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특별한 장례식을 집례 하면서

알츠하이머 질환으로 10여 년 동안 병마와 싸우느라 많은 고생을 하시다가 지난 8월 3일에 하늘의 부르심을 받으신 92세의 C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권사님을 알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40년 가까이 지척의 거리에서 인사를 나누어왔습니다. 3남 2 녀를 두신 어머니 권사님의 큰 딸이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창립교인이며 권사님이었기 때문입니다.

딸 권사님은 Los Angeles에서의 오랜 삶의 경계를 하와이 빅 아일랜드로 십 수 년 전에 옮겨 가셨습니다. 그로인하여 어머니 권사님과의 만남도 전과 같이 자주 갖지를 못했습니다. 1년 여 전에 딸 권사님이 어머니의 병문을 왔다가 필자에게 장례식을 부탁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머니가 기억을 잃어버리시므로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가 멀어져 갔습니다.

오래 동안 섬겨 오셨던 교회와의 관계도 단절이 되어갔습니다. 그래서 필자에게 부탁을 했던 것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 바로 양로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병실에는 가족들이 와 있었습니다. 장의사에서 시신을 모셔가기까지 서너 시간 고인의 곁에서 가족들과 함께 머물 때에 평소 볼 수 없었던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 두 분이 차례로 고인을 문상하면서 C 권사님의 손과 얼굴을 쓸어내리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병원에서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해오던 환자분도 고인 앞에서 작별의 아쉬운 눈물을 우리에게 보이셨습니다. 마지못해서 흘리는 형식적인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체면을 위해서 슬퍼하는 아픔이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목회를 해 오는 동안 많은 죽음을 보아왔지만 이번의 경우는 특별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을 때에 가족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직계 가족이 아닌 이웃이 그렇게 아파하며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것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환자를 돌보던 병원 직원들이 그런 슬픔을 보인 것은 아주 드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을 곁에서 지켜보는 순간 C 권사님의 인품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기억도 잃어가므로 매 순간 주변의 도움을 필요로 하며 힘들게 살면서도 의식이 돌아오거나 아니면 습관적으로라도 가까운 이웃에게 끊임없는 감동과 사랑을 베푸셨던 것입니다.

세상에 우연한 것은 없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심지 않으면 거둘 것이 없습니다. 고인 앞에서 눈물을 보이신 분들을 위해서 고인이 베푸셨던 희생과 사랑이 열배 100배 더 크지 않고는 그런 대접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는 동안 나의 노리에 스쳐가는 것이 있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했습니다. 나도 언젠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죽을 터인데 그 때 나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 달려올 사람은 누구일까? 그 때 날 위해서 진심으로 아파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려줄 사람은 누구일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내게는 그럴 사람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C 권사님처럼 이웃을 위하여 감동과 희생을 베푸는 삶을 살지 못한 것입니다. C 권사님 고인의 면전에서 다짐을 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세상을 더 살지는 모르지만 살아가는 동안 가까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삶을 살므로 죽어서도 이웃에게 사랑의 기억을 남기고 갈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C 권사님의 장례식을 준비할 때에 마음에 샘솟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이 땅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면서 만난 어르신 중 미국에서 태어난 어르신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C 권사님은 1926년 5 월에 Honolulu, Hawaii에서 태어나신 미주한인 이민의 뿌리로 태어나시므로 살아 있는 역사이기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권사님을 만날 때마다 알고 싶은 것도 많았고 묻고 싶었던 것도 많았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신 대로 주님과 교회를 남달리 사랑하셨으며 믿음의 본을 그 어려운 투병 중에도 잃지 않으시고 선한 싸움을 승리로 마감하신 권사님의 장례식을 집례하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4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