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 수학선생님을 생각하며!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1970년대 초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숫자는 3-4천명으로 집계가 되었습니다. 지금처럼 많은 한인이 없었을 때입니다. 길을 가다가 한국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 서로 통성명을 하던 때였습니다.그 당시 한인타운에서 유일하게 하숙집을 하고 있는 곳에 10여명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식사시간이면 자주 듣는 말이 있었습니다. 강원도에서 수학선생을 하시다가 미국에 오신 Ko 선생님에 대한 말이었습니다.그 분은 하숙비를 절약하기 위하여 친구와 함께 생활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한인들은 지금처럼 이민 비자를 가지고 오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때는 미국에 가는 사람에게 한국 정부가 200불 이상을 가지고 가지 못하게 할 때였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이곳에 도착해서도 변변한 직장을 쉽게 가질 수 없었습니다.그런데 Ko 선생님은 달랐습니다. 미국에 도착하자 마자 한국에서의 직업을 생각지 않으신 것입니다.무슨 일이든 닥치는대로 하셨습니다.

당시에 우리 한인이 할 수 있는 직업이 많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남자는 밤마다 빌딩 청소나 페인트를 하고 낮에는 주유소에서 일했습니다.모두가 청운의 푸른 꿈을 품고 미국에 유학차 오신분도 계셨고 사업을 위해서 오신 분도 있으셨지만 모두가 만만치 않았습니다.모두가 특별하시고 훌륭하신 분들이지만 미국에서의 정착은 쉽지가 않았습니다.그런데 Ko 선생님은 달랐습니다.그 분은 하루에 세 곳에서 일하셨습니다.그렇게 2년 동안 열심히 일한 대가로 2만불의 돈을 모았습니다.당시 그 정도의 돈은 큰 돈이었습니다.지금 한인타운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올림픽 가에 위치한 집 한 채의 값이 15,000 – 20,000불 할 때였습니다.2-3천불이면 집을 한 채 다운페이 하고 살 수 있었습니다.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노동을 해서 그 돈을 모은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이룬 것입니다.그때까지만 해도 필자는 Ko선생님을 말로만 들었지 보지는 못했습니다.그 분의 친구가 하숙집에 머물고 있어 어느날 인사차 들렀습니다.

Ko 선생님은 그 동안 모은 돈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롱비치에 위치한 리커스토어를 계약했습니다. 가게를 시작하면 몇 년은 그 일에 매말려야 하므로 이번에 일주일 동안 시간을 내었습니다. 그분이 택한 휴가 장소는 라스베가스였습니다.

한국에서부터 미국에 가면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라고 했습니다.우리 모두의 부러움을 뒤로한 채 여행을 떠났습니다.그런데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분의 소식을 들을 수 없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Ko 선생님은 라스베가스에서 머무는 며칠 동안 수천불의 돈을 땄습니다.

그것이 화가 된 것입니다.하지만 일주일 머무는 동안 가지고 온 돈 마저 다 잃고 만 것입니다 본전 생각이 났습니다.어떻게 번 돈인데! 먹을 것도 절약하고 밤잠도 자지 아니하면서 힘들여 모은 돈을 순식간에 잃어버리고 화가 난 것입니다.

이후 Ko 선생님을 어디에서 보았다는 분도 없었고 어디로 가셨는지 아는 분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당당하시고 그렇게 멋있어 보이셨던 Ko 선생님이 왜 우리에게서 멀어져 가야만 하셨을까?

그 분을 생각할 때마다 약1:22절을 생각하게 됩니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Ko 선생님이 누구에게 속았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속은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에게 속은 것입니다. 스스로 자기 꾀에 속은 것입니다.주님을 떠난 인생의 결국은 다 이런 것입니다.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