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 232 교회 뜰에 심은 튤립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봄이 왔습니다. 만물을 새롭게 하는 봄이 왔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가는 세월 막지 못하고 오는 세월 막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지만 세월을 역행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는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하신 자연의 법칙과 정하신 순리에 복종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해 말 교회를 섬기는 부목사님이 꽃씨를 뿌리면서 튤립 씨앗도 40개를 사 오셨습니다. 생김새가 작은 양파처럼 생겼으며 모양도 그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30센티미터 간격으로 땅을 파고 심을 때 곁에서 지켜보면서 과연 이것이 3-4개월 후 어떤 모양의 꽃을 피울까에 대하여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해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는 지난 서너 달 동안 튤립을 심었던 기억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서너 주일 전부터 대지를 뚫고 푸른 잎을 세우며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오늘은 그 중 하나가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한 번도 튤립을 심어보지 못했고 그렇게 가까운 곳에서 피어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고 신비로우며 아름다운 경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보면서 하나님의 솜씨를 새삼 돌아보게 됩니다. 세상 어느 누가 만물을 소생케 할 수 있을까요? 세상에 저절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만물의 주인 되시는 주님의 솜씨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아름답게 피어나는 튤립 꽃을 보면서 갈라디아 6장 7절의 말씀이 기억되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그렇습니다. 심지 아니했으면 기쁨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무엇을 심을 것을 먼저 생각하고 필요한 양을 계산한 후 정해진 장소에 가서 값을 지불하고 사다가 땅을 파고 거름을 덮으며 때마다 필요한 물과 양분을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그 일을 누가 해야 합니까? 나의 기쁨 나의 행복은 남이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 126편의 기자는 5–6절에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행복하길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행복은 우연하게 오지 않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아픔의 눈물, 하늘과 땅의 풍성한 축복을 보상하는 희생과 헌신의 씨앗을 뿌리고 또 인내로 뿌리고 나서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결실할 때 비로서 감동과 감격의 기쁨과 행복을 내가, 우리가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심지 않고는 거둘 것이 없습니다. 돌보지 않고는 내게 돌아올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동생이었던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서 5장 7–8절에서 우리를 향하여 이렇게 권면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운동장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구경하는 사람과 경기하는 선수들 그리고 경기를 진행하는 심판이 있습니다. 구경꾼에겐 상이 없습니다. 아무리 여러번 경기장에 들어가도 상이 없습니다. 경기를 운영하는 위원이나 심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선수에게는 상이 있습니다. 언제 상이 주어집니까?

경기에 이긴 자입니다. 세상에 쉬운 경기는 없습니다.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선 많은 연습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경기하는 동안 잠시도 방심하거나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여 때로는 죽기를 각오하고 경기에 임하지 아니하면 적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늘의 상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2021년 3월 5일
이상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