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 271 금년에 처음 만난 호랑나비!

지난 주중 햇살이 뜨거워지는 아침에 교회 뜰에서 잔디와 과실 수에 물을 주다가 금년 들어 처음으로 가까이서 살구나무 꽃 위에 자리하고 앉아 있는 호랑나비를 볼 수 있었습니다. 몸체는 감색으로 진하게 물들어 있었고 넓은 날개는 검은색 결을 따라 크고 작은 백색의 많은 점들이 줄무늬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교회 주변에 들러선 20여 구루의 과실 수들이 봄을 맞아 저마나 자기의 꽃을 피우니 사방에서 벌들이 날아드는 것을 보지만 호랑나비가 날아든 것은 금년 들어 처음 보았기에 신기하고 반갑기도 했습니다. 이를 보면서 하나님이 풀 한 포기 나무 하나를 통해서도 쉬지 않으시고 일하시고 계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잔디에 물을 줄 때도 아무런 생각이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도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물을 주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먹고 마시는 것만이 아니라 주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메마른 사막이나 황폐한 땅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삶의, 환경이 보기에 아름답기를 원하시고 우리만 평안한 것이 아니라 들의 풀 한포기도 아름답게 피어나길 원하시며 공중을 나는 새와 땅과 바다에 거하는 모든 생물들이 다 창조함 받은 대로 아름다움을 노래하길 원하십니다.

꽃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벌이 몰려들고 나비들이 떼를 이루며 날아옴같이 주님이 계신 곳에는 목마른 심령들이 달려 나와 복음(말씀의 떡, 생명의 떡)을 통하여 굶주린 영혼들이 배부름을 얻게 하셨습니다. 벌과 나비들을 위하여 꽃을 허락하신 주님이 굶주린 우리를 위하여 몸되신 교회를 허락하셨습니다.

벌들이 꽃 없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인생은 복의 근원이 되며 축복의 씨앗이 되는 교회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행복한 삶을 살수 없습니다. 시편 1 편 3절에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나무의 행복은 시냇가에 심기어질 때입니다. 아무리 심한 가물이 들어도 물이 마르지 아니하는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는 때마다 과실을 맺습니다. 모든 것이 메말라가는 시대에도 생명강 되시는 주님께 믿음의 뿌리를 내리면 나의 삶에 물질이 마르지 아니하게 하십니다. 마음에 기쁨이 마르지 않게 하십니다.

가정에 웃음이 마르지 않게 하십니다. 건강이 마르지 않게 하십니다. 하늘의 소망이 시들 거나 쇠하지 않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계획하지 아니한 것까지라도 주께서 형통케 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이러한 것들을 이미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사람마다 더 큰 행복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 비결은 각자의 수고와 노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냇가 되신 주님의 몸 되신 교회에 우리의 믿음의 뿌리가 얼마나 깊이 내리는가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마실 우물은 어디에 있을까요? 잠 5:15절에서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위의 말씀은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가 우리가 섬겨야 할 교회가 아님을 뜻하는 것입니다. 각 사람마다 마실 우물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은 허락받은 자신의 우물을 관리하고 보존하며 그 샘에서 나는 우물을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집이 나의 것이 아님 같이 모든 교회가 우리 교회가 아닙니다.

나의 가정, 나의 교회를 주님이 허락해 주셨습니다. 나의 행복은 나의 가정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처럼, 나의 영적 기쁨과 충만도 나의 샘 되신 우리 교회를 통하여 공급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제일 좋은 가정은 나의 가정인 것처럼 세상에서 제일 좋은 교회도 우리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022년 3월 17일
이상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