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19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

필자의 큰 딸이 사는 곳은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인 오렌지카운티 플라센티아 시입니다. 둘째 손녀가 이번에 중학교를 졸업하는데 코로나바이러스19 때문에 졸업식을 하지 못할 것 같다고 하면서 한 밤중에 카톡으로 긴급하게 기도를 요청해 왔습니다. 그 내용은 둘째 손녀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의 어머니 때문입니다.

그 녀의 이름은 Teiko인데 50대 초반의 남편이 코로나바이러스로 10여 일 동안 인근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아 오다가 지난 4월 1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인과 세 아이들은 즉시 결리 당하여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남편과 아버지를 생전에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되어 그로 인한 충격이 너무나 컸습니다.

예기치 못한 갑작스런 일로 아픈 가슴을 달래며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남편을 보내고 이틀 후인 4월 3일 부인(Teiko)과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큰 딸이 코로나바이러스19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본인들만 충격 받은 것이 아니라 그 분을 아는 모든 분들이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남편의 장례식을 치르지 못할 뿐 아니라 앞으로 그 가정에 어떤 불행한 일이 더 일어날지에 대하여 모두가 불안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벽 1시에 잠에서 깨어 그 소식을 접하고 즉시 주님께 기도하기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Teiko를 살려 주셔야 합니다. 엄마가 살아야 아이들을 돌보지 않겠습니까?

이 가정이 원치 아니하는 큰일을 당하고 있습니다. 왜 저들이 이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누가 저들의 아픔에 대하여 책임 질 수 있습니까? 무엇으로 어떻게 위로 할 수 있습니까? 누구의 잘못입니까? 왜 그런 일이 저들에게 임했는지 누가 알 수 있도록 설명도 해 주지 못하는 너무도 억울하고 분한 일이 아닙니까?

영문도 모르고 갑자기 사랑하는 양 부모를 잃게 되면 남은 세 아이의 장래를 누가 돌보게 되겠습니까? 어린 세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어머니를 살려주셔야 합니다. 그 밤에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몇 번이나 잠을 설쳐가면서 반복해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침에 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당장 아이들의 식사 등은 누가 도와주며 아이들을 돌볼 다른 일가친척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단지 아는 것은 손녀의 친구라는 것입니다. 이웃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연락을 해서 순번제로 음식을 가져다가 집 앞에 놓고 간다고 했습니다.

이번 사태가 전쟁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지역적인 전쟁이 아니라 세계 3차 전쟁이라고 말합니다. 세계 3차 전쟁이란 말은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전쟁엔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 있습니다. 죽음입니다. 그것도 적은 죽음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은 인생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렇습니다. 우리가 왜 죽습니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이면 죽지 않습니다. 천사라면 죽지 않습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도 죽음을 피하지 못합니다.

사람마다 죽지만 그 죽음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 없는 죽음은 없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무서운 것은 왜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 이유 없이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야 할 사람이 자신의 생각과 달리 원치 않는 죽음을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19가 몰고 오는 죽음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살아야 할 사람이 죽습니다. 인정이 없습니다. 각 가정의 형편과 사정을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쟁이 소리 없는 무서운 전쟁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기도합니다. 주님! Teiko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세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지 않습니까? 주님만이 그 가정을 위기에서 구하실 수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2020년 4월 4일 12시

이상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