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내 딸을 살려 주세요!
20여 년 전 어느 날 이었습니다. 다급한 목소리로 C 권사님이 전화 했습니다. 십여 년간 한 교회를 섬겨오면서 권사님의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권사님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직감적으로 건강하던 딸이 어려운 중병에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사님은 아들 하나와 두 딸을 두고 있습니다.
두 딸 모두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큰 딸 가정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큰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딸이 IRS로부터 강도 높은 세무 감사를 받게 된 것입니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교회에 헌금한 명세서를 가짜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액수에 해당하는 금액을 현찰로 헌금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권사님의 딸은 교회를 다니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교회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것을 알기에 당연히 어머니의 청을 목사님이 거절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무리한 부탁인줄 알면서도 어머니를 통하여 그런 요청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가지만 해도 교회를 섬기면서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습니다. 마음 같아선 도와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재정부장 장로님과 상의하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곧 바로 장로님께 전화 했습니다. 재정부장 장로님의 대답은 가짜 헌금증명서를 IRS 앞으로 발급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액수도 작은 것이 아니고 더구나 세무 감사에 걸린 상태에서 위조 서류를 발급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당연한 말이지요! 그렇다고 C 권사님에게 “나는 해 주고 싶은데 재정부에서 거절하기 때문에 도와줄 수 없다”고 말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권사님에게 전화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권사님의 요청을 도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재정부에 이런 내용을 요청해도 허락 받기가 어려울 것 같아 재정부장 장로님께 말을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내용의 전화를 드려서 정말로 죄송하다고 말했습니다. 권사님은 매우 섭섭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전화로 다시 애끓는 사정을 하셨습니다. 한번만 도와달라고 간청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것이라면 얼마든지 도와드릴 수 있지만 이런 내용으로는 도움을 드릴 수가 없기에 끝까지 권사님의 요청을 거절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는 필자의 마음도 편치가 않았습니다.
물론 그 다음 주일부터 권사님은 교회를 떠났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그토록 교회를 사랑하고 목사님을 좋아하셨던 권사님이신데 왜 교회를 말없이 떠나 가셨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교인들이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다 교회를 떠나도 권사님은 끝까지 지킬 것으로 생각할 정도로 교회를 사랑하셨던 권사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내용을 알지 못하는 친구 권사님들과 교인들은 목사인 저를 향하여 권사님 댁을 찾아가 모셔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이 권사님에게 무슨 잘못이나 섭섭한 일을 하셨기에 그렇게 충성하시던 권사님이 단번에 돌아서셨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권사님에게 전화하지 않았습니다. 찾아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위기를 당한 사랑하는 딸을 살려 달라”는 권사님의 처음이자 마지막 간절한 청을 당연히 들어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토록 믿었던 목사님에게 거절당하므로 크게 실망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런 내용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습니다. 알고 싶어 하는 교인들에게 설명할 수 없어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때 대화를 나누었던 재정부장 장로님과 필자만 알고서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소 친하던 교우님들이 권사님에게 전화를 해도 C 권사님은 교회를 떠난 이유에 대해서 끝까지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척의 거리에서 20여 년째 살아가면서 아직도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지 않고 마치 원수 같은 타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때 이후로 굳게 다짐한 것이 있습니다. 다시 이런 요청이 있더라도 그때처럼 이 원칙을 지키기로 한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26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