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2)

갑작스럽게 닥친 아들의 질병 문제는 가족 모두를 큰 충격과 혼돈에 빠지게 했습니다. 정말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이러한 상황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이제 나의 목회는 끝이 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낮으로 강단에 설수가 있겠습니까? 무슨 면목으로 설교를 할 수 있습니까?

그때 내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아들의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내가 나아갈 길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부인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두 딸들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밖에 없었습니다.

차를 몰고 산으로 향했습니다. 평소 다니던 기도원으로 향한 것입니다. 얼마나 그곳에 머물지에 대한 생각도 없이 무작정 집을 떠난 것입니다. 기도원을 향하여 운전을 하고 가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이게 뭡니까? 하나님 이게 뭡니까? 지금까지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살아 왔는데 이게 뭡니까?

오래 전 Palmdale 기도원에서 40일 금식기도 할 때에도 장래에 대한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 때 이상으로 아들 때에도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기도원에 머문 기간은 3일 이었습니다. 3일 동안 금식을 했지만 기도가 되지 않았습니다. 성경도 읽혀지지가 않았습니다. 그 때 나의 입에서 쉬지 아니하고 반복해서 터져 나오는 탄식만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게 뭡니까” “주님 이게 뭡니까?”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이제 나는 더 이상 교회 사역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무슨 면목으로 내가 부름 받은 종이라 할 수 있습니까? 나의 목회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이 진정으로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십니까?

3일 동안 기도원 골방에서 밖으로 나오지 아니하고 그냥 모든 것을 체념한 채 넋 놓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곳에서 얼마나 더 머물지에 대한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 이게 뭡니까? 하나님 이게 뭡니까? 반복해서 이 탄식만 수도 없이 부르짖는 것뿐이었습니다.

주님도 나를 버리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나의 아버지가 아니시고 타인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제 나의 모든 것이 끝이 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 때의 절망감은 내가 살아 있는 것이 아픔이고 고통으로 느껴졌습니다. 다시는 내게 기쁨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다시는 나에게 웃을 일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에 나를 놀라게 한 소리가 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소리였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음성이었습니다. 잠자던 나의 영혼을 크게 흔들어 깨어나게 하는 세미한 음성이었습니다. 세상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너무나 분명하고 또렷한 음성이었습니다.

그 음성의 내용은 “데이비드가 누구의 아들이냐고 내게 조용하게 물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데이비드가 나의 아들인줄 알았습니다. 데이비드가 나의 아들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음성을 듣는 순간, 데이비드가 나의 아들이 아님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데이비드가 나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그것이 깨달아지는 순간 내 안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깊은 밤에 순간에 광명한 빛으로 변화는 것 같은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의 입에서 “이게 뭡니까?”라며 3 일 동안 부르짖었던 탄식이 이렇게 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데이비드가 내 아들이 아니고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그러니 알아서 하세요! 죽이시든 살리시든 주님 뜻대로 하세요! 그렇게 나의 소리가 바뀌면서 내 안에는 무거운 짐에서 벗은 것 같은 평안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의 문제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리를 정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에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기도원에서 내려오자마자 교회로 향했습니다. 그 시간이 수요 예배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으면 하산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영문도 모르고 수요예배 참석하셨던 교인들은 예배 인도자가 교회에 나타나지 아니하므로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기에 놀라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58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