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 264 생활 속에 맴도는 팬데믹의 공포!

지난 12 월 29일 오후 1 시에 추도예배를 준비하고 있을 때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예배 순서지와 예배시 사용할 찬송가도 카피를 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고인의 따님 댁에서 1 주기 추도예배를 드리기로 했는데 갑자기 모임이 취소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이 없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유인즉 예배에 참석키로 한 고인의 아드님이 지난 밤 딸네 집을 방문해서 딸의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였는데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딸의 가족은 3 차 예방 접종까지 마쳤는데 돌파 감염에 걸린 겁니다. 그럼에도 크게 염려하지 않은 것은 딸의 가족이 건강한 젊은이들이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도 부스터 샷까지 마쳤기에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밤사이에 몸에 이상 반응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의 생각을 거듭하던 끝에 어머니의 추도예배 모임이 있기 30분 전에 급하게 예배 모임을 취소한 것입니다. 격동의 한 많은 세월을 몸으로 싸우며 외롭게 사셨던 어머니셨습니다.

어머니 권사님은 편하게 세상과 타협하며 사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 같은 유혹을 주변으로부터 반복해서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편안한 삶을 길을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평생을 마치 전투하시듯 홀로 험한 생활전선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외롭게 사셨습니다.

자녀들도 그러한 어머니의 헌신과 눈물의 삶을 보았기에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효심이 남달랐습니다. 그런 효녀, 효자였기에 일 년 동안 준비한 어머니를 위한 최고의 정성으로 바치려고 한 추도 예배를 취소하는 것이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겁니다. 행여나 자신들로 인해서 가까운 이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촌각을 다투는 위급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과감한 결정을 내려줘 많은 사람이 어려움에 처할 위험을 면하게 해 준 가족들에게 진심어린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시대에 경험해 보지 못한 팬데믹의 위기가 발생한지도 벌써 2 년이 지나 갔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세를 불려가고 있습니다.

놀랍게 발전한 현대의학을 조롱하며 비웃기라도 하듯 바이러스의 강세가 좀처럼 진정되지 아니하고 더 크게 전파되는 것을 연일 보도되는 뉴를 통하여 보고 있습니다. 이제는 팬데믹의 기세가 꺾일 되도 되었을 법 한데 그렇지 아니하고 점점 더 깊은 절망의 늪으로 빠져드는 것 같아 염려를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 모두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팬데믹의 공포가 먼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우리의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곁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도 우리 가족도 예외일 수 없다는 현실적 위험이 주변에서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시 50 : 15절에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라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시도 평안한 날이 없습니다. 이는 누두도 예외일 수가 없습니다.

어른만 환란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도 만납니다. 가난한 자만 환란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도 만납니다. 가난한 자의 환란보다도 부자가 만나는 환란은 더 어렵고 더 극복하기 힘든 큰 환란이 되기도 합니다. 건강한 사람도 환란을 만납니다. 권세자도 만납니다. 어리석은 자만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누가 환란에서 도우심을 받을 수 있습니까? 누가 깊은 절망의 수렁에서 건지심을 받습니까? 구원하시는 전능하신 분에게 도우심을 받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환란 날에 우리의 부르심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 누구실까요? 나의 부르심을 외면치 아니하시고 즉시 응답하시는 분은 구원자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축복으로 허락하신 2022년을 힘차게 믿음으로 출발하면서 금년 한 해 동안에도 주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2022년 새해에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