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거장 사무엘 휴 마펫 선교사님을 추모하며!
남가주의 강렬한 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 8월 29일 토요일 오후 2 시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서북방향으로 80여 마일 거리에 있는 태평양해변의 작은 도시 카핀테리아의 공동묘지에서 사무엘 휴 마펫 선교사님(한국이름으로는 마삼락 박사)의 한미합동 이장예배가 있었습니다.
이장예배 준비위원으로 수고하신 미국장로교 전국한인교회 증경 총회장 정시우 목사님의 초청으로 필자가 소속한 남가주목사장로부부합창단이 특별찬양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12인승 밴으로 이동하던 중 Freeway 교통사고로 장지에 도착하기까지는 3시간이 소요되어야 했습니다. 긴 시간이었지만 함께 동승하신 전 장신대총장 김인수 박사님의 마펫 선교사님의 가족사에 대한 말씀을 듣고서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을 위하여 그토록 복음에 충성하신 믿음의 거장 마펫 선교사님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무엘 휴 마펫 선교사님은 1916년 평양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의 아버지 새뮤얼 오스틴 마펫 선교사님은 1890년 26살의 젊은 나이에 선교사로 한국에 도착하셨습니다. 3년 후인 1899년 의사선교사인 앨리스 피시와 결혼하여 제임스와 찰스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1912년 의사인 앨리스는 이질로 한국 땅에서 보름동안 심한 설사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버지 새뮤엘 오스틴 마펫 선교사님은 1915년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의 동생 루시아 피시와 결혼하여 3아들을 더 낳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첫째와 둘째 아들이 한국 땅에서 풍토병을 극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 이야기를 듣던 중 가슴이 조여 오는 답답함과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흘러내리는 뜨거운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되었습니다.
만일 새뮤엘 오스틴 마펫 선교사님이 한국에 오지 아니하시고 미국 땅에 남아 계셨더라면 이 같은 가족의 비극 사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두 아들과 의사 부인의 죽음은 질병과 가난이 극심한 흑암의 땅 한국을 선교지로 택하신 아버지 선교사님의 고난의 열매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받은 복음이 거저 받은 것이 아니라 그토록 헌신하신 위대한 믿음의 거장들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곁에 있던 친구목사님은 마펫 선교사님을 우리 한국교회의 은인이시라고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섯 아들 중 세 번째가 이장예배를 드린 새뮤엘 휴 마펫 선교사이십니다.
평양에서 출생하시어 고등학교까지를 졸업하고 대학은 미국에서 공부하셨습니다. 휘튼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하시고 1942년 프린스턴에서 신학학사 학위를 그리고 1945년에 예일 대학교에서 종교학 박사 학위를 받으셨습니다. 1947년에 중국 베이징의 옌칭 대학교에서 교수로 섬기셨으며 1955년에 한국에서 선교사로 사역하셨습니다. 1959년부터 1981년까지 서울의 장로회신학교 교수로 섬기시는 동안 대학원장과 공동학장으로 봉사하셨습니다. 1981년부터 1987년까지는 프린스턴신학교에서 선교학교수로 사역하셨습니다. 프린스턴신학교 이사이며 서울 장로회 신학교 교수인 임성빈 박사는 “마펫이 한국에 남긴 학문적, 교육적 유산은 오래도록 계승될 것이라고 하면서 마펫 박사는 한국교회를 세계교회의 지평으로 이끈 선교적 학자이자, 한국 교회의 역사를 아시아 전반의 맥락 속에서 조명하게끔 한 교회 역사가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마펫 선교사님은 금년 2월 9일 프린스턴 원드로스에서 98세의 나이로 별세하셨습니다.
이번에 이장 예배를 드린 곳은 가족묘지가 있는 곳입니다. 김인수교 수님의 말에 의하면 고인이 마지막으로 한국 땅에 묻히길 소원하시어 유골함을 두 개를 만들어 하나는 한국으로 이송하여 서울의 외국인 선교사 묘지인 양화진에 묻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곳엔 새뮤엘 휴 마펫 선교사님의 아버지 묘소가 있는 곳으로 우리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시므로 죽어서도 그가 태어난 한국 땅에 묻히길 그토록 소원하셨던 믿음의 거장 마펫 선교사님이 남기신 위대한 믿음의 유산을 우리는 잘 지켜 나가야 하며 고귀한 저들의 희생과 사랑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3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