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 218 명절 음식인 터키 없이 보낸 추수감사절!

미국 생활 반세기 만에 추수감사절에 터기 고기 없이 명절을 보냈습니다. 추사감사절에 각 가정에서만 터기를 먹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도 터기를 먹어 왔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는 다음 달이면 교회 설립 40주년을 맞이합니다. 40년을 지나오는 동안에 추수감사절에 터기를 먹지 아니한 때는 단 두 번뿐이었습니다.

금년과 그리고 지난 해였습니다. 금년은 코로나 19 때문에 교회에서 모임과 식사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난해에 터키를 먹지 아니한 것은 어느 교인 중 한 분이 추수감사절 때마다 먹는 터기 음식이 입에 맞지 아니한다며 차라리 닭고기를 교회에서 만들어 먹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습니다.

그 분의 의견을 여전도회 회원들이 듣고서 지난해에는 교회 마당에서 터키 고기를 대신하여 양념 닭고기를 현장에서 버무려 기름에 튀겨 맛있게 먹은 일이 있습니다. 필자도 오랜 이민 생활을 하면서 추수감사절 때마다 터키 고기를 먹는 것에 익숙지 못했습니다. 근 30여년이 지나오는 동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터기 고기가 입에 맞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매년 추수감사절이 되면 터기 고기가 기다려졌습니다. 누군가 옆에서 이런 나의 변한 입맛을 향하여 말하길 이제야 비로서 미국 사람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터키 고기가 없는 추수감사절은 생각할 수 없는 음식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명절에는 교회에서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터키를 먹지 못했습니다. 전 같으면 식당에 가서라도 사 먹을 수 있지만 지금은 식당도 영업을 하지 않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집에서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할 분이 계시지만 아직 나의 실력으로는 터키를 요리할 정도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매년 추수감사절 때마다 가까이 사는 딸 가정에서 모임을 갖고 잔치 음식을 나누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번에도 딸이 초청을 했지만 처음으로 딸의 잔치 초대에 거절을 했습니다. 이유는 코로나 19 때문이었습니다. 최근 코로나 19 사태가 필자가 사는 대도시에 갑자기 빠르게 확산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로인하여 시 행정 당국의 책임자가 명절 기간 동안 가족 모임을 자제하라고 강력하고 권고하고 있기에 이를 거역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마음은 간절하면서도 서로를 위해서 모임을 갖지 아니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서운하며 안스러움이 가시지 아니했습니다.

코로나 19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우리 삶의 여러 영역에 엄청난 변화와 충격을 계속해서 주고 있습니다. 누구도 이런 일이 우리 시대에 일어날 것에 대하여 예상한 과학자나 정치가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일로 앞으로 어디까지 어떤 모습으로 우리의 삶을 지배할 지에 대해서도 아는 자가 없습니다.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의 시작은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미국에 온 청교도들에 의해서 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 미국 동부 프리므스 항에 도착한 저들을 맞은 것은 기쁨과 행복이 아니었습니다. 혹독한 추위와 질병 굶주림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항해 중 잃는 슬픔과 눈물로 보내야 했습니다.

그곳에서 일 년 만에 첫 수확을 거둔 후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청교도들이 드린 감사는 풍성한 가운데 드린 감사가 아니었습니다. 행복해서 드린 감사가 아니었습니다. 아픔과 고난 절망과 좌절 속에서 내일의 희망을 바라보면서 드린 믿음의 감사이며 하나님께 감동을 드린 눈물의 감사였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불안하고 불확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도 역사의 주인이 세상에 있지 아니하고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시일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나타나 우리가 당한 팬데믹에서 자유함을 허락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020년 12 월 1 일
이상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