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헌금

1970년대 중반 LA 한인타운에서 성업중인 북경식당을 경영하는 K씨 성의 여자분이 계셨다. 서울에서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다가 1960년대 후반, 남미농업이민단 모집에 지원해 두 아들과 함께 배로 아르헨티나에 도착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꿈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미국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평소 영화를 좋아했던 K여사는 누구든지 미국 땅에 들어가면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화려한 삶을 사는 줄로 믿었던 것이다.

남미 농업이민단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서 “남미” 라는 끝에 “미”자가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미국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미국인줄 알고 도착한 곳이 미국이 아니었다. 외국생활의 경험이 없는 K여사와 어린 두 아들이 살아가기에 너무 힘이 드는 것이었다.

이주 정착금으로 가져온 돈은 오래가지 않아 동이 나고 말았다. 생계를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무엇이든지 살기위해서 해야만 했던 것이다. 언어도 통하지 아니하고 자본도 없었던 것이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거리에서 좌판을 벌이고 과일을 파는 행상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K여사는 미국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갖은 방법을 연구하고 노력하다가 마침내 미국행 비자를 얻게 된 것이다.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Los Angeles 공항에 도착했다.

미국에 가면 모든 것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와보니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연하였던 것이다. 공항에서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때까지 걷다가 걸음을 멈춘 곳이 모텔이었다.

어린 두 아들은 피곤에 지쳐 곧바로 깊은 잠에 들었지만 어머니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남은 것은 죽음뿐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모텔비를 주고 남은 돈을 세어보니 84불이 남았다. 이 돈으로 2주일 먹고 죽을 것이라면 차라리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좋은 일이나 한번 하고 죽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 밤에 밖으로 나가 교회당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돈을 교회당 편지함 속에 집어넣고 돌아왔다. 내일 아침부터 세 식구가 굶어야 하고 결국에는 함께 죽어야 한다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큰 설움이 통곡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잠들었던 두 아들이 어머니의 울음소리에 깨어나 사연을 듣게 되었다.

더 이상 너희들을 먹여 살릴 자신이 없어 죽기를 결심하고 남은 마지막 84불을 하나님께 바치고 돌아왔다고 말하자 두 아들이 엄마를 부둥켜 앉고 울음으로 밤을 새웠다. 다음날 아침 어린 줄만 알았던 큰 아들이 밖으로 나갔다 돌아오더니 주유소에서 기름 넣어주는 일을 얻은 것이었다.

얼마 후 작은 아들도 같은 일을 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모은 돈으로 식당을 하게 되었다. 이상한 것은 시작한 날부터 손님이 몰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16 그릇을 팔면 한 그릇이 재료비고 나머지는 남는 것이라고 하였다.

K여사는 한국에서 식모를 둘이나 두고 살아 부엌일을 잘하지 못하였다고 했다. 아무래 생각해도 자기가 만든 음식을 맛있어 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어느 날 어떻게 큰돈을 벌수 있었는가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죽기를 각오하고 바친 것을 하나님이 받으시고 복을 주셨다고 고백했다. 후에 그 교회당을 찾으려고 몇 번 시도하다가 찾지 못했다고 하셨다.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17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