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살 외동 딸 다은이 엄마의 큰 슬픔(2)

같은 제목의 칼럼을 1년 3개월 전에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으로 기고한 일이 있습니다. 다은이나 다은이 엄마를 한 번도 만난 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다은이를 위해서 기도하고 종종 카톡으로 안부를 주고받는 것은 필자와 특별한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은이는 지금 오래 전 필자가 앓았던 어려운 병으로 큰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 뿐인 외동딸이 병에 걸리고 나서 사랑하는 딸을 죽음에서 구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수소문 하다가 인터넷에서 필자의 투병기를 우연하게 보고서 어렵게 여러 경로를 통하여 전화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서로 얼굴을 볼 수가 없는 것은 사는 곳이 같은 지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화를 받고서 다은이가 남이 아니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고 만나보지는 못했어도 한 동안 잊고 지내던 지난날의 나를 힘들게 했던 질병을 다은이가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은이의 투병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내가 겪어야 했던 길고도 어두운 죽음의 터널에서 절망하며 눈물로 부르짖었던 지난날의 모습이 생각이 되면서 그 힘들고 험한 고난의 여정을 다은이 가족이 당해야 할 모습이 영화의 장면처럼 연상이 되었습니다.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병을 앓는 사람들이 서로 불쌍히 여긴다는 뜻의 말처럼 다은이를 통하여 잊었던 지난들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살아나며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다은이도 무사하게 절망의 늪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다행이도 다은이는 현대 의학의 발달도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5-6개월 전에 골수 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쉬운 수술이 아닙니다. 과정이 힘들고 어려운 것이지만 그래도 그런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수술 결과가 예상했던 대로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골수에서 새로운 피를 왕성하게 만들어 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병원에 갈 때마다 반복해서 수혈을 받고 있습니다.

그로인하여 환자인 다은이만 지치는 것이 아니라 곁에서 지켜보는 부모도 낙심을 하게 되는 겁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어머니는 우울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염려와 걱정이 되신다는 말이죠,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은 자식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닙니다. 자녀가 어려운 병을 가진 부모도 다르지 않습니다.

더구나 시간이 지나면서 치료의 효과가 희망적이지 아니할 때에 부모들이 갖는 낙심과 좌절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필자는 불효자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른 것으로는 부모님께 실망을 드리지 않았지만 난치병으로 어머니의 가슴을 병들게 했기 때문입니다.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4번째 입원 했을 때는 40일간 중환자실에 입원을 했습니다. 그 때 어머니는 40일 동안 집에 가시지 않았습니다. 필자와 함께 병상을 지키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어머니께 너무 큰 죄를 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40일 동안 어머니는 침대 밑 시멘트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주무셨습니다.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기에 잠시도 제 곁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식사도 거르셨습니다. 병원에서 환자를 위해서 주는 식사를 제가 먹고 남으면 그것을 드시는 것으로 끼니를 대신하셨습니다. 이제서 생각하니 어머니가 나를 위해서 아파하시고 흘리셨던 눈물이 얼마나 크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이 불효자를 용서해 주세요! 하나뿐인 외동딸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고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애 쓰시는 다은이 엄마와 아빠의 마음이 제게도 느껴지고 있기에 더욱 주님께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나를 살리셨던 주님! 다은이에게도 기적을 베풀어 주세요!

반복적인 수혈 밖에는 생명을 연명할 방법이 없었던 저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료하시어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의 피를 수혈 받지 아니하고 골수에서 왕성한 피를 조성케 하신 주님의 능력이 다은이에게도 역사하여 주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