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유상민 목사님을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필자도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큰 사랑을 나눠보지 못했기에 너무 큰 감동과 충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필자가 이민 교회를 섬겨오면서 가장 의지가 되고 많은 대화의 시간을 나눴던 분 가운데 지금은 고인이 되신 유상민 목사님(늘사랑한인교회를 섬기셨던)이 계셨습니다. 세상을 떠나신 지도 다음 달이면 3주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당시 필자는 한인 타운에서 떨어진 외곽에, 유 목사님은 한인 타운에 살고 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 목사님 댁은 필자를 비롯한 수명의 동역자들에게 마치 고향마을 사랑방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언제나 목사님 댁의 문은 열려 있었고 방문할 때마다 따뜻한 사랑의 대접을 받으며편안하게 쉬어가는 곳이었습니다. 그렇게 남을 섬기길 좋아하셨습니다. 함께 식당에 가면 언제나 식사비를 담당해 주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대접할 기회를 주지 않으시는 겁니다. 필자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유 목사님과 같은 분을 만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만나지 못할 것으로 생각이 되는 것은 정말로 주님의 본을 받아 이웃을 섬기길 좋아하시며 행복해 하시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유 목사님은 유학생 비자로 미국에 오셔서 오래 동안 서류 미비자로 사시며 목회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0여년 동안 고국 방문도 못하셨습니다. 목회 초창기는 힘든 노동을 하시면서 어렵게 교회를 섬기셔야 했습니다. 영주권이 없어 당하시는 어려움에 얼마나 한이 맺히셨으면 어느 날 필자에게 푸념과도 같은 말을 하셨습니다. “이 목사님! 내가 영주권을 받으면 목사님을 유럽 여행을 시켜드리겠습니다”그 말이 실현 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또 영주권을 손에 쥐신다 하시더라도 유럽 여행을 하는 것은 작은 경비가 아니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마음에 담아 두지 않은 것입니다.
그로부터 15-16 년 후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꿈에도 그리던 영주권을 받게 되셨습니다. 영주권 인터뷰를 하러 가시기 수일 전 유 목사님은 기억에서 잊혀진 유럽 여행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이 목사님! 이제 약속을 지켜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영주권을 받으면 이 목사님 부부와 우리 부부가 함께 유럽 여행을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당신은 지난 20여 년 동안 해외여행을 해보지 못했으니 필자가 원하는 날짜와 지역을 선택하여 여행사에 예약을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유 목사님의 이 같은 부탁을 서너 차례 받았지만 곧 바로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말씀을 하시기에 이번에는 필자가 정색을 하고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유 목사님! 가까운 여행도 아니고 유럽 여행을 10여일 이상, 더구나 4명이 여행하려면 적어도 1만 달러 정도 돈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그 돈을 감당하시려고 하십니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조용하게 말씀을 드리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래 전의 빛 바랜 약속을 말씀하시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드립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유 목사님이 말씀을 하십니다. 딸에게 여행비 1만 달러의 돈을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약속을 칼 같이 지키시는 목사님이셨습니다. 어떠한 손해와 아픔이 있더라도 반드시 지키시는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런 유 목사님이 내 곁에 계셨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행복이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필자도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큰 사랑을 나눠보지 못했기에 너무 큰 감동과 충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함께 귀한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원하시던 영주권을 받으시고 이제는 마음껏 주님을 위해서 크게 사역하시겠다고 하셨는데 얼마나 자비량 이민 목회가 힘이 드셨으면 몸이 그토록 망가지셨는지 60을 갓 넘기신 나이에 지병으로 그토록 사랑하시던 교회와 가족을 두고 세상을 떠나신 것입니다.
동역자들에게 크게 존경 받으시며 사랑의 본을 보여주신 유 목사님이 주님께 가신지 3 주년이 다가오는 지금도 우리 곁에 살아 계신 것처럼 따뜻한 온정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197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