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집사님의 아름다운 우정!

L 집사님은 16년 만에 부인과 함께 지난 10월초 한 달간의 일정으로 꿈에 그리던 고향 땅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수년 전 장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고국을 방문하지 못했던 것은 서류미비자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한 때는 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로 활발한 사업과 사립학교 설립자로 활동을 하다가 학교 교사 건물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부도를 맞아 그동안 혼신의 힘을 다하여 일구어오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빈손으로 사랑하는 네 명의 자녀와 함께 40대 중반의 나이에 미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지난 16년 동안의 삶은 초창기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그러했듯이 빈손으로 고국을 떠나 이곳에 정착하기 위해서 격어야만 했던 어려움을 온 몸으로 체험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타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힘든 것인 줄 알았다면 미국행을 결정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만 후회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생존을 위해서 앞만 보고 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이민 생활 16년 동안 하나뿐인 사랑하는 아들이 10여 년 전 12살 되던 해에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어려운 병으로 고생하다가 부모의 곁을 떠나 큰 슬픔을 안겨 주었습니다만 이후 두 딸이 가정을 이루어 외손자 둘과 외손녀 하나를 얻어 위로와 기쁨이 되셨습니다. 이에 더하여 큰 딸 가정을 통하여 그토록 간절하게 소원하던 영주권을 받으신 것입니다. 서류 미비자로 살아가는 동안은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엄두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냥 하루하루 계획 없이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주권을 받은 후 끝이 보이지 아니하던 어둠의 긴 터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은 새 삶의 용기와 희망이 생겼습니다.

지난 16년 동안 식당 주방에서 부인이 일을 해오면서 음식을 만드는 것에 자신이 생긴 것입니다. 이제는 종업원으로서가 아니라 식당의 주인으로 일을 하고 싶어진 것입니다. 마침 일하는 한인 타운의 유명한 큰 쇼핑센터 건물 내 음식 백화점의 여러 식당중 하나가 매물로 나왔습니다. 인수 가격은 10만 불이었습니다. 마음은 간절했지만 그럴만한 큰돈을 만들 방법이 없었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먼저 이민 와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학교 동창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거절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근심을 반복하다가 어렵게 친구를 찾아가 입을 열었습니다.

친구는 생각해보자는 말도 하지 아니하고 즉석에서 도와주겠다고 선뜻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식당을 인수하기 위해서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L 집사님은 며칠 동안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식당을 인수하면 그동안 주방에서 일 해온 아내의 실력으로 성공할 자신이 있었지만 만에 하나 실패할 경우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럴 경우 친구도 잃고 돈도 잃을 것 같아 생각의 생각을 거듭하다가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친구의 도움을 받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매물로 나왔던 식당은 15만 불에 다른 사람에게 팔렸습니다. 불과 한 달 만에 5만 불이나 비싼 값에 팔린 것입니다. 아차 하는 생각도 했지만 후회는 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던 큰 딸이 아버지를 향하여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지난 16년 동안 미국에서 살아온 것이 실패의 연속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에게도 어려울 때 큰 도움을 주는 좋은 친구가 있다는 것을 보고서 아버지가 이 땅에서 잘못 살아온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한국으로 떠나기 수일 전 L 집사님을 통하여 이 말을 들으면서 참으로 좋은 친구를 가지고 계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즘과 같이 각박한 이민사회에서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할지라도 100%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조건 없이 10만 불의 큰돈을 빌려주겠다는 친구도 훌륭하지만, 만일을 생각해서 그 돈을 사랑하는 친구에게 도움을 구하다가 다시 거절한 L 집사님의 결정도 이에 못지않기 때문입니다.

부인은 남편의 친구가 식당 인수 자금을 빌려 주겠다는 말에 며칠간 꿈에 부풀었다가 아무런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거절한 남편의 행동에 대해서 처음에는 동의하지 않아 힘들어 했지만 깊은 고민 끝에 결정한 남편의 뜻을 존중해주고 가벼운 마음으로 고국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가뭄에 단비와 같은 이 아름다운 우정이 우리에게 삶의 동력으로 전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L 집사님과 그의 좋은 친구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도우심이 늘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2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