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의사의 고백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당신에게 전해 달라는 것이 있습니다”
1997년 8 월에 2 주간의 일정으로 네 번째 아마존 선교여행을 했을 때였습니다. 양승만, 양혜란 선교사님의 사역을 돕기 위하여 전문 의료인들을 모시고 방문한 것입니다.
우리 일행이 방문한 곳은 아마존의 하류에 속하는 브라질, 페루, 콜롬비아 국경이 만나는 지점이었습니다. 아마존에는 길이 없습니다. 여기에서 길이 없다는 말은 자동차나 기차가 다닐 수 있는 운송 수단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마존의 길은 오직 물 위로 떠다니는 배 뿐인 것입니다. 강 본류는 물살이 세고 깊어 큰 배가 다니지만 인디오들이 사는 마을로 연결 되는 작은 강은 수심이 낮아 상업용 배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고작 10여 명 미만이 탈 수 있는 작은 나무배에 모터 엔진을 달고서 이 마을 저 마을을 방문 하는 것입니다.
아마존의 인디오 마을들은 우리가 사는 도시처럼 가까운 거리에 붙어 있지 않습니다. 2-3 일을 달려야 만나는 마을도 있으며 먼 곳은 배로 한 두 주일을 가야 만날 수 있는 마을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존의 인디오들은 지금도 자기가 사는 마을에서 밖으로 나오기를 주저하며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아마존의 하루는 우리가 사는 24시간의 하루가 아니라 5- 60시간의 하루처럼 길고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 곳에는 문화 시설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소리 외에는 들을 것이 없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강과 푸른 나무 숲 그리고 높고 맑은 하늘 외에는 달리 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직장에 출근할 필요도 없고 학교에 갈 일도 없으며 전화를 걸 일도 없으며 신문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까운 사람들과의 대화의 시간이 저절로 길어지는 것입니다.
낮에는 마을을 방문해서 병든 자를 치료해 주는데 놀라운 것은 저들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의 예방 주사도 맞아 보지 못했고 단 한 개의 비타민도 먹어본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인디오들의 대부분이 외지인들 만나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인디오들의 평균 수명이 30 여살 밖에 되지 않습니다. 선교 여행에 참여하신 전문 의료인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으셨던 여자 의사분이 계셨습니다. 남가주에서 40여년 가까이 의사로 활동을 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어느 날 필자에게 평생 마음에 담아둔 고백을 하겠다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하신 것입니다.
의과대학에 다니던 때 다른 학교 의과대학에 다니던 분을 만나 뜨거운 사랑을 하다가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꿀 같은 삶이 이어져 딸과 아들을 얻었습니다. 마냥 행복할 줄만 알았던 부부사이가 언제부터 멀어지기 시작하더니 타인처럼 느껴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남편과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젊은 간호사와 가까운 사이가 된 것입니다.
남편은 주위의 시선을 견디다 못해 미국 유학을 결심하게 됩니다. 미국으로 출발하는 전 날 밤 부인은 남편이 잠든 시간에 남편의 서류 가방을 열어봅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기어진 누런 색 두툼한 서류 봉투를 꺼냅니다. 그 봉투 안에는 남편이 일할 병원에서 함께 취업 신청을 하는 간호사의 서류가 들어 있었습니다.
남편이 한국을 떠나고 이틀 후 간호사에게 전화를 합니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당신에게 전해 달라는 것이 있습니다” 약속한 장소에서 아무 일도 모르고 아무 일도 없었듯이 만나서 서류봉투만 전해 주고 곧 바로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두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이 있는 미국에 들어왔습니다. 부부로 미국에서 40여년을 살아오면서 부인도 남편에게 그 때의 일을 묻지 않았고 남편도 부인에게 그 때의 일을 묻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일 아침이었습니다. 남편이 부인을 향하여“여보! 내가 당신에게 고백해야 할 것이 있어요, 오늘 교회에 가면 장로로 임직을 받게 되는데 당신에게 용서받지 않고는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 정말로 당신에게 잘못했어요! 진작 용서를 빌지 못해서 미안해요 나를 용서해 줘요”
진심어린 남편의 고백을 듣는 순간 평생 부부로 살아오면서 가슴에 담고 지내온 무거운 짐의 절반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또 10여년의 세월이 지나 가고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갔지만 아직도 마음에 남은 절반의 앙금은 그래도 지워지지 않는 다는 것이었습니다.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