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선 집사님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하면서

얼마 전 Los Angeles 시 한 중간을 자동차로 운전을 하고 지나다가 7가와 8가 사이의 Beacon Ave에 위치한 붉은 색 높은 아파트를 발견하고서 차를 멈추어 세워야만 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에서 가장 어둡고 절망적이었던 때가 생각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974년 7 월 UCLA 의과대학의 혈액학 주임교수 Nicola Costea 박사로부터 완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미국에 온지 9 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머무는 두 달 동안 병에 대한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처음 비자를 발급해준 미 영사관 담당 영사님께 편지를 올렸습니다.

병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미국을 방문해서 치료를 담당해준 병원 의사에게 더 치료의 경과를 지켜보게 해 달라는 간청이었습니다. 편지에 대한 회답이 2 주일 만에 왔습니다. 즉시 그 편지를 들고 비자 신청을 해서 당시로는 받기 어려운 Multiple Visa를 받고 미국에 왔습니다.

그러나 처음 미국을 방문할 때와는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처음 미국을 방문할 때는 초청해준 미국의 선교본부에서 병원치료비를 포함하여 일체의 체제 경비를 지불해 주었지만 두 번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비자를 받고나서 미 선교본부 한국 책임자에게 감사 인사차 방문을 했습니다.

서소문에 사무소를 둔 십자군연맹의 책임자는 내무부차관을 지낸 김득황 장로님이셨습니다. 다시 미국을 간다는 말에 어떻게 어려운 비자를 받았느냐고 물으면서 여권을 보자고 하셔서 여권을 드렸습니다. 김 장로님은 비자 상태를 확인한 후 자신의 책상 서랍을 열고서 나의 여권을 그곳에 넣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권은 압수한다고 하시며 미국에 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유를 묻자 “네가 미국에 다시 가면 한국에 지원되는 선교헌금의 내용이 줄어들기 때문이다”고 하셨습니다. 1970년대 여권법은 외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면 공항에서 여권을 회수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의 여권은 회수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미 영사님께 편지 할 때 여권도 함께 보낼 수 있었습니다. 당시 나의 여권은 일반 여권으로 다시 사용할 수 없는 여권이었습니다. 비자를 받고나서 김포공항으로 달려가 담당자에게 출국을 문의 했더니 이 여권으로는 미국을 갈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비자는 살았지만 여권은 죽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시 가까운 우체국을 찾아가 청와대 육영수여사님께 그간의 내용을 기록한 속달 편지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수원 집으로 3 시간에 걸쳐서 완행버스를 타고 왔더니 청와대로부터 전보가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일 아침 8시 반까지 외무부 제2 여권과장을 만나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중앙청을 방문했습니다. 문 앞에는 여권과 여자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즉시 여권과장님께 인도되었고 나의 죽은 여권을 달라고 하시더니 아무런 질문도 없이 여권 두 번째 페이지에 4 각 도장을 찍어 주었습니다. 도장의 내용은 ‘이 여권은 유효함’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여권과장님은 미국을 잘 다녀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내용을 여권을 압수하고 미국에 갈 수 없다고 하신 김득황 장로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 말을 들이신 김 장로님이 제게 여권을 돌려주시면서 한 가지 약속을 해 주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지켜야 할 약속의 내용이 무엇이냐고 했습니다.

이번에 미국에 들어가면 처음 초청해준 미 선교본부에 연락을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을 도착하고서 4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 선교본부에는 나의 존재를 알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번째 미국에 오고부터는 자력의 힘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 때 큰 도움을 주셨던 고마운 분이 계셨습니다. 당시 같은 교회에 출석하셨던 정우선 집사님이십니다. 그 분이 사시던 방은 Single Room이었는데 저에게 업혀 살 기회를 제공하신 겁니다. 당시의 제게는 희망이 없을 때입니다. 직장도 돈도 기댈 언덕도 없었던 가장 암울하고 힘들었던 때였습니다.

먹여주시고 재워주시고 머물게 해 주셨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니 당시의 내가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뻔뻔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는 청소도 할 줄 몰랐습니다. 고맙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지나놓고 생각하니 정말로 큰 은혜와 사랑을 받았습니다. 정말로 머리 숙여 늦었지만 큰 감사를 드립니다.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260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