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받은 마지막 선물

인사를 해도 눈을 주지 않고 악수도 거절하는 것입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부인은 생사의 귀로에 있는데 남편인 목사가 쌍꺼풀 수술을 한 것으로 비쳐졌기 때문입니다

필자의 아내는 말기 암 환자로 12년째 투병 중에 있습니다. 유방암 2 기 진단을 받고 수술 받은 것은 지금으로 부터 12년 6개월 전이었습니다. 수술을 하고 4년 반 만에 말기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담당의사는 통계 수치를 인용하여 2년 이내에 명을 달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방암이 골수암으로 발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피를 말리는 투병 생활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키모떼라피를 5개월 째 받아오고 있으며 방사선 치료는 인체 허용량이 다하여 더 이상 치료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아내에게는 어쩌면 마지막 방문일지도 모른 다는 생각에 집 사람과 함께 3년 전에 고국을 방문했습니다. 머무는 십여일 동안에 필자의 형수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고인의 시신을 화장터에서 처리할 때였습니다. 화장에 소요되는 시간은 한 시간 반 정도였습니다. 그 동안 가족들은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여자들이 모인 곳에 서울의 성형외과병원에서 상담원으로 일하는 이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눈 수술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나 봅니다.

필자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눈꺼풀이 아래로 내려와 그렇지 않아도 작은 눈이 더 작게 보이고 있었습니다. 저런 상태로 그냥두면 계속해서 눈꺼풀이 아래로 내려와 지금보다 더 눈이 작아 보인다는 말을 들은 집 사람은 곧 바로 내게로 와서는 이번 기회에 눈 수술을 하고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전혀 생각지 못한 말을 듣고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집 사람은 계속해서 간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 밤 늦은 시간까지 그 문제로 아내와 씨름을 해야 했습니다.

완강하게 거절하는 필자에게 아내는 마지막 카드를 꺼낸 것입니다. “여보! 나는 내가 떠나고 난 다음 당신이 이런 모습으로 추하게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 너무 싫어요! 그러니 더 이상 거절하지 마시고 내가 당신에게 드리는 마지막 선물로 알고 받아 달라”고 조르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선물이라는 말에 더 이상 물러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와야 할 시간이 며칠 남지 않았을 때입니다. 다른 병원에 알아볼 시간도 필요도 없었습니다. 다음 날 이른 시간에 집 사람과 병원을 방문해서 그곳에서 곧 바로 수술을 하고 두 눈에 난 상처 위로 테이프를 부치고 미국으로 돌아와 주일 날 교회 강단에 선 것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났는데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인사를 해도 눈을 주지 않고 악수도 거절하는 것입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부인은 생사의 귀로에 있는데 남편인 목사가 쌍꺼풀 수술을 한 것으로 비쳐졌기 때문입니다. 실은 쌍꺼풀 수술이 아니었습니다. 위 눈썹을 끌어 올리는 수술이었습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목사님이 그럴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주일 밤 목사인 나의 처사에 대하여 강하게 충격을 받은 몇 교우들이 서로 연락하여 한 장소에 모여서 저를 규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무슨 말로 어떻게 설명을 할 수가 있습니까?

그로부터 한 주간 동안 여러 이상한 소리가 귀에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서 다음 주일이 되었습니다. 예배에 참석해야 할 교우님들이 보이지 않는 겁니다. 그렇게 교회를 사랑하시고 오랫동안 충성하셨던 분들이셨습니다. 그 때의 허탈함은 무엇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 귀하게 여기셨던 직분자중 한 분에게는 필자가 왜 수술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간의 내용을 설명했지만 이미 굳어진 마음은 그 어떤 말로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아내에게 들은 말입니다. “당신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지금까지 교회를 섬겨오면서 처음으로 강하게 질타 하시던 교우님의 집을 찾아가 자신의 잘못을 구하는 용서를 빌었지만 끝까지 용서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 때의 일로 교회를 떠나신 직분자들을 생각할 때마다 아내에게 받은 마지막 선물의 값을 지불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