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 교회 목양 칼럼입니다

목양칼럼 # 236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요한복음 20장 27절에 기록된 말씀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이 모인 곳에 첫 번 나타나셨을 때 그 자리에 없었던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길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그로부터 여드레 되는 날 같은 장소에 굳게 문이 닫혀있을 때 예수님이 문으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갑자기 나타나셨습니다. 그 때 도마에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을 체험하고 믿을 때에 도마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눈앞에 갑자기 나타나신 주님이 8일 전에 한 말 그대로 하시는 말을 듣고 도마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나의 입술의 모든 말만 다 아시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생각도 아시고 행한 일도 다 아십니다.

주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그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은혜로 우리를 택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나의 나 됨은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만물의 때만도 못한 나를 그토록 사랑하시어 주의 은혜와 축복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복중에 복은 날 위하여 죽으신 보혈이 믿어지는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믿어질 때 성경이 믿어지고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이 믿어지며 천국과 지옥이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부활절을 맞으면서 날 위해서 죽으시고 사망의 권세를 싸워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육체적 부활이 믿어짐을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필자가 부활 설교를 처음 들은 것은 미국에 온지 1년이 지나서인 1974년 부활절 때였으니까 벌써 47년 전이었습니다. 그 때는 교회도 모르고 성경도 모르고 예수님도 모를 때였습니다. 작은 교회에서 부활 예배를 마치고 난 후 7-8명의 청년들이 다른 장소에서 친교를 나누며 성도의 교제를 나눌 때였습니다.

그 때 서울에서 약학대학을 졸업하시고 약사의 직업을 가지고 미국에 이민을 오신 Y 집사님이 자신은 부활을 절대로 믿을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현대의학으로는 삶은 달걀을 다시 원래 상태로 돌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삶은 달걀을 다시 원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죽은 사람이 부활하는 것도 가능할 수가 있지만 과학적으로 그럴 수가 없기 때문에 죽은 자의 부활도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도 지금도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오래된 교인도 있고 설교자 가운데도 있으며 신학자들 가운데도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저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육체적 부활로 보지 않고 영적인 부활로 이해하며 상징적 부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소식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부활을 강하게 부정하시던 분이셨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믿어도 그분만은 절대로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을 것 같았던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신학교를 졸업하시고 20여 년 전에 목사가 되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다 믿어도 내가 나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내 손으로 주님의 손과 발 옆구리를 만져보기 전에는 믿지 않겠다고 주장하던 도마처럼 그 분도 부활의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셨음을 믿습니다.

필자가 사는 도시 안에서 사시기에 언젠가는 만날 때가 있으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목사님에게 꼭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47년 전에 한인 타운의 어느 교회 C 목사님의 부활절 설교를 들으시고 그렇게 강하게 부정하셨습니다. 주님의 육체 부활을 의학과 과학적으로 강하게 부정하셨는데 언제 어떤 계기로 주님의 부활을 이해하고 믿게 되셨기에 좋은 직업을 포기하시고 신학을 전공하시고 주님의 부활을 전하는 목사가 되셨는가요? 그 날에 그 목사님과의 귀한 만남을 통하여 은혜로운 신앙 간증을 듣게 될 날을 오늘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2021년 4월 3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35 하늘로 시집가신 어느 주일학교 선생님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님들의 마음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교인이 많든 적든 간에 교회안의 지체 중 한분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들의 아픔으로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밤잠을 설치며 아파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간절하게 기도하였어도 응답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힘을 잃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목사는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난 주간에 친구 목사님이 카톡으로 긴급하게 기도를 요청하는 글을 보내왔습니다. 내용인즉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시는 여 선생님이 3 개월 전에 뇌출혈로 수술을 받고 깨어나지 못한 채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하늘나라로 시집을 가셨다”는 것입니다.

지난 수개월 동안 만날 때마다 고인의 상태를 수시로 보고하면서 기도를 요청해 오셨기에 어느 정도로 위중한 상태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젊은 나이셨기에 곧 회복하리라 믿었습니다. 그렇게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친구목사님과 교회의 성도님들이 너무도 간절하게 계속해서 기도해 오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빠르게 가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성도를 끔찍이도 사랑하는 것을 알기에 전화로 목사님과 사모님을 위로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고인이 얼마나 성실하게 교회를 섬기셨기에 목사님과 성도들의 마음에 큰 아픔과 섬김의 자취를 남기시어 모두가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하셨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고인은 대학을 졸업한 후 교사로서의 삶을 살아오면서 교회에서는 주일학교 교사로의 충성스러운 헌신의 삶을 사셨습니다. 특별히 친구목사님이 섬기시는 교회의 주일학교에서 지난 5 년 동안 모범적인 교사로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의 본을 삶으로 보여 교인들로부터 천사라는 칭호를 받으셨습니다.

어려서부터 믿음 안에서 성장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오랫동안 신장병으로 투석을 해오며 고생 했습니다. 병이 깊어지면서 직장 생활을 계속 할 수 없게 되었지만 다른 것은 다 포기해도 주일학교 교사 마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고인의 건강을 염려하는 목사님을 향하여 이런 말을 남기기도 하셨답니다.

“자기는 예수님 없이는 못사는 사람이라며 육신의 질고로 고난이 깊고 크지만 이 모든 고난을 능히 이길 수 있는 믿음을 하나님이 주셔서 너무 너무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삶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세상에 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성공하기 위해서 입니까? 부자가 되기 위해서입니까? 행복하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목적은 세상이라는 징검다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가기 위함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원하는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삶은 성공한 삶이 아닌 것입니다. 세상이 귀한 것도 세상을 통하지 아니하고는 누구도 천국에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늘로 시집가신 선생님은 비록 세상에서는 평범하지 아니하고 원하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지는 못하시어 실패한 것 같지만 그 누구보다도 성공한 믿음의 사람이 되셨습니다. 다시는 눈물도 아픔도 죽음도 없는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에서 신랑 되신 예수님의 품에 정결한 신부의 몸으로 안기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선생님을 보내시며 아파하시는 교회 성도님들과 고인의 가족 모두에게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로 18절의 말씀으로 위로 드리기를 원합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이 말씀의 위로가 사랑하는 딸을 먼저 주님께 시집보내신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임하시길 기도드립니다.

2021년 3월 24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

목양칼럼 # 234 고난절에 생각하는 주의 십자가!

두 번의 성지 방문을 통하여 가장 은혜 받은 곳은 예루살렘에서의 주님이 십자가 지셨던 골고다였습니다. 벌써 20년이 지났습니다. 성지를 방문하면서 크게 은혜 받는 것은 기독교가 우화적인 종교가 아니라 역사적인 종교라는 사실을 눈으로 직접보고 확인하며 오감으로 느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베들레헴도 감동과 은혜였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빈 무덤과 성령님이 강림하셨던 마가요한의 다락방과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와 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던 곳도 은혜의 도가니였으며 감람산 정상에서 천사의 옹위를 받으시며 승천하신 곳도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장소였습니다.

죽은 나사로가 부활했던 무덤이 실제 존재함을 통하여도 놀라움과 함께 충격을 받는 곳입니다. 두 번째 방문했을 때는 무덤이 붕괴의 위험 때문에 일반인에게 방문이 허락되지 않고 무덤의 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만 처음 방문했을 때인 30여 년 전에는 나사로의 무덤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나사로의 무덤은 지하 3층으로 나선형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는데 그 무덤의 규모와 정교함이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죽었던 나사로가 수의를 입은 채 묶인 몸으로 그 많은 돌계단을 올라와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무덤 안에는 나사로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저들의 무덤은 우리와 같이 개인 무덤이 아니고 가족 무덤이기에 무덤의 구조가 산 자의 무덤과 죽은 자의 무덤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무덤의 문이 있는 것은 수시로 안에 들어가서 시신의 형태를 살피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례시 시신에 향유를 붓고 장례를 하는 것입니다.

뼈만 남으면 그 뼈를 항아리에 담아서 보관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무덤에 있는 모든 자를 향하여 다 나오라고 하셨으면 그곳에 잠자던 자들도 다 나오게 되었을 것을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의 방문에서 필자가 가장 큰 감동과 충격을 받은 곳은 주님이 지신 십자가 장소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가장 방문하기 힘든 곳은 그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좁습니다. 여러 사람이 올라가지 못할 정도로 비좁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체로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그곳을 방문하지 못합니다. 너무도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필자가 두 번째 그곳을 방문 했을 때는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없을 때 였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과 전쟁이 예고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저와 함께 미국에서 여행을 하기로 한 40여명이 출발하기 일주일 전에 모두 여행을 취소했습니다. 여행사 담당자게 제게도 취소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거절했습니다. 어떻게 주어진 기회인데 하루라도 빨리 가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돌아와서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지를 방문하는 것은 성경을 수십 번 읽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처음 방문하고서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위험 부담을 가지고 저의 부부만 여행 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두 나라는 관광수입으로 사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국 내에서 여행자의 안전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지켜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예루살렘에 머무는 동안 여러 발의 총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는 십자가 지셨던 곳을 방문하기 어렵지만 긴 차례를 기다리지 않고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을 방문하기 전에는 큰 감동과 은혜를 받으리라고 기대하지 못했습니다. 골고다는 바위산입니다. 전체가 통 바위처럼 느껴졌습니다. 십자가가 선 곳은 눈으로 볼 수 없게 가려져 있습니다.

4인 용 밥상크기의 사각으로 된 탁자가 놓여 있었고 그 둘레는 모두가 천으로 덥혀 있었으며 무릎을 꿇고 그 앞에 앉으면 손으로 가려진 천을 들치고 손으로 깊게 패인 바위를 더듬어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느낌으로 주의 십자가 선 그 곳은 페인트 1 갤런 크기의 넓이와 깊이로 패어져 있었습니다.

나무 십자가를 그곳에 세우고 작은 여러 개의 돌로 고이게 해 세운 것입니다. 깊게 패인 바위를 손으로 몇 번 훔치는데 감당할 수 없는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높이 달리신 예수님의 몸에서 쏟아져 내린 보혈이 그리로 흐른 모습이 연상되었습니다. 나의 구원이 주의 피로 말미암을 느끼게 하셨습s니다.

2021년 고난주간에 우리 위해서 피 흘려주신 골고다 언덕의 주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2021년 3월 18일
이상기 목사
크리스찬투데이