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15년 전의 일로 기억이 됩니다.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교회 주일 학교 학생 중 하나가 치료가 되지 않는 어려운 병으로 생사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을 때에 그 학생을 돕기 위한 모금 운동이 교회 안과 밖에서 있었습니다. 어른 뿐 아니라 주일 학교 어린이 사이에서도 모금 운동이 진행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주일학생 중 하나가 필자에게 다가와 크게 화를 내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강력하게 항의 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지난 주일에 아픈 학생을 위하여 주일 학생들이 모금 할 때에 자신도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그래 좋은 일에 동참한 것 참 잘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를 위하여 얼마를 했느냐고 했더니 5불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것 때문에 화가 났느냐고 했더니 자기가 낸 돈으로 그 아이의 아빠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교회 당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목격한 것입니다.

그 일로 모금에 동참한 어린이가 격하게 화를 내는 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당시 어린 주일학교 학생이 아픈 친구를 위하여 모금에 동참한 5불은 어른이 생각하는 5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에게는 너무도 소중하고 큰돈을 아픈 친구를 위해서 바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드린 그 귀한 돈이 목적한 대로 아픈 친구를 위하여 사용이 되지 않고 자신 앞에서 병든 아이 아빠의 담배 연기로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고서 너무나 화가 났었던 것입니다. 당시의 담배 한 갑의 값이 3-4불정도 했던 모양입니다. 그 순간 자기가 순수한 마음으로 동참한 모금이 후회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정성으로 바친 그 돈이 그렇게 의미 없이 사용이 되는 줄 알았으면 모금에 동참하지 않았을 것처럼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어린이답지 않는 당당함과 자기의 생각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그 말을 듣고 나서 분노하는 학생을 향하여 필자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변명하지도 못했습니다. 무엇으로 어떻게 그 학생을 이해시킬 수가 있습니까? 그저 그 아이 앞에서 죄인 된 심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유구무언이 되었습니다. 이 후 그런 내용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아이 아빠에게도 지금까지도 말하지 아니하고 마음에 담아두고만 있는 것입니다.

15년 전의 그 어린 학생은 계속되는 학교생활에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마약과 술 담배의 유혹으로부터 스스로 자기를 지키며 보호하는 삶을 살아가더니 지금은 29살의 건강한 청년으로 동부의 명문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미 주류사회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지도자로 성장하여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사에 조심하며 나름대로 책임 있는 행동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세상은 나 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생각과 판단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이해가 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생각 없이 행동한 언행이 주변 사람을 화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나의 결정이 다른 사람에게 화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의 충성스런 교인들을 향하여 바울 사도는 고전 10장 31절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권면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잘 믿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주님께 늘 감사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연약을 아시고 보혜사 성령님을 허락하시므로 그 능력을 힘입어 매일의 삶을 통하여 자기를 굴복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하시기 때문에 오늘도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말씀의 푯대를 향하여 순종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