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 228 소리 없이 다가와 봄을 알리는 복숭아꽃!

요즈음 아침저녁으로 이어지는 맑은 날씨와 신선한 공기 그리고 높고 티 없이 곱고 아름다운 하늘의 모습에서 겨울이 지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7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오면서 전에는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것을 머리로 알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삶 속에서 피부로 느껴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맞이하는 봄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 주변에 일 년 여 전에 20여 구루의 과실 수를 심었습니다. 작년에도 과실 수에서 꽃이 피고 열매들이 맺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감동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여러 가지 과실 수 중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것은 복숭아였습니다.

지난 수개월 동안 복숭아나무는 잎이 다 떨어져 마치 죽은 나무와 같았었습니다. 다른 나무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하면서 복숭아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과실 수 중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전에는 복숭아꽃이 그렇게 예쁘고 아름다운 줄 몰랐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복숭아나무에 꽃이 피는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복숭아나무가 잎이 먼저 난 다음에 꽃이 피는 것이 아니고 꽃이 피었다가 지고 난 다음에서야 잎이 나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연분홍 꽃잎의 색이 얼마나 짙고 고운지 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나를 너무 행복케 합니다.

복숭아나무가 자리한 곳은 교회당으로 들고 나는 문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 좌편으로는 사과나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에도 대여섯 번 교회 당 안으로 들고 나면서 대여섯 번 이상 그 꽃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움에 탄성을 지르며 어떻게 이렇게 고울 수가 있을까 하면서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혼자 보기에 너무 아까워 사진으로 찍어서 지인들에게 보내기도하고 Facebook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나무의 사명은 살아서 자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실 수의 사명은 때를 따라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우며 때를 따라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나무의 열매는 하루아침에 맺는 것이 아닙니다.

열매 스스로 맺는 것도 아닙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선 먼저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뿌리로부터 계속 양분을 공급 받아야 합니다. 꽃이 핀다고 그것이 다 열매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꽃의 수보다 열매가 맺히는 것은 적습니다. 그렇다고 작은 열매들이 다 추수 때가지 익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긴 시간 동안 세월과 싸워서 이겨야만 합니다. 여름을 지나면서 계속되는 뜨거운 태양 빛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비와 바람과도 싸워야 합니다. 여러 가지 병충해와도 싸워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살아남아야 비로소 농부들에게 기쁨을 주는 아름다운 과일로 익어가는 것입니다.

시편 1 편에서 복 있는 나무는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가 복이 있는 것은 마르지 않기 때문이며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히 마르지 아니하는 생명 강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님 안에 믿음의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그리하면 철마다 죽은 가지에서 다시 생명이 돋아나듯 우리의 삶에도 희망의 새 순과 꽃이 철마다 피어오르며 아름다운 축복의 열매들이 줄줄이 맺어져 말씀하신대로 그 행사가 다 형통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꽃이 피어서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물하듯 우리도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삶, 우리의 삶을 통하여 이웃과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는 삶의 주인공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우리의 남은 삶이 얼마일지 아는 자가 없습니다만 앞으로 얼마를 더 살던지 지난 삶보다 남은 생애가 하늘의 큰 상급을 쌓으며 자신과 이웃에게도 복이 되는 삶을 사시는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021년 2월 6일
이상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