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에 행한 어느 특별한 결혼식 주례

지난 4월 9일은 종려주일이었다. 주일 오전 오후 예배를 마치고 교회에서 한 시간 반 거리에 떨어진 야외 예식장에서 오후 4시에 개최되는 결혼식 주례를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목회를 해오면서 여러 번의 결혼식 주례를 해 왔었다. 그러는 동안 결혼식을 요청하는 예비 신랑 신부들에게 주례자로서 지켜온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첫째로 주일에는 결혼식을 주례하지 않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세례 받지 않은 자의 주례는 사양하는 것이며, 세 번째로는 결혼식을 하기 전 적어도 두 세 번의 만남을 통하여 결혼의 중요성과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는 방법에 대해서 성경이 제시하는 비결을 나누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리허설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금번의 결혼식 주례는 이러한 원칙에도 없는 특별한 결혼식이 되고 말았다. 결혼하는 신부를 결혼식 전에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보지 못했을 뿐더러 신부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세례는 받았는지 묻지도 못했다. 사진으로도 보지 못했다. 보통 결혼식을 하는 주간에 가지는 리허설도 하지 못했다.

예비 신랑과 신부가 한국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간의 경험으로 주례요청을 받으면 일자와 시간 그리고 장소를 의논하게 되는데 이번 경우는 그러지 못했다. 집례자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못한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주례를 부탁하기 전 이미 일자와 장소 시간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그런 예는 없었기에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례를 허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신랑이 될 청년이 옛 교인이었으며 생애 처음으로 필자에게 하는 부탁이었기 때문이었다. 청년 시절 수년 동안 교회에 다녔다가 대학을 타 도시로 가면서 교회를 떠난 지가 벌써 십 수 년이 지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번 직장을 구한 것이 서울의 대형 은행이어서 6-7년 전에 미국을 떠난 것이다. 그러는 동안 한 번도 소식을 주고받은 적이 없었다. 그렇게 잊혀 가는 줄만 알았던 K 군이 약 두 달 전 결혼식 주례를 요청하는 국제 전화를 받고서 망설임이 있었던 것은 고난 주일 오후에 결혼식 주례를 요청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거절하지 않고 주례를 허락한 것은 청년의 인품과 신앙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갑자기 주례를 부탁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한국에서 결혼을 하면 미국의 가족들이 참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더구나 신랑 신부도 결혼식을 위해 정해진 날짜 이틀 전에 미국에 들어오게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결혼식을 마치면 곧 바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례를 허락하긴 했지만 지난 두 달여 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그것은 지금까지 목회자로서 주님 앞에 지켜오던 주님의 날에 대한 예배와 주님을 섬김에 대한 나의 원칙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오랜 동안 목회를 해 오면서 내가 정한 원칙을 스스로 포기해 버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주님 앞에 죄송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이번이 내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일에 주례하는 결혼예식이 될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식장을 향하여 달려간 것이다.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된 결혼예식이었지만 온 마음과 정성으로 혼인예식을 인도하며 복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새 가정을 크게 축복하시길 진심으로 기도를 했던 것이다.

혼인예식을 진행하는 동안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마음에 샘솟길 시작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결혼식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기뻤던 것은 신부의 가족 모두가 예수를 잘 믿는 신실한 믿음의 가정이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하객이 모인 성대한 결혼식은 아니었지만 혼인식을 통하여 신랑신부가 크게 기뻐하고 양가의 부모님들과 가족 그리고 모인 축하객들이 하나 같이 축하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K 군의 결혼 주례를 허락하길 잘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식장을 떠나 먼 길을 운전하면서 주님께 감사드리는 기도를 이렇게 드렸다. 주님! K 군의 결혼예식을 축복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목회자로서 주님께 지켜온 예배와 주일 섬김에서 다시는 이 같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례한 주일의 혼인예식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부족한 종을 도우시고 축복하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립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4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