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만 섬기게 해 주세요!

교회를 설립하고 한 교회를 섬겨온 지 38년이 지나감에 따라 마냥 젊을 것 같았던 나의 청년기도 어느 덧 다 지나가 버렸습니다. 검고 풍성했던 머리카락은 어디로 갔고 듬성듬성 남은 머리는 반백이 되었으며 멀게만 느껴졌었던 목회 정년의 때가 바로 눈앞에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2019년 새해를 맞으며 지난날을 돌아보니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 전적으로 주님의 도우시는 은혜였음을 고백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그동안 감사하는 마음으로 반복해서 생각을 해 오던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께 받은 기도의 응답을 글로 써 남기고 싶은 것입니다.

때가 된 것 같아서 구한 것을 응답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글을 쓰고 싶은 것입니다. 필자가 받은 은혜 중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싶은 것은 사역에 대하여 응답하신 것입니다. 지금도 주변의 동역자들 중에서 교회일 만 하고서 생활을 하시는 목사님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상당수의 교회를 담임하시는 목사님들이 다른 일을 하시면서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해 오고 계십니다. 초창기 이민 교회도 그랬습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목사 안수를 받았지만 일할 곳이 없었습니다. 교회에서 청빙을 받는다 할지라도 충분한 사례비를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두 가지 일을 다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어려운 병에서 기적 같은 생명으로 살려주신 은혜를 생각할 때 마다 얼마나 살지는 모르지만 남은 생명을 다 주님께 바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택한 것이 하나님께 기도로 도우심을 구하기로 한 것입니다.

1980년 7월에 시작해서 40일간 Palmdale에 있는 미국인 기도원으로 향했습니다. 죽기를 각오한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죽을 목숨을 살려 주셨는데 아무렇게나 살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니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주의 종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환경의 복을 주시기 위해서 기도한 것입니다.

그 때 기도한 기도의 제목은 5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영주권을 주시길 기도했습니다. 당시 7년 반 이상 서류 미비자로 살고 있었는데 나의 실력으로는 영주권을 얻을 길이 없었습니다. 두 번째 기도는 목사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세상일 하지 아니하고 교회일 만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세 번째 기도는 주의 일을 하는 동안 말씀의 기근을 당하지 않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언제 어떤 장소든지 말씀을 전할 기회가 주어지면 필요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은혜 주시길 기도한 것입니다. 네 번째 기도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있으나 마나한 종이 아니라 필요한 종이 되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섯 번째는 세상과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지 않는 목사가 되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금식기도 2 달 후 10월 정기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고, 그 후 다시 두 달 후 평소 존경하던 장로님으로부터 교회 개척 요청을 받았습니다. 장로님은 교회 이름은 물론, 교회 등록까지 하셨습니다.

바로 이민변호사에게 가셔서 1년 만에 교회 이름으로 가족 모두 영주권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 장로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한 교회를 섬겨오고 있습니다. 그 동안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적도 있어서 몇 번 다른 일을 해 보고 싶은 유혹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기도하던 때가 생각이 났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니 지금까지 나의 나 된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였으며 도우심이었을 고백하며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너무나 부족한 종을 여기까지 선하게 인도하셨습니다. 남은 사명의 길 동안도 실족하지 않도록 지켜주시고 계속 형통한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기도드립니다.

40년 전 더운 여름 기도원에서 그 기도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 때 그 기도가 지금도 응답의 열매를 받고 있습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