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이 다르지 않습니까?

정성으로 대접한 음식을 받지 못함이 모두에게 그렇게 큰 상처로 남을 줄 몰랐다. 당시만 해도 목회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였기에 그런 우를 범하게 된 것이다.

20 여 년 전 어느 여름에 있었던 일로 오랜 시간이 흘러갔지만 아직도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다. 유학생으로 학교와 직장을 오가며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L 청년을 지켜보던 어느 분이 자신의 조카딸을 배필로 소개하여 두 사람이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이다.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 신혼부부는 필자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목사님을 모시고 축복 기도로 결혼 생활을 시작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랑신부와 필자는 이런 약속을 했다. 약속이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필자가 선언을 하고 다짐 받은 것이다. 심방 시간은 식사 시간을 피해서 토요일 오후 2 시 반으로 정했다. 그리고 아무런 준비를 하지 말것을 지시했다. 첫 심방의 조건으로 내건 것은 차 한 잔의 대접만 받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한 것은 신랑과 신부를 잘 아는 필자로서는 신혼살이를 시작하는 가정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부는 좋은 가문에서 곱게 자라 막 학업을 끝내고 살림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심방을 할 때마다 어머니 같은 전도사님과 함께 했다. 심방하는 날은 전도사님의 생신이었다. 당시 교회가 전도사님에게 사례를 하지 않았기에 생일을 맞으신 전도사님을 위해서 점심이라도 대접하고 싶어 좋은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불리고 지척의 거리에 있는 신혼 가정에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각종 산해진미의 아름다운 음식 냄새가 진동하는 것이 아닌가? 문제는 장모에게 있었던 것이다. 사위가 마음에 드니까! 심방하시는 목사님을 최고의 정성으로 대접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이틀 전부터 장모와 처제가 음식을 준비했고 간밤에는 세 모녀가 밤을 새우며 잔치 음식을 차린 것이다. 좁은 방안에 두 개의 큰 상을 펼치고 가득하게 음식을 차린 것이다. 이럴 때는 위가 하나 더 있었으면 좋으련만! 상을 마주하고 서로를 바라보는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수고한 손길을 칭찬하면서 감사의 뜻을 전했지만 이미 식사를 하였기에 그 많은 음식을 조금도 입에 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미안한 마음은 필자만 가진 것이 아니었다. 약속을 두 번 세 번 했던 신랑과 신부도 마찬가지였다. “약속이 다르지 않습니까”라는 말의 의미를 아는 모두는 유구무언이었다.

이럴 것이면 미리 말을 해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면서 차 한 잔으로 심방을 마친 것이다. 그런데 그 시간 이후 교회에 출석해야 할 신혼부부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정성으로 대접한 음식을 받지 못함이 모두에게 그렇게 큰 상처로 남을 줄 몰랐다. 당시만 해도 목회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였기에 그런 우를 범하게 된 것이다. 약속을 했지만 처음 모시는 목사님을 정성으로 대접하고 싶어 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후 다시는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더욱 심방에 세심한 주의를 가지게 된 것이다.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187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