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 교회 목양 칼럼입니다

목양칼럼 # 260 국화꽃 향기가 깊어가는 계절

한 해를 마감하는 감사의 계절이 되었습니다. 지난 어느 해 보다도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친 팬데믹으로 모두가 힘들게 살아온 2021년도 이제는 한 달이 지나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역사의 시간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가는 시간을 누구도 멈추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피조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년 이 맘 때가 되면 지나 온 해를 돌아보면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묵은해를 보내며 새해를 맞이하는 시간의 교차로에서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로서 지난해를 돌아보니 너무도 답답하고 어두웠던 길고도 먼 긴장의 연속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러했지만 교회적으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 중 펜데믹으로 인한 두려움과 공포로부터 자유로웠던 분은 아무도 없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중에도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향기 짙은 가을의 국화꽃처럼 우리에게 하늘의 위로와 기쁨을 선물하는 분들이 계셔서 감사의 계절을 느끼게 합니다.

교회에 출석하지 아니하는 K씨 성을 가지신 어느 여성분이 계십니다. 교회 여 집사님과 함께 생활하시는 분이십니다. 지난 4-5개월 전부터 매 주일마다 헌금을 보내오셨습니다. 처음에는 한 두 주일 하고 그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교회 다니지 아니하시는 분이라고 하시기에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데 한 달이 지나고 지금은 5 개월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한 주일도 거르지 아니하고 정성된 헌금을 보내오시는 겁니다. 헌금을 받아 오시는 집사님에게 그분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부탁을 드려도 본인이 원하지 않으신다고 하셔서 아직도 전화 통화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분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은 교회를 멀리하시는 분으로서 매 주일마다 정성을 다한 헌금을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마 6 장에서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에 대한 마음, 주님에 대한 감사가 없으면 절대로 반복해서 헌금을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기에 머지않은 장래에 예배로 만날 날을 소망하며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은 애틀랜타에 거주하시는 이 민 장로님과 그레이스 권사님 부부가 추수감사헌금을 보내오셨습니다. 매년 감사절기마다 특별헌금을 보내시는데 금년에는 평소보다 두 배 반이나 많은 헌금을 보내오셨습니다.

섬기시는 교회에 헌금하시기도 바쁘실 터인데 멀리 있는 우리교회까지 특별헌금을 보내주셨습니다. 편지를 받아들고서 멀리서 날아온 가을 국화향기보다 짙은 감사의 향기가 진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이 민 장로님이 필자에게 특별한 분이신 것은 매주일 예배로 만나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가 보내드리는 유튜브 방송설교를 매 주일 애청하시면서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와 고마운 마음을 늘 전해오십니다. 시대의 변화로 말미암아 이제는 한 지역의 교회 사역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튜브 방송설교를 통하여 지구촌 전체가 선교의 대상으로 설교의 범위가 확장되었습니다.

생각할수록 신기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는데 빠른 문명의 발달로 새로운 시대가 온 것입니다. 비록 많은 수는 아니지만 필자의 설교를 애청하시는 분들이 멀리는 지구 맨 끝자락인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그리고 한국과 기타 여러 지역에서 고정적으로 애청을 해 주시고 계십니다.

팬데믹 기간에도 교회를 지키시고 축복하신 하나님께서 새해엔 또 어떤 은혜와 복으로 인도하시고 축복하실지 기대하게 됩니다.

2021년 11월 15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59 존경하는 김영옥 변호사의 이별의 글을 읽고서!

지난 10월 29일 금요일 아침 집으로 배달된 미주중앙일보 9면에 전면 광고된 “감사, 그리고 이별의 글을 삼가 올립니다”라는 제목의 긴 김영옥 변호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지난 40여 년 동안 같은 도시 안에서 인연을 맺으며 살아온 김 변호사님과의 아름다운 기억을 추억하면서 감동 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의 글에서 밝힌 대로 김 변호사님을 필자가 처음 만난 것은 1981년 2-3월로 기억이 됩니다. 김 변호사님이 이민법 전문 변호사 사무실에서 평사원으로 근무하실 때였습니다. 김 변호사님을 만날 때까지 7년 반 동안 서류 미비자로 이곳에서 태어난 두 아이와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김 변호사님이 근무하시는 사무실에서 이민법 전문 변호사를 처음 만나 상담을 한 이후부터 실무적인 일은 김 변호사님이 담당하셨습니다. 그로부터 1년여 만에 4식구가 꿈에도 그리던 영주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때의 그 감동과 감격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쁨으로 늘 간직하고 있습니다.

김영옥 변호사님을 필자가 크게 존경하게 된 동기가 있었습니다. 남가주목사회 총무로 일할 때 목사회에서 아마존에서 선교사역을 하는 양혜란(여자 의사)선교사님을 돕기 위한 캠페인을 24-5년 전에 했었습니다. 그 때 필자를 현지로 파송해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에 대한 시찰을 하게 했었습니다.

아마존 1차 방문을 하고나서 교계에 선교보고회를 하고서 아마존 원주민 인디오들을 돕기 위한 후원교회와 후원자를 모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10여개 교회가 동참하여 아마존에 목조교회 건물을 짓는 일에 참여했으며 개인으로는 김영옥 변호사님이 최초의 후원자로 동참하셨었습니다.

처음에는 망설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 변호사님의 인품을 알기에 용기 내어 전화로 만날 날짜를 약속 받았습니다. 약속된 시간에 사무실을 방문했습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오늘은 고객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김 변호사님의 도움이 필요해서 왔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도우면 되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마존 선교보고 내용을 말씀드리고 물질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그 즉시 앉은 책상의 서랍을 여시더니 하얀 봉투를 주셨습니다. 봉투를 열어보니 100불짜리가 30장이 들어있었습니다. 그것을 받아드는 순간 주님이 아마존 선교를 기뻐 받으신다는 감동이 파도와 같이 강하게 밀려왔습니다.

그 때 그 힘으로 아마존선교에 매진하여 4번의 선교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타운에는 우리가 존경하는 많은 어르신 들이 계십니다. 개중에는 명을 달리하시고 떠나가시는 분이 계신가하면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추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김 변호사님은 아직도 박수 받으실 일이 많으신 데도 떠나십니다.
떠나시면서 “여러분들 덕분에 그동안 참으로 멋진 삶을 살아왔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이제 변호사로서의 김영옥은 작별의 인사를 드리고 여러분 곁을 떠납니다”는 이별의 글을 읽으면서 마음을 짓누르는 무거움이 느껴지는 것은 우리의 곁에 더 머무시게 하고픈 간절한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존경하는 김영옥 변호사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도 김 변호사님을 본 받아 남은 삶을 진실하게 살겠습니다.

2021년 10월 29일
이상기 목사

목양칼럼 # 258 LA 한인교회를 대표하는 두 교회의 분쟁을 보면서!

정든 고향을 떠나 낮선 타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7백여만 한인들이 전 세계 단일도시 가운데 가장 많이 모여서 사는 곳은 Los Angeles 입니다. 이곳에 LA 한인교회를 대표하는 솔로몬 성전의 입구에 세워진 두 개의 놋 기둥 야긴과 보아스와 같은 교회로 동양선교교회와 나성영락교회가 있습니다.

나성영락교회는 1976년에 고 김계용 목사님에 의해서 설립되어 45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동양선교교회는 1970년에 고 임동선 목사님에 의해서 설립되어 51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두 교회는 그 동안 모든 이민교회의 표상으로 주님의 도우심을 받아 성장하면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려왔습니다.

한 때는 세상 모든 교회가 어려움 당해도 이 두 교회만은 절대로 어려움이 없을 것처럼 생각이 되었었습니다. 마치 만세 반석과 같은 교회로 모든 목사님들이 부러워하며 사모하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 두 교회가 약속이나 한 듯 거의 같은 시기에 교회안의 내분으로 큰 진통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두 교회의 문제가 교회안의 성도들의 문제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많은 한인들의 관심이 되는 것은 교회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정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그 교회에 속한 목회자와 교인들이 스스로 문제 해결을 할 수 없게 되어 교회문제가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 가족이었던 성도들 간에 이편과 저편으로 나누이는가하면, 교회가 속한 노회와 총회간의 충돌로 서로 사랑하고 섬겨야할 동역자들이 서로를 미워하며 저주해야 하는 형편에 처하였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염려와 걱정이 되는 것은 이러한 개 교회의 일로 세상 법정에 소송으로 이어져가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개의 교회중 하나인 어느 교회는 수년전에 법정 소송으로 교회가 지불한 비용만 150만 불을 지불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번에 다시 법정으로 비화된 교회 문제로 교회가 지불해야 할 비용이 얼마나 들어갈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 말을 필자에게 전해준 분의 말에 의하면 너무 화가 난다고 하셨습니다.

온 힘을 다하여 정성으로 바쳐진 귀한 헌금이 그렇게나 많이 재판 비용으로 지출된 것에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시 그런 일이 반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필자도 1970년대 후반에 동양선교교회에서 교인으로 섬겼던 때가 있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교회를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이민의 삶을 통하여 이곳에서 처음 교회를 만났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이전에 알지 못하던 영적인 삶을 교회로부터 받았던 은혜와 감동이 밑거름되어 오늘의 내가 되었기에 교회가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서 안쓰러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필자가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고 지금의 교회를 허락받아 내년 1월이면 교회설립 41주년을 기념하게 됩니다. 지난 40여 년 동안 이민교회를 섬겨오면서 기쁨과 슬픔 낙심과 감격의 순간ㅌ을 경험했습니다. 교회를 처음 시작할 때는 지금의 축복은 생각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주님의 은혜가 컸습니다.

여러 번의 교회적 위기도 있었습니다. 한 때는 필자가 섬기는 교회가 문을 닫았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머지않아 그 교회의 이름이 사라질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나의 힘이나 실력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와 도우심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더 신뢰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 동안 교회를 섬겨오면서 수많은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직회나 당회를 할 때도 그랬고 성도간의 문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진리 문제가 아니라면 상대당의 주장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흐르는 물을 역류케 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회의 할 때는 될 수 있는 대로 작은 목소리로 말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먼저 말을 하기보다는 상대방의 말을 듣는데 귀를 기울이기를 힘썼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대로 나의 주장을 세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훗날 주님이 날 심판하실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2021년 10월 17일
이상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