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나무 숲에 둘러싸인 아카시아 나무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생애 처음으로 강원도 오대산의 전나무 숲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길로 알려진 산책로를 걸을 때 다른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신선함과 상쾌함이 눈으로 보는 즐거움 이상으로 기쁨을 더해 주었습니다. 아마도 전나무에서 뿜어내는 아름다운 향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사계절 늘 푸른 잎을 자랑하는 전나무를 한 장소에서 그렇게 많이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마침 큰 비가 오고 난 후라 골짜기에는 맑은 물줄기가 세차게 흐르고 있어서 듣는 즐거움 속에 전나무 숲길을 걷는 행복을 더해주었습니다. 등산길 좌우로는 40여 미타 이상 되어 보이는 전나무들이 곧게 하늘로 치솟아 해를 가리고 있었습니다.

콧노래를 부르며 전나무 숲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내리막길 왼편에서 외롭게 자리하고 있는 아카시아 나무 한 구루를 발견했습니다. 함께 동행한 친구 목사님과 그 나무 앞에서 우리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전나무 숲에 둘러싸인 곳에서 아카시아 나무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방이 전나무로 둘러싸인 곳이지만 아카시아 나무는 조금도 위축되지 아니하고 자기 자리를 당당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서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아는 아카시아 나무가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흔히 마을 뒷산에서 보아오던 아카시아 나무는 크기가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아오던 아카시아 나무는 곧게 자라지 않았고 휘어지거나 삐뚤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기에 좋지도 않고 사용되는 용도도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오대산의 전나무 숲에 홀로 선 아카시아 나무는 자기의 본분을 잃은 듯 모양은 아카시아 나무가 분명한데 외모는 전나무를 닮았습니다.

선 자태가 전나무처럼 보기에 좋을 정도로 하늘을 향하여 곧게 뻗었고 조금도 휘어지거나 삐뚤어지지 않았습니다. 크기도 일반 아카시아 나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컸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요? 지금까지 그런 아카시아 나무를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이유를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은 이러했습니다. 나무도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카시아 나무가 전나무를 닮아서 하늘을 향하여 바르고 곧게 그리고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전나무 숲에 둘러 싸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다른 장소에서 다른 나무들 틈에서 자라났다면 전나무를 닮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카시아 나무가 전나무처럼 성장하여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전나무들과 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나무들이 자리한 자리에 심겨졌기 때문에 아카시아 나무가 전나무의 특권과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전나무들의 영향을 알게 모르게 받고 닮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예수를 믿어야 하고 예수 안에서 생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랑할 것 없고 보기에 흠모할 것 없는 죄인 된 우리지만 주님과 동거하며 동행하는 삶을 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본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주님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아카시아 나무를 변하게 한 것은 주변의 전나무인 것처럼 주님이 우리를 변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복을 말할 때에 만남의 복을 말합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세 가지를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을 아시지요? 첫째는 부모를 잘 만나야 합니다. 좋은 부모를 만나면 인생의 반은 성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배우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잘 만나야 하는 것은 종교와의 만남입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어느 종교와 만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주님을 만나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며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