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품으로 먼저 갑니다.

같은 지역에서 사역하던 동역자의 사모님의 입관예배에 참석했다가 순서지를 받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장례식을 참석했지만, 그 같은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식 순서지 뒷면에는 암으로 70세에 돌아가신 사모님이 짙은 빨간 색의 옷을 입으시고 두 손으로는 흰 꽃(부활을 상징하는)을 아름답게 피운 난 화분을 바쳐들고서 환한 미소를 크게 짓고 계셨다. 장례식장에 참석한 우리를 향하여 내가 죽은 것이 아니고 여기에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슬퍼하지 마세요! 라고 당부의 말씀을 하고 계신듯 했다. 늘 경험하는 것이지만 장례식장을 방문할 때마다 마음의 무거움과 답답함 그리고 안쓰러움을 당하는 것은 그 어떤 죽음도 이유 없는 죽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먼저가신 사모님의 이런 모습을 사진으로 보면서 장례식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어둡고 침통한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일반적으로 영정사진으로 순서지에 사용되는 것은 그리 크지 않은 규모로 검은 색의 사진을 사용하는데 반하여 사모님의 경우는 순서지 뒷면에 지면의 1/3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연출은 우연한 것이 아니고 고인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 미리 준비하여 된 것임을 느끼게 하는 것은 고인의 지나온 삶을 20년 가까이 곁에서 지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떠나시면서 남은 우리를 향하여 베푸신 세심한 손길을 느끼며 죽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죽음은 무엇인가! 우리 가운데 죽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은 다 죽어도 나는 죽지 않을 것처럼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닌가?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가? 삶과 죽음은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삶이 곧 죽음이고 죽음이 곧 삶인 것이다.

삶의 연장이 죽음이며 죽음은 더 나은 삶, 영원한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올 때에 아무것도 준비하고 오지 아니하였어도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필요한 모든 것을 창조주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예비하신 것처럼 삶 저편 주님이 계신 우리가 장차 가야할 본향도 영원토록 부족함이 없게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죽음은 저주가 아닌 것이다. 더 나은 곳, 우리 모두가 그토록 사모하는 영원한 곳으로 들어가는 축복의 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죽음이 다 그러한 것은 아니다.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사람은 아무리 이 땅에서 성공해도 그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에서 필자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사진 아래에 장례식장을 찾아준 조객들을 향하여 남기신 고인의 인사의 말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000 사모입니다. 저의 짧지 않은 삶을 돌아보면 때론 후회스럽고 때론 슬프고 때론 고통스러웠지만 그때마다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셔서 저의 무릎을 일으키시고 제 삶속에서 주님의 선을 이루셨음을 깨닫습니다.

그렇기에 이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기쁨을 누리다가 이제 먼저 주님 품으로 갑니다. 오늘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자매님들과 이 세상에서 작별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요, 조금은 슬퍼해 주시면 좋겠어요!

하지만 모두 저를 위해 또한 기뻐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신랑 되신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무한한 영광 속에서 즐거운 영원의 삶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의의 면류관을 받는 축하의 시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경주는 아직 남아있습니다. 그 경주가 다 끝났을 때 그 때 예수님과 같이 축하하러 마중 나가겠습니다. 그때까지 충성된 삶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럼 다시 만날 때 까지….”

왜 살아야 하고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시고 떠나가시는 사모님을 뒤로하고 다시 만날 소망으로 장례식장을 떠나는 모두의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17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