에 가시는 분을 에스코트” 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깨어나서도 그 꿈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도 생생하고 실제 상황과 같았습니다.
그 때 제 마음에 깨달음이 왔습니다. 장로님과 동생 집사가 집 사람이 천국 가는 길을 동행하기 위해서 오신 것으로 판단이 되었습니다. 2틀 후 주일 새벽 예배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선언했습니다. 이번 주간에 우리 교우 중 한 분이 소천하실 겁니다. 새벽 예배에 참석하신 많지 않은 성도님들이 그 말을 듣고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한 번도 그런 말을 강단에서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니 예배 참석하신 분들이 제게 다가와 묻는 것입니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이고 누가 돌아가신다는 말입니까? 누구일지는 확실하게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중 한 분이 이번 주간에 돌아가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꿈에 돌아가신 K장로님과 L집사님이 교회에 오셔서 제게 말씀을 하셨다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고개를 기울이면서 그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의심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일이 지나고 3일 째인 수요일 아침 이었습니다. 집 사람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 오전 9시에 도착을 했습니다.
집 사람을 담당하는 간호사님이 저를 병실 밖으로 불러내면서 말하길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집사람의 생명이 다하여 가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수 시간 후 이별을 한다는 것을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해 오고 있었습니다. 집 사람은 부르심을 받기 5 일전부터 계속되는 통증으로 2 시간마다 모르핀을 주사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주사를 맞지 않았습니다. 왜 주사를 맞지 않느냐고 했더니 통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떠나는 정오까지 모르핀 주사를 맞지 아니하고 너무도 평안하게 제 앞에서 눈을 감는 것이었습니다. 목회를 해 오면서 많은 임종을 지켜보았던 저로서는 집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큰 은혜를 주시는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미국에서 대부분의 가족들이 임종하는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임종 후 병원의 연락을 받고 급하게 가족들이 달려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집 사람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떠나가면서도 나를 살려 줘요! 나의 고통을 면하게 해 주세요! 더 살고 싶어요! 날 좀 도와주세요! 라고 애원하면서 떠나갔다면 마음이 아팠을 겁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도 아무런 고통도 없이 평안하게 숨을 거두는 것을 목격하면서 큰 구원과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주님께 감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직도 호흡이 남아 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데 담당 의사가 와서 청진기를 심장에 대고 나서 하는 말이 돌아가셨다고 해서 제 손으로 집 사람의 두 눈을 감겨 주었습니다.
집 사람을 보낸지 10개월이 되고 있습니다. 19 년 전 암 진단을 받고나서 했던 말이 생각이 납니다. “이 순간에 예수님을 믿지 아니했다면 얼마나 힘들고 당황했을까요? 주님이 내 안에 계심을 믿기에 그래도 희망이 되고 큰 위로가 됩니다” 세상을 떠나기까지 계획하시고 함께 하시는 모습을 꿈에서 까지 보여 주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275
태평양의 작은 물고기
/카테고리: 목양칼럼 /작성자: pyongkang필자에게는 Washington D.C.에 있는 Georgetown University를 졸업한 아들이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여러 대학으로부터 입학허락을 받았으나 서부에서 먼 동부를 택했을 때 필자는 반대했습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기에 방학 중 오가는 경비는 물론 학비가 비싼 사립학교이기에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년에 5-6만불의 학비를 감당할 수도 없지만 부유한 가정의 자녀들이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기에 행여나 돈을 마음대로 쓸수 없음으로 인해 학우들 사이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기죽어가며 공부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편한 곳에서 꼬리가 되는 것보다는 머리로 살아가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대학 2학년의 학점 크레딧을 받았기 때문에 캘피포니아에 있는 모든 대학은 2년만 다니면 졸업할수 있지만 다른 주에 있는 대학에서는 6개월의 학점 크레딧 밖에 받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4년 동한 전액 장학금을 받고서 원하는 대학으로 갔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1학년 전체 학생 2000명중 학생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는 소식에 놀라움을 당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첫 번 맞이하는 방학때 집에와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자신의 존재는 큰 호수에서 몇 안되는 큰 물고기 가운데 하나였는데, 대학에 가니 태평양의 작은 물고기 중 하나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놀라울 정도로 자기보다 뛰어난 학생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물고기만 아니라 괴물 같이 느껴지는 특별한 학생들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가장 크게 얻은 소득이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재학 중 여러 가지 다양한 경험을 한것중 두 번의 백악관 초청을 받았습니다. George Bush 대통령 때에는 Laur Bush 여사의 점심초대를 받고 1시간 40분동안 백악관을 방문했으며 2011년 9월에는 백악관 내 여성인권위원회의 초대로 미국무부 장관 등 여성위원들 앞에서 4년여 동안 UN 봉사단원으로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한 내용을 15분동안 브리핑하는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들의 선택이 옳았습니다.
대학교 선정을 앞두고 필자가 염려하던 모든 것이 기우에 지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대학에 대하여 이해가 부족한 필자는 어느 날 아들과의 대화에서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네가 다니는 학교가 명문이라고 하는데 어째서 해마다 발표되는 미 대학 평가순위에서 상위권에 들지 못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아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매해 미대학순위를 평가 발표하는 기준이 세가지랍니다. 그해에 지출된 학교 총 결산액과 학교 교수님들의 숫자와 그리고 재학생 수로 결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재학하교 있는 학교는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한 해에 8천명에서 1만명의 신입생들이 입학하고 졸업하는데 반하여 그 1/4에서 1/5 수준인 2천명만 입학을 하고 졸업을 하기 때문에 우수대학 평가 지준에서 자연히 밀려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식장에서 교장 선생님이 필자에게 다가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때가 교장선생님과의 만남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데이빗은 앞으로 좋은 대학에 가게 될것입니다”
좋은 중, 고등학교에 가게 될것이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먼 미래의 일을 말하시는 교장선생님을 향하여 고맙다는 말로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많은 학생 중 아들을 알아주고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장선생님의 말이 현실로 이루어질 것이라고는 당시는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 생각하니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사려깊은 교육자의 안목이 얼마나 정확했는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1년이 지난 후 지금은 Stanford 대학원에 입학허가를 받아(2013년) 학업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넉넉지 못한 목회자로선 감당할수 없는 학교지만 대학이 그러했던 것처럼 대학원도 그가 원하는 공부를 마음껏 할수 있도록 충분한 재정적 후원자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뜨거운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