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Most 씨의 특별한 아내 사랑!

필자가 사는 이웃에 부인은 한국인이고 남편은 미국인인 부부가 살았습니다. 자녀는 의사 아들 하나를 두고 있습니다. 이 가정과 20여 년째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두 분이 부부의 인연을 맺은 것은 남편 Most씨가 미 8군 헌병 장교로 서울에서 근무할 때 만나 가정을 이룬 것입니다.

부인의 종교는 불교였고 남편은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웃에 살면서도 가까운 대화는 나누지 못했습니다. 그 분의 집 앞을 지나갈 때마다 수인사를 나누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으로 10여 년 전에 한국인 부인이 유방암으로 투병하면서 조금씩 가까워 졌습니다.

처음에는 목사인 필자를 의도적으로 멀리하려 했지만 병세가 깊어 가면서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기도하자는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기독교를 적대시 했었는데 기도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환자만 아니라 남편도 부인의 병세가 회복이 어려운 상황에 빠지자 정식으로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당신이 믿는 신에게 미안하지만 집 사람의 회복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좋으니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갔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두서너 달 전에는 자신의 생명이 다한 것을 알고서 소중하게 여기던 물건을 정리하여 가까운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 년 전 어느 해 봄이었습니다. 토요일 낮에 남편에게서 급한 전갈이 왔습니다. 집에서 부인이 방금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연락을 받고 달려가 보니 아들이 운명한 어머니의 품에 기대어 말없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임종을 하기 수일 전부터 삶과 죽음의 문턱을넘나들다가 동부에서 살고 있는 아들이 도착하기까지 힘들게 기다렸다가 아들의 품에서 두 서너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남편에게 장례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장지는 어디입니까? 남편은 장례식을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장례식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보다 더 기막힌 것은 상을 당한 가정에 조문객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남편의 친구나 형제, 아들의 친구나 이웃도 없었습니다. 물론 영정사진도 없었으며 한 사람도 상을 당한 가정을 위로하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고작 이웃에 살고 있는 다른 한국인 한 가정만이 다녀갈 정도였습니다. 길을 건너 마주하고 사는 외국인이 상을 당한 집을 나서는 필자에게 다가와 Mrs. Most가 세상을 떠났느냐고 묻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되었습니다. 평소 이웃과 너무 교제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슬픔에 그동안 무관심했던 것처럼 느껴 쪘습니다. 운명한지 서너 시간 만에 화장터로 향하는 고인은 수의도 없이 임종 시 입고 있던 그 상태로 영구차에 실려 가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도 쓸쓸한 죽음이었습니다. 너무도 안타까운 죽음이었습니다. 이런 죽음 이런 장례는 처음 이었습니다. 예수 없이 살다가 떠나는 죽음이 얼마나 허무한 것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주 안에서 죽는 것이 복이라고 하신 말씀이 귀한 것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진행이 어떻게 되느냐는 물음에 고인을 위해서 집에서 특별히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장의사에서 시신을 가져다가 화장을 한 후 재(Ash)를 집으로 돌려주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2 주일 이상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Ash를 돌려받은 날 필자에게 그 같은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부인이 병상에 있을 때 남편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나면 나도 당신 따라 곧 바로 갈 거야? 당신 없는 세상을 나 혼자 살아갈 수가 없어” 그러면서 자살을 위한 수단으로 권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인이 세상을 떠난지 서너 달 후 30여 년 동안 살던 집을 팔고 근처 다른 도시로 이사를 떠났습니다. 한 동안 그 분의 소식을 접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고 나서 일 년에 두 서너 번 살았던 곳을 방문하는 것입니다. 남편은 사랑하는 부인을 잊을 수 없어 지금도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집 안에 부인의 Ash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만하면 놓아 줄 때도 되었건만 Most씨는 사랑하는 아내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Most 씨가 아내를 사랑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2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