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 244 목회자에게 아픔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지난주일 밤 8시에 35년 이상 간간히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 있는 분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방금 전 부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목사님이 장례를 도와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의 부탁도 없으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오전 11시 유가족과 함께 장의사인 로스 힐을 방문했습니다.

그랬더니 팬데믹으로 장례를 기다리는 대기자들이 한 달 이상이나 밀려 있어 지금은 고인을 위해서 유가족이나 장의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장례절차를 논의할 일자로 3주 후인 6월 16일에 그것도 대면이 아니고 이메일을 통해서 상담할 수 있다는 약속만 받고 돌아왔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며 천국의 소망으로 사시다가 세상을 떠나는 교인들의 경우는 다시 사랑의 교제를 나누지 못하는 아쉬움으로 약간의 슬픔을 느끼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에서의 고단한 삶의 수고와 고통에서 놓임을 받고 주님 안에서 영원한 위로와 평안을 받으시기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고인의 부르심에 대하여 기쁨이 없었습니다. 전화를 받고나서 잠들기 까지, 아니 잠에서도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할 뿐 아니라, 다음 날 유가족을 장의사에서 만나기까지도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무슨 말씀으로 위로를 전할 수 있으며 어떤 설교로 장례를 할 수 있을까?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2주전 남편이 전화로 부인의 장례식을 도와 달라는 부탁을 했었습니다. 그 때부터 부인의 상태를 여러번 전화로 물어 보았습니다. 부인과 약간의 대화는 가능하다고 해서 그러면 운명하기 전에 병원을 방문해서 기도를 해드리고 싶다고 강력하게 요청을 여러 번 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받아 드려지지가 않았습니다. 이유를 묻자 부인이 허락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10여 일 동안 반복해서 기도 했습니다. 이대로 세상을 떠나면 주님의 복된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는데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오른 편 강도와 같이 마지막 순간에라도 구원받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제 다시 제가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요청이니 부인을 위해서 교회 목사님이 기도하는 것을 허락받아 달라고 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마지막 이라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면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지만 끝내 허락하지 아니하고 세상을 떠나신 겁니다.

인생이 무엇입니까? 인생은 살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죽기 위해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중 죽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죽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죽음과 그렇지 않은 죽음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행복하고 부족함이 없이 살아도 죽음의 복을 받지 못하면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고인의 경우 돈을 버는 일을 위해선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셨던 분이셨습니다. 정말로 열심히 사업을 하셨습니다. 보통 사람보다 세 배 네 배 이상 일을 하셨습니다. 먹는 것도, 때로는 잠자는 것도 억제하며 일을 하셨습니다. 그로인하여 물질적으로는 큰 부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돈보다 더 귀한 것이 있습니다.

돈이면 다 되는 것 같은 세상이지만 돈으로도 되지 아니하는 것이 있습니다. 건강이 그러합니다. 죽음도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원치 않는 죽음이지만 돈으로도 오는 죽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피할 수도 없습니다. 도망가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태복음 16장 2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네 목숨을 바꾸겠느냐” 이 말을 뒤집어 해석하면 세상에서 예수를 믿고 구원 받으면 그 보다 더 귀한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승리자, 성공자,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주님의 보혈의 공로로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이 귀하신 구원의 은총을 믿는 자들에게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2021년 5월 24일
이상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