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 239 4·29 폭동 29주년을 생각하면서!

한인 이민사 120여년에서 우리에게 가장 슬프고 큰 아픔을 당해야 했던 4·29폭동 29주년을 맞는 주간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것 같은데도 당시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습니다. 1991년 4월 29일 오후 5시부터 흑인 밀집 지역에서 시작된 방화와 약탈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업소들은 불행하게도 우리 한인들이었습니다.

당시 폭도들에 의하여 피해를 본 전체 업소 중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2,000여개의 업소가 한인 소유였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집사님이 운영하던 대형 마켓이 흑인 지역에 있었는데 한인 업소로는 제일먼저 폭도들의 공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피해로 아직도 그 때의 상처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고통 속에 살아가고 계십니다.

미국이 세계에서 법과 질서가 제일 잘 지켜지는 나라로 알고 살아왔습니만 4·29폭동을 당하면서 우리가 사는 미국이 우리가 알던 미국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믿었던 미국의 법과 공권력이 우리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안녕을 지켜주지 못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미국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내리게 되었습니다.

폭동이 지나고 나서 한두 해 후 교회 인근에 있는 Glendale city college 한인 학생회에서 필자에게 4·29폭동의 회고와 전망에 대한 주제로 강연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당시 교회에 출석하는 학생 중 김은경이라고 하는 여학생이 그 대학의 한인 학생회 회장으로 두 명의 여동생 봉경이와 주연이도 교회를 출석했었습니다.

30여 명이 모인 강연회 장에는 백인 교수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강연했던 내용은 대략 이러했습니다. 미국이 현존하는 한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경제적인 것도 아니고 군사적인 것도 아닌 인종간의 문제로서 흑인과 백인간의 갈등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 흑인이 오게 된 것은 우리와 같이 자유의사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웃나라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36년 동안 자유를 박탈당한 채 억압과 고통의 삶을 살아온 것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흑인들은 저들이 살던 곳에서 짐승처럼 결박을 당하고 노예로 이 땅에 끌려와서 대대로 고통의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흑인들의 가슴에 백인들을 향한 증오와 미움은 우리가 일본인들의 만행을 미워하는 것 이상으로 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흑인이 백인을 향한 분노와 울분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지워지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이 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택한 것이 이민제도를 만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흑인과 백인간의 완충지대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민자들은 자기의 나라에서 잘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잘 살기 위해서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민자들이 그 나라에서 정착하기 까지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따릅니다. 그러는 사이에 가난한 이민자들이 이웃에 사는 흑인들과 잦은 충돌이 발생합니다.

그러다보면 백인에 대한 분노와 미움이 줄어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4·29폭동이 일어난 그 장소에서 29년 전에 유대인들이 폭동을 당했습니다. 폭동을 당한 유대인들이 다시 그 자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였듯이 우리 한국인들도 다시 그 자리에 들어가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 공간에 어느 민족이 들어가야 합니까? 지구상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유대인들이 당했던 그 장소에 들어갈 민족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가 그 자리에 들어간 것도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작은 돈으로 가게를 차릴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생활비용이 적게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 곳에 들어가면 힘들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명을 담보하면서까지 살기 위해서 그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폭동 피해당하신 분들은 부자들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 이민 올 때 큰돈을 가지고 오신 분들은 안전한 곳에서 사업을 할 수 있어서 폭동의 피해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강연을 마치면서 결론으로 한 말은 이러했습니다. 이제 폭동이 일어난 그 지역에 들어갈 수 있는 민족은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사람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중에 만일 미국이 북한에 이민 문호를 개방한다면 가장 빠르게 그 지역으로 가난한 북한인들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강연에 참석한 백인 교수가 중간 중간 통역하는 한인 학생의 말을 듣고서 연실 고개를 끄덕이던 기억이 새롭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2021년 4 월 24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