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 229 살아가면서 배우는 삶의 지혜!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교회 마당의 과실 수들을 보면서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더 간절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해 이른 봄에 교회 당 주위에 심은 여려 종류의 과실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푸르른 잎들을 머지않아 돋아나게 할 것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바람은 나만이 아닙니다.

교인들 중 지난 해 과실 수 심는 것에 동참하지 못하신 어르신들이 자신들의 이름으로 남은 공터에 과실 수를 심으면 좋겠다고 자원하셔서 지난 주간에 부목사님과 함께 3그루의 과실 수를 사다가 심었습니다. 지난 해 심은 20여 그루의 과실 수 중 다른 것은 다 잘 자라서 첫 열매의 수확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두 구루 블루베리는 실패했습니다. 같은 정성과 수고로 살폈지만 다른 나무들은 잘 자란데 반하여 블루베리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이번에 화원을 방문해서 블루베리가 죽은 이유가 토양 때문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무가 살고 죽는 것도 우리의 수고에 달린 것이 아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그 자리에 라임나무를 심었고 다른 곳에는 석류나무와 열매가 작은 오렌지나무를 심었습니다. 필자는 그 동안 매주 두세 번 과실 수에 물을 주어 왔습니다. 자주 많이 주면 좋은 줄 알고 나름대로 정성으로 돌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나무들에도 물을 주는 때와 방법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감나무나 다른 겨울잠을 자는 나무들에게 잠을 자는 동안 물을 반복해서 주면 안 되는 것을 몰랐습니다. 많이 주면 잘 자라는 것으로 생각을 했는데 나무가 잠을 자는 수면기 동안에 물을 주면 나무가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어 건강하게 뿌리를 내리며 성장하는데 지장을 받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잔디나 과일나무들에 물을 줄 때에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할 때에 생각의 기준, 판단의 기준이 자기중심적인 것을 이번에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하는 일이라고 열심하는 일들이 도리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주님이 정하신 원리와 법대로 하는 것이 바른 수고이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큰 지위를 가지고 권세를 행하며 하나님을 위한 열심히 가장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과 종교인들을 향하여 무섭게 책망하셨습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내 아버지의 집을 강도의 굴로 만들지 말라시며 요한복음 3장 5절에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말은 죽인다는 말이 아닙니다.
심판의 주재 되시는 예수님이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신다면 그 말이 정말로 두렵고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유는 우리의 생이 다하고 나면 우리의 선택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길 가운데 하나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가고 싶다고 가는 곳이 아닙니다.

가기 싫다고 안 갈 수 있는 곳도 아닙니다. 천국에 가지 못하는 사람이 강하는 곳은 영원한 위로와 안식이 없는 곳이기에 두렵고 겁날 수 밖에 없습니다. 예루살렘의 상류사회를 이끌어가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믿음의 사람 된 우리 각 사람에게 원하시는 뜻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큰 것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를 향하여 ‘살전 5장 16-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세상살이가 힘들고 고단해도 인생의 끝은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앞에 예비되어 있기 때문에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드는 시련과 고통은 우리를 낙심케 하고 절망케 하지만 우리를 도우시는 주님이 동행하심을 인하여 기도하라 십니다. 너희가 받지 아니함은 구하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삶이 우리의 원대로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이 나의 편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2021년 2월 14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