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 수녀님과의 만남!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는 우리의 구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는 기도뿐인 것입니다
지난 달 어느 오후에 집 사람이 20여 일간 입원해 있는 병원 한 편에 위치한 간이 커피숍에서 줄을 서 있었을 때 필자의 눈에 띄는 분이 계셨습니다. 커피를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피곤한 몸을 가지고 계산대 한 편에 손을 대고 쉬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돌아서는 발걸음이 편치 않아서 커피를 사고 남은 거스름 돈을 받지 아니하고 그 돈으로 노 수녀님에게 커피 한잔을 드리라고 부탁하고 돌아서는 필자를 향하여 수녀님이 뜻밖의 말을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이시지요?”
나의 무엇이 노 수녀님의 눈에 보통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으로 비쳐졌을까? 한 번의 만남도 대화도 없었을 뿐아니라 서로의 신상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먼발치에서 잠시 눈을 마주쳤을 뿐인데…. 수녀님은 계속 말을 이어가셨습니다. 내 평생에 목사님에게 커피를 대접받기는 처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대한 대답으로 저도 수녀님에게 커피를 대접하기는 생애 처음이라고 화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수녀님은 “누가 어느 병동 몇 호에 입원에 있습니까? 라고 물었다. 노 수녀님은 그 병원 환자들을 담당하시는 수녀님이셨습니다.
다음 날 입원실을 방문했을 때 집 사람에게 수녀님이 다녀가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집사람이 놀란 표정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보! 수녀님이 기도해 주셨는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하셨어요” 집 사람이 놀라워 하는 것은 천주교인들이 기도할 때 마리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으로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필자도 있는 시간에 노 수녀님이 다시 입원실을 방문하셨습니다. 그 때 우리 내외는 수녀님의 기도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신 것을 특별히 감사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중하게 질문하길 평소 기도하실 때에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시는지요? 필자가 묻는 질문의 의도를 아시는 노 수녀님은 이렇게 대답 하셨습니다. 집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한 것은 집 사람이 기독교인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불교인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는 나무아무타불로 기도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기도 받는 사람을 편하게 해 주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편협한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크고 넓어서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제한되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세상 어느 종교 모든 종교는 다 하나라고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의 말처럼 들렸습니다. 수녀님과의 짧은 만남을 통하여 천주교와 개신교가 결코 하나 될 수 없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14 : 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날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지만 그 어떤 종교로도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녀 된 보증으로 기도의 특권을 허락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아무렇게나 기도해도 된다면 이런 기도를 우리에게 가르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응답 받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는 우리의 구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는 기도뿐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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