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동안 한결같은 K 권사님

다가오는 1월 4일은 필자가 섬기는 평강교회가 설립 34주년을 맞이하는 기념 주일입니다. 금번 기념일이 특별한 것은 한 달 전 주님께서 기도 응답에 대한 축복으로 예배당을 허락하셔서 29년을 한 장소에서 예배를 드려 오는 동안 건물에 대한 페이-오프를 하고서 건물 소유권을 은행으로부터 돌려받았기 때문입니다.

길고도 지루한 세월이긴 했지만 막상 돌이켜 생각하니 한 순간에 지난 것 같은 느낌으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 필자가 소개하길 원하는 분은 교회 설립일 부터 지금까지 교회를 섬겨 오신 K 권사님입니다. 권사님이 필자와 우리 교회에 특별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34년 동안 변함없이 강단에 설교자를 위해 물을 바치셨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한두 번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 년 아니 수년을 계속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 권사님은 설교자를 위해서 강단에 물을 바치시는 것을 교회 설립 때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계속해오고 계신 것입니다.

내 생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 그 일을 계속 하시겠다고 공개적으로 선포하시어 다른 교우님들은 그 일을 생각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권사님이 한 주간에 강단에 바치시는 물은 주일 낮 예배와 오후 예배 그리고 수요 예배와 금요 기도회 때입니다. 지금까지 권사님을 통하여 강단에서 마셔온 차의 숫자를 세어본 적이 있습니다. 약 7,000회가 넘었습니다. 주님은 작은 자 하나에게 냉수 한 잔을 대접한 상까지 잊지 않으시겠다고 하셨는데 권사님이 받으실 상급이 과연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것일까에 대해서 생각을 해봅니다.

권사님이 강단에 물을 바치는 것은 단순한 물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늘 같은 잔에 바치는 것으로 생각이 될 수 있지만 받는 필자는 매 번 맛이 다른 차가 강단에 오르는 것을 경험합니다. 한 번은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강단에 물을 바치기 위해서 설교자의 건강을 살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 이런 내용으로 기도 하십니다. “이번 주일에는 어떤 것으로 강단에 올려 드릴까요?” 그렇기 때문에 한 번도 같은 내용의 물이 연속적으로 강단에 올라오지 않는 것입니다. 매번 다른 종류의 차가 오르는 것입니다. 그 날의 기후와 설교자의 컨디션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그러다보니 K 권사님의 손길을 통하여 마셔본 차의 종류도 셀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어디 특별한 차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시면 그것을 구해다가 강단에 올리시는 겁니다. 여름에는 차 잔에 얼음을 가득 넣어 올리시어 설교하다가 땀이 날 때는 시원한 찻잔을 잡기만 해도 큰 힘이 되는가하면 추운 날에는 무겁고 투박한 잔에 뜨거운 차를 준비해 잔에서 올라오는 따사한 온기를 느끼며 설교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권사님의 사랑과 정성이 설교자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는가 모릅니다.

그런데 요즘 K 권사님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가 않습니다. 그렇게 늘 건강하시고 항상 변함이 없으실 것 같으셨던 권사님의 발걸음이 예전과 같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80세 중반에 들어서시는 권사님이 얼마 전부터는 주일 오후나 수요 예배 시 아래 강단에 물을 바치시기 위해서 올라오실 때 힘들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위의 강단은 오르는 계단이 낮은데 반하여 아래 강단은 권사님이 오르시기에 이제는 높기 때문입니다. 이를 아는 필자는 행여나 넘어지실까 조심이 되어 권사님이 물 잔을 가지고 아래 강단으로 나오실 때는 계단 아래로 다가가 정성스레 준비하신 차를 받아가지고 강단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한번은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내가 만일 K 권사였다면 나도 34년 동안 변함없이 그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그렇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 나만 한단 말인가? 다른 사람도 있지 않은가?” 불평도 할 수 있고 이제는 그만 하겠다고 선언할 수도 있습니다. 그 동안 봉사하시면서 좋은 때만 있으셨겠습니까? 다른 교우들에게 시기의 대상이 될 때도 있고, 스스로 시험이 될 때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필자가 K 권사님을 귀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시험에도 중단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권사님이 교회를 오실 때에는 늘 두 개의 가방을 양손에 들고 오십니다. 물론 하나의 가방에는 집에서 정성으로 준비해 담아오는 보온병과 잔을 바치는 작은 쟁반 그리고 흰색이 아닌 예쁜 색깔의 냅킨이 담겨져 있습니다.

권사님! 그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욱 건강하셔서 지금처럼 권사님의 뜨거운 정성과 사랑의 섬김을 통하여 큰 힘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2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